민성래展 / MINSUNGRAE / 閔晟來 / sculpture   2008_0430 ▶ 2008_0510

민성래_生_합성수지에 채색_33×73cm_2008

초대일시 / 2008_043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_11:00am~05:00pm

장은선갤러리 JANGEUNSU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3-8(경운동 66-11번지) Tel. +82.(0)2.730.3533 www.galleryjang.com blog.naver.com/jang_gallery

맥박치는 가슴과 물오른 둔부의 끝에서 ● 같은 강물로 두 번 걸어 들어갈 수 없다. - 헤라이클레이토스 이것은 일종의 사건이다. 아니 이번 전시는 30여년의 지난한 외길을 걸어온 작가에게 있어서 육체와 의식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에 대한 일대 변화를 예고한다. 작가의 이번 인체 구상 조각은 이전의 조각들과는 달리 일간 신문의 스포츠나 문화면의 기사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들을 크로키와 같이 포착하여 회화적인 저부조의 인체 양감으로 인간의 내면의 심리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이 사각의 링 위에서 눈알이 빠지는 듯이 처절하게 싸우는 복서들의 모습이라든지, 또는 울룩불룩하게 솟아난 남자의 등근육질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사랑의 절정에 피어오른 여인의 얼굴이 주위를 화사하게 밝히는 듯이 보이는 장면이라든지, 또는 허리를 요염하게 비틀며 오른 쪽 다리를 약간 위로 들어 올려 물이 오른 듯이 보이는 여인의 탱탱한 둔부를 적나라하게 저부조로 조각해내고 있는 장면들은 작가가 이전의 조각 작업들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

민성래_生_합성수지에 채색_36.5×51cm_2008

고통은 육체가 아닌 '나'에 있는 것 ● 이번 인체 부조의 장면들은 작가가 자신의 지난한 조각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억누르며 대립과 화해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 육체와 의식의 문제를 풀어헤쳐 놓은 것이다. 육체란, 보다 엄밀히 말해서 육체를 통한 세속적인 쾌락이란 90년대와 2000년도의 초반의 조각 작업에서는 아귀와 같이 다투며 진흙탕과 같은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깊은 수렁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고통의 근원들로 보고 있는 것이다. ● 속치마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며 얼굴을 무릎에 기대고 한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고 있는 여인을 검붉은 색채로 형상화한 조각상을 통해 끊임없이 갈등하는 여인의 내면적인 심리를 표현하고 있는 1992년의「여인」의 조각상이나, 다리를 모아 허벅지로 앞가슴을 움켜잡고 있으나 살며시 옆으로 삐져나온 유방과 지나온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주름 잡힌 뱃살로 그녀의 깊은 번민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1997년의 「여인」의 인체부조는 작가의 이러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즉 육체란 작가에게 있어 깊은 밤 풀벌레 소리를 등 뒤로 하고 속치마를 정갈히 하고 선정(禪定)의 세계를 상징하는 둥그런 원의 세계에 빠져드는「여인, 2003」의 부조작업에서 보듯이 다스려져야 하는 세계이다. 의식과 육체와의 대립 상태, 좀 더 엄밀히 말해 의식은 육체와의 대립에서 생겨난다는 조각 작업은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두상 조각 위의 원추형의 기둥의 유무(有無)로 표현하고 있는「의식, 1995」에서도 볼 수 있다. "정수리에 솟아 있는 살인 육계는 부처의 덕을 상징한다. 동남아시아의 그것은 매우 가파른 원추형으로 나타난다."_조은정, 미술비평

민성래_生_합성수지에 채색_39×59.5cm_2008

그러나 「명상, 2006」의 조각 작업에서 그러한 생각은 일대 전회를 한다. 그리고 의식은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육체를 고통의 근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의식의 본성을 찾고자 하는 이번 전시의 인식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작업은 1995년의 조각 작업과는 달리 젊어서부터 2006년까지의 자소상과 같이 투사된 16종의 두상으로 그 위에 원추형의 기둥을 올려놓고 둥글게 배열하여 가운데로 들어갈수록 얼굴보다는 기둥을 강조함으로써 의식을 육체와의 대립이 아닌 얼굴과의 대립으로 해석하고 있다. 달리말해 얼굴이란 시간과 기억의 흐름으로 인해 축적된 '나'를 의미하는 것이다.

민성래_生_합성수지에 채색_36.5×51cm_2008

육체는 의식이 살아 숨 쉬는 곳 ● 육체는 이제 작가에게 있어서 고통의 산물이 아니라 의식을 발견하는 장소인 것이다. 고통의 원인은「명상, 2006」에서 보듯이 얼굴, 즉 시간과 기억의 흐름으로 축적된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나'를 버리는 순간 사물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며, 작가에게 그것은 일생의 화두와 같은 의식을 찾는 순간인 것이다.

민성래_生_합성수지에 채색_36.5×51cm_2008

그래서 인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체에서 조각된 얼굴 표정이 고뇌와 번민에 휩싸였던 이전의 조각 작업들과는 달리 하나의 강박관념과 같이 편견으로 갖게 되는 일상의 사건과 스캔들을 인체부조의 조각 작업으로 새롭게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한 남성을 파멸로 몰고 간 오노 요코의 이야기는 기존의 통념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이번 전시의 인체부조에서는 온 몸의 하나하나의 살결과 골격이 세밀하게 조각되어져 신체가 마치 살아 숨쉬는 것처럼 사랑의 행위 속에서 남녀가 서로를 망각하며 그러한 의식 속으로 서로 융해되어가는 의식 상태를 그리고 있다. 또한 복서를 소재로 한 인체 부조 역시 일종의 오락거리의 이미지나 동물의 세계와 같이 강자만이 살아남는 복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당해 뒤로 출렁거리며 눈알이 튀어나오는 듯이 보이지만 선수들의 온몸의 신체는 하나하나 의식을 지닌 듯이 살아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 힌두 성전인『바기바드 기따』속의 신(神) 크리슈나가 전쟁터로 나가는 제자인 아르쥬나에게 '기쁨, 분노, 두려움, 야망'을 벗고 그것과 일체가 되라는 일종의 전사와 같은 모습이나, 마치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요 만물의 왕'이라고 말하며 그 속에서 숨겨진 조화를 발견하고자 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상기시킨다.

민성래_生_합성수지에 채색_36.5×51cm_2008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그의 인체부조는 한지나 종이 부조를 통해 인체의 움직임이나 표정을 묘사하고 있는 이전의 조각 작업들과는 달리 서 있는 전라의 여인이 뒤를 돌아보고 있는 인체 부조나 물이 한창 오른 탱탱한 여인의 둔부를 조각해내고 있는 인체부조에 색을 가미한 작업에서 보듯이 조각가로서의 오랜 숙련과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전통적인 조각기법으로 회화적인 느낌을 살려내고 있다. 임송자의 인체부조가「현대인의 일상, 2000」에서 보듯이 손과 인물 표정으로 회화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 반면, 민성래의 인체 부조는 로뎅의 조각 작업과 같이 신체 전반에 걸쳐 하나하나의 근육과 살결이 내적인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듯한 회화적인 느낌을 조각해내고 있다.

민성래_生_합성수지에 채색_36.5×51cm_2008

이렇듯 이번 전시는 일상의 사건을 재해석하여 흥미위주의 조각 작업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인체 부조들에서 조각되어진 신체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정신이 깃들어 있는 듯이 그려내고 있어 신체를 해석하는 변화된 작가의 의중과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육체는 고통의 근원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으로 집적된 기억의 산물인 '나'가 그 원인 인 것이다. 또한 의식은 육체와의 대립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망각하고 또 다른 나와의 일체화된 순간 보이는 것이다. 정적인 움직임으로 내면의 심리를 그려내고 있는 이전의 조각 작업들과 달리 동적인 조각 작업으로 의식의 상태를 발견하고자 하는 그의 인체 부조 작업은 작가에게 오랜 강박관념과 같은 생각을 한 꺼풀 벗겨내고 육체와 정신이 하나로 합일되어진 의식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 조관용

Vol.20080503d | 민성래展 / MINSUNGRAE / 閔晟來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