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변주곡 空間 變奏曲

김세중展 / KIMSEAJOONG / 金世中 / painting.mixed media   2008_0402 ▶ 2008_0408

김세중_공간의 재구성 제8번_우레탄 페인트, 아크릴, 천, 돌_200×200cm_2008

초대일시 / 2008_040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공화랑 GONG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번지 Tel. +82.(0)2.735.9938 www.gonggallery.com

입체회화로 빚어낸 자연의 내재적 에너지 ● 김세중은 프랑스 파리에서 12년간 머무르면서 학업과 작품 활동을 펼치다가 1년 여전 귀국하였다. 재불청년작가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베르사이유미술대학과 파리 국립8대학 조형예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여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래서 그런지 그에게서는 아직도 파리의 낭만적 향기가 느껴진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멜랑꼬리한 그의 외모와 말투들은 어쩌면 파리가 동양인인 그에게 남겨준 유럽적 유산인지도 모른다. 오랜 파리에서의 생활을 접고 국내에 정착한 터라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마침내 일산에 아뜰리에를 마련하고서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였다. 파리에서는 그간 5번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국내에서는 첫 개인전이 될 이번 전시회가 그에게는 매우 두렵고 설레일 터이다. 나는 그의 분주한 작업실에서 근작들과 함께 그가 그동안 발표해 온 작품들을 살펴 볼 기회를 가졌다. 김세중의 근작을 형성하는 작품들에는「공간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이 그의 예술적 여행길에 숙명의 관계처럼 동행하여 왔다.

김세중_공간의 재구성 제8번_우레탄 페인트, 아크릴, 천, 돌, 스텐_99×99cm_2008
김세중_공간의 재구성 제8번_우레탄 페인트, 아크릴, 천, 돌, 스텐_99×99cm_2008

김세중의 작품을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있어서 '공간'의 문제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에서 파악하고 있다. 우선은 그의 작품들이 대체로 부조형태 혹은 입체적인 형태로 구현되어 있다는 점에서나 그의 작품제목들에서도 공간의 문제는 중심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간(空間, Space)'은 주지하다시피 평면성과는 다른 삼차원성을 전제한 개념인데, 이로 인해 그의 작품은 실공간(작품 자체의 물질공간)과 허공간(작품을 둘러싼 외부공간)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의 실공간은 건축재료인 ALC블럭을 일일이 켜고 다듬어서 일정한 프레임속에 붙이는 과정에서 빈 공간을 조성하여 그 사이에 다시 캔버스천에 그린 그림을 잘라 끼워 넣은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김세중에 있어서 틈(gap) 혹은 사이(between)의 개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할 수 있다. 이 틈 혹은 사이를 조율함으로써 그가 가시화하고자 하는 작품의 형식은 일정한 틀을 갖추게 된다. 이 사이 혹은 틈의 문제는 김세중에 있어서 공간의 의미가 그러하듯이 '비어있는 것들의 사이'를 전제한 것이며, 그러한 전제 위에서 형태적 구현이 시도되고 있다. 따라서 비어있음에서 채워짐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도가 그의 작품 속에서는 담겨있는 것이며, 이러한 태도가 바로 그만이 지닌 공간에 관한 미학적 함의일 수 있다. 이러한 미학적 함의가 나선형이나 원, 사각형의 형태 속에서 미묘한 색채적 울림, 역동적인 운동감과 만나 시각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가 드러내고자 하는 예술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보게 된다. 그는 이처럼 물리적 공간을 의미화의 공간으로 전이시켜 나가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근작들은 한옥과 비견할만하다. 캔버스나 나무 혹은 철프레임이 지반이나 골조라고 한다면, 그 위에 축조되는 ALC블럭은 기등이나 벽체의 공간구성이며, 그 사이 사이에 끼워진 그림조각들은 일종의 단청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완성된 하나의 작품은 화면에 구축된 건축이며, 음양오행이나 기운생동의 기세를 연상시키는 개념적 변주곡들인 것이다.

김세중_공간의 재구성 제8번_우레탄 페인트, 아크릴, 천, 돌, 스텐_99×99cm_2008
김세중_공간의 재구성 제8번_우레탄 페인트, 아크릴, 천, 돌_99×99cm_2008

다음으로 김세중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큰 특징 중위 하나는 병렬적 구조와 계열적 연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종속성, 계통성을 지닌 시간개념과는 다르게 공간개념을 담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작품제목에서의 '재구성(reconstruction)'은 이미 구성된 것을 다시 구성한다는 후위적(後位的)라는 시간적 관계성으로 읽히지만,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이러한 제목에서의 시간적 종속성과는 다르게 하나의 A에서 파생된 계열적 관계성 즉, a', a'', a'''....와 같은 형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구체적 사례로는「공간의 재구성 제7번, 2006」과 같은 작품을 들 수 있다. 이 연작들은 그 형태나 구성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정한 유사성과 연쇄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형식들이며, 이러한 시각에서 그가 작품제목에 마치 음악에서의 악장처럼 제1번, 제2번, 제3번...과 같은 번호를 부여하고 있음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점이기도 하다.

김세중_공간의 재구성 제8번_우레탄 페인트, 아크릴, 천, 돌, 스텐_70×70cm_2008

김세중의 작품에는 회화적인 터치와 조각적인 요소가 공존하고 있다. 그는 회화이면서 동시에 조각이기도 하고, 또한 실재하는 물상과 빛에 의한 그림자를 병치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변종적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인공적 변종(an artificial variety)을 관통하는 작업의식에는 앗상블라주(Assemblage) 기법이 동행하고 있다. 앗상블라주는 접합하거나 조립하는 방식을 통해 물건이나 파편들을 구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미술사적 용어이다. 김세중의 작업적 방식은 이 앗상블라주 기법을 채택하여 기성 오브제와 페인팅을 결합하여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시멘트의 일종이자 건축자재인 ALC블럭은 기성재료(ready-made materials)이다. 사각형 입방체로 시판되는 이 ALC블럭을곡선으로 오려내고, 다듬는 것에서 그의 작업은 출발한다. 그리고서는 캔버스에 드리핑기법으로 그려진 화폭을 가위로 자르고 그 조각들을 접은 다음, 일정한 프레임 속에 이미 구성된 ALC블럭 사이에 끼워 넣는 조립방식을 택하고 있다. 결국 ALC블럭의 구성적 질서, 율동감, 표면의 입체적 텍스츄어 사이에서 접혀진 화폭조각들이 발현하는 색채적 향연들이 공존의 울림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 김세중의 앗상블라주 입체회화들은 소용돌이의 한 장면같은 혹은 태풍의 눈과 같은 자연의 에너지를 상기시키게 한다. 이번에 보여줄 근작들은 벽면에 회화처럼 부착되는 작품도 있지만, 공간에 설치되어 관객참여적인 인스톨레이션 작품도 있다. 김세중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이 입체적이라는 점 때문에 조명 혹은 빛에 의한 그림자와의 관계성도 매우 중요한 일면이 있다. 실존의 허상인 그림자가 그의 실물작품과 병치되면서 새로운 환영을 자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자연의 내재적 에너지를 형상화하려는 의도와 맞닿아 있는 점이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서 자연은 하나의 순환적인 질서의 세계이며, 보이지 않는 기운이 기거하는 공간적 영토이며, 가녀린 틈사이의 색채가 빚어내는 빛깔의 향연들은 사계(四季)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세중의 입체회화들은 새로운 예술적 변종이기도 하지만, 동양의 세계관과 미학적 사유에 다가서기 위해 저 물밑을 응시하는 듯한 조어적(釣魚的) 형식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김세중의 이러한 입체회화의 시원에는 1997년도부터 시도한 스타킹을 나무 혹은 철구조물에 결합한 작품들이 있었다. 이 역시「공간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기성제품인 스타킹의 탄성에 주목하여 서로 겹쳐지는 오버랩 효과나 긴장감을 유발하는 작품들을 시도한 바 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은 마치 수묵화에서의 농담효과는 물론 여백의 공간, 긴장감과 이완감을 대비시키려는 의도가 강하게 부각되었다. 스타킹과 함께 캔버스에 그려진 화폭조각들이나 ALC블럭과의 결합을 병행하는 작품들에서는 거친 질감과 미세한 질감의 대비가 복잡성을 동반하면서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 속에서 일관되게 목격되는 것은 동양적 사유가 적지 않게 반영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백의 미, 수묵적 효과, 오방색을 연상시키는 색채구성 등이 이 스타킹 오브제를 사용한 작품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학적 가치들이었다.

김세중_공간의 재구성 제7번_스텐, 돌, 에폭시, 아크릴_80×80cm_2006

김세중은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은 천성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기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예술가이전에 하나의 '공작인(Homo Faber)'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오랜 파리생활을 접고 한국사회에 적응하느라 아직은 이방인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짐작되지만, 머지않아 회화와 조각, 설치예술을 넘나드는 '경계없는 예술가'로서 조명을 받을 날이 올 것임을 예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가 지금 펼쳐 보이고 있는 입체회화, 앗상블라주의 예술적 탐색이 큰 미학적 평가를 받으려면 그 내용적 의미천착이 더 깊이있게 모색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한 의미의 지평에서 나는 김세중의 오브제 결합구조들이 형식적으로나 형태적으로 더 조탁(彫琢)되고, 예술적 사유의 울림들이 시적인 음률로 전환되는 미명(微明)의 기다림을 갖게 된다. 그의 작품에서 발현되고 있는 이슬같은 예술적 사유들이 공작인을 넘어서 관객들의 심성을 적시는 예술가의 빛깔로 다가서는 것은 지금 그의 손길에 숨어있다. 자연에 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색채의 마력은 꽃잎이 떨리는 몸짓으로 피어나듯이, 김세중의 작품들이 겨울을 지나 봄의 여울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그 곁에 조용히 다가가 그 피어나는 숨결,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싶다. ■ 장동광

Vol.20080407b | 김세중展 / KIMSEAJOONG / 金世中 / painting.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