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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8_0401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빛뜰 bdgallery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로122번길 8 (구미동 226-5번지) Tel. +82.(0)31.714.3707 blog.naver.com/bdgallery
소녀,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찾아서 ● 최일의 최근 작품 중 소녀를 대상으로 한 테라코타 작업에서 발견되는 특징 중 비평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것으로 먼저 '규모의 적정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규모의 적정성이란 과도하게 거대하여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압도하거나 또는 너무 작아 왜소한 것이 아니라 한눈에 들어오는 정도의 안정적 크기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그가 2007년도에 가졌던 전시에서 발표한 말의 형상은 그 양이나 규모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특징을 지닌 것이었으므로 그가 유달리 이런 안정된 크기만 추구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인간을 대상으로 하면서 규모의 안정성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테라코타의 특성상 가마에서 소성되는 과정에 크기는 일정하게 축소될 수밖에 없으므로 그가 만든 원래의 형태는 평균적인 사람의 크기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보는 작품은 실제 사람의 체적보다 작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오히려 작품의 심미성을 고양시키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 정도의 크기는 작품이 지닌 촉각성(haptic sensation)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유리한 측면을 지닌다. 이때 촉각성이란 작품을 더듬을 때 피부에 전달되는 사물의 부피, 질감을 일컫는다기보다 우리 눈에 포착되는 느낌으로 봐야 할 것이다. 더욱이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흉상이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이 작품 외부로 벗어나지 않고 오로지 작품 속으로 집중되도록 유도한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지 않고 오직 작품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요인 중에 규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세부묘사의 충실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집요한 묘사는 장점과 단점을 다 같이 지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장점이라면 대상의 특징을 잘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형상을 훌륭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지만 그것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즉 작가의 손으로부터 나온 숙련된 기술이 재료인 물질을 압도하여 작품이 자칫 장식적인 것으로 비쳐질 때 이러한 기술적인 탁월함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할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숙련된 솜씨와 끈질긴 노력이 빚어내는 형상은 테라코타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뛰어넘도록 만든다. 일반적으로 테라코타 작업은 흙으로 성형하였을 때 하중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마에서 구울 수 있는 규격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디테일의 묘사보다 덩어리(mass), 양감(volume), 질감(matiere) 등만 강조되는 것이다. 특히 손으로 빚어 형상을 만들 경우 재료와 기술의 한계는 넘을 수 없는 장벽과도 같은 것인데 그는 속눈썹, 머리카락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의 극한점까지 추구함으로써 사실성을 더욱 고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중틀로 형태를 만들고 직조의 방법으로 세부를 표현하기 때문에 개별 작품의 독자성을 확보함은 물론 섬세한 디테일의 성공적인 묘사를 성취하고 있다.
셋째, 촉각성을 들 수 있다. 얼굴부위의 묘사는 치밀하지만 자세히 보면 손의 압력은 물론 가소성과 접착력이 강한 흙의 성질에 따른 지문의 흔적까지 남아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인상주의 회화에서의 터치와도 같은 작업의 흔적을 남겨놓은 로댕(Auguste Rodin)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대성인 것이다. 최일은 디테일의 충실한 묘사 못지않게 그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것이 아니라 지문까지 드러나는 손의 흔적을 통해 작품의 촉각성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일의 작고 귀여우며 또한 우아하기도 한 소녀상은 많은 예술가들이 추구해왔던 순수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는 점을 네 번째 특징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녀상들이 한결같이 흉상이란 사실은 특정 인물을 모델로 한 초상조각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실상 모두 작가 자신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란 점에서 대상의 충실한 재현이 아니라 작가가 그리는 이상이나 동경을 구현해 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권진규 역시 젊은 여성의 얼굴을 통해 구원의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했지만 그에게는 모델이 있었다. 기법에 있어서도 최일과 권진규가 공유하는 부분은 많다. 우선 테라코타란 방법으로 소녀상을 만든 조소예술가를 든다면 당연히 권진규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체의 다른 부분은 생략하고 얼굴을 부각시킴으로써 인물의 외양뿐만 아니라 그 내면세계까지 드러내고자 한 것은 권진규의 작품과 상당부분 겹쳐진다. 더욱이 테라코타 위에 채색한 것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방법과 내용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최일의 작품을 보면 권진규와 사뭇 다른 지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권진규의 작품이 저화도 소성인데다 표면의 질박함을 지니고 있다면 최일의 작품은 고도로 정교하고 세련된 묘사와 고화도 소성에서 오는 단단함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흙에서도 최일은 옹기토로부터 백토, 분청토 등 주로 도자기를 빚을 때 사용하는 다양한 흙을 동원함으로써 소성 후에도 흙의 발색에 따른 독특한 색채효과를 거두고 있다. 나아가 입자가 거친 분청토와 곱고 매끄러운 표현에 어울리는 분청토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풍부한 질감을 살리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조각에서 특정인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시대부터 본격적으로 흉상을 제작하였는데 이때 가슴 부위는 그 주인공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의상으로 장식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흉상에서 의상을 제거하거나 최소화시킨 것은 근대의 산물이며 특히 보는 사람의 시선을 얼굴로 집중시키기 위해 옷을 입고 있다는 정도의 단순한 표현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일의 작품에서도 가슴은 기본적으로 작품을 지지하기위한 일종의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손가락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는 거친 자국과 화려한 채색으로 처리한 것에서 작품의 장식성을 높이고자 한 의도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가 표현한 소녀의 얼굴은 대체로 무표정한 특징을 지닌다. 이것은 모델 없이 창안한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종의 양식화의 결과임에 분명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런 점이 소녀의 얼굴에서 사색과 침묵의 효과를 거두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감정의 격앙이나 동요보다 차분하고 관조적인 표정을 담아낸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소녀의 외양이 주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명상의 세계로 유도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다면 그는 온갖 시각이미지가 범람하는 디지털미디어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잘 가꾼 성형미인의 외모가 아니라 그 내면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도록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의 테라코타 작업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가 주는 심미적 즐거움에만 탐닉하지 않고 그 너머의 존재의 의미까지 사색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성공한 것으로 평가해 마땅할 것이다. ■ 최태만
Vol.20080406d | 최일展 / CHOIIL / 崔一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