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8_0315_토요일_05:00pm
신한갤러리_SHINHAN GALLERY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82.2.722.8493 www.shinhanmuseum.co.kr
『미노타우로스(Minotauros)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암흑이었지만 그는 미로(迷路)구석구석을 보고 있었다. 그의 세상은 벽과 벽, 어둠과 심연(深淵), 그리고 본능(本能)으로 이루어졌다.첫 번째 제물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두 번째... 세 번째도... ...다섯 번째... ...네 번째 제물을 먹은 후 외롭고 괴로웠었다. ...어머니가 생각난다... 다섯 번째 소녀는 아름다웠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사랑스러웠다. ... 아홉 번째 소녀를 먹은 후론 정말이지 괴로웠다. 그녀의 얼굴이 떠나질 않는다. 그녀는 두려워하면서도 나의 몰골을 보고선 기꺼이 먹으라 했다. 나는 온몸이 메말라 기력을 찾을 수가 없었다. 본능이 나를 집어삼키고 그녀를 앗아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자신의 슬픔이 아니라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나는 미노타우로스가 느끼는 분열적인 정체성에 주목한다. 인간도 아니며, 짐승도 아닌... 이 괴물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을까? 인간은 사회 속에서의 이성과 동물의 본능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분열적 자아를 갖기 마련이다. 또한 개인과 사회로 대립되는 세상의 틈새 사이에서 자아를 찾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이성과 본능, 실재와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표류하는 우리는 미노타우로스를 닮았다. 인간도, 짐승도 될 수 없는 미노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소외된 정체성의 산물이자 분열된 자아 속에서 고뇌하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다르다는 개념으로 서로를 짓밟아 왔다. 종교가 다르며, 인종이 다르며, 나라가 다르며, 사는 곳이 다르며, 먹고 입는 것이 다르다며 서로가 틀리다고 짓밟으려 한다. 다르다는 개념이 우열을 가르는 것이 아니며,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닌데도 서로를 죽이고 있다. 미노타우로스는 서로 다르며 닮은 우리의 본성과 슬픔을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다르다는 개념을 가장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발전시켰던 종교적 관점에서 더욱 모순적으로 드러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의 이웃은 네 종교를 믿는 자이며, 한 쪽 뺨을 맞으면 죽음으로 묻는 것이 종교의 실태다. 모순의 어원처럼 가장 강력한 방패와 창을 양 손에 쥐고서 서로 다른 종교를 틀린 것이라 하며 공격하고 있다. 종교가 사랑과 전쟁을 꼭 껴안고 있는 모순처럼 세상은 모와 순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모순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의 사유를 희망하는 것이다. ■ 이정헌
Vol.20080316f | 이정헌展 / LEEJUNGHUN / 李政憲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