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oled

최원준展 / CHEONEJOON / 崔元準 / photography   2008_0305 ▶ 2008_0323 / 월요일 휴관

최원준_Military base-Gosung_C 프린트_62×72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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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30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풀_ALTERNATIVE SPACE POOL 서울 종로구 구기동 56-13번지 Tel. +82.2.396.4805 www.altpool.org

전전(戰前)의 전후(戰後) 이미지 - 최원준의 군사시설 사진 ● 중학교 시절 학교의 반공교육 중에 '전국토의 요새화'라는 말을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전인민의 병사화' 같은 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전국토의 요새화'라는 말은 어쩐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아무래도 북한만은 못하겠지만, 남한의 전 국토도 요새화된 것은 마찬가지다. 극히 일부의 사진가들만이 이에 주목하였고,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풍경예찬에 익숙했을 뿐 이에 무관심하였다. 최원준도 쓰고 있듯이, 군사시설을 찍다가는 어디론가 끌려가 고문받기 십상이었으니 더욱 그랬을 터이지만, 그러한 규제가 상당히 완화된 시기에도 국토의 요새화에 관심을 가진 사진가들은 그리 많지 않다. 또 그러한 관심이 있다고 해도, 대개는 뭔가 드라마틱하게 보이도록 만든 '매그넘' 종류의 다큐멘터리나 감상적인, 소위 '휴먼' 다큐멘터리가 대세인 것 같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생래적인 기계성과 그로인한 냉정함이야 어떠하건, 사진문화에 늘 따라다니는 '예술 콤플렉스'가 여전히 깊기 때문일 것이다.

최원준_Protect wall#1-Uijeongbu_C 프린트_120×162cm_2007

최원준이 군사시설에 접근하는 방식은, 이에 비해 사뭇 대상에 거리를 취하고 있다. 분단과 통일에 관한 관심이 남한 이기주의와 민족감상주의를 오락가락하는 마당이기 때문에, 분단의 흔적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발견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이런 저런 이데올로기나 집단적 감정을 경계하고 차분히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필요하고 의미 있는 '문화-정치적'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이러한 시선이랄까 태도는 가치 있는 일이기 이전에, 솔직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최원준이 속한 세대가 한국전쟁이나 분단, 또는 좌우대립에 강박관념을 가진 것도 아니고, 또 탈냉전시대인 지금은 이런 주제 자체가 예전처럼 '뜨거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흥미로운 결과는, 최원준이 찍은 건물이나 사물이 버려진 것처럼, 분단과 냉전이라는 주제 자체도 '버려진' 것이라는 사실 사이에 하나의 문학적인 등가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버려진 건물을 보면서, 버려진 기억을 보는 것이다. 버려진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 버려진 기억을 되돌아오게 하는 것은 언제나 사진 특권이자 매혹이다.

최원준_Protect wall#4-Paju_C 프린트_120×171cm_2007

여기 발표되는 최원준의 근작은 냉전과 관련된 버려진 기억의 양상을 확인하는 것에 더해,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상황과 대면케 한다. 은평뉴타운 건설현장 사진이 특히 재밌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평뉴타운 건설의 와중에서 현장의 한켠에 어중간하게 놓여있는 벙커는, 군사적 위험성의 상징은 물론 아니고, 더 이상 무엇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사물도 기호도 아니다. 차라리 어떤 이유로 장소에 우연히 끼어든, '이건 뭐지?' 라는 물음을 낳는 무엇이다. 그런데 이러한 물음은 사실 더 이상 생각되거나 답해질 필요가 없는 물음이며, 침묵을 대신하는 침묵의 다른 반복이다. '어?' 라든가 '뭐지?', '8번?' 이라는 말처럼 물질적이고 1차적인 언어이다. 말하자면, 이런 벙커들은 기억에서 사라진 낡고 버려진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로부터 탈구된 무엇, 어긋나고 어색한 무엇이 되어버렸다. 물론 여기서 우리 현대란, 김신조가 넘어온 은평구가 은평뉴타운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이후의 시대이다. 기억이 되돌아올 때는 회한이라든가 시간의 함몰 같은 것이 일어나지만, 이렇게 탈구된 장소에는 그러한 감정이입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감각이 사물과 닮게 되고, 감정은 '일시정지(pause)'된다. 작가가 잘 표현한 것처럼, 현장에는 새로운 문화사적 발견의 흥분으로 가득 찬 인내심 많은 고고학자가 아니라, 성가시고 딱딱한 사물들과 물리적 힘으로 대결하는 군인과 건설현장의 일꾼이 존재하는 것이다.

최원준_Secret agit-Wondang_C 프린트_120×146cm_2006

이 사물성, 거의 순수한 사물성은 특히 방어선에 박혀있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에서 아무런 숨김없이 드러난다. 아마도 미니멀리스트라면 좋아할만한 이 동일한 사물의 수학적인 반복은, 전 국토와 국민을 폭력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전쟁이나 냉전에 대해 가장 철저하게 무관심한 사물로 보인다. 사람이 아닌 콘크리트 덩어리가 뭐든 어떤 관심을 가질 수는 없지만, 사물에 대한 우리의 기대, 또는 사물에 대한 감흥이나 내면이라는 것이 있다면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냉전을 증거하지 않는다. '증거한다'는 말이, 진실이 떠오름으로서 뭔가 부인할 수 없게 된 승리 따위를 연상시킨다면, 이 덩어리들은 그런 증거의 기대를 배신하고 오히려 그 증거의 부재를 '표현'한다. 물론 방어선이나 방어벽은 냉전의 증거이다. 그러나 증거도 진실도 승리도 모두 회수할만한 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최원준_Protect wall#6-Jinburyeong_C 프린트_120×165cm_2007

그 강력한 힘이란, 사진 밖에 있는 경제일수도 있고 탈냉전일 수도, 무관심과 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합쳐놓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90년대 일산신도시가 조성될 때, 신도시 아파트들이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일종의 잠재적 방어선의 역할을 한다는 루머가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파트를 무너트려 전차나 육군의 침입을 막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군대의 상상력이 일반의 사고를 훨씬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경악하는 것 같지만, 실은 이것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이것이 신도시 아파트의 투자가치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방어선과 아파트가 사이좋게 전후경을 이루고 있는 사진 속의 의정부 풍경을 보라. 그러니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경제와 탈냉전과 무관심과 망각은 그 자체로 이상한 것은 아니다. 이상한 것은, 한 때 이런 짓들을 벌여놓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른 일을 벌인다는 것이다. 이 특이한 시간감각, 윤리감각이다. 앞서 말한 탈구된 지형이 그대로 노출하는 바, 여기에는 그냥 경제나 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완벽한 인간적 가치의 몰수가 있다. 벙커가 필요할 때 벙커를 만들고, 아파트가 필요해지면 벙커를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이다. 아파트가 낡으면 재건축하고,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아파트를 허물어 방어선을 만든다. 그러니까 하느님이 매번 모든 것을 용서했다는 듯이 말이다. 이것이 이 어긋난 풍경이 증거는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냥 열정 없이 기술하고 있는 바이다.

최원준_Bunker#4-Dongsandong_C 프린트_120×162cm_2007

최근 개발되는 전쟁기술은, 건조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인간만 살상한다든가, 아니면 인간도 직접 살상하지 않고, 기계만 멈춘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 미래의 이미지를 갖고 현재를 사는데, 미래의 이미지는 대개 현실적으로 추론된 있을법한 모습이기 보다는 유토피아나 대재난의 풍경으로 나뉠 것이다. 미래의 주술이고, 미래의 주술에 걸린 사람들의 환영이다. 그러나 완전히 환영인 것만은 아니다. 나는 최원준의 사진에서, 왠지 고도로 발달한 전쟁기술에 의해 무인지대가 되어버린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비트나 벙커를 찍은 사진들에서 강조된 숲, 기묘하게 휜 나무들, 방호벽을 타고 자라는 덩굴, 훈련기구가 놓여있는 들판 등의 서정성이 그런 종류의 디스토피아, 이를테면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Stalker'에 나오는 땅을 연상케 한다. 방어선 사이로 난 자전거 도로도 비어있고, 뒤편에 보이는 아파트에도 산 사람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것은 일종의 미래완료형의 이미지이다. 미래 완료란 그 말 자체로도 모순이다. 미래인데 완료라니.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아직도 냉전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착종된 상황도 상황이지만,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심각하게 말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더 거대하고 무서운 시간적 착종을 표현한다. 지속불가능하다면 발전도 없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우쭐대면서 묘사한 과학적 유토피아는 한반도에서 대체 어떻게 변형되어 현실이 된 것일까. 디스토피아는 물론 미래의 상상에 불과하지만, 최원준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또한 어느 정도는 '완료'된 것이 아닌가 한다. ■ 박찬경

최원준_Training station#1-Gosung_C 프린트_62×75cm_2007

너희들은 어디로 날아가느냐 / 아무 곳도 아닌 곳으로 / 누구로부터 떠나왔느냐 / 모든 것들로부터 //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최원준_Protect line#2-Gupabal_C 프린트_120×163cm_2007

아무것도 아닌 곳 어딘가 ● 스무 살 즈음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이내 사건으로 기억되어 오래도록 계속 되고 있다. 그것은 언젠가부터 나와 당신 곁에 있었고, 지금 하려는 얘기는 그 오래된 이야기이다. 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지만 머릿속에 떠도는 실체를 상상하며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이름 붙여져 있고, 많은 이들이 분단과 냉전이라는 단어 속에서 이해할 것이다. 오래전 어떤 일이 있었고 그것이 시작이었지만 여기서 언급하진 않기로 한다. 나는 2년 넘게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이런 나의 행동은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얼마 되지 않은 과거에도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목적 없는 행동도 예전이었으면 누군가가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기에 충분한 이유이다. 아마 모든 예술적시도가 목적이 없진 않겠지만 나에게 이 작업의 시작은 목적이 없었다. 일종의 감상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이것을 관찰하며 기능과 목적이 어우러진 풍경이 주는 새롭고도 차가운 기분을 즐겼는지 모른다.

최원준_Protect line#4-Uijeongbu_C 프린트_120×169cm_2007

장기간 휴식중인 이런 시설들은 대부분 공격에 대한 것이 아닌 방위가 주목적이며 언제 있을지 모를 전쟁을 기다리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 성인남자라면 익히 알고 있을 벙커와 비트 그리고 방호벽과 방어선등이 내가 관찰한 주요 대상들이다. 그리고 이 모두는 위장과 구축, 배열 같은 단어들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들 군사시설은 자신을 위장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허구적 파사드를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진짜 실체는 감추고자 하는데 이것은 군사시설의 전통적 위장방법 중 하나이다. 또한 형태를 결정짓는 기능성은 단단한 콘크리트를 이용함으로써 나타나는데, 방호벽이 도로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콘크리트를 폭파함으로써 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여태껏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 하고 있는 방호벽들은 그 자리에서 긴장된 시간들을 버티며 그 시간들은 위장 혹은 은폐라는 개념 속에 이미 시간성을 상실한 채 하나의 공간으로 구축되어 버렸다. 그것은 자연 속 군사시설인 벙커와 비트(비밀 아지트)에도 적용되어 마치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어버린 것 같은 실용적 위장술의 한 방법을 보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오래된 시간성이 주는 느낌은 장소의 표상과는 상관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런 아름다움은 어떤 미대출신군인이 벙커안의 지도를 그릴 때의 감정과는 많이 달랐겠지만, 그도 이런 역설적 아름다움을 자신의 벽화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최원준_Eunpyeong-gu newtown-Gupabal_C 프린트_120×163cm_2007

이런 역설적 아름다움은 경제발전의 욕망아래 조금씩 사라지는 중이다. 변두리 경제발전의 대표작인 뉴타운사업이 시행되는 은평뉴타운 공사현장은 마치 유물발굴의 현장처럼 땅을 파고 산을 깎을수록 감춰져있던 군사시설물의 내부구조가 드러나는데, 현장에는 고고학자 대신 군인들과 공사장의 인부들이 발굴을 하고 있다. 뉴타운이라는 새로울 것 없는 욕망과 맞물려 하나 둘 없어지는 군사유물들은 대북정책에 대한 정치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나타내는 하나의 단면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구축된 시간의 해체와 함께 새로운 욕망의 재구축으로 향하는 과정이며 그 풍경은 방어선처럼 늘 정돈된 배열을 보여준다. 이것은 다른 영역의 위장이며 은폐지만 많은 이들에게 부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미 국가안보의 논리를 뛰어넘은 욕망 앞에 사라지는 군사시설들은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소멸되어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것 같다. 그들은 어떻게든 파괴될 운명으로 태어났지만 이제 본래의 목적이 아닌 다른 힘 앞에 파괴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또한 콘크리트에 내재된 시대적 이념과 정치적 변화를 비롯한 그 모든 것들은 견고해 보이는 콘크리트 틈 어딘가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렇게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그들은 이제 아무것도 아닌 곳 어딘가로 가는 중이며 나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어떤 초월적 힘의 영향인지 아니면 시각화 할 수 없는 시간의 느린 걸음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언제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며 그 새로움은 다시금 빈자리가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 최원준

Vol.20080304f | 최원준展 / CHEONEJOON / 崔元準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