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8_0227_수요일_06:00pm
대안공간 미끌 ALTERNATIVE SPACE MICCLE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0-17번지 우남빌딜 2층 Tel. +82.2.325.6504 www.miccle.com
홍일화의 작품세계는 미美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 과연 어디서,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가? 라는 매우 포괄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과거, 미의 개념은 '도덕적' 아름다움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과 순수한 미학적 의미에서 미적 경험을 일으키는 '정신적' 내용, 그리고 가장 좁은 의미의 아름다움으로서 형태와 색을 통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이 가장 좁은 의미의 '시각적' 아름다움이 현대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미의 개념으로 자리잡아감에 따라 우리의 삶 속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점차 표면적인 것만을 중시하게 되었다. 매스미디어가 생산해내는 미의 척도는 실상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기 보다는 현실의 파편들을 일정한 패턴으로 편집, 구성함으로써 특수한 의미, 유행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보통의 여성들이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육체의 실체는 본래 그대로의 실제가 아니라 매스미디어에 의해 매개되고 조작된 실제인 것이다. 이렇듯 조작된 현실의 이미지는 개별적인 자아의 특성 및 개성을 망각시키고 허위를 현실로 지각한 채 너도 나도 그것을 따르고 좇게 만든다. 현대 사회의 경제산업구조는 인간의 신체에 대해 끝없는 결핍과 변화를 유발시킴으로써, 이를 따르지 않으면 마치 존재감마저 박탈당할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시키도록 교묘히 순환되고 있다. 또렷하고 큰 눈과 주름 없는 피부, 탄력 있는 목선, 도톰한 입매와 브이라인의 턱을 만들기 위한 여성의 노력은 결국 남성중심의 역사와 끊임없이 신체를 대상화하는 매스미디어와 자본의 결탁에 의한 치밀한 계획과 그 결과에 다름 없는 것이다.
홍일화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이렇듯 뚜렷한 개성을 상실한 채 미디어에 투영되는 편집된 이미지의 표면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성형 강박과 스타지향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심리적 불안감과 미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을 특별히 여성의 신체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증명사진과 패션사진 등의 형식을 빌어 캔버스 위에 거대한 얼굴과 신체를 담는 그의 작품은 선택적으로 비대해진 이목구비와 지나치게 과장된 메이크업, 리얼하게 주름진 피부를 무색하게 만드는 새하얀 이와 번쩍이는 선글라스, 탄력 있는 머리칼 등을 풍부한 색감을 통해 매우 섬세하고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 가운데 흥미를 일으키는 한 요소는 16세기에 매우 독특한 화풍의 초상들을 남긴 화가 주세페 아르킴볼도를 떠올리게 하는 알레고리적 표현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까지 정서적 충격과 미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아르킴볼도의 초상은 꽃과 과일, 야채, 물고기 등 다양한 사물을 인물의 표정과 형태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얼굴 표면의 뒤편에 감추어 있음직한 원초적인 본성의 실체를 느끼게 한다. 홍일화의 작품 역시 화려한 신체의 표현 뒤에 감추어진 현대인의 허망한 욕망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이러한 풍유적 기법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신체는 과연 어떤 유형인가? 안티에이징, 안티링클, 피부노화를 막아주는 획기적인 물질... 이것이 패션과 미용 등 신체를 다루는 미디어에서 예외없이 거론되는 아름다운 몸을 위한 수사 어휘들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신체는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아야 하며, 이러한 대세를 따르지 않는 것은 죄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자못 인간에게 노화라는 현상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명한 생의 과정이다. 신체의 노화를 추하고, 병든 것, 관리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미디어의 흥분된 소비전략과 담론은 자연스레 성숙과 노화,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인간에게 심리적인 압박감과 자신의 신체에 대한 끝없는 결핍과 혐오를 느끼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괴하면서도 풍부한 예술적 상상력이 묻어나는 홍일화의 작품세계를 통해 매스미디어와 자본이 소비와 허영의 도구로 전락시켜가고 있는 인간 신체에 대한 보다 진지하고 철학적인 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유희원
Vol.20080221f | 홍일화展 / HONGILHWA / 洪逸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