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8_0215_금요일_05:00pm
갤러리 우덕 서울 서초구 잠원동 28-10번지 한국야쿠르트빌딩 2층 Tel. +82.2.3449.6071~2
세계를 받아들이는 넉넉한 품 ● 2006년에 발표한 대표작 「宙-the space of ambiguities」를 비롯하여 10여점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는 건축적이고 기하학적 구조가 두드러진 대작 스타일에서 아담한 크기의 유기체적인 형태로 변모한 작품들이다. 일본에서의 전시 때문에 이번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12-13mm 정도의 두께의 스테인레스 판을 2-3겹 붙여서 제작한 무게 400키로 그램이 넘는 작품 「宙」는 이러한 변화를 알리고 있다. 조립되어질 구조적 단위들에 새겨진 문양들은 유선형의 작품 외관에 상응하는 유기적 흐름을 보여준다. 마치 흐르고 있는 물방울이나 유동하는 세포내 구조물 같은 곡선들은 엄격한 기하학을 완화시킨다. 그 작품은 2007년 모란갤러리의 한 전시실을 거의 다 채우다시피 한 「mother ship」과 같은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방주라는 원형을 가진다.
타원형 배 모양의 이 작품은 이 전시에서 작은 모형으로만 제시된다. 몇 겹 둘러친 층위들이 생략되어 있기는 하지만, 원래의 구조를 추측하기에 충분하며, 그 자체로도 완결미를 가진다. 겹겹으로 에워싸인 구조물이 알, 자아 등 최초의 시작이라는 은유를 가지면서 거대한 배로 변모하는 이전 작품의 연장선상에서, 기본단위들이 호를 이루며 배열된 작품들은 보다 개방적인 구조를 가진다. 그것은 작품 제목 중의 하나인 「품」처럼, 상대를 감싸 안는 공간이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떠나는 여행에, 타자를 품에 안으려는 의지가 추가된 것이다. 따라서 응집된 형태를 가지는 「宙-the sphere of egos」는 열린 구조인 「품」과 같이 읽혀져야 할 것이다. 「품」 시리즈는 각종 문양이 타공된 스테인레스 절편들을 둥글게 둘러치는데, 그 밀도는 작품마다 다르지만, 한쪽이 열린 원으로 배열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 자족적인 밀폐가 아닌, 1/3정도 개방된 구조는 상대를 감싸 안을 여지를 남겨둔다. 모 핸드폰 광고에도 나오듯이 직선은 타인을 껴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타자를 불러들이기 위해 유선형으로의 변모는 불가피했다. 새로운 작품들의 외곽은 청자나 날개, 버섯같은 형태가 연상되기도 한다. 개방된 입구를 통해 드러나는 절개 면들은 물방울의 흐름이나 유기적 조직 세포들과 닮았다. 그러나 작품이 유기적으로 변모했다고 해서 제작과정의 엄격함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윤석의 작품은 컴퓨터상에서 설계되고, 이에 따라 구성단위들이 기계로 잘려지지만, 조립 단계에서 일일이 수작업에 의한 보정을 거쳐야 한다. 판들이 굽으면서 축적되는 작은 오차들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중층구조로 구현되는 작품의 특성상, 사소한 부분의 오차도 최종 조립 단계에서는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실제 제작에 있어 5mm두께의 판을 갈아서 미러를 만드는 광처리나 모서리 처리 등은 작품의 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유기적 문양이 새겨진 구조적 단위가 촘촘이, 또는 첩첩이 중심을 에워싸는 형태는 미분화되고 무질서한 바깥과 구별되는 우주화된 공간을 상징한다. 그러나 한쪽이 트여진 형식은 질서의 확립과 파괴적 혼돈이라는 이항대립을 극복하고자 한다. 폐쇄되고 보호된 중심은 두 팔을 벌리는 형식과 유동하고 흐르는 절개면의 형태는 대립의 날카로움 보다는 포용의 넉넉함을 예시한다. 인류학적 상상력에서 중심은 '모든 실재의 원천이나 생명 에너지의 원천'(엘리아데)로 간주된다. 에둘러진 절편들은 시계처럼 시간의 흐름을 공간화 하며, 트임의 형식을 가지는 이윤석의 작품에서 이러한 원천들은 무시간적인 정적이 아니라, 바깥과의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으로 충만하다.
트여진 형상들은 중심에 존재한다고 가정된 절대적 실재를 보호하고 방어하기 보다는, 그 길로 인도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한 점에서 「품」이라는 주제는 안과 밖, 성과 속이 교류하는 세계상(世界像)을 압축하고 있다. 교류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배의 이미지로 반복된다. 그것은 미지의 것을 향한 향수에 의해 추동된다. 중심을 에워싸는 기본 구조는 성(聖)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신성한 공간의 건조에 해당되며, 이 공간을 향한 향수는 곧 '낙원에 대한 향수'로, '항상 그리고 힘들이지 않고 세계의 중심, 실재의 한가운데에 있고자 하는 욕망'(엘리아데)과 연결된다. 이윤석의 작품은 자아라는 심리적 차원부터 여러 차원이 교차되는 물리적 건조물에 이르기까지, 또 작은 규모로부터 방주같은 거대한 스케일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중심이라는 이미지를 투영한다. ● 그것은 더 이상 자족성과 초월성만을 지향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세에서의 지속성과 현실성을 위한 것이다. 겹겹의 층위를 따라 대우주로 반향 되는 소우주의 이미지는, 일상으로부터 이상향에 이르는 모든 구축물이 세계 창조의 반복과 복제라는 것을 예시한다. 이윤석의 작품이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종교적 상징주의로까지 연결되는 것은 그의 작품에 어떤 구체적인 서사가 새겨져 있어서가 아니라, 형식적 장치 그 자체에서 힘입은 바 가 크다. 그의 작품은 강한 한 점을 중심으로 조직화된 중심 집중적 체계centric system를 가지고 있다. 심리학자 R. 아른하임은 이러한 주제를 다룬 저서 『중심의 힘』에서 우주적인 차원에서 보면, 수많은 물질들이 지배적인 물질mass이 지니고 있는 중심 주변에서 조직화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자체가 중심 집중적인 공간의 체계를 실행하고 있다.
이윤석의 많은 작품이 규칙적인 형상 내에 존재하는 모든 점들로부터 등거리에 있는 중앙의 점을 전제한다. 물리적인 면에서 중심은 한 대상이 그 주변에서 균형을 이루는 지주를 말한다. 중심은 힘들이 발생하고 수렴된다는 점에서 역동적이다. 이윤석의 상징적 우주는 공간적 조직화에서 중심이라는 위치를 전제한다. 물론 그 중심은 명확히 가시화되기보다는 주변을 조직화하는 잠재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도시의 중심을 이루는 광장이나 폭풍의 눈처럼 텅 비어있는 것이다. 잠재적 중심을 등거리에서 둥글게 에워싸는 작품구조는 원의 형상을 내포한다. 아른하임에 의하면 원은 최소한의 특징으로 모든 형태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모태로서 작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형태이다. 이윤석의 작품에서 원은 타원으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배가 그러하다.
「모선」(2007)의 최근의 버전인 「宙」(2008)는 물살을 가르는 속도감을 암시하는 유동적 형태를 그 내부에 새기고 있는데, 엄청난 자체 무게에도 불구하고 지상과의 접촉면을 최소화하고 저항을 줄이면서 비상, 또는 전진하려 한다. 타원은 원으로부터의 일탈이고, 일탈은 시각적 역동성을 발생시키면서 정박이 아닌 항해의 이미지로 도약한다.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은 서로 대조되는 두 에너지의 중심을 상징하는 형식이다. 타원은 원과 같은 '완전의 상징'(플라톤)은 아니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 창조적 형상이다. 즉 타원은 우주 만물의 생동하게 하는 두 극점 사이의 운동을 낳는 것이다. 이윤석의 작품에서 정지와 운동이라는 두 가지 항은 한 작품 내에 있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에서도 반복된다. 한 작품을 이루는 절편들은 그 동일한 형태들로 인해 다소간 기계적인 패턴을 이루지만, 패턴들의 조합은 팽팽한 힘들의 장을 형성하면서 동적 구조로 성숙한다. ■ 이선영
Vol.20080216d | 원하는 것은 자연이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