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밭 위에서

서상호 설치展   2007_1228 ▶ 2008_0120 / 월요일 휴관

서상호_예술가의 두루마기_비닐봉투, 실 소금, 박음질_10m이내 설치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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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228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051_756_3313 www.spacebandee.com/bd/

소금밭 위에서 눈을 감는다. 핀 포인트 조명이 서 있는 자리에서 눈을 감고 눈앞에 펼쳐져 있는 비닐로 된 두루마기를 보는 것을 포기한다. 각종 도록을 실어 날랐을 도록의 포장 비닐을 실로 기운 두루마기는 소금밭 위에 떠 있지만, 저 두루마기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기억은 누군가의 전시를 감싸 안고 있을 것이어서 저 두루마기는 보아서는 안 된다. 아니, 두루마기를 보게끔 만든 단상 위에서 두루마기를 보자마자 곧 보는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두루마기라는 형상을 가능하게 해 준, 주소가 붙어 있는 비닐 포장지의 서글픈 기억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지 않고 보는 감각을 우리가 서둘러 마련해야만 저 두루마기를 비로소 보는 야릇한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서상호_예술가의 두루마기_비닐봉투, 실 소금, 박음질_10m이내 설치_2007
서상호_예술가의 두루마기_비닐봉투, 실 소금, 박음질_10m이내 설치_2007
서상호_예술가의 두루마기_비닐봉투, 실 소금, 박음질_10m이내 설치_2007

그러나 망각의 깊이에 침잠해 있을 과거의 전시가 시퍼렇게 눈을 흘기고 있는 두루마기를 곧장 입을 수는 없다. 우선은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못한 전시, 피곤해서 발걸음을 돌려버린 전시, 이미 충분히 그 작가의 전시를 보아왔다고 착각한 채 가지 않은 전시가 감은 눈을 비집고 들어와 마음을 졸아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의 옷을 한 겹 겹쳐 입지 않으면 저 두루마기가 목을 옥죌 것만 같아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먼저 파묻힌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야 한다. 그런 제의를 거친 다음 두루마기를 입으면 그 때 미술의 바다 위로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에 매달렸을 작가들의 땀방울이 뙤약볕을 받아 서서히 소금밭으로, 두루마기로 상승하는 과정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서상호_Reaction_필라멘트, 안료 , 소금, 블랙라이트_334×413×286cm_2007
서상호_Reaction_필라멘트, 안료 , 소금, 블랙라이트_334×413×286cm_2007

그렇다면 이 전시는 관람객인 '나'가 미술(작품)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미술(작품)이 오히려 '나'를 발견해내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스펙터클에 몰입하는 '눈'을 되돌려주어 삶을 성찰하게 만들고 시대를 반성하게끔 날카롭게 '눈'을 '절여' 숙성시키는 '제의'와 다를 바 없으니 저 두루마기를 입으면 잃어버린 '눈'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달리 말해, 미술(작품)이 두루마기를 입으라고 옷을 하나 걸어 놓고 있으니 조명이 내려앉은 소금밭 위에 올라서면 두루마기를 입지 않을 수 없고 눈을 감은 채 뜰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표상의 그물에 온 몸과 영혼을 포박당해 너무 쉽게 눈을 내어 놓는 현실을 넘어서도록 종용하는 두루마기라니!)

서상호_Let's go arts_종이에 프린트_400×400×400cm_2005

어쩌면 간을 두고 외출하는 우화 속의 짐승처럼, 눈 뒤에 눈을 넣고 다니는 그런 전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두루마기가 역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쪼그라들어버린 눈을 다시 망막 위로 데리고 와서 스펙터클이 강제하는 이미지의 배면을 들여다보도록 만들어준다고 하는 게 더 옳을 듯하다. 혹은 스펙터클의 유혹에 뒤를 돌아보다 소금으로 변해버린 숱한 사람들의 운명을 엄중하고 숭고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두루마기가 발견한 관객들이 새로워진 눈을 뜨고 소금밭 위를 빠져나가 발걸음이 가벼워지면 또 다른 공간에서 사물이 별 볼일 없는 실이 숨기고 있던 눈―빛을 찬란하게 발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미술(작품)이 기뻐 반짝 숨기고 있던 눈―빛을 토해내는 것이다. ■ 김만석

Vol.20071228a | 서상호 설치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