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황세진 개인展   2007_1226 ▶ 2008_0101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160×11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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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226_수요일_05: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3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02_734_1333 www.ganaart.com

시스템에 저항하는 자_YOU ● 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그의 대표저서『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이후 이성 중심 사회의 규율과 통념을 일탈하는 비이성(타자)에 대한 '감시'와 '처벌'의 구조를 병원과 감옥의 시스템을 통해 분석했다. 이는 과거 왕권통치의 권력 유지를 위한 구조가 사법 제도에 의한 정교한 시스템으로 모양이 변했을 뿐, '감시와 처벌'의 주체인 권력과의 밀착은 변하지 않았음을 설파한 것인데, 타자에 대한 독단적 편견과 박해의 구조를 파헤친 철인(哲人)의 놀라운 통찰력이었다.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60×60cm_2007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60×60cm_2007

영화감독 워쇼 스키 형제는 1999년 작 『매트릭스(Matrix)』를 통해 가상 미래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컴퓨터가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을 제어하고 처벌하는 세기말적 공포를 놀라운 상상력으로 재현해냈다. 앞에서 예를 든 철학자와 영화감독은 전혀 공통점이 없는 인물들이지만 일상의 표피적 구조 너머, 과거에 존재했고 현재, 혹은 미래에 등장할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의 실체를 놀라운 통찰력과 상상력으로 파악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60×60cm_2007

이번 개인전 『YOU』는 2005년 개인전 『감시와 처벌』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며, 개별자로서 '타자'의 모습에 좀 더 집중되어있다. YOU는 지칭자의 위치에 따라 주객의 위치가 변화되는 단어이다. 거울 속의 너를 가리키는 나는 거울 속의 내가 지칭하는 네가 된다. 세상의 구조는 거울 경계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너(나)로 조직되어 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감시와 규율의 핵심 조직인 가정, 학교, 군대 등을 이루고 있는 수동적 타자이자, 권력의 유지를 위해 감시와 처벌을 수행하는 능동적 주체이기도 하다. 푸코는 '자신이 탐구한 구조에 대한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인간의 육체가 있으며, 이 육체야말로 권력의 시발점임과 동시에 저항의 시발점'이라고 말한다. 이는 육체가 권력의 명령을 실행하고, 또한 그 명령을 거부하는 저항을 함께 지닌 물리적 실체임을 언급한 것이다. 작가가 선택한 미니어처 인물은 바로 이러한 양면성의 육체를 지닌 수많은 너의 존재를 상징한다.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36.5cm×110cm_2007

이번 출품작들 중 가장 큰 크기의 「you」연작은 두개의 사진 이미지로 상하가 나뉜다. 위쪽의 거대한 두상과 이를 칭칭 동여맨 밧줄, 아랫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군인과 남자의 형상들은 보이지 않는 구조의 시스템에 의해 옭좨 이고,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 쓴 각질 화된 존재들이다. 그의 전작에서 감시자와 처벌자로 나뉘던 역할의 구분은 모두 사라졌다. 감시와 처벌을 자행하던 군인 형상들은 의기양양한 포즈와 달리, 자신도 모르게 미라같이 굳어버린 육체를 지닌 좀비의 모습이다. 이들 역시 구조의 시스템 유지를 위해 고안된 권력의 하수인에 다름 아니며, 개별자로서 조직의 순응 논리에 의해 각화되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180×110cm_2007

영원히 죽지 못할 저주를 지닌 굳은 육체들은 영혼이 꺼져버린 해골 같이 혐오스러운 얼굴을 지니고 있다. 세 폭 연작을 포함한 작품 속 얼굴들은 불쾌와 공포를 유발할 정도로 관객을 응시한다. 실제 1센티 내외의 인물 두상이 거대하게 확대될 때 인식되는 세밀한 디테일은 가느다란 실을 밧줄로 얇은 철사를 철근의 굵기로 변화시킨다. 확대된 세부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구조의 억압 시스템을 현실의 속박으로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이렇게 회복 불능의 '경화(硬化)'된 개별자들의 모습은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 질서와 체제 유지를 위해 순응을 강요당하고 영혼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이며, 바로 보이지 않게 숨겨진 '너'의 실체이다. 「you」연작은 꿈에라도 마주치기 싫은 존재의 혐오스러운 형상이 보이지 않는 구조의 틀 속에 갇힌 '나'의 모습이라는 자각과 환기를 유도한다.

황세진_you_아트프린트_36.5cm×180cm_2007

가공된 이미지와 정보의 통제를 통해 정교하게 구조화 된 시스템의 미세한 틈을 파고드는 작가들은 '예술이라는 포장술로 위장'한 채 고착화된 규칙과 질서에 딴죽을 걸고 저항하며, 새로운 사고의 확장을 유도하는 소수자에 속한다. 이들은 시스템에의 순응을 비판하고, 개별자의 가치가 꿈틀거리는 존재의 살아있는 유연성을 지키기 위해 투신한다. 이들은 또한 현실의 구조가 끊임없는 모사와 복제를 통해 유지되는 가상의 허구임을 알리며 시스템을 위협하는 해커의 역할을 담당한다. 가상 시스템의 추적과 위협, 제거의 공포는 시스템으로부터의 자각과 탈출이라는 자족적 만족감으로 인해 극복된다. 안타깝게도 이상적 '저항자'에 대한 이러한 '허망한 상상'은 광기와도 같은 예술적 저항까지 경제 가치로 침 바르고 삼켜버리는 울트라 메가톤 시스템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예술이 시장 자본의 하위에 위치한 시점 즉, 데미언 허스트 식의 신랄함도 고가의 예술상품으로 포장되어 자본의 '막대사탕'이 되어버리는 현실 앞에서 끝까지 '깨어있으라!'는 선동은 의례적 종교행사의 구태(舊態)한 구호처럼 들릴 뿐이다. 결국 작가들은 구조에 저항하는 몸짓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미술과 자본의 구조에 의해 인정받아야 하는 깊은 딜레마의 늪에 빠지게 되어있다. 하지만, 경계 위에 선 자의 작은 몸짓이 시각 이미지로 탄생하고 구조의 시스템에 흡수되고 고착되기 바로 전, 그 탄생의 순간이 지닌 따끈하고 긴장된 순간을 포착하는 것, 이는 '시스템에 저항하는 자'와 이를 '인식하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깨달음과 희열의 순간이다. ■ 이추영

Vol.20071225d | 황세진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