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Story 젊은작가 기획展

  2007_1212 ▶ 2008_0113 / 월요일 휴관

권두현_#02290_코튼지에 혼합재료_78×116.7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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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212_수요일_06:00pm

권두현_김현식_박은하_서동욱_서지선_이우림_이지은_이태경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디자이너 주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49-7번지 거암빌딩 본관 1층 Tel. 02_584_0306 www.designerzoo.co.kr

2007년 5월 개관한 갤러리 디자이너ZOO에서는 한해를 마감하는 전시로 젊은 작가 그룹전'The First Story'를 기획하였습니다. 최근 전시와 옥션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권두현, 김현식, 박은하, 서동욱, 서지선, 이우림, 이지은, 이태경 등 contemporary계열의 젊은 작가 8인을 선정하였습니다. 젊은 작가 특유의 과감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 갤러리 디자이너 주

나는 내 작품이 다음과 같기를 바랍니다. ● 내 작품은? 기억을 불러오는 출발점이기를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볼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만들 수 있는) 그의 생각이 잠시 머물러 (쉴 수 있는) 그래서 과거와 대화할 수 있는 쉼터가 되기를... 희망이 있음을 보여줘 어느 누구도 홀로가 아님을 알려주길 바랍니다. ● 육안으로 볼 때 빛은 직선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때 사진기 속으로 들어오는 빛은 곡선이다. 쌍곡선, 때로는 동심원으로 춤을 추듯 움직인다. 마음이라는 렌즈를 통해 빛은 다시 탄생한다. ● 내가 완성한 작품에서 평소에 그리워하던 유년의 놀이터나 꿈 속에서 내가 가고 싶어했던 어딘가를 보게 된다. 마음의 한 구석에 놓여있던, 추억이라 이름 붙여진 삶의 흔적들이나 혹은 꿈 너머 저쪽에 있던 풍경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 곳에서 나는 정지한 공간에서 미소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 시간 속에 있었거나 아니면 있기를 원했던 누군가와 함께 풍경을 나누고 싶다. 내가 전시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가끔은 꺼내서 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안타까움만 곱씹게 하는 기억들이 있다. 지금 만드는 그림이 누군가에게 회상의 촉매제가 되기를 바란다. 난 그것으로 행복할 것이고 또 그 기쁨은 내게 잊혀진 기억보다 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줄 것이다. ● 난 Art라는 것이 사람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라고 알고 있다. 여기서 풍요라 함은 마음의 풍요이다. 행복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부자이다. 나는 삶이 기억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삶 속에서 기억은 창조되고, 기억은 삶을 또 창조한다. 우리가 생을 마무리 할 때 몸과 더불어 땅에 묻히는 유일한 나만의 것, 그것이 바로 기억이다. 오늘 이 순간 행복한 기억으로... ■ 권두현

김현식_사이공간_In Between Spaces_혼합재료_90×145cm_2007

사이공간 ● 오랫동안 작업의 관심은 경계와 경계의 '사이'에 대한 것들이었다. 경계는 극단의 가장자리로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을 변증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언제나 새로움에의 기대는 이 모호한 사이(혼성)현상 속에 존재해 왔다. 이러한 현상은 수많은 시간 속에서 마술세계와 같이 만들어지고 사라져갔다. ● 시간은 과거에서 그리고 미래로 흐르는 직선적이고 인간의 주관성과 구별되어 객관적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기억이나 의식은 시공의 경계를 무수히 넘나들고 있다. 이러한 경계 허물기는 무수한 시간 속에 무유형으로 존재하는 사이현상으로 내 작업의 시작점이다. ● 사이는 두 가지 성격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예술/비예술 , 순수/비순수, 고급/저급, 남/여, 동양/서양 등의 이분법의 중심에서 보여지는 슬래쉬(/) 기호로 요약된다. 또 하나의 '사이'는 안티적 성격을 띠고 있다. 사이는 사회에 대한 부정이며 전복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성격의 사이는 극단의 사이에서 존재하는 문화이면서도 그 무엇으로도 분류 될 수 없는 나머지이다. 이것은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일 수도 없는 그 자체만의 존재이며 비교될 수 없는 사유의 공간이다. TREE ● 우리의 기억이나 의식은 시공의 경계를 아무런 제약없이 자유롭게 넘나든다. 사람의 머리 이미지를 통해 이러한 의미를 압축해서 표현하고자 했다. 이미지가 사람의 머릿결을 택한 이유는 그동안의 작업들이 무수한 선들의 중첩을 통해 시간-공간을 표현해왔던 연장의 작업이며 하여 Tree란 명제로 내용을 압축하고자 했다. ■ 김현식

박은하_Caravan Cafe_캔버스에 유채_193×260cm×2_2007

어릴 적, 비누방울을 불면 비누막을 통해 보이는 내 작은 방과 그 막 위로 흐르는 유동적인 패턴들이 겹쳐져 하나의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나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유년의 기억들은 꿈과 현실의 틈새에서 빠져 나와 사무실이라는 차갑고도 일상적인 공간 안에서 '플라나리아 패턴'들로 재현된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서 현대의 거대 메커니즘을 위협하며 모든 질서를 그들만의 판타지아 안으로 집어삼키고자 시도하는 플라나리아들은 현실과 단절된 공간 속의 자아이다.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유년의 환상을 꿈꾸는 자아인 것이다. ● 환상과 퇴행은 인과관계에 있다. 환상을 꿈꾸는 행위는 현대의 기계적 시스템이 지배하는 인간의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비롯되며, 인간은 그것을 퇴행의 방법으로 회피하고자 한다. 즉, 모순되는 두 충돌의 세계, 반복적 일상의 무감각적 되풀이를 퇴행이라는 심리적 방위기제(防衛機制)에 의하여 풀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퇴행의식은 환상과 더불어 꿈이라는 관념상의 유희공간으로 제시되고 꿈은 유년시절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퇴행의 상징이다. ● 프로이드에 의하면 꿈이란 꿈을 꾼 사람의 무의식적 욕망충족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즉, 현실적인 면에서 소원성취가 불가능한 유년동경의 백일몽은 퇴행의 한 방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환상과 현실이라는 두 가지 반대개념은 인간의 뇌가 천성적으로 가지고 난 균형감각에 의해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아슬아슬한 공존을 이룬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가느다란 균형의 실은 극도의 긴장을 불러일으키며 팽팽하게 맞선 채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왔다 갔다 반복하지만 결국에는 환상이 현실을 완전히 뒤덮을 수도, 현실이 환상의 침투를 남김없이 막아낼 수도 없는 모호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 인간의 무너지고자 하는 욕망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은 그 모순적 결함으로 인해 반대항에게서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으며 서로에게 기댄 채 양립할 수밖에 없다. ■ 박은하

서동욱_Cedric in the City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07

서동욱-생각의 형태로서의 인물화 Portrait As Form of Thinking ● 인물화(portrait)에 이르는 도정(道程). 서동욱의 작업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물화라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우선 주어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대상의 전유(appropriation)에 이르는 과정이다. 대상에 대한 욕망, 그를 재현함으로써 나의 역량 안에서 완벽하게 소생시키고자 하는 의지, 그를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는 방법, 등등... 인물화란 동시에 일련의 형식 안에 시공간을 압축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프라 안젤리코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화가들이 그린 그림들 속에는 대상이 가로질러 온 무한한 시공간의 기록들이 배경의 좁은 공간 속에 포개어져 있다. 그것은 거의 상징에 가까운 것들로서 단지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특정하게 '배치'되어 있다. 세 번째로 인물화는 항상 그것을 그린 작가의 시선을 반영한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인물화들은 일종의 거울과 같은 표면을 지니고 있다. 관객들은 모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스타일과 관점을 그 안에서 발견한다. 심지어는 작가 자신의 감정을 읽어내려고 노력하게 된다. ■ 유진상

서지선_070326_캔버스에 유채_91×65cm_2007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행위부터가 작업의 시작이다. 사진은 나만의 시각으로 보는 일상의 단편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만나는 행위에서 오는 사물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사물은 반복되는 것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기도 한다. 또 의식적이기도 하고 무의식적이기도 한다. 기록된 사물의 이미지는 나에게는 실루엣으로 보여줄 뿐이고 캔버스 화면에 옮겨짐과 동시에 일루젼이 일어난다. ● 인물, 실내풍경들도 다루고 있는데 모든 소재는 사물화되어 정지되어 있는 듯 고루 채색되어진다. 사물은 나만의 시각적 여과장치를 통해 코드화, 패턴화되어 표현되고 있다. 파스텔 톤의 색은 이미지를 기억하고 그때의 느낌을 기억하는 기억의 색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일상, 개인사적인 이야기를 가벼워진 색감으로 표현하기 적합하다고 보여진다. ■ 서지선

이우림_몽_夢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07

「나의 작업일지」2004_1017 나의 작업은 애매모호한 풍경인지도 모른다. 저 먼 운동장 끝 지점에 그림자 빛이 하늘거리는 풍경처럼... 혹은 꿈속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 2003_0618 『잡음』 숲 속에 귀를 살며시 기울이며... // 소리가 난다 / 숲에서 나오는 소리 / 축음기에서 울리는 소리 / 빛이 스며 들어오는 소리 / 짐승의 땀 냄새 소리 / 땅 밑에서 울리는 소리 / 그리고 여러 소리가 섞인 혼탁의 소리 / 때로는 제각기 다른 잡음 소리가 들려온다. ● 2003_0510 나른하게 떨어지는 숲 속의 여정. 어딘지 모르게 방향감을 상실해 버린 붉은 꽂을 두른 여인... 이우림의 숲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초현실적인 공간을 잉태하는 매개체가 된다. 숲과 인물, 꽃무늬 직물 등은 실상에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이우림 회화에서 이 세 가지는 현실의 이미지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채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주도해 간다. 현실과 상상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고립된 자아는 캔버스 안에서 무표정과 외로운 몸짓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이우림의 회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눈빛과 몸짓에서 인간의 외로움과 고독을 읽을 수 있다. 현실의 공간에서 벗어나 꿈속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 그의 캔버스 안의 인물들은 세상과 상관없는 별개의 존재라는 듯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세속에서의 욕망과 집착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현실에 존재하는 평범한 인물을 모델로 그렸으나 그 일상의 인물들은 그의 그림 속에서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의 생경한 존재로 재해석되어 본질을 드러낸다. ■ 이우림

이지은_Untitled_E.V.A._50×40×10cm_2007

이지은-시각과 촉각의 그림자 미학 ● 이지은의 작업은 사물의 형상에 대한 시각적 또는 촉각적 반추에서 비롯된다. 사물의 실체와 허상의 경계를 묻는 그의 작업은 우선 조각적 형태의 네거티브적 전환을 기본으로 한다. 선물상자에서 내용물을 빼내고 남은 조형틀을 보면서 우리는 물건 그 자체보다 그것의 빈자리에서 그 사물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되듯이, 입체조형 작가인 이지은은 사물의 실루엣이 환기시키는 물체의 형상, 존재의 실체를 양각과 음각이 전치된 입체물로 조형화한다. ■ 권영진

이태경_haeline0702_캔버스에 유채, 목탄_60×120cm_2007

이태경-자아가 투영된 초상으로서의 자화상(Autoportrait) "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그린다. 동시에 나는 나를 그린다." 이태경의 작업은 그 자신의 다양한 심리적 변화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심리적 변화를 발견하기 위해 그는 타인의 다양한 삶과 편린들이 담긴 인물의 특징들에 주목한다. 가공의 인물이 아닌 그의 주변에 생생하게 살아 있고 또 그와 긴 시간 혹은 짧은 시간 속에서라도 어느 정도의 감성적 소통이 이루어진 사람들에 대한 주목을 담는다. 그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주위의 대상(인물)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공통의 감각과 심리 속에 내재된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 욕망과 억압 혹은 위선이나 사랑 등등에 대한 아이콘을 찾아보려는 시도 때문이다. ● 현대인의 심리적 변화를 담아 내려는 방식으로 그는 인물의 대상이 지닌 외적 형식에 자신의 내면을 더욱 구체화시킨다. 대상(주변의 인물들)의 외형에 투영되는 그 자신의 초상으로... 이렇듯 그 자신의 초상인 자화상(Autoportrait)은 타인들(객관적 실체)의 외형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해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대상과 그 자신은 하나가 되거나 혹은 비켜가기도 하는 복잡한 인물, 타인 속의 나, 나 속의 타인 등등의 위치 이동을 전제한다. 이렇게 탄생한 그이 회화 속의 인물은 대상으로서의 타인도 아니고 나 자신도 아닌, 어쩌면 세계와 나 사이 그 어딘가의 '우리'이거나 우리들 중 누군가이기도 한 '나'로 다시 태어난다. ● 그는 그가 살고 있는/살아가며 관계 맺는 사람들의 외형을 바라본다. 그 외형은 그에게 있어 객관적 사실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상이다. 그 표상은 시간과 공간 속에 삶의 흔적을 담아내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릇이다. 그는 그 그릇에 자신을 담는다. 그의 모습(외형-조형적 요소)에 그 자신(내면-심리적 요소)을 담는 것이 아닌, 타인의 모습에 그를 담으려는 이유는 주관적인 시각과 심리적인 표현의 확장을 위한 그의 매우 복잡한 심리적 표현, 이를테면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거나 해야만 하는 타인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은유를 그이 화폭에 담으려는 시도에서다. ●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 볼 때,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속엔 내가 포함되어 있는 나의 시각들이 있다. 이태경은 그러한 우리의 시각에서 어쩔 수 없는 전제된 자신의 주관적 시각(그 자신의 정취)을 객관적 대상(타인의 정취)에 투영함으로써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 이를테면 기쁨, 슬픔, 연민, 비극, 우울, 고독 등등의 아이콘을 찾는다. 그래서 그의 '자화상'들은 그가 경험하는 삶 속에서 발생하는 객체와 주체의 소통에 관한 타자와 자아와의 만남이 있다. ● 이태경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 속에 자신을 투영해 나가는 방식으로 타인과 감성적 소통을 이루어 간다. 이러한 그의 '자아가 투영된 초상의 초상으로서의 자화상'은 인간과 인간의 심적 관계에 대한 개방을 확장시킨다. 이러한 확장은 대상의 심리와 자신의 심리가 서로 소통되는 지점이자 타자와 자아의 경계가 와해되는 지점으로 작용한다. 이렇듯 그의 '자화상'은 현대인이 느끼는 소외와 고립을 극복해 보려는 의도가 담겨진다. 그가 바라보는 인물에 그의 시각이 개입(투영)되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타인의 초상은 그의 '자화상'이 되고 그의 시선이 선 자리 바로 그곳에 타인과의 소통을 열어 놓으려는 그의 미적 정감이 자리한다. ■ 김옥렬

Vol.20071221c | The First Story 젊은작가 기획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