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발설(發說)

임병국 회화展   2007_1219 ▶ 2007_1231

임병국_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남자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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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219_수요일_05: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덕원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02_723_7771 www.dukwongallery.com

흐르는 '나 ● 인간으로 하나의 긴 삶을 통해 우리들은 수많은 관계들을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부터 개인과 집단 혹은 집단과 집단의 관계 등등 복잡한 구조로 구성되어진다. 복잡한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 라는 자아를 성립하게 되고 인정받는다. 또한 '나'는 관계들 속에서 자아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고 알게 되면서 상처받고, 숨겨진 '나' 가 타인들에 의해 발견되어지는 것에 상처받고 두려워한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과정들은 너무나도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며, 우리는 언제나 이런 관계들 속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피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 같은 것이다. 여기서의 주체의 역할을 하는 '나'는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하며 우리이기도 하다. '나'와 타인은 규정되어 있기 보다는 서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계속해서 순환하면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심리적인 불안을 가지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나' 는 불안하고 공허하고 상처받은 존재가 되며 그것이 두렵다.

임병국_거꾸로 보이는 남자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07
임병국_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남자_캔버스에 유채_145×120cm_2007

임병국은 이전의 작업에서 이러한 관계 속에서 '나'의 심리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침묵하고 있는 얼굴의 표정을 통해서 표현해 내었다. 그 얼굴에는 두려움, 공포, 소외, 히스테리, 공허함과 무심함 등이 그대로 뒤섞여 나타났다. 침묵하고 있지만 얼굴의 이미지들은 몸의 작은 떨림과 불안의 엄습, 깊은 침묵, 소리 없는 발설로 세상과의 관계의 소통에서 오는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아니 흡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번 작업에서 임병국의 작품은 직접적인 얼굴의 표현이 사라지고 '나'를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머리를 감싸고 있고, 등을 보이고 고개를 숙이거나 두 사람이 포옹을 하는 자세 등등 신체를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모든 신체의 형태는 흐릿하고 지워진 듯 명확하지 않은 모습이다. 얼굴의 표현도 뭉그러트려져 이전의 작품과는 다르게 얼굴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표현은 이전의 얼굴표정이 발산하는 이야기보다 더욱 생기 있고 강렬하게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를 발설한다.

임병국_귀를 막고 있는 남자의 풍경_캔버스에 유채_130×97cm_2006
임병국_등을 보이고 있는 남자_캔버스에 유채_130×97cm_2007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신체는 모든 작품에서 색면에 고립되어 있다. 고립되어 있는 신체는 표면을 닦아내는 행위로 인하여 모호해지고 완전한 신체가 아니며, 추상적인 덩어리인 살로 나타나서 색면과 대립을 이룬다. 하나의 덩어리로 모호하게 느껴지는 신체의 표현이지만 이러한 신체의 표현에서 색면과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소통에서 오는 두려움과 상처를 이야기 한다. 대립을 하고 있는 색면 안에는 나도, 타인도 일상의 풍경도 모두 고립되어 있다. 이렇게 고립되어 있는 신체는 '나'로 표현되며 색면을 깨뜨리고 나오려고 애를 쓴다. 이 과정에서 신체의 형태는 색면과의 대립으로 인해 왜곡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몸은 순수해지며, 이로 인해서 색면과 대상물사이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러한 긴장이 팽팽한 사이에 색면과 대상물의 사이에 흘리기를 통해서 흔적들을 만들어 나간다. 흔적들로 인하여 긴장감이 극대화되면서도 풀어주면서 자연스럽게 수축되거나 팽창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흐르는 기법의 흔적으로 인해 몸과 색면은 하나가 되었다가 해체되기도 하면서 자유스러워진다. 이렇게 '나' 안에서 타인과 섞이며 하나가 되었다가 분리되기를 반복하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두려움과 상처는 자연스럽게 몸을 통해서 발설되며 또 해소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계속 순환하며, 결국 모든 이야기는 타인이 스며든 '나'로 귀결된다.

임병국_서로 껴안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풍경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07

이러한 '나'를 통해서 작가는 두려움과 상처, 소외됨의 심리적인 불안을 이야기하거나 혹은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나'에게 타인의 모습이 스며들게 되어 뒤섞여 있는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타인과 나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긴장이 계속해서 순환하고 반복되는 것을 '나'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두려움의 심리적인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서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부정적인 시각도 긍정적인 시각도 아니며, 단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기처럼 초연하게 받아들이며 '나'로 살아가고자 함이다.

임병국_손이 보이는 풍경_캔버스에 유채_116.5×83cm_2007

임병국은 작품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라는 흐름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맡기고 자유롭게 흘러가고자 한다. 인생은 물과 같이 흐른다고 말한다. 우리들의 인생도 물과 같이 흘러갈 것이고, 이 흐름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만나 뒤섞이고, 분리되고, 많은 흔적들을 남길 것이고,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신승오

Vol.20071219d | 임병국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