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7_1212_수요일_06:00pm
갤러리 올 서울 종로구 안국동 1번지 Tel. 02_720_0054
꿈속의 꿈 ● 움직이지 않는 흔들의자가 있다. 그 위에 한 여자가 턱을 받치고 앉아있다. 그녀의 앙상한 몸매위에 머리카락, 치맛자락은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나무가 되어 하늘을 향한다. 그녀는 지금 꿈속에 잠들고 있다. 그녀의 꿈은 수면 중에 일어나는 일련의 시각적 심상인가? 아니면 작은 바람이나 이상? 혹은 실현된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인가?
이주영은 석고붕대를 사용한 작은 인체조각으로 자기만의 조형세계를 가지고 있다. 2006년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감성을 초현실속의 세계로 표출한다. 때로는 가련하기도 한 그녀의 인물들은 자신이 놓여있는 환경과 너무도 동떨어져 이 세계에 도저히 속해있을 수 없는 힘없고 고독한 주체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의 존재의식 속에 개인의 정체성을 작가의 내면 안에 깊이 감추고 꿈이라 이름 지었다.
꿈이란, 인체의 특수한 정신적 현상이기 때문에 인류의 정신생활의 독특한 현상이라 한다. 꿈은 우리의 의식이 쉽게 닿지 않는 미지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이며, 우리가 잠든 사이에 일어나는 특수한 정신 기능의 일부로서 수면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 작가의 꿈이 자신의 콤플렉스-무의식의 충동, 욕구, 본능을 그대로 반영하는 단순한 상징이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불확실한 형상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며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꿈의 심리적 특성으로서 가장 특이한 점은 꿈꾸는 '나'는 '나'이면서도 현실의 '나'와는 단절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꿈의 비(非)논리적 성질이다.
이주영의 인물상에서 눈은 현실의 세계를 보지 않는다. 아예 없거나 있어도 보이지 않는 눈동자는 작가의 내면 깊이를 응시하며 자고 있으며 자지 않고 있다. 그 눈이 바라보는, 꿈꾸는 새는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는 부활의 새이며 영혼의 새이다. 작품 속에서 새의 상징성은 비상의지로서 자유지향성의 표상으로 작용한다. 이는 또한 나무를 통해 머릿속 상상의 자유와 생명의 의지를 표현한다. 머리에서 자라는 나무는 머리를 점령한 나무가 아니라 머리와 일체되는 작가의 꿈나무이다. 이주영의 작품들은 한정된 공간속에 정지하여 떠 있는 듯 화면 속에 여운을 남기며 관람자의 향수 속에 꿈으로 자리한다. 썩지 않고 건조되어 원래 상태에 가까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미라 같이 빈 새장과 작은집 하나 발광 다이오드의 반짝임 속에는 변함없는 그의 이상을 감추어 재료를 통한 표현의 자유로움까지 아우르는 독특한 텍스츄어의 세계 속에 진짜 꿈들은 관객에게 유보하는지도 모른다. 그 꿈의 뒷이야기는 관람자의 몫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개개인의 환상 속에 완결되길 바란다. ■ 석종수
내게 있어 잠을 통한 꿈꾸는 행위는 일탈을 꿈꾸는 나를 만나는 작업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꿈을 자주 꾸곤 했는데 꿈속에서 만나는 나는 현실 속의 나와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어렸을 적 고향집은 기와집이었는데 저는 현실 속에서 기와지붕을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엉뚱맞게... 그러나 나는 꿈속에서 그 기와지붕으로 곧잘 올라가곤 합니다. 때로는 걷다가 쬐금 겁이 나면 슬금슬금 기어 올라가기도 하다가 신이나면 등 뒤에서 갑자기 날개가 솟아올라 날아가기도 하지요. 꿈속에선 지붕을 올라간다고 나무라는 어머니도, 못 올라가게 컹컹 짖어대는 바둑이도 없습니다. 그 지붕 꼭대기엔 푸르른 하늘내음과 올망졸망 자그맣게 보이는 동네 모습뿐입니다. 그 곳에서 나는 또 다른 자유를 만나는 나를 만나고 하늘을 꿈꾸는 한 마리 새가 됩니다.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커다란 나이 속에도 가끔씩 고향집 기와지붕을 올라가는 꿈을 꾸곤 합니다. 그 꿈을 꿀 때면 나는 또다시 어린아이처럼 행복해 집니다. 이렇듯 꿈을 꾸는 것은 내 동화 속 사상의 나래를 펼치는 작업이며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일상의 일탈일 것입니다. ■ 이주영
Vol.20071217b | 이주영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