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명의 떠오르는 작가들 5 Rising Artists

대전시립미술관 청년작가지원展   2007_1121 ▶ 2008_0203 / 월요일 휴관

대전시립미술관 청년작가지원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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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_권종환_박용선_박영선_이인희_이준호

관람시간 / 10:00am∼06:00pm / 금요일_10:00am∼09:00pm / 월요일 휴관

대전시립미술관 1, 2전시실 대전시 서구 만년동 396번지 Tel. 042_602_3225 dmma.metro.daejeon.kr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지역의 청년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전시인 『다섯 명의 떠오르는 작가들 5 Rising Artists展』을 개최합니다. 이 전시를 위해 작년 12월까지 신진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공개모집하여 모집된 40명의 작가 중, 1, 2차 심사를 통해 잠재력 있는 5명의 작가를 선정하였습니다. 작가선정의 기준은 대전?충청권의 만 40세 미만의 작가로, 작품에서 실험성이 돋보이며, 작가적 시각이 독창적이고 표현수단과 방법이 신선한 작가, 한국미술계의 젊은 동향을 선도하며 이후 국제적으로도 활동할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작가를 선정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청년작가를 전국적으로 알림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작가로 육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2007년 선정된 작가인 권종환(조각), 박용선(설치), 박영선(영상), 이인희(설치), 이준호(회화)는 학예사 각 1인의 책임담당 아래 작가와의 긴밀한 소통과 심도 있는 연구, 그리고 작업과정을 워크숍을 통해 소개하는 과정을 거쳐, 그 결과를 전시로 펼쳐 보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이들의 성장가능성과 현대미술을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권종환_뿌리깊게 인식된 장소의 기억_가변설치_뼈대에 솜_2007

나의 작품은 재현으로부터 시작된다. 패러디 혹은 패스티쉬의 의미로서의 재현이 아니라 실제의 사물(object)를 그대로 모방하는 작업으로서의 재현이다. 이러한 재현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실제성을 여러 가지 면에서 그대로 드러내게 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경험했거나 직접 사용하고 있는 사물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직접 만지고, 보고, 사용하는 사물로서 사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이 재현되기에 보다 더(?) 실제적일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솜으로 재현된 일상의 물체들은 담거나 쉽게 지탱하지 못하면서 물체의 기능을 상실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물체로써 거듭남을 의미하며, 또한 너무나 물체와 익숙해져서 전혀 그 간격을 느끼지 못하던 생활의 질서(물체의 용도와 쓰임새)를 깨 버린다. 오래 묵은 물체의 익숙함은 물체자체를 이탈함으로 해서 나와 그것(솜으로 만들어진 것)간의 다양한 활력을 불어 넣어 준다. 또한 과거의 기억공간을 재현함으로써 그때의 아픈 기억을 치유한다고도 할 수 있다. 내가 만진 솜은 물리적 측면에서 일상적 삶의 공간에 끼어들어 물체의 기능으로 읽혀지고 보여지는 익숙함을 물체 자체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실제와 기억 공간의 화해를 꿈꾸려 하고 있는 것이다. ■ 권종환

박영선_봄여름가을겨울_영상설치_혼합매체_2004~6
박영선_봄여름가을겨울_영상설치_혼합매체_2004~6

사람이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표현 방법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모두 자신의 경험을 기억하고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박영선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된 소재는 평소에 지나다니던 길이나 장소,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동작 등 일상과 관련된 것이다. 예를 들어, 「목욕탕」은 작가가 자주 가던 유성 모 호텔의 대중목욕탕이고, 「갈산터널」은 그가 강의를 위해 지나다니던 곳이다. 유명한 관광지나 명소가 아닌 평범하고 특징 없는 장소이며, 작은 움직임 하나를 위해서도 여러 장의 그림을 나눠 그리고 연결한 인물들의 동작도 때를 밀거나 비누칠을 하는 극히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지만, 작가는 그 기억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직접 새로운 지도를 만들 듯" 자신만의 방법으로 기억하기 위해 작품을 만든다. 이를 위해 박영선이 선택한 표현방법은 드로잉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종이에 볼펜으로 드로잉을 한 후, 컴퓨터 작업을 거쳐 살아 움직이도록 만든다. 선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드로잉에서처럼 작품 속의 풍경과 인물들에는 작가의 손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손의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또 정지된 화면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빠르고 매끄럽게 움직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달리 정지된 화면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감과 리듬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 '움직이는 드로잉'이라 할 수 있다.

박용선_잎_설치_캔버스에 낙엽_60×60cm_2007 박용선_잎_설치_캔버스에 낙엽_60×60cm_2007_부분
박용선_희미한 단어들_가변설치_비누_2007

박용선의 작업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생각들이고 그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는 작품을 이루는 방식에 대해서 작품이 작가의 손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형식은 최소한의 관여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일상 속에서 발견된 사물이나 자연물, 혹은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의 형태에 가깝게 제시하는 작업을 한다. 그의 말대로 그의 작업은 '창조'라기 보다는 '발견'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비누 작업과 식물 작업 역시 기존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비누를 녹여서 실제 사물의 형태와 가깝게 만들던 기존 작업과는 달리 비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단어들을 비누의 표면에 새겨 넣었다. 이 단어들은 인간의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둘 수 있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골랐다고 한다. 이것들은 여러 나라 언어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언어는 다르지만 세계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의식의 단면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나뭇잎 작업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단상을 담아내었다고 한다. 그는 찢긴 낙엽이나 죽은 식물들을 말려 그 조각들을 바느질로 꿰매거나 짜 맞추는 행위로 실제의 모양으로 복원하여 캔버스에 붙였다. 이 행위는 자연에 대한 치유행위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박용선의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본질" 이다. 그가 인용한 불교학자 이름가르트 슐뢰글의 글처럼 "사람은 결코 본질적인 것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본질 적인 것은 결코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본질이다.

이인희_수면공간(부분)_가변설치_방, 혼합재료_2007
이인희_수면공간(부분)_가변설치_혼합재료_2007

이인희는 자신의 흔적의 테두리 안에서 사물의 틈새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실체의 의미가 상실되거나, 혹은 생명의 흔적이 사라진 물고기비늘을 손수 닦고, 말리고 그 것을 자신의 주변에 버려지거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사물(구두, 접시, 모자, 코라병, 주전자, 사과, 와인잔)등의 표피에 이식하듯 붙이기도 하고 석고로 만든 물고기 몸에 비늘의 패턴에 따라 표피에 붙여나간다. 이렇게 생명을 다시 부여받은 물고기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듯 투명한 식탁위에 중력의 힘을 빌려 늘어져있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다른 공간의 영상과 사진이 작은 창을 통해 현재 공간으로 흡수되면서 시공간의 경계를 무너트리기도 한다. 여기서 작가가 각기 다른 이미지를 이식하고 재생하는 '손질된 일상'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데 그 것은 인간의 욕구충족에 의해 활용되었다가 더 이상 의 가치의미를 상실한 대상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는 위문공연과 같은 행위이다. 이 위문공연은 각 사물들이 근본(根本)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원초적인 회귀본능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본질상실에 대한 비판보다는 작가의 표현영역에 가볍게 숨김으로서 치유와 같은 근본환원을 획득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의 기억 저편에 존재하고 있는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이 초현실주의적인 6개의 공간으로 연출하였으며 백사장 같은 하얀 소금, 비늘로 박제된 물고기, 환상적인 시공간을 투영한 식기들, 가상현실적인 사진들로 하여금 잔잔한 충격을 던진다.

이준호, 김혜란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07

알고 있는 누군가의 얼굴을, 그 누군가가 보이지 않을 때 떠올려보면 우리 눈의 기억은 그다지 또렷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음을 알게 된다. 대개의 경우 누구를 누구로 인식하는 것은 그의 형태 때문인데, 기억은 흐릿한 전체의 인상이나 의외의 미시적인 세부를 담고 있을 뿐 손에 잡히는 구체성을 띄고 있지 않다. 그러나 기억만이 그런가? 이 순간 눈앞에 놓여진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어떤가? 내 눈은 대상이 '있다'는 것 이외에 어떤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취하는가? 그에 대한 의심과 탐구가 이준호 그림의 테마이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싯구는 사랑의 절절함을 표현한 말이겠지만, 이준호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를 보는 내가 그대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를 생각한다. 코는 이렇고 입은 이렇게 생겼는데, 잠시 눈을 돌린 사이 얼굴을 돌린 그의 옆면은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눈을 떼었다 다시 바라보며, 일정한 시간 동안 바라보았던 것을 그린다. 대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바라본 것을 그리는 데에는 반드시 대상에서 눈을 떼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대상에서 눈을 떼 캔버스로 옮기는 순간이 바로 망막에 맺힌 상이 기억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또한 기억으로 전환된 대상이 손을 통해 캔버스에 옮겨지는 순간은 또 다른 전환의 지점이다. 대상을 그림으로 옮길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전환점들에 대한 관심이 그의 그림에 드러나 있으며, 따라서 대상을 그리는 그의 목적은 대상에 있지 않고 자신의 눈에 있다. ■ 대전시립미술관

Vol.20071206f | 대전시립미술관 청년작가지원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