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이세우 회화展   2007_1205 ▶ 2007_1216

이세우_Sigh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목탄_122×170cm_2007

초대일시_2007_1205_수요일_05:00pm

두루 아트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화동 50번지 Tel. 02_720_0345

촉각을 번역하는 망막의 진실 - 이세우 회화의 표면 ● 이 전시회에 걸리는 이세우의 「시선」 연작(Sight Series)은 그가 지난 해 말부터 시작한 사실적 재현의 실험들을 드러낸다. 미술가가 1990년대 10년간 비구상적 표면을 그의 회화에 지속했던 것을 돌이킨다면 대상에 대한 적나라한 접근은 상당한 비약으로 비친다. 저돌적이고 광폭한 몸짓의 표면으로 회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던 한 화가가 올올이 돋은 캔버스의 텍스추어와 매끈한 물감의 피막으로 사물의 재현에 집중하는 것은 최초의 탐구가 포기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이 변화 속에 회화의 표면에 대한 그의 일관된 반응과 재현된 이미지가 메시지를 암시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이세우_Sigh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목탄_122×170cm_2007
이세우_Sigh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목탄_52×170cm_2007

망막의 진실 ● 그의 회화에 등장하는 맑은 눈의 호랑이는 전방의 관람자를 주시하거나 냉담하게 외면한다. 호랑이 눈의 광채와 그 주변의 습기에 묘사된 몇 점의 밝은 자국은 이내 그 동공에 관람자의 얼굴이 비칠 것이란 착각을 유발한다. 여기서 사물의 사정을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눈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도리어 반사하는 표면처럼 보인다. 눈은 살아 있을 때 그것이 흡수하는 대상의 이미지를 표면에 반사한다. 눈의 표면은 그 내부의 망막이 감지하는 세상의 사정들을 기록한다. 이세우는 결국 눈의 표면을 그림으로써 망막이 경험한 그 사실을 포착한다. ● 이는 집요한 생태학적 관찰과 생기의 추구에서 획득된 결과이다. 이세우의 관찰과 추구는 일종의 도둑질이라 할 수 있다. 타인이 경험하는 사정을 엿보다 못해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시각적 사실은 은밀하고 개별적이지만 그것이 드러날 때는 엄연한 객관성을 갖는다. 사건에 관한 한 점의 사진 이미지는 재판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 이세우는 바로 개별적이면서도 동시에 객관적인,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을 들추려한다. 시각만큼 분별력 있고 그것을 보편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 감각은 없다. 이세우는 바로 그 진실을 보려한다. 따라서 이 연작 앞의 관람자는 자신의 내면에 숨겨둔 것이 노출될 것 같은 심리적 자극을 받는다. ● 이 연작에서 이세우는 자신의 캔버스 표면을 투명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투명함은 평면의 물리적 막이 갖는 한계를 넘어야 성취될 수 있다. 미술가는 이를 위해 그 표면을 응시하는 관람자의 의식을 어떻게든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이끌어야 한다. 그는 그러기 위해 이미 광학기기에 의해 획득된 이미지를 활용한다. 이세우는 출력된 이미지에서 시각적 자극을 야기하는 주요 형태를 얼룩의 개념으로 파악한다. 출력물이 호랑이라는 특정의 대상으로 읽힐지라도 그는 호랑이라는 개념을 보지 않고 그것을 형성하는 표면의 얼룩들을 매핑(mapping)하고 분석한다. 따라서 그의 밑그림들은 마치 지형도의 등고선처럼 얼룩들의 무수한 경계들이 표시된다. ● 환경에서 목격되는 사물을 얼룩으로 분석하는 것은 이미 1990년대 중반에 그의 연작 "매듭풀기"(Untying Series)에서 독자적으로 완수되었다. 이때 이세우는 자신의 회화 표면을 투명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당시 그의 회화는 물감이 스며듦으로써 그 표면의 물리적 진실이 부각되었다. 이 때 그의 매체는 전적으로 우연의 얼룩들로 캔버스의 표면을 보증했다. 관람자를 놀라게 할 정도의 진솔한 묘사는 결국 10년 전 그가 실험한 회화적 시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세우_Sigh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목탄_20×200cm_2007
이세우_Sigh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목탄_42×147cm_2007

촉각의 시각적 변형 ● 호랑이의 가죽 표면의 얼룩, 밝음에 대비되는 대상의 묘사에 나타나는 얼룩, 심지어 호랑이의 수염을 부각하는 어두운 면까지, 그것들은 죄다 그 매핑과 지루한 붓질의 반복으로 드러난다. 이를 위해 이세우는 제작의 공정에서 표면에 미묘히 돋아 있는 짜임새(texture)의 돌출과 장력(tension)에 반응하고 그 결들을 하나하나 잡아내기 위해 숨 막히는 긴장을 지속한다. 이를 통해 그는 캔버스 평면이 그에 전하는 감촉을 의식하게 된다. 표면에 대한 신체적 접촉이 이 공정에서 기록되는 셈이다. 몸이 느끼는 촉각에 관한 기록은 곧 사실에 관한 기록이다. ● 관람자는 이세우의 손과 캔버스의 표면간의 긴장이 기록한 시각적 자극을 통해 호피, 눈동자, 수염과 같은 대상과 일치시킨다. 그 외에 자신의 시각에 포착된 대상을 대하는 중 그 접촉에 관한 사정들을 의식하게 된다. 이는 만지는 것을 보이게 하고 또한 반대로 보이는 것을 만지게 하는 회화적 전략이다. ● 촉각이라는 구체적 경험을 회화의 중요한 요소로 다루는 것은 1990년대 초와 중반에 그가 광폭한 몸짓으로 캔버스에 돌진하고 스스로 살아 있음을 회화를 통해 확인해 보이던 시기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미술가는 단색조의 화면을 긋고 휘갈기고 뿌렸다. 이러한 제작은 미술가의 노동과 움직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 때 이세우 회화의 표면은 뚫거나 넘어 갈 수 없고 그래서 스며들지도 않는 단단한 물리적 실체로 간주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연작을 통해 볼 때 이세우는 회화의 표면의 실체를 견고한 것에서 점차 유연한 것으로 바꾸어오고 또한 그것에 맞게 자신의 반응을 변화해온 것으로 확인된다.

이세우_Sight_캔버스에 목탄_74×122cm_2007
이세우_Sigh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목탄_49×49cm_2007

「시선」연작을 시작할 무렵 이세우는 몇 점의 정밀한 구상회화를 시도했다. 그 중 하나가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을 그의 방식으로 지루하고도 치밀하게 재현했다. 여기서 그는 윤두서의 얼굴표면에 부푼 양감이 전하는 생기를 매핑하고 눈에 반영을 더했다. 그는 윤두서를 통해 표면을 뚫고서 전방을 향하려는 응시와 관람자의 마음을 관통하는 사실성에 주목한 듯하다. 이세우는 그 암시로 과거 자신이 제작하고 완수했던 회화의 과제를 요약하고 회화의 본질적 실체인 표면에 관한 해석에서 이번 연작을 탄생시킨 것으로 보인다. ● 최근 욕망을 자극하는 대상을 재현하거나 정밀한 유사성의 표면만으로 회화평면의 물리적 실체를 피하는 회화들이 미술의 활황과 함께 범람하고 있다. 단순한 시각적 재현이 아닌, 관람자의 마음을 관통하고 그것에 호소하는 분명한 사실주의가 이세우의 회화에서 발견된다. 무엇보다 진실 추구라는 전통에 회화의 가능성을 두고 대상의 내면을 꿰뚫는 매체로 회화를 다루는 점에서 그의 시도는 최근의 유행과 이세우는 구별되어 보인다. ■ 이희영

Vol.20071205a | 이세우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