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흙과 뉠 땅

황재형 회화展   2007_1204 ▶ 2008_0106

황재형_탄천의 노을_캔버스에 유채_227.2×162cm_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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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204_화요일_05:00pm

가나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Tel. 02_720_1020 www.ganaart.com

노동의 삶과 함께 한 치열한 작가정신의 화가 황재형, 16년 만의 개인전 ● 황재형은 대학 졸업반 시절 극사실적 기법으로 광부의 옷을 클로즈업 하여 표현한 작품 「황지 330」으로 기법과 소재, 주제의식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중앙화단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종구, 송창 등과 함께 「임술년」을 조직하여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조형언어에 대하여 고민하고, 노동하는 민중의 삶 내면의 진지한 무게감을 다양한 재료로 진솔하게 표현해온 작가는 80년대 민중미술의 흐름 속에서 중요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캔버스 뿐 아니라, 다른 오브제를 사용하여 현실의 면면을 형상화하던 황재형은 대형 도시락통에 석탄을 담아 설치한 작품을 광주비엔날레(2002년)에 출품하여 광부의 삶에 대한 진한 사실주의 시각을 선보이며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작가는 83년 가족을 이끌고 태백의 황지에 터를 잡은 이래 24년이라는 세월동안 한국 산업사회의 동력으로 기능하던 탄광촌 마을 태백의 과거에서부터, 대부분의 탄광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떠나고, 을씨년스러운 폐광지역에 카지노와 호텔이 들어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정서를 함께 하면서 태백지역과 그 지역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담은 그림을 그려왔다. 1991년 이후 16년 만에 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그가 함께 한 태백의 삶과 더불어 민족정기의 근원이자 신령스러운 산, 어머니의 품처럼 푸근하고 넉넉한 태백의 장엄한 경관을 담은 8미터 길이의 대형 풍경화를 비롯한 60여 점의 회화작품을 선보인다.

황재형_삶의 무게_캔버스에 유채_93×74cm_1999

'거기에 그렇게 있는' 삶을 그리다. 리얼리즘의 본질을 그리다 ● 재현에 관한 투철한 이념과 의식이 그렇게 첨예하지 않은 회화의 역사를 지닌 한국사회에서 황재형은 독보적인 리얼리스트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탄광촌 태백의 과거와 현재를 사실적이며 묘사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유화물감 뿐 아니라 흙과 석탄 등의 혼합재료를 사용하여 표현의 질감을 높인다. 또한, 높은 밀도, 두터운 질감, 변형 캔버스 등을 통해 재현을 넘어 좀더 물리적 사실성에 다가가려는 리얼리즘적 자세를 드러낸다. 작품의 이러한 특징은 체험을 기반으로 한 회화세계의 형상화와 더불어 그가 추구하는 사실주의의 의미와 성격을 반영한다. '한국적 사실주의'라고 일컬어지는 민중미술의 카테고리로 분리되는 작가들 대부분이, 개념적으로는 형상성의 회복을 주장하며 현실에 대한 사회비판적 시각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실제 그 작품들의 화면은 비사실적이고 상당히 표현주의적, 상징적인 데 반해 황재형이 보여주는 회화는 재현에 충실한 사실주의의에 입각해 있다. 작가는 실재 '거기에 그렇게 있는' 삶을 그려냄으로서 리얼리즘의 본령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현실의 모습을 직시하는 객관적 냉철함은 그의 작품에서 조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그 내면의 시선은 단순히 사회비판적인 차가운 태도가 아니라 치유의 대상으로 온정을 갖고 바라보는 따뜻함을 지닌다. 내적 온기와 외적 차가움이 조화를 이루어 작가의 작품은 자칫 감성적으로 치우치기 쉬운 마음의 시선을 조형의 이성적 균형으로 잡아줌으로써 주제의 객관성을 높인다.

황재형_기다리는 사람들_캔버스에 유채_74×117.5cm_1990

삶의 진정성과 시대정신을 직시하며 미술의 역할을 모색해온 작업의 여정 ●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도시, 제도권 미술계의 오염된 관행으로부터 벗어나 탄광지대에 다다른 황재형은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여 나가는 삶을 보여주는 작가다. 황재형은 화가로서, 미술이라는 눈으로 시대를 바라보되 관찰자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그들'의 삶을 '우리'의 삶으로 받아 안는 모습을 보여준다. 애초에 탄광촌으로 들어갈 때, 그는 보다 바닥으로 내려가는 삶의 출발로부터 자신의 부르주아적 의식을 깨뜨리고자 하였고, 단순한 소재주의적 측면에서 탄광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이웃과 함께 살아 숨쉬는 터전으로서의 탄광촌을 그림으로써 당대 우리의 현실을 화폭에 담고자 하였다. '관광산수'가 지배적인 풍경화의 세계에서 황재형 작가가 독보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행자나 지나가는 관찰자로서 사물과 지역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돌멩이와 나무 하나, 오막살이와 그 안의 사람들, 마음속에까지 깊숙이 들어앉아 함께 하고 있고, 그림에 인생을, 인생에 그림을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덧 태백에 터를 잡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 속에서 헛된 세속적 변화의 세월을 견디며 잊혀진 탄광지대의 몰락과 폐쇄와 쓸쓸한 삶을 함께 한 그는 깊은 사색의 밑바닥에서 퍼올린 자연과 사물의 모습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오늘의 세계를 표현한다. 그리고 자본의 욕망이 남긴 거대한 폐허들을 직시하여 형상화함으로써 화가로서의 소임을 하고 있다.

황재형_식사_캔버스에 유채_91×117cm_1985

세상속에서 살아 숨쉬는 미술, 문화운동과 교육으로 풀어가다 ● 유연하면서도 강한 인간적 친화력을 통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한 작가 황재형은, 탄광지대의 어린이와 가족, 미술교사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생활의 일부로서의 미술이 해나가야 할 역할을 고민, 모색하고 있다. 질 높고 의미 있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교육적인 문화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으며, 좀더 좋은 교육환경을 위해 경상북도 반야 지역의 폐교를 구입하여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짓이겨진 자연과 사물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삶 속에는 쓸쓸함과 황량함이 담겨 있으나, 그럼에도 현실에서 희망을 잃을 수는 없는 법이다. 작가는 화가로서 뿐 아니라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척박한 땅에 그 희망의 씨를 뿌리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처해 있는 아픈 현실, 온갖 모순과 갈등의 요소를 일깨워주며, 이를 인식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 너머에 존재하는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 가나아트센터

Vol.20071204c | 황재형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