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7_1205_수요일_05:00pm / 웨이방 갤러리
후원_삼성전자_한국문화예술위원회_경기문화재단_매일신문
관람시간 웨이방 갤러리_01:00pm~07:00pm 아트팩토리_11:30am~07:30pm
웨이방 갤러리 / 2007_1205 ▶ 2008_0120 서울 종로구 화동 127-3번지 Tel. 02_720_8222 www.weibanggallery.com
아트팩토리 / 2007_1208 ▶ 2007_1230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134번지 예술마을 헤이리 Tel. 031_957_1504 www.artfactory4u.com
소통, 너에게 나를 보낸다 ● 상황주의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사상가 기 드보르는 현대의 미디어 환경이 삶의 풍경을 미디어적 풍경처럼 바꿔놓고 있다면서, 이러한 미디어 환경에 의해 구현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을, 그리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스펙터클 소사이어티(구경거리의 사회)라고 칭한다. 그리고 장 보들리야르는 미디어 환경이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현실을 실현해준다면서, 이를 시뮬라크라(실재하지 않으면서 마치 실재하는 양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라고 부른다. 이처럼 미디어 환경은 실재와 이미지, 현실과 가상현실간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면서 현대인의 삶을 파고든다. 이제 현대인은 맨눈으로 세상을 보기보다는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 그리고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를 매개로 하여 세계를 경험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그리고 그 개개인이 이미지에 대한 단순한 수혜자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가 이미지의 생산주체가 됨으로써 창작환경과 생리 그리고 그 지형마저 변화시킨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미지들, 이미지의 이미지들, 이미지의 이미지의 이미지들, 이 출처불명의 익명적인 이미지들이 보여주는 비전에 길들여져 있고, 세계를 그 자체로서보다는 하나의 상(이미지)으로써 경험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 이들 이미지 하나하나가 가상현실마저도 현실의 한 부분으로 포섭해 그 외연을 확장시키며 그 자체 일종의 삶의 만화경을 드러내는데, 김승영은 이를 「세상의 꽃」이라고 부른다. 작가에게서 꽃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그 모양새를 흉내 낸 의태적 의미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인간 세상이 그려 보이는 삶의 풍경을 상징하기도 한다. 미디어 환경으로부터 피어난 꽃, 미디어 환경에 의해 개조된 꽃, 삶이라는 이름의 꽃으로써 삶의 질을 나타내는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꽃 ● 김승영은 일종의 미디어 꽃을 형상화한다. 그 기종이 매번 바뀌는 탓에 폐기처분될 처지에 놓인 핸드폰 금형을 소재로 하여, 이를 이용한 조형물을 제안한 작업이다. 핸드폰 금형을 모듈 삼아 이를 반복적으로 중첩시켜나가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바벨탑 형상의 축소 모형이나 화병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구조물을 축조해 낸 것이다. 마치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구조물을 연상시키는 이 작업에서 작가는 소통의 문제를 주제화한다. 바벨은 바빌로니아의 고대 도읍의 명칭으로서, 태초에 인간의 언어는 하나였으나 인간이 하늘에 도전키 위해 바벨에 탑을 쌓아올리자, 이에 분노한 신이 인간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처럼 바벨탑은 그 이면에 언어와 소통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바벨탑은 일종의 언어의 탑이며, 언어를 도구로 해서 축조된 문명의 탑을 상징한다. 김승영은 바벨탑에 내재된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현대인의 주요 소통 매체인 핸드폰 금형을 통해 강조하고 현재화하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작가는 그 바벨탑이나 화병 형태의 구조물 속에다 마치 식물의 줄기인 양 스테인리스 봉들을 심고는, 그 봉의 끝에다 극소형 모니터를 장착한다. 핸드폰 화면 크기의 모니터에는 그동안 작가가 여러 경로를 통해 채집한 온갖 형태의 사진 이미지들이 편집돼 있다. 이들 이미지가 다름 아닌 작품의 제목이면서 이번 전시의 주제이기도 한 「세상의 꽃」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세상의 꽃은 일차적으로 꽃과 화병을 재현한 조형물의 형상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와 함께 이보다 더 실질적인 의미로는 지구촌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꽃에다 비유한 것이다. 이 일련의 이미지들 가운데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는 한밤의 한강 다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불꽃놀이 장면으로서, 마치 번지듯 피어났다가 일시에 낙화하는 벚꽃처럼 삶의 클라이맥스와 절정을, 그리고 그 무상함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 이와 함께 꽃 형상을 모티브로 한 작가의 다른 버전의 작품을 보면, 고풍스런 형태의 모조품 화병을 플라스틱 조화로 장식하고, 그 조화들 사이에 다른 종(種)의 꽃인 양 극소형 모니터들을 장착해 놓고 있다. 이 모니터들 역시 세계 도처에서 채집한 삶의 다양한 모습의 이미지들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의 꽃」이란 주제를 의미론적으로 강화한다. 한편, 플라스틱으로 만든 화병이나 조화가 실제와 모조와의 관계가 전도된 키치적인 현실을 반영하며, 이로부터 인간의 문명에 의해 그 의미가 왜곡되고 축소된 자연에 대한 인식의 일면이 느껴진다. 모조인 플라스틱 조화와 실제의 삶의 모습에 빗댄 미디어 꽃의 은유적 표현을 충돌시키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꽃이나 자연의 의미, 그리고 진정한 삶과 소통의 의미가 무엇이며, 또한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여보세요. ● 김승영이 주제화하고 있는 소통의 문제는 「여보세요」란 작업에서 보다 구체적인 실체를 획득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전시장에다 간이 벽을 설치하고, 그 벽체를 이용해 수개의 크고 작은 스피커들이 벽의 전면을 향하게끔 장착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의 내용은 외국인이나 혹은 외국인들 간의 전화통화로서, 주로 '여보세요'와 같은 전화를 처음 걸때의 상황과 이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 등을 녹취한 것이다. 이를 우리말로 번역해보면 '나는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거나 '당신이 지금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되묻는 등의 다국적 언어를 사용하는 이질적인 주체들 간의 소통불능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 이는 실제로 외국에서 소통불능상태를 절감한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착안한 것이지만, 이는 더 나아가 소통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얻는다. 소통한다는 것, 진정으로 소통한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소통한다는 것은 그저 정보가 전달되는 건조한 현상이 아니라 나의 몸이 (나의 경계를 넘어) 너에게 보내지고, 너의 몸이 (너의 경계를 넘어) 나에게 건네지는 교류이며 교감이다. 이해한다는 것 또한 단순히 의미가 왕래되는 메마른 현상이 아니라 서로의 아픔과 상처가 몸을 섞는 경험이다. 이처럼 소통과 이해행위의 이면에는 나와 너를 가로막던 벽이 허물어지고, 주와 객의 경계를 뛰어넘는 일체화(동화)의 경험이 놓여 있다. ● 그래서 작가는 미국의 시인 마가렛 와이즈 브라운의 시를 현대인의 불통과 대질시키면서, 진정한 소통이 어떠해야하는지를 보여준다. '잘 자요 달님, 잘 자요 달을 뛰어넘는 암소그림, 잘 자요 빗, 잘 자요 생쥐...'방안의 사물들을 하나씩 호명하면서 엄마가 아기에게 읽어주는 동화책 형식의 시이다. 다른 통화음과 뒤섞여 들려오는 이 시는 엄마와 아기가 동화되고, 아기의 감정이 여타의 사물들에 이입되고, 실제와 이미지가 그 경계를 허무는 진정한 소통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예술이 존재하는 강력한 이유는 이처럼 이질적이고 익명적인 주체(사람이나 사물, 실제와 관념)들이 서로 관계 맺고 만나지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소통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에 있으며, 이는 그대로 김승영의 작업과도 통한다. ● 그런데 이 작업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이미지가 없다. 그러니까 이는 이미지 대신에 소리를 주요 매체로 사용한 일종의 사운드아트를 실현한 것이다. 이는 존 케이지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일상음, 채집음, 우연음에 대한 또 다른 한 버전을 떠올리게 한다. 크고 작은 스피커들에서 흘러나오는 이 온갖 소리들이 마치 오케스트라의 화음처럼 바닥에 깔리기도 하고, 허공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하면서 전시장을 비가시적이고 암시적인 형태(심지어는 물질감마저 느껴지는)로 채워진 역동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켜놓고 있다. 일종의 연상 작용에 의해서 청각적 이미지(소리정보)와 시각적 이미지(그림정보)의 상호 호환성에 대한 인식이 느껴진다.
구름과 엘리베이터 ● 앞서의 작업들과 함께 김승영은 구름과 엘리베이터를 소재로 한 영상작업을 제안한다. 구름과 엘리베이터 장면을 영상으로 각각 기록한 연후에 이를 소형 노트북 화면 크기의 모니터를 통해 내보낸 것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영상 이미지와 사운드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화면 한가운데 구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점진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 「구름」에서 작가는 실제로 구름이 지나갈 때 나는 소리를 이미지와 함께 들려준다. 당연히 보통의 경우엔 들을 수 없었던 이 소리(일종의 채집음이나 자연음에 해당하는)를 들을 수 있게 한 과학의 힘이 놀랍고 신비롭기만 하다. ● 그리고 밤에 강남 롯데백화점의 엘리베이터를 촬영한 동영상 작업 「엘리베이터」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통 유리창을 통해 비쳐 보이는 엘리베이터들이 발하는 불빛의 변화가 일종의 패턴화된 시각적 이미지로 전이된 양상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리드미컬한 변화를 감지해내며, 그 이면에선 비가청적인 소리나 음률이 암시된다. 이는 일종의 보이는 소리 즉 시각적 음악을 실현한 것인데, 이것이 이미지와 함께 삽입된 실제의 음악에 의해 강조된다. 작가의 여타의 작업들에서의 소리들이 일상과 자연으로부터 채집된 것이라면, 이 작업에서의 소리는 단지 이 작업만을 위해 작곡되고 만들어진 음악이란 점에서 다르다. 일정한 주기로 그 리듬이 반복 재생되는 이 음악은 패턴화된 시각 이미지와 어우러져서 단조로우면서도 깊이감이 느껴지는 음감에 빠져들게 한다. 생체리듬을 닮은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몽롱하고 몽환적인 기분에 젖어들게 하며,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 김승영의 두 작품 「구름」과 「엘리베이터」는 이처럼 서로 다르지만, 일정부분 겹친다. 즉 이 작업들에서 작가는 자연이 만든 조형물과 인공의 조형물을 대비시키는 한편, 그 이면에서 서로 통하게 한 것이다. 풀밭에 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볼 때의 (마치 나를 온통 방기한 듯한) 느낌이, 엘리베이터의 불빛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의 반복적인 리듬과 음감이 주는 (마치 잠이 올 것 같은) 느낌과 어우러져 몽상이 지배하는 비현실적인 차원 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은 경험에로 유도한다. 이로써 자연과 인공물처럼 이질적인 이미지나 그 차원이 심안 즉 열린 마음의 눈으로 보면 서로 통할 수 있다는 비전을 예시하고 있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소통이라는 주제의식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처럼 김승영은 근작에서 소통을 주제화한다. 작품 「세상의 꽃」에서 일종의 언어로써 축조된 문명의 탑이랄 수 있는 바벨탑과 현대인의 주요 소통 매체인 핸드폰 금형을 결합시켜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묻는다. 우주적이고 공상과학적인 비전을 예시해주는 이 작품은 폐기처분된 문명의 쓰레기를 소재로 해서 이를 조형물로 재생해낸 것이란 점에서 정크아트(쓰레기미술)나 리사이클링아트(재생미술)와도 맞물린다. 그리고 그 자체 고도로 문명화된 산업 쓰레기들에서 이 시대를 관통하는 아이콘을 본 신사실주의(누보리얼리즘)의 예술 관념과도 통한다. 보기에 따라선 단순한 현재의 시점을 넘어 미래적인 비전을 연상시키는 (일테면 우주공상과학영화를 보는 듯한) 이 작업은 폐기된 것들에 대한 애도와 함께 낭만주의적 파토스를 자아내며, 나아가 일말의 기념비적인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그 이면에 바벨탑을 매개로 한 신과 인간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놓여 있는). ● 작품 「여보세요」에서 소통의 문제는 보다 구체적인 실체를 획득하기에 이르는데, 특히 파인아트의 경계를 넘어 그 외연이 사운드아트에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들리는 소리와 함께 보이는 소리 그리고 특히 진동에 의해 촉각으로 전달되는 만져지는 소리 등 소리를 암시하는 일체의 자연이나 인공 환경을 아우르는 장르적 특수성과 관련된 형식실험의 일단을 예시해준다. ● 그리고 「구름」과 「엘리베이터」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업들에서는 여타의 작업들에서의 피상적인 소통과 진정한 소통을 대질시키는 과정이 더 극대화되고 진작돼 있다. 이를 통해 진정한 소통이란 결국 이질적인 것들(나와 너, 주와 객,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허물고 봉합하는 과정 즉 탈경계의 실천논리와 무관하지 않음을 제시한다. ■ 고충환
Vol.20071203d | 김승영展 / KIMSEUNGYOUNG / 金承永 / sculpture.media.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