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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128_수요일_05:00pm
김수영_김윤경_김효준_노충현_이제_이문주_정재호_정직성 책임기획_정직성 후원_신한은행_서울문화재단
신한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www.shinhanmuseum.co.kr
도시의 행방, 그 같음과 다름에 관하여 ● 그 어원적 의미가 끝나감에도 불구하고 '386 세대'라는 어휘는 사회 곳곳에서 아직 유효하다. 아니 현재로서는 끝을 상정하고 있는 '아직'이라는 부사보다 지속을 상정한 '여전히'라는 부사가 더 어울린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세대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기에 세대의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저 시간상 그 이후에 등장한 부수적인 세대 정도로 인식되는 것일까. 정책적으로 산아제한을 실시하고 있었지만 매년 100만 명 이상이 태어났던 그 세대. 지금은 30대에 접어든 그 세대. 그들의 길을 따라가 보자. 그들의 지나온 길을 불완전하게나마 메모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보자.
70년, 80년, 90년, 2000년을 지나온 자의 불완전한 메모 ● 일단, 시간의 흐름에 따라 둘러보자. 많은 일들이 있었다. 70년대의 포문을 연 것은 '불도저'라고 불리는 김현옥 서울시장의 도시개발이다. 서울시의 미관을 정리하겠다는 그의 포부는 거창했다. 낙후된 주거 시설은 일순간에 붕괴되었으며, 그 파괴력은 그곳에 거주하던 서민들의 삶까지도 빼앗아 갔다. "잘 살아보세"는 국민의 염원이 되었으며, 그것은 유신정권이라는 권력의 비린내를 덮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비린내가 시대를 덮고도 남을 무렵 권력의 실세는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화려한 봄날을 알리는 민주화의 신호탄으로 인식했다. ● 또 다른 총성이 80년대를 열었다. 그것은 1980년 5월 '화려한 휴가'라는 역설적인 이름으로 찾아왔다. 그토록 바라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좌절되고 또 다시 권력의 비린내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것을 막기 위한 현란한 술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매일 밤 9시만 되면 "땡 전"뉴스를 타고 온 국민에게 전파되었다. 1980년 12월 지금까지의 어둠속 삶을 청산하려는 듯 총천연색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었으며, 1982년에는 프로야구가 개막하여 어린이들을 희망의 나라로 초대했다. 1986년 10월에는 북한이 서울을 삽시간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금강산댐을 건설하고 있다는 거짓말로 온 국민을 위협해 주머니를 털었다. 모든 것을 뒤덮기 위해 쉴 틈 없이 최루탄을 터트리고, 각종 고문을 가했지만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가열되었다. 1987년 6월 민주화대투쟁을 통해 국민직선제를 얻어내기는 했지만, 그해 겨울 치열해진 선거판의 승자는 '보통사람'이었다. 1988년에는 9월에 있을 88서울올림픽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정부는 세계적 질서의식을 강요하며 최루탄 냄새로 가득했던 서울을 깨끗한 서울, 보기 좋은 서울로 만들었다. 159개국이 참가한 88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은 4위를 차지했다. 이 결과를 가지고 사람들은 선진국에 대열에 진입한 조국을 자랑스러워했다. 1988년 11월에는 매일 저녁 자신을 알리기에 바쁘던 "땡 전"뉴스의 주인공이 자신의 임기를 다했음에도 TV(5공 국회청문회)에 출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적막한 백담사로 거처를 옮겼다. 1989년에는 서울 인구가 1000만이 되었고,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 되었다. 그리고 분당 일산의 신도시 계획안이 발표되었다. 문익환 목사, 서경원 의원, '통일의 꽃'인 임수경, 문규현 신부의 방북 행렬이 이어졌으며, 1989년 11월 9일 독일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시작된 동구권의 몰락은 1991년 12월 31일 소비에트의 공식해체까지 이어졌다. 1990년 '3당 야합'이라는 야릇한 단계를 거쳐 1993년 문민정부가 탄생되었다. 청와대 앞길의 개방과 칼국수 오찬 회동 등의 이슈를 생산하여 '문민'정부의 이름값을 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3당 야합'이 태생적으로 가질 수 없는 개혁 칼을 대신하기 위한 하나의 술책이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여 문화계를 뒤 흔들어 놓았으며, 대중문화 분석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미 신체의 일부가 되어 버린 시계 이외에 또 다른 기계들(무선호출기, 가장 수명이 짧은 미디어로 기록될 만한 씨티폰, 그리고, 휴대폰)이 우리의 육체 속으로 들어왔다. 볼거리도 많아졌다. 1995년 케이블 TV가 시험방송(1996년 3월 본격 출범)을 시작했으며,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OECD의 회원국이 됨으로 오래된 숙명인 '제3세계'틀에서 (표면적으로)벗어나게 되었다. 소비문화가 급격해지면서 대형할인유통매장이 등장했다. 소비문화와 대중문화의 극점으로 달리고 있던 한국사회는 1997년 IMF라는 경제위기 앞에서 휘청하게 된다. 국민들은 하나 되어 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소비문화가 탄생했다. 1998년 동대문에 의류전문매장인 밀레오레가 개장했으며, 강변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CGV가 개관했다. 1999년 유흥주점, 노래방의 심야영업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밤 문화가 풍성해졌다. 밀레니엄 버그의 두려움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1999년은 인터넷 관련 회사들이 대박을 쳤다. ● 두려움과 달리 2000년은 너무 순탄하게 열렸다. 그러나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사건은 6월에 찾아왔다. 김대중.김정일 남북 두 정상의 회담이었다. 두 정상이 악수를 하고 포옹하는 장면은 전세계에 퍼져 나갔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02년 시청 앞은 북적거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서 보여준 '민족의 저력(?)', 골방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다시 광장으로 끌어 낸 촛불시위가 있었다. 그리고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되면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로 대표되던 정치의 한 페이지가 끝났음을 표명했다. 주상복합이라는 새로운 주거 공간 개념이 대두되면서 도시의 건물들은 거대하게 팽창했다. 그리고 청계천이 복원되고 시청 앞에 잔디가 깔리면서 새로운 도시 공간을 부여 받았다. 그리고 지금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으며, 또 다른 대선을 기다리고 있다.
'광장', '골방' 그리고 '도시' ● 그러나 이러한 불완전한 메모가 '386 이후 세대'를 규정하는 절대적 준거는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경험적 역사와 학습으로서의 역사가 혼재되면서 '386세대'와 '그 이후 세대'간의 공통적 부분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그 이후 세대는 불도저식으로 밀어 붙여 건설한 아파트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TV를 통해 하루 종일 방영되는 지루한 장례행렬을 그리고 그 장면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목격했으며, 총천연색으로 변한 컬러텔레비전 앞에서 친구.영웅.스승을 만났으며, 원인 모를 최루탄 냄새에 괴로워하면서 자신들만의 대처 방법을 모의 했으며, 대학에 들어가 전태일, 1980년 광주, 박종철, 이한열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영화 속 영웅으로 돌아온 전태일과 『쇼걸』이 같은 시기 같은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을 보았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와 춤에 혼을 빼앗기기도 했으며, 의무처럼 가방 하나 달랑 메고 해외로 향했으며, 대형할인마트를 동네 구멍가게보다 편안하게 생각했으며, 광장에서 만나는 것보다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는 것에 익숙했다. ● 386세대가 '광장'에서 역사를 만들고 있을 때, 그 이후 세대는 권력의 비린내를 맡으면서도 '골목'에서 대중문화를 일용할 양식처럼 먹고 자랐으며, 386세대가 '골방'에서 광장을 그리워 할 때, 그 이후 세대는 90년대 들어 활짝 핀 소비문화와 대중문화를 향유하며 도시를 거닐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소비문화와 대중문화의 그늘에만 안주하며 살아 온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키운 일용할 양식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주변을 맴돌고 있는 쾌쾌한 냄새도 함께 맡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지금 자신들을 성장하게 했으며,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소비문화와 대중문화 즉, 스펙타클한 현대사회를 의심하며 그것을 다시 읽으려 한다.
이들의 주된 텍스트는 '도시'이다. 도시의 화려하고 거대하고 빠르게 변해가는 특성은 일견 현대사회의 닮아 있다. 과격하게 이야기하자면, 도시는 현대사회 그 자체이다. 그러기에 자신들의 근본적 테두리를 다시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시는 적합한 텍스트이다(이것은 그들이 도시 근대화 이후 태어나 도시에서 성장했으며, 현재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효하다). 1990년대 초반 거대담론의 무게에 눌려 있던 개인적 '일상'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다시 '골방'에서 다시 '광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에 우울함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일상'은 미술의 주요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차츰 변질되어 종국에는 내 주변의 사소한 것에만 관심을 보이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최근 미술계에서 '도시'를 다루고 있는 작가들의 일면은 자신들의 '일상'에만 주목하는 작가들과 닮아 있지만, 그들은 진일보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 주변, 내 기억에만 한정되는 도시를 단순히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회화적 방법론으로 도시를 재구성하여 도시를 구성한 사회적 시스템(한국 도시의 근대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으면서도 다른 도시회화의 8가지 행방 ● 이번 전시 『도시 회화의 행방』展은 제목에서 시사하듯 '회화'를 바탕으로 '도시'를 자신들의 조형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8명의 작가(김수영 김윤경 김효준 노충현 이문주 이제 정재호 정직성)들이 '행방'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같은 시기를 지나왔기에 일정 정도 형상에 있어서 유사성을 보인다. 그러나 하나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회화는 자신들의 조형언어와 맞물려 상이한 지점으로 향하고 있다. ● 정재호는 사라져가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공간을 대상하여 그곳을 기념비로 제작한다. 오래된 아파트는 자신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이면서, 1970년대 난개발의 병폐를 그대로 드러내는 공간이다. 그러기에 정재호의 작업에는 도시에 관한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소통이 관여하고 있으며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형되었지만,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창문을 통해 형상화 된다. 화면을 가득 메운 건물의 정면은 흡사 현재의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의 모습과 시각적으로 매우 닮아 있다. 이러한 시각적 유사성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면서 오래된 아파트뿐만 아니라 현재의 건축물에도 비판적 시각을 투여하게 한다. 최근의 작업에서는 낮은 층의 건물을 임의적으로 반복하여 허구의 기념비를 만들고 있다. '오래된 아파트'를 통해 자신이 태어났던 1960~70년대의 현재적 의미를 재생시켰다면, 이제는 이뿐만 아니라 일본식 적산가옥부터 근대화기의 주택들, 모더니즘 양식의 빌딩들이 혼재해 있는 도시의 건축물을 통해 이 도시가 지나온 시간의 지층을 보여 주고 있다. ● 반복과 집적을 통해 '유기적 집적체'를 만든다는 관점에서 보면 정재호의 작업과 정직성의 작업은 유사하다. 그러나 정직성은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그것을 과거로 끌고 가지 않는다. 정직성에 대상으로 하고 있는 건물들은 분명 과거의 난개발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는 선적으로 도시를 이동하면서 자신이 포착한 도시의 현재적 모습에 방점을 둔다. 정직성의 작업들은 현대자본주의 논리에 충실한 도시의 현재적 일면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그의 작업은 작품에 그려진 건물들 간에 유사성이 존재 할 뿐만 아니라 작품과 작품 사이에서도 유사성이 발견된다. 이것은 그의 지향점이 거대해진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동네의 건물들이 유사성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가 정작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유사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의외성(거주자의 삶이 반영되면서 변형된)이다. ● 김수영은 건축물을 다룬다는 점과 그것이 화면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반복을 하고 있지만 그 사이에 비반복성(색채의 사용)을 개입시킨다는 점에서 정재호, 정직성의 작업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의 본질적 지향점은 건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외향적 특성이 아니라 회화의 형식적 실험에 닿아 있다. 김수영에게 있어서 동일한 유닛의 반복은 화면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동일한 의미망을 형성하면서 화면 전체를 평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것은 그린버그가 주장하던 평면성과는 다른 지점이다. 즉 그는 평면성의 기저를 동일한 유닛의 반복에서 형성되는 일루전에 두고 있다. 화면에서 비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색채의 사용은 화면의 평면성을 깨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색채의 사용은 화면 전체를 활성화시키면서 동일한 것의 평면이 아닌 차이를 내재한 평면을 구축하고 있다. 사실 동일한 유닛이라고 생각되던 것들도 개별적 사용한 색채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내재하고 있다. ● 노충현은 그림의 정보를 차단한다. 그곳에는 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 동물원이라 명명하고 있지만, 그곳에는 동물이 없다. 그리고 작품 제목도 화면을 지시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제목은 화면에 환유적으로 접근하고 있을 뿐이다. 동물원은 동물이 있음으로 인간의 사적인 시각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곳이다. 그곳의 장소성은 중요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동물들이 사라지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역설적 모습이다. 그곳은 화면 가득히 인공적인 강한 조명이 비치는 듯한 색채가 덮고 있으며, 정면으로 관객에게 던져진다. 인공적인 구조였으나 그 속에서 느끼지 못했던 인공성의 향기가 가득하다. 그곳에는 차단되고 인공적인 정보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곳에 있을 이야기들이 이 단순한 공간에 함께하고 있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에 놓인 한 그루의 나무처럼 말이다. ● 김윤경의 작업은 일상에 근접해 있다. 이렇듯 친숙한 풍경을 파편화 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한다. 개별적으로는 자신이 지나온 사실적 풍경이나 다름없지만, 그곳에 시간이 투여되어 새롭게 조합된 이미지는 잔상으로 밖에 남아 있지 않은 풍경이다. 그의 작업에서 중심에 놓이는 것은 사실적 풍경의 허구화이다. 파편화된 사실적 풍경은 조합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어긋남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적 풍경이 가지고 있었던 당위성은 상실되다. 그러기에 매일 접하는 비슷한 생활의 주변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차이를 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빠르게 변해 가는 도시에서는 그 흐름 안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 속도를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도시를 파편으로 접근 할 때는 그것을 관통하는 시간의 속도를 인식할 수 있다. ● 이문주의 작업은 용도성이 폐기된 풍경을 대상으로 한다. 도시의 풍경은 건축물로 대변된다. 그러나 이 건축물 역시 현대자본주의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논리에 따라 거침없이 폐기처분되기도 한다. 이문주의 시선은 서울에만 머물지 않고 보스턴, 뉴욕, 디트로이트, 브룩클린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벌어졌던 것이며, 그것이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러한 과정은 도시의 해체와 재개발이 떨어 질 수 없는 단계라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이다. ● 김효준은 도시의 야경을 다룬다. 밤은 언제나 있어 왔지만, 그것을 화려하게 하는 빛의 향연은 도시의 근대화와 맞물려 있다. 그러기에 야경은 도시의 근대화를 가장 극명하게 나타낼 수 있는 요소이다. 그러나 김효준의 야경은 표면적으로는 도시의 화려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읽어내고 있다. 거리를 두고 관조적으로 바라본 야경은 아름다운 공간일지 모르지만, 그 안의 풍경은 그 아름다움과 반대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효준은 산업화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야경을 통해 역설적으로 산업사회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 이제가 주목하는 것은 사소한 풍경이다. 심지어 그 풍경은 익숙할 데로 익숙해져서 공간이나 풍경이 아닌 삶 자체로 다가오는 곳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작업은 김윤경의 작업과 닿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건축물보다는 내부의 또 다른 요소들에 관심을 가진다. 그곳의 사람들, 그들의 삶의 이야기, 그리고 특정한 장소가 지니고 있는 감정의 상태 등. 그러기에 랜드마크 같은 도시의 건축물 하나 없어도 그곳에는 공간에 대한 생생함이 있으며, 그가 담고 있는 순간이 의미심장한 것이 아님이 분명한데 그곳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행방'의 과제 ●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모습은 개별적이면서도 공통된 관심사가 보인다. 이것은 같은 길을 걸어온 작가들의 개별적인 발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미적 태도는 이전 세대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이것은 두 세대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길을 걸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대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전 세대들과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 세대들과 연계점은 무엇이며, 그리고 지금 그것을 자신의 작업에서 어떻게 맥락화 할 것인가도 필요하다. 또 다른 길을 찾아 떠나는 그들의 행방을 주목해보자. ■ 이대범
Vol.20071120b | 도시회화의 행방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