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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109_금요일_06:00pm
갤러리 눈 창덕궁점 서울 종로구 와룡동 5-14번지 Tel. 02_747_7277 www.110011.co.kr
유목민으로서의 신체와 응시-신화적 재현 속으로 ●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신화란 말이며, 의미화되는 말이기 때문에 그것은 곧 형태라고 정의내린다. 사진작가이자 유목민인 윤주경은 신화화 된 장소를 찾아다닌다. 여기서 신화란 언어화 된 명령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삶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신화는 끊임없이 시대의 이념을 위해 재생산된다. 그러나 과연 신화가 우리들의 근원일까 ? 게다가 근원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신화란 결국 민족적 우월감을 부각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지 않은가. 즉 신화화 된 언어가 우리들 삶의 근원이 될 수는 없다. 반대로 "언어는 삶에 명령을 내린다." 라고 주목한 들뢰즈의 말을 상기해본다. 예를 들어, 질서 혹은 명령체계화 된 언어와의 관계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경우, 나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집단의 질서체계 속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며, 그 발견의 지점으로부터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우리의 의문은 보편적이고 집단적 질서와 달리 풀리지 않는 개인이란 존재 사이의 차이 때문이다. 이 차이가 곧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며, 바로 예술가의 창작이 출발하는 자리일 것이다. 신화적 재현으로 구획된 세상의 '틈' 사이에서 본질적인 삶의 근원을 쫓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예술가이다.
그렇다면 예술가가 동일한 질문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예술가의 정체성은 세상의 질서 속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정체성은 질서나 명령과 같은 수직적인 체계 속에 존재할 수 없다. 예술가란 수직적 사회구조를 해체하고 수평적 구조로 재영토화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윤주경은 여성게이의 시선으로 신화화 된 남성지배적 현장들을 찾아 다니고 사진으로 포착한다. 그녀가 기록하듯 찍는 신화적 장소들은 바로 언어화된 질서, 혹은 명령체계가 재현된 현장이며 이런 재현을 통해 남근적 형태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장소의 감추어진 진실을 탐구한다. 작가는 유목민으로서의 삶의 여정 중에 발견되는 남근적 상상의 가난함 또는 남근중심적 세계관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면서 신화적 재현 속으로 들어간다. 그녀가 발견한 신화의 자리엔 기념비가 놓여져 있고, 이처럼 개념화 된 공간은 남성지배적 시선으로 완성된 장소다. 기념비와 신화 사이엔 모종의 공모가 있다. 그곳은 바로 탈-시간성의 자리인데, 이는 신화와 기념비란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이탈되어있는 비-시간이자 또한 영원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 『붉은 깃발을 들다 』라는 도발적 제목으로 시작된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의 위치를 되묻는다.
갈림길 사이에 위치한 그-녀는 남성 또는 여성이란 사회적 질서 안의 몸이 아닌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붉은 깃발은 든 그녀는 실제의 장소에서 자신의 위치를 탐색하는데, 모뉴멘트 벨리와 자유로 정션이란 장소가 지시하는 역사적 현실과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위장된 현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 깃발을 치켜든다. 이는 또한 사회적 신체로서의 여성이 언제나 타자화되고 남성에 의해 소비되는 이미지화 된 신체로 국한된 현실에 대한 우화이며, 여성의 신체가 남성신체에 대한 해부학적 차이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닌, 수직적인 위계질서에 의해 배치된 정치적 신체라는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역사적 사건에서 퇴출 되어버린 여성의 존재와 그녀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윤주경이 서있는 자리와 바라보고 있는 자리는 신화로 무장된 장소이다. 그녀는 지배의 시선에 의해 조형된 여성의 신체와 권력에 의해 신화화-신성화 된 장소성의 허구로부터 이탈하여 본질적인 땅과 몸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정현
Vol.20071116e | 윤주경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