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癖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

정해창展   2007_1109 ▶ 2008_0203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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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108_목요일_05:00pm

제1부 사진인문학을 열다(2전시실) 제2부 서도전각의 길을 가다(1전시실)

관람료_일반 3,000원 / 청소년 2,000원

주최_일민미술관_무허정해창선생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 기획_일민미술관_사진아카이브연구소 후원_한미문화예술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일민미술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 Tel. 02_2020_2055 www.ilmin.org

벽癖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 ● 이 전시는 1929년 우리나라 최초로 '예술사진개인전람회'를 열었던 무허(舞虛) 정해창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개최하는 기념전시회이다. 1907년에 태어난 정해창은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독일어를 전공하면서 그림과 사진을 배웠으며, 금석학 연구를 위해 중국유학을 다녀온 근대지식인의 한 전형이었다. 그는 해방 이전 사진가와 서도전각가로 활동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금석학 연구 및 불교미술사 연구에 전념하면서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본 전시는 이처럼 다양한 예술 및 학문 연구 활동을 한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 근대지식인의 한 전형을 살펴보고, 딜레탕트의 한계를 넘어 취미를 벽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그의 문화예술 관련 작품들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이 전시는 정해창의 예술활동 영역에 따라 크게 제1부 '사진인문학을 열다'와 제2부 '서도전각의 길을 가다'의 2부문으로 나누었다. 제1부는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사진가로서 활동한 시기의 사진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으며, 제2부는 1941년 『서도전각전』의 개최 이후 서예가와 전각가로 활동했던 시기의 서예 및 전각 작품들로 꾸몄다.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정해창의 빈티지프린트는 한국근대사진사연구에 있어 소중한 실물자료이자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사람이 촬영한 몇 안 되는 근대기록물 중의 하나이다. 또한 해방 이후 전국을 답사하면서 촬영한 총 2,483점의 불교미술사진은 근대시각문화유산이라 할 만하다.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전통문화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한 정해창은 평생 '조선적인 것'을 쫓아 사진에서 서예와 전각으로 그리고 우리나라 불교미술 연구의 길로 걸어갔다. 그 과정에서 그가 성취한 예술작품과 연구 성과들은 우리에게 문화적 자산으로 남겨졌다. 이번 전시가 그가 남긴 자료들을 발굴·정리·복원하여 정해창이라는 근대적 텍스트를 다시 읽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 이경민

제1부 사진인문학을 열다, 무허舞虛 정해창 ● 1929년 첫 번째 전시 이후 1939년까지 모두 네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한 정해창은 10여 년간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5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 시기의 정해창은 나라 잃은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자의식 속에서 전통, 민족, 조선적인 것에 주목하였으며, 사진을 통해 근대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전통의 이미지를 표출하는데 노력했다. 그가 발견하려 했던 것은 여항문인화가들이 그림 속에서 다뤄왔던 주제와 내용들이었으며, 주로 인물화, 풍속화, 산수화, 점경인물화, 화조영모화 등 전통회화의 화목과 양식에서 '조선적인 것'을 찾으려 했다. 따라서 제1부는 전통회화의 화목에 따라 정해창의 사진을 분류했으며 여기에 정물, 자화상, 문화재를 보태 총 8개 부분으로 구성하였다. 한편 정해창은 금석학 및 불교미술 연구를 위해 1953년부터 1957년까지 전국을 답사하면서 8000여점의 사진을 촬영하였으며, 그 중 2483점을 선별하여 5권의 스크랩북에 정리했다. 이번에 처음 발굴, 공개된 이 불교미술사진첩은 그의 예술사진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기의 중요한 역사기록물로서, 사진인문학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정해창
정해창

정해창의 사진은 몇몇 사진을 제외하고는 정확한 제목과 제작연도를 알 수 없어 따로 캡션을 붙이지 않았다. 사진의 대부분은 정해창이 사진가로 활동했던 1929년에서 1939년 사이에 촬영되었으며, 유리건판에서 밀착인화한 젤라틴실버프린트이다. 본 전시에 출품된 사진은 1941년경 정해창이 직접 인화한 유일한 원본사진(빈티지프린트)들이다.

제2부 서도전각의 길을 가다, 수모인水母人·물아재物我齋 정해창 ● 1939년 네 번째 사진전을 끝으로 사진활동을 접은 정해창은 1941년 화신백화점에서 개최한 '서도전각전'을 통해 서도전각가로 데뷔하였다. 근대 전각의 양 대가였던 위창 오세창과 성재 김태석에게서 사사한 그는 이 전시를 계기로 자신의 스승들처럼 서예가이자 전각가이자 불교미술사가의 길을 걸었다. 당시 대표적인 미술평론가였던 윤희순으로부터 '그 계(界)의 계승자로서 부끄러움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해창은 35세의 젊은 나이에 서예와 전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서도전각전'은 그의 첫 번째 사진전과 마찬가지로 전람회 형식의 개인전으로는 매우 선구적인 전시였다. 따라서 현존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촬영한 전시장 전경사진과 복제사진 등을 활용하여 당시의 전시 상황을 일부 재현하였다. 제2부의 구성 역시 정해창이 '서도전각전'에서 분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서예, 전각, 각석의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또한 그가 참고했던 서적들과 작품제작에 사용된 서예 및 전각 도구 등 관련 유품들을 함께 진열하여 이해를 구하고자 했다. 정해창의 서예 및 전각 작품은 그 자체로 감상될뿐더러, 그가 활동했던 시기의 교유관계를 밝힐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글로 쓰거나 새긴 명문의 내용을 통해 그의 미의식과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서예 및 전각을 넘어 사진에서 그가 표출하고자 했던 바를 이해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분과학문이 나누어놓은 학문간, 매체간 경계를 넘어 종합학문, 종합예술의 입장에서 정해창을 바라본다면, 시간적 편차를 두고 진행되었던 그의 다양한 예술 활동 및 학문 연구 활동들이 서로 교통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정해창_수모인(水母人), 물아재(物我齋), 무허화실(無虛畵室) -정해창의 자호인
정해창_진금문(秦金文), 수모인 정해창, 대련(對聯)_135.5×34cm

20세기 초, 서양문물의 유입과 일본유학을 통해 신문화를 접하게 되었던 지식인들에게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적 표현방식들은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정해창선생은 일본 유학길에 사진기라는 경이로운 물체를 접하고 귀국한 후, 사진작업에 몰두하며 다가오는 세계에 대한 흥분과 기대를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자했고, 서예와 전각에 전념하며 자신의 취미 벽(癖)을 공공화(公共化)하고자 했습니다. 근대의 인문적 시각문화를 되짚어 현대를 알고자 노력해온 일민미술관은 무허 정해창선생 탄생 100년을 맞아 『벽(癖)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전을 열면서 한 개인이 당시에 일으킨 센세이션과 후대에 미친 역량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전시가 우리의 일상문화가 나아갈 길에 작은 지표를 제시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 일민미술관

Vol.20071113f | 벽癖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