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TATION -coffee&sugar

daRi 개인展   2007_1107 ▶ 2007_1120

daRi_Portrait_coffee & sugar(eyes)_33×23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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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107_수요일_06:00pm

행사_Coffee Talk_2007_1114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커피와 설탕, 착취의 쾌락에 관한 리포트 ● 예술가란 섬세한 더듬이를 세우고 살아야 하는 존재다. 이는 십 수 년 동안 한길을 걸어온 예술가 다리(daRi)의 세상살이와 자세를 집약하고 있다. 다리는 '달'을 음차한 듯한 천년 전 옛 도공 이름 다리(多利)에서 가져왔는데, 스스로 이름을 배윤주에서 다리로 바꾼 건 세상을 달처럼 바라보는 시선을 뜻한다. 이는 미감이자 잠들지 않고 있음을 상징한다. 다리는 물질에서 깨달음을 얻어내고자 하는 조형설치 작업을 거듭해왔다. 초기에는 주로 나무를 다루었는데, 합판이나 버려진 목재와 같은 하찮은 물건들을 주워서 오랜 시간 공력을 들여 갈고 다듬는 과정에서 물질 자체가 건네는 내러티브를 발견해내고자 했다. 이 과정은 작가 스스로 내적 감성을 지향하는 수양과도 같은 작업이었다. 물질과의 대결, 물질과 예술가 주체의 끊임없는 접촉을 통해서 물질성, 시간성, 수행성 등은 조형으로 치환되어 구조화되기 시작했다. 때로 풍경 이미지를 담은 추상적 형태를 통해 가기 행로에 관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 그가 반복되는 일상에 관심을 집중한 것은 바로 달과 연관하고 있다. 이 달은 문명사회의 달이다. 「월인천강지곡」은 '천 개의 강에 비친 달'이라는 잃어버린 신화의 원형을 찾아 나선 작업이었다. 여성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일, 예술가로 세상과 만나는 일에 대한 진지한 자기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다. 달에 대한 판타지를 상실한 도시의 삶에 대한 성찰이다. 세상의 이런저런 정보들을 담고 있는 책을 잘라버리는 행위를 통해서 세상에 새겨진 달빛을 찾고 잃어버린 원형을 찾는 행위다. 다리의 작업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더 구체적인 내러티브를 구사하는 쪽으로 변모해왔다. 물질이 이야기하도록 하는 방식에서 형상을 통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제시하는 쪽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는 그가 선택한 오브제가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와 더불어 그 오브제로 무엇을 만들어 냈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다리는 이윽고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daRi_떠돌이들_coffee & bamboo & Audio(중얼거리는 소리)_공간설치_2007
daRi_350년 동안의 귀로_coffee & sugar(eyes) & teeth_180×360cm_2007

커피와 설탕에 관한 작업은 이러한 일상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구조적인 관심이 낳은 결과물이다. 정확하게는 커피 찌꺼기나 깔때기를 사용하며, 설탕과 미디움을 섞어 새로운 형상을 성형하는 작업이다. 미술작품 제작에 사용하는 물질들 가운데 특정한 목적으로 만들어놓은 기성물질을 가리킬 때 관행적으로 오브제라고 한다. 따라서 오브제를 다룬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 물질적 특성을 조형적 요소로 끌어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나아가 물질의 사회적 맥락이나 시간성, 역사성 등을 작품으로 끌어들여 독창적인 내러티브를 획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성물질, 곧 오브제를 사용하는 미술은 물질적 특성과 의미의 맥락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할 때 제 맛을 낼 수 있는 법이다. 도시의 삶을 대변하는 여러 기호 가운데 커피만큼 확연하게 공감각적인 매력을 띄는 것도 드물다. 설탕 또한 커피와 한 묶음으로 따라다닌다. 그는 커피를 마시는 도시인의 일상에서 우아하고 여유 있는 모던 스타일을 발견하고, 이를 담아내기 위해 커피 찌꺼기와 설탕 덩어리를 조형작업 질료로 사용하고 있다. ● 『플랜테이션 : 커피와 설탕』은 문명사회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모순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17세기 유럽의 제국주의 무역 열풍은 제3세계의 땅과 노동을 착취의 사슬아래 묶어두기 시작했다. 플랜테이션의 역사는 이렇듯 서구가 비서구를 향해 직조한 근대적 점령과 착취의 역사를 대변한다. 그는 자신이 커피와 설탕을 가지고 작업을 풀어낸 이유에 대해 다름과 같이 말한다. "문명사회, 특히 도시에서의 삶은 대부분 생산은 가려지고 소비만을 인식하는 구조이다. 문명사회 도시의 일상인 커피와 설탕에 대한 구조적 질문을 던진다." 그는 커피의 각성효과에 주목하면서 예술로서 커피의 감성학과 정치경제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각성하도록 만든다. 오늘날 도시 공간 곳곳에 생겨나고 있는 다국적기업의 브랜드 커피숍들은 도시의 감성과 스타일을 새롭게 직조해내면서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공간을 재구성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daRi_Collector 2_coffee & sugar(eyes) & bronze tag & Table_120×120×75cm_2007
daRi_깔대기 - 신은 맛있는 기도만 듣는다._coffee & paper filter_162×112cm_2007

커피와 설탕을 다루는 다리는 이들 물질을 다룸으로써 두 가지를 동시에 얻는다. 하나는 커피찌꺼기라는 물질을 다룸으로써 획득하는 질료의 특성이고, 다른 하나는 커피와 설탕이 조직해내는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다. 다리는 커피 원액을 걸러내고 남은 커피 찌꺼기를 가지고 인간의 형상을 떠내고, 대지의 숨결을 담아내며, 근대문명의 배리를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 버려진 커피 찌꺼기에서 문명의 저편에서 기호의 소비를 뒷받침하는 소외된 노동의 실체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것은 커피의 향기와 노동의 땀 냄새가 교차하는 작업이다. 그는 커피를 소비할 때 그 속에 숨겨진 '의도된 망각'을 드러낸다. 하여 다리의 작업은 '맛의 사냥과 착취에 대한 조형적 보고서'로 성립한다. 그의 작업은 크게 보아 사람의 얼굴을 떠낸 캐스팅 두상 작업과 회화적 설정을 풀어낸 패널부조작업으로 나뉜다. 이들 커피와 설탕으로 만든 조상들은 다양한 방식의 설치와 더불어 또 다른 미디어를 관통하기도 한다. ● 커피와 설탕 연작 가운데 가장 많은 게 두상작업이다.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계통의 사람들을 캐스팅해서 원본을 만들고 커피찌꺼기나 설탕으로 떠낸 것이다. 원액을 추출하고 남은 커피찌꺼기를 뭉쳐서 만든 두상 연작은 「떠돌이들」은 커피찌꺼기로 캐스팅한 다양한 인종의 얼굴들을 무수히 설치하고 웅성거리는 소리를 넣어 떠도는 영혼들의 중얼거림을 표현하고 있다. 스물네 개의 마스크를 마치 박물관 유물 전시하듯 설치한 「Collector」 같은 작업도 있다. 식민지 약탈의 역사를 모은 컬렉션이다. 때로는 책장 형식의 패널 위에 두상을 나란히 쌓아둠으로써 오랜 시간동안 반복된 플랜테이션의 역사를 마치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하듯 노예노동의 사슬 아래 스러져간 넋들을 모셔두기도 한다. 이처럼 커피와 설탕을 매개로 플랜테이션을 다루는 다리의 예술적 사유와 성찰은 조소예술가의 수공적인 제작기술과 더불어 인류학자나 무당의 지위에까지 이르고 있다.

daRi_Coffee Torso - 당신이 행복해 질 때까지_paper filter_94×44cm_2007

확실히 물질은 정신을 견인한다. 다리가 재구성한 커피와 설탕의 물질성은 플랜테이션에 얽힌 무거운 내러티브를 매우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커피찌꺼기를 이용해 마치 검은 흙과 같은 질감의 패널부조를 여럿 만들었다. 「350년 동안의 귀로」는 패널 부조 형식으로 갈라진 대지에 사람 얼굴이 묻어나고 그 위에 서있는 사람과 하늘의 별들을 표현하고 있다. 커피색깔의 단색조 화면에 설탕으로 만든 눈동자가 사람의 얼굴과 하늘의 별들처럼 박혀있다. 350년간 이어진 플랜테이션 노동을 지켜온 대지와 하늘의 별들과 노동자들의 모습니다. 깔때기를 겹쳐서 만든 하체를 제외하고는 동일한 재료의 부조패널인 「깔때기-신은 맛있는 기도만 듣는다」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노동자의 모습이다. 쓸모 있는 것과 없는 걸을 걸러내는 깔때기의 물질적 특성을 이용한 작품이다. 커피와 설탕의 흑백 대비를 강조하기도 하고, 커피부조 위에 치아를 박아 넣기도 한다. 검은 흙과 같은 색감과 더불어 갈라지고 터지는 물질의 완급조절에 따라 플랜테이션의 역사를 드러내는 물질의 울림이 묻어난다. ● 부조 마스크 작업은 더욱 더 깊은 감성적 울림을 제시한다. 「Portrait」는 커피 찌꺼기의 거친 질감을 이용해서 마치 검은 땅에서 돌출한 듯한 검은 마스크에 백설탕의 하얀 눈동자가 관람자의 시선을 압도한다. 가물어 갈라진 땅과 같이 거친 땅의 느낌 속에서 사람 얼굴의 형상이 드러나고 백설탕 눈동자의 응시가 섬뜩하게 내리꽂히는 대표작이다. 작가는 이 초상을 '떠도는 쓸쓸한 분노'라고 말한다. 수백년동안 제국주의 역사를 떠받든 억압과 착취의 그늘 아래서, 여전히 반복되는 플랜테이션의 굴레를 커피와 설탕으로 만들어진 이 분노의 초상은 굳게 다문 입술로 웅변하고 있다. 설탕을 하얀 배경으로 깔고 붉은 커피원두를 이용해 반부조의 마스크를 돌출시킨 「Red Portrait」 연작도 있다. 사용한 커피 깔대기를 여러 겹 겹쳐서 인체를 만든 「Coffee Torso」는 인간의 신체에 각인된 커피 소비의 검은 커넥션을 들춰낸다.

daRi_꿈_coffee & sugar_84×44cm_2007
daRi_커피나무사이로_coffee & sugar_105×55cm_2007

다리는 이처럼 입체와 부조 형식으로 제작한 플랜테이션 리포트를 조형설치 작업으로만 활용하지 않는다. 그는 오브제 작업의 이미지를 실생활에 사용하는 실용기물에 결합시키거나 디지털합성 작업으로 확장함으로써 원소스 멀티유즈를 실현하고 있다. 머그컵에 커피 두상을 새겨 넣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머그컵에 노예노동자 모습을 담는 것은 일상적으로 즐기는 커피 한 모금에 여유를 담는 현대인들에게 그 이면에 숨겨진 착취의 구조를 각성하게 하려는 전략이다. 디지털 프린트 작업은 수천 개 두상 이미지를 디지털 합성과정을 거쳐 사람 머리로 가득한 광활한 들판과 같은 이미지를 연출하며, 허공에서 백설탕두상이 커피두상의 무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 이처럼 다리의 작업은 두 겹의 충격을 제공한다. 커피덩어리와 설탕덩어리가 만들어내는 조형재료의 시각적 충격과 더불어 커피와 설탕이라는 질료로 만들어진 노동자의 형상을 통해서 플랜테이션이 직조하는 전지구적인 근대사회의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리는 커피와 설탕의 맛을 '착취의 쾌락'이라고 부른다. 그는 커피와 설탕을 통해서 획득하는 상징과 기호작용은 근본적으로 제3세계의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로 발생하는 잉여의 것이라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근대 자본주의 초기의 일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문제이며, 우리의 일상 속에 구조적으로 배치된 모순덩어리라는 점을 각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다리의 작업은 도시의 껍데기를 욕망하는 개별 주체들에게 작동하는 커피와 설탕의 정치경제학을 관통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깊숙하게 폐부를 찌르면서 은밀하고도 치명적으로 말이다. ■ 김준기

Vol.20071112e | daRi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