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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련 회화展   2007_1110 ▶ 2007_1119

이호련_overlapping image 7703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07

초대일시_2007_1110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갤러리 AKA SEOUL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3-38번지 Tel. 02_739_4311

오브제 a, 욕망의 모호한 대상 ● 프로이드는 인간을 욕망의 동물로 정의한다. 생각하거나(데카르트) 놀 줄 아는 능력(호이징하), 언어를 사용하거나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도 있지만, 욕망이야말로 이 모든 능력보다도 우선하는 것이며, 인간을 인간이게 해주는 가장 결정적인 특질이라고 본 것이다. 욕망은 인간과 동물을 차별시켜주는 근거로서보다는, 오히려 문명에 의해 억압된 자연성을 일깨워주고, 나아가 인간에게 내재된 본성을 일깨워준다. 인간에게는 말하자면 타고난 욕망을 실현시키려는 본능이 내장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이드가 보기에 개별주체는 필연적으로 제도와 반목할 수밖에 없다. 개별주체는 욕망을 실현시키려 하고, 제도는 그 욕망을 억압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명에 의해 그리고 제도에 의해 억압된 욕망이 개별주체 속에서 무의식의 지층으로 내재화된다. 욕망은 이처럼 그 실현이 좌절된 탓에 정상적인 언어의 형식을 빌려서는 표상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언어, 암시적인 언어, 무의식의 언어, 몸의 언어, 상징과 기호의 형태로 표상된다. 자크 라캉은 이처럼 좌절된 욕망을 표상하게 해주는 비정상적인 언어의 용법을 오브제 a라고 칭한다. 즉 욕망은 대상화할 수 있는 부분(오브제)과, 대상화할 수 없는 부분(오브제 a)이 하나의 결로써 중첩돼 있는 것이다. 오브제 a는 말하자면 그 실현이 억압되고 좌절된 탓에 다만 무의식의 언어로만 표상될 뿐인, 엄밀하게는 인식할 수조차 없는 탓에 표상이 부재하는 언어로만 표상(?)될 뿐인 욕망의 알 수 없는 실체와 그 성질을 지시한다. ● 예술가는 이 모든 일련의 사태를 의식적인 층위로 끄집어 올린다. 예술가는 말하자면 욕망과 억압의 관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나아가 욕망을 반사회적이고 반제도적인 실천논리를 위한 의식적인 도구로서 사용하는 남다른 능력이나 충동을 타고난 존재인 것이다. 이호련이 그린 일련의 그림들은 이런 욕망의 모호한 대상성을 드러내며, 이로써 오브제 a 개념의 실체를 엿보게 해준다.

이호련_overlapping image 7503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07
이호련_overlapping image 7601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07

이호련의 그림은 일상적인 소재가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려진 형상미술의 형태로 나타나며, 그 밑바탕에는 사진과 영상 세대 고유의 미적 감수성이 깔려있다. 특히 사진 같은 회화라거나 회화 같은 사진 등 사진과 회화의 접점에 그 초점이 맞춰진 일련의 담론이나 그 경향성과 관련이 깊다. 여기서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은 사진 같은 회화는 단순한 극사실주의 회화를 넘어선다. 그 생리가 회화보다는 사진과 더 친하다. 다만 그 결과가 회화를 닮아있을 뿐, 사실은 그 이면에서 사진의 생리, 사진의 질감, 사진의 시점과 더 통한다. 여기서 사진의 생리란 사진의 욕망을 말하며, 이는 세계를 소유하려는 욕망으로서 나타난다. 즉 피사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행위는 피사체를 소유하고 사유화하는 욕망의 과정을 보여준다. 예컨대 관광지를 순례하는 행위는 그 현장을 몸으로 부닥쳐 겪는 살아있는 경험으로서보다는 다만 그곳에 내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흔들릴 수 없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한갓 과정으로서 축소되거나 왜곡되고, 이때 현지에서 허겁지겁 찍어온 일련의 사진들이 그 인덱스(마치 등기부의 그것과도 같은 소유의 지표)가 되어준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말하자면 그 속에 보는 행위가 내장돼 있고, 여기서 보는 행위는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를 대상화하고 사물화하는 그리고 객체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궁극적으론 이를 소유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진을 찍는 행위는 세계를 소유하려는 욕망과 통하며, 보는 행위는 관음증의 심리적 기제와 통한다. 이를 통해 페티시즘 즉 대상을 물화하는 것이다. 원래 페티시즘이란 이성에게 속한 옷가지나 물건을 통해 상징적으로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심리적 경향성을 의미한다. 이런 물건에 대한 욕망이 심지어는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 무형의 계기마저 물화하려는 자본주의의 욕망과 결합하면서 물신주의의 형태로 정론화한 것이다. 그리고 사진의 질감은 무엇보다도 평면과 표면, 피부와 촉감의 개념으로서 현상한다. 사진에서의 일루전은 회화에서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평면적이고, 또한 사진에서의 프레임은 회화에서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결정적이다. 사진과 회화는 서로 전혀 다른 감각적 결을 가지고 있으며, 한 장의 사진은 회화에 비해 세계를 한정하고 피사체를 결정화하는 힘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작용되는 편이다. 한 장의 사진(연출사진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르포나 스트레이트포토마저도)은 마치 세팅된 연극무대나 영화의 미장센을 떠올려주는데, 이 모든 감각의 지점이나 성분들이 실제를 평면으로 전이시키고 한갓 표면으로 축소(압축)시키는 사진의 메커니즘과 통한다. 그리고 사진의 질감은 현저하게 피부의 그것을 닮아있고, 이로써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촉각적 경험에로까지 확장시켜준다. 한 장의 사진은 말하자면 피사체를 보고 만지고 소유할 수 있게 해주고, 나만의 작은 세계(마스트피스로 축조된)를 건립할 수 있게 해준다. ● 또한 사진의 시점은 실제의 극화와 관련이 깊다. 사진은 세계와 사건과 서사의 전체가 아닌 항상적으로 그 현재진행형의 부분을 암시해줌으로써 실제를 극적 순간으로 전이시키며, 이로써 세계를 세팅된 연극무대나 영화의 미장센으로 극화시킨다. 더욱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작용되어지는 시각의 헤게모니 즉 주체의 시선과 객체(피사체)의 응시가 서로 부닥치고 충돌하는 생생한 현장은 그 극적 순간을 일종의 심리적인 극장으로까지 확대재생산할 수 있게 해준다. 한마디로 사진은 회화에 비해 물신주의 경향성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작용되는 편이며, 이는 단순히 회화에 비해 사진이 세계(피사체)를 더 닮게 재현하게 해준다거나, 혹은 세계를 더 쉽게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넘어선다. 이호련은 이런 사진의 생리나 질감 그리고 그 시점에 작용되어지는 물질적이고 심리적인 계기를 회화적으로 전용해옴으로써 주체와 객체(피사체), 시점과 응시, 그리고 무엇보다도 욕망과 물화 또는 물신과의 관계와 관련된 첨예한 담론들에 반응하고 이를 전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호련_overlapping image 7704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07
이호련_overlapping image 7801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07

이호련은 주로 여성의 하체를 소재로 한 중첩된 이미지를 통해 내적 욕망을 형상화한다. 마치 엑스레이 필름을 통해 몸속(옷 속)을 투과해 보듯 무의식적 욕망을 투사한 것이다. 동작중인 일련의 이미지를 중첩시키는 방법으로써 마치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인체의 이미지를 극사실의 기법으로 그려낸 그림들이 단순한 리얼리티를 넘어서는 포토리얼리즘 이후를 예시하게 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페티시즘과 관련된 자본주의의 욕망(성을 상품화하고 세계를 소유하려는 기획)과 함께, 관음증과 관련된 심리적이고 자기 반성적이고 존재론적인 자의식을 엿보게 해준다. ● 여기서 욕망의 대상은 그 실체가 모호한 것으로서 나타난다. 즉 모델은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는 것처럼도 보이고 아래로 내려 가리는 것처럼도 보인다. 주체와 객체가, 시선과 응시가, 관음증과 노출증이 서로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충돌하고, 부닥치고, 투쟁하는 심리적인 장이, 욕망의 장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모델은 정면성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는 단순히 모델의 정면 포즈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스스로의 상품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의식적이고 연출된 제스처에 가깝다는 점에서 작가의 그림은 누드의 전통적인 미학과 통한다) 그 욕망의 실체는 결코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욕망은 없다. 다만 욕망의 모호한 대상성(오브제 a)이 있을 뿐. 더 큰 욕망, 다른 욕망이 있을 뿐. 욕망의 의미는 끊임없이 지연되고 그 실체는 끝끝내 손에 쥘 수 없다. 욕망은 환영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 고충환

Vol.20071110b | 이호련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