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양재광 홈페이지로 갑니다.
작가와의 대화_2007_1109_금요일_05:00pm
갤러리 카페 브레송 서울 중구 충무로2가 52-10번지 고려빌딩 B1 Tel. 02_2269_26134 cafe.daum.net/gallerybresson
트랜스포머의 환상동화를 꿈꾸다 - 양재광의 Night Swimming ● 잘 생긴 얼굴과 명문대학 졸업장, 폼 나는 직업, 환호 받는 연예인만큼은 아닐 테지만 꽤나 많은 팬들을 거느릴 수 있는 작가적 역량, 어느 날 막다른 골목에서 '정말로' 재수 없게도 '아주' 불운한 그림자와 정면으로 맞닥뜨리지만 않는다면 확률 상으로 '거의' 약속된 거나 다름없는 장밋빛 미래......그쯤이면 이제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나이 들어서도 줄곧 유년의 기억에 붙들려 있는 작가로, 기형도 라는 시인이 있었다. 한 사회가 거뜬히 견딜 수 있는 질곡의 높이를 훌쩍 넘어버린 질풍노도 같기도 하고 당연한 결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이 앞이 보이지 않는 무진기행(霧津紀行) 같기도 했던 80년대 후반, 말 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나서 black out처럼 급작스럽게 가버린 요절시인. 기형도란 이름은 한없이 우울하고 한없이 절망스러우며 한없이 아름다워 그럼으로써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이한 작가의식이었다. 그의 유고시집 「잎 속의 검은 잎」에는 유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아주 먼 옛날/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엄마 걱정' 全文) ●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우를 깎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 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 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 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바람의 집' 全文) ● (.......)아버지. 그건 우리 닭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정성껏 돌보세요. 나는 사료를 한줌 집어던지면서 가지를 먹어 시퍼래진 입술로 투정을 부렸다. 농장의 목책을 훌쩍 뛰어넘으며 아버지는 말했다. 네게 모이를 주기 위해서야. 양계장 너머 뜬,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이 아버지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팔목에 매달려 휘휘 휘파람을 날렸다. 내일은 펌프 가에 꽃 모종을 하자. 무슨 꽃을 보고 싶으냐. 꽃들은 금방 죽어요 아버지. 너도 올봄엔 벌써 열 살이다. 어머니가 양푼 가득 칼국수를 퍼담으시며 말했다. 알아요 나도 이젠 병아리가 아니예요. 어머니, 그런데 웬 칼국수에 이렇게 많이 고춧가루를 치셨을까(.......) (-'위험한 家系' 中)
그랬다. 기형도의 유년시절은 그의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유년이기도 하고 그대의 유년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작은 창문으로 한줄기 옅은 빛이 들어오는 서늘한 다락방이거나 엄마 몰래 숨어들던 컴컴한 장롱 속 같은 시절. 누구에게나 유년이 그리운 건, 설령 백년을 산다 해도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따스함과 안도감-자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때문이기도 하고 그 아늑함 속에서도 알 수 없는 서러움-일종의 상실감이랄 수 있는-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유행가 가사처럼 인간이란 '맨손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져가는'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라, 어머니의 뱃속에서 모든 것을 쥐고 태어났다가 눈을 뜨고 말을 배우며 어른의 세상 속에 섞이면서 태초에 가졌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상실의 과정이 아닐까? 최초의 상실감이 어떤 이에게는 더 이상 오지 않는 파출부 할머니에게서 비롯되고 어떤 이에게는 형에게 뺏겨버린 소중한 장난감이며 또 어떤 오이디푸스나 일렉트라에게는 어머니나 아버지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 법. ● 그래서 유년을 기억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모든 자들은 오르페우스다. 그는 상실을 노래하는 자이고 시간을 거스르는 악기를 타는 자이며, 그래서는 안 되는 줄을 잊은 채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었다가 다시 숱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신탁(神託)에 걸린 자이다.
등장 소품을 보니 필자와 거의 동시대인데, 필시 필자보다는 두어 살쯤은 적을 것을 같은 양재광 작가의 유년 놀이도 상실의 그림자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 그림자는 시인의 것처럼 스산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완구로 치장한 마술사처럼 의기양양하게 나타난다. 총과 공룡, 빨간 아이스바, 로봇과 인형, 천사의 날개와 갖가지 가면들...알만한 이 소품들은 이상하게도 유년이란 시절을 내가 마치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시간처럼 신비롭게 만들어 버린다. 그 아이들은 익숙하면서도 생경하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성숙을 멈춰버린 양철북의 오스카처럼 악에 받쳐 있지도 않고 모험을 찾아 네버랜드로 떠난 피터팬처럼 마냥 씩씩하고 발랄하지도 않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어른 같기도 하고 아직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생짜 그대로의 아이 같기도 하다. 그들이 출몰하는 곳은 기껏 신도시 아파트촌의 공원이거나 놀이터이거나 천변 따위인데, 그들이 연출해내는 장면은 꿈속인 것도 같고 환상동화 속인 것도 같다. 어쩌면 작가가 말한 'Night Swimming'의 느낌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다시 보면 너무나 몸에 익은, 잊은 것 같았는데 다시 보면 너무나 생생한,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모래알처럼 스르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서늘한 것 같은데 몸을 뒤척여 보면 너무나 따스한... ● 알 수 없는 그것, '아직 오지 않은' 시절도 아닌 '다 지나가버린'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제아무리 똑똑한 성인조차 무어라 딱 부러지게 규정지을 수 없는 묘한 시절. 그런 의미에서 나이트스위밍은 유년에 대한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이다. 또한 나이트스위밍이란 행위는 신나는 물놀이도 스포츠도 아닌 일종의 의식(儀式)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동심으로 돌아가 다시금 재미와 유쾌함을 충족하고자 하는 키덜트의 소비적 의식이 아니라, 감히 신령한 금기를 어기고 뒤돌아보았음에도 영원히 소금기둥으로 남아있기를 거부하며 유년의 상실감으로부터 다시 새로운 생성과 일탈을 꿈꾸는 자의 통과의례이다. ● 통과의례를 다 마치지 못하고 요절한 불우한 시인의 미래, 그리스의 푸른 바닷가에서 돌고래와 함께 수영을 하며 영원한 우정을 그리던 그랑블루의 잠수부 자크가 끝내 지키지 못한 꿈,...나는 문득 그것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들 대신 '나이트스위밍'이 아이의 시절에서 어른의 시절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좀처럼 알 수 없는 우리들의 인생이란 시절에 한껏 멋진 상상력과 충족감을 선사해주기를, 그것이 유년에 고정돼버린 촌스런 관절 로봇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몸을 바꾸며 마음껏 세상을 변주하는 선한 '트랜스포머(transformer)'의 환상동화가 되기를, 꿈꾸어본다. 어두운 밤 출렁이는 푸른 물결 속에 잠겨있듯 습한 유년의 기억 같은 이불 속 깊이 몸을 웅크리고 누워. ■ 최현주
Vol.20071109f | 양재광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