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 시리즈 11th

이원정 비디오 드로잉展   2007_1018 ▶ 2007_1104 / 월요일 휴관

이원정_길바닥 시리즈 11th_단채널 비디오 스틸 이미지_00:50:00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브레인 팩토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작품상영시간_11:00 / 12:40 / 13:50 / 15:00 / 16:10 / 17:20 (총6회)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www.brainfactory.org

이원정의 작업에는 거대한 이야기도 그리고 거창한 사건도 없다. 단지 일상에서 '아톰'을 가지고 놀고 있는 작가가 등장 할 뿐이다. 어릴 적 기억 속에 있는 아톰은 하늘 곳곳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 그러나 지금 작가 앞에 있는 '아톰'은 날기는커녕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가 날 수 있는 것은 그 앞에 있는 누군가의 욕망이 투영 될 때뿐이다. 그는 스스로 욕망을 실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작가는 이러한 아톰에 자신의 사진을 붙인다. 즉, 그곳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다. 자신과 자기 앞에 있는 아톰이 다른가? 자기 역시 아톰처럼 스스로의 욕망을 억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지.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닌 영상 클립을 보면서 지금-여기에 있는 자신의 욕망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이다.

이원정_길바닥 시리즈 11th_단채널비디오 스틸 이미지_00:50:00_2007

어쩌다 한 번 날아본 아톰의 고백 ● 남들은 저를 아톰이라고 부릅니다. 다들 한번쯤 TV에서 봤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저의 모습을 부러워했겠죠.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TV에 출연한 적이 없습니다. 날아보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TV에 출연했던 아톰의 모조품이니까요. 그냥 '아톰'이라는 이름을 대신할 수 있는 수 없이 많은 것 중에 하나에 불과하죠. 저는 태생적으로 날수도 없고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죠. 그렇다고 제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아톰'처럼 하늘 높이 날고 싶다고요. 그러나 항상 나의 꿈은 좌절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저 멍청하게 서 있을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 하나 없던 저의 반 지하 방에 누군가 찾아 왔습니다. 그는 방안에서 달팽이를 가지고 놀기도 하고, 창문 틈에 있는 지렁이를 가지고 놀기도 하더라고요. 언젠가는 상자를 가지고 들어오더니 난데없이 칼질을 하더라고요. 거기에 여자 모델 사진이 있었는데, 마치 그를 난도질하는 것 같아서 끔찍했어요. 그것을 버리겠지 했더니 테이프로 꽁꽁 감아서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더라고요. 그리고 그것을 애완견처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산책을 시키더라고요. 저는 가만히 서서 그것을 지켜봤죠. 가끔은 혼자 밖에 나갔다 와서 자신이 했던 일들을 말해주기도 했어요.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서 테이프로 이용해 거대한 덩어리를 만들었다가 발로 차버렸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것들은 다시 쓰레기로 거리에 널브러져 있었다며 통쾌해 하더군요. 정육점에서 고깃덩어리를 칼질하는 장면을 구경한 이야기도 해줬어요. 생각해보면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정말 무의미한 행동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재미를 느끼며 놀고 있었던 거죠. 그는 그렇게 한참을 혼자 놀았어요. ● 아마 한참을 혼자 놀았을 겁니다. 혼자 노는 것이 지겨워 졌는지 아니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는 내가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저에게 노래를 불러 주드라고요. 촛불 앞에 저를 세워 놓고 노래를 부르는 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어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한 줄 알았던 제가 그의 노래 소리에 따라서 몸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얼마나 놀랬겠어요. 물론, 실제로 제가 움직인 것은 아니고 저의 그림자가 움직인 것이죠. 그래도 신명나게 놀았죠. 아톰 형태를 하고 있지만,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제가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한마디로 소원 성취한 것이죠. 그 이후로 그는 저를 이곳저곳에 데리고 다녔어요. 철사에 묶어서 방 허공에서 날아다니게도 하고, 오토바이에 묶어서 창문너머로만 바라보던 세상에 저를 데리고 가기도 했죠. 동네 아이들도 소개시켜주고, 어른들께 인사도 시키고, 도시 한 복판을 씽씽 날아다니게도 했죠. 어느덧 우리는 하나가 되어서 세상을 곳곳을 구경하고 다녔죠. 그는 가끔 저에게 자신의 사진을 붙이기도 했어요. 저도 그 이면서 저인 체로, 나의 소망을 이룬 듯 이루지 않은 듯 살아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비록 그가 자신의 소망을 나에게 투영해서 실현한 것이고, 저는 여전히 혼자 날수 없는 존재이고, 그래서 여전히 그의 소망과 나의 소망이 일치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죠. ● 분명, 그는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의미 없는 것들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의미 없는 행동 때문에 하늘을 날아 봤습니다. 앞으로 또 다시 하늘을 날수 있을지, 아니면 예전처럼 우두커니 서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그저 그의 의미 없는 놀이(혹은 노동)이 지속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그 의미 없음이 의미를 획득할 때까지 말입니다. 자! 그럼 저는 일단은 오늘도 방바닥과 길거리에서 헤매고 있을 그를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 이대범

Vol.20071108e | 이원정 비디오 드로잉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