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배 개인展   2007_1031 ▶ 2007_1112

이웅배_손님_스테인리스 스틸, 전기장치_35×61×5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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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31_수요일_05:00pm

김진혜 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2,3층 Tel. 02_725_6751 www.kimjinhyegallery.com

그동안 작가가 보여주었던 배관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유기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작품들과 스텐레스 스틸를 이용한 군상시리즈들과는 다른 구상적이고 회화적인 레이저커팅을 이용한 부조작업을 선보인다. ● 이번 전시에서는 사각의 스텐레스판 위에 레이져커팅을 이용한 도상들을 만들고 양옆에 스텐레스조각들을 용접하여 질감이 살아있는 날개를 표현한 부조작업들로 이루어진 전시이다. 이콘에서 차용된 듯한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도상들은 입체적으로 표현된 날개와 부조안 장치된 LED조명들이 커팅된 도상들의 선 안쪽에서 다양한 빛을 만들며 장식적으로도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하게 된다. 작업들에 나타나는 도상들은 천사로 표현되어 있는데 종교적인 의미라기보다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잇는 메신저의 역할자로 나타낸 것이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한 것에 관한 보고서와 같은 전시를 표현하고자하였다. 전시장을 어두운 공간으로 처리하여 작품들이 각각의 형태와 선 안에서 만들어 내는 빛들로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도록 하였다. 작가는 차가운 소재인 스텐레스를 여러 가지실험을 통하여 따듯하고 부드럽게 표현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여 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좀더 극대화되어 보여진다. 또한 작품들이 간접조명기구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멋진 공간연출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 ■ 김진혜 갤러리

이웅배_솔로이스트_스테인리스 스틸, 전기장치_36×21×7cm_2007
이웅배_솔로이스트_스테인리스 스틸, 전기장치_36×21×7cm_2007_부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문턱에서 ● 내가 줄곧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소통과 접촉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제껏 이런 관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지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관심은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과 맞물려있는 나의 성장기와 관련이 있다. 전쟁 후 실향민의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동년배의 대다수 사람들이 그런 것 같이 경제발전을 통한 근대화를 위해 혹은 정치적 목적으로 사회가 권력에 의해 통제 받았던 시기에 자라났다. 1980년대의 대학 생활과 연이은 군복무 기간 동안의 극단적인 분단 상황과 사회 통제에 대한 직간접적 경험과 인식은 나로 하여금 자연스레 소통과 접촉이란 문제에 집중하게 했다. 그러므로 나는 과연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에 대한 중요성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무시되거나 마모되면 결국 남는 것은 억압과 고통뿐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이웅배_전사_스테인리스 스틸, 전기장치_60×30×7cm_2007

그래서 거대담론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사회에서는 나는 느낄 수 없는 작고 연약하며 주류가 아닌 것들의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결국 나는 작품들을 거리로 끌고 나오기를 즐긴다. 여기에는 시각적으로만 경험되는 작품이 아닌 관람자 각자가 만지거나, 스치거나, 쓰다듬거나, 게다가 걸터앉고 매달리기까지 관객의 사사롭고 개인적인 경험의 생산이 계산되어져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각적 감상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이끌어낸다. 관객의 사사롭고 개인적인 관심과 접촉으로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작품에 대한 관객의 신체적인 접촉은 개인적인 경험을 만든다. 당연히 눈에 보이는 것 이외의 것을 만들어낸다. 그런 연장선에서 요즘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혹은 초월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이성과 경험만을 따르며 눈에 보여 지는 세계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더니즘 사회에 대한 의문이다. 왜냐하면 모더니즘 사회는 보이고 경험되어지는 것만을 인정하여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비합리라는 틀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초월적인 것은 자리 잡을 틈이 없다. 인간은 한정적 시간과 제한적 공간 속에서 살다가 죽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합리와 경험이라는 미명 아래 눈에 보이는 것 이외의 존재와 상황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처참한 양차대전을 겪으면서,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이성만을 지닌 인간의 신분에 혼란이 생겼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 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을 언급하는 것을 시대착오라고 생각하는 태도에는 궤도수정이 필요하다. 하여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웅배_씨름_스테인리스 스틸, 전기장치_30×36×7cm_2007
이웅배_수태고지_스테인리스 스틸, 전기장치_30×55×5cm_2004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탐구심은 그리 쉬운 일도, 간단한 일도 아니지만, 이제까지의 사실들로 미루어봐 명료하게 드러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비해 거대하며 우선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예전의 예술가들에게도 이런 고민이 있었을 것이기에 이에 대한 자료를 접하다 마음이 먼저 닿은 것이 천사다. 왜냐하면 천사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사이에서 문턱이나 통로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천사 자체가 내 관심의 종착지는 아니다. 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통로와 문턱 역할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지점에 있어서 소통과 접촉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내가 이제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이해로 말미암아 눈에 보이는 것 특히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하는 법을 찾는데 좀더 근본적이며 성숙한 도움을 얻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 이웅배

Vol.20071108b | 이웅배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