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의 쾌감

한석현 개인展   2007_1107 ▶ 2007_1118 / 월요일 휴관

한석현_HOLY FRESH !_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 형광등, 모조 이끼_68×30×25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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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107_수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_갤러리 175_micro/weiv

갤러리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참여연대 옆) Tel. 02_720_9282 blog.knua.ac.kr/gallery175

오답이 선사하는 시각적 쾌감 ● 무릇 새로움과 창의의 발현이 사회가 요구하는 예술의 의무일 텐데, 복잡하고 요란한 현대미술은 왠지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핵심은 현대미술이 너무 과잉되어 있다는 것이다. 새로움에 대한 집착, 이미지와 개념의 과잉은 그래서 더 이상 신선해 보이지 않는다. 요란한 회식과 과음 후 소박한 식사를 하고 싶은 아침의 욕망과 같이, 현대미술에도 된장국과 오이소박이, 하얀 쌀밥으로 구성된 정갈한 식단이 필요한 때이다. ● '오답의 쾌감'은 새로움에 대한 현대미술의 과잉된 열정에 찬 물을 끼얹는다. 작가는 새로움은 싱싱함이고 싱싱한 것은 상추이기 때문에 상추를 재현하는 것으로, 엉뚱한 곳에 밑줄을 긋는다. '빤딱빤딱'이는 색조의 인공자연, 「MUST BE FRESH!」는 과연 싱싱함 그 자체로 보인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작가가 재현한 싱싱한 상추가 아무리 신선해 보여도, 그것이 신선한 예술이고 새로운 작품이 될 수 있냐는 질문을 말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보이는 태도가 뻔뻔하지 않은가? 게다가 버젓이 '오답의 쾌감'이라 이름 붙이는 그의 태도가 얄밉지 않냐하는 이야기다.

한석현_FRESH STATUE_합성수지에 아크릴채색, 장식기둥_230×37×30cm_2007
한석현_WE are READY_합성수지에 아크릴채색, 합성수지 상자_각 22×48×38cm_2007

작가가 아무리 어깨에 뽕을 넣고 힘을 주고 있어도, 보이는 게 시시하면 말짱 꽝이다. 다행스럽게도 '오답의 쾌감' 은 그래도 일종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그것은 먼저 '그냥 재밌다' 열심히 뭔가를 나르는 개미의 행렬을 돋보기로 바라보듯 태생적 한계를 주름으로 지탱하는 상추는 그래서 대견하고, 그래서 위태로우며 따라서 재미있다. 작가는 이런 상추를 그대로 가져와서 플라스틱 소재로 재현한다. 작가가 한 일이란 아이들이 돋보기를 들이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상추를 그대로 재현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래서 '오답의 쾌감'의 재미가 '그냥 재밌다'라는 피상적인 것일 뿐일까? 작가는 물론 '그게 다에요' 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미술에 찬물을 끼얹고 싶어 하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답의 쾌감'은 '그냥 재미있기도' 한 일종의 개념 미술의 혐의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좀 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다.

한석현_MUST BE FRESH !_합성수지에 아크릴채색_70×50cm_2007
한석현_MUST BE FRESH !!_합성수지에 아크릴채색_460×114cm×10_2007

먼저 기호학을 거론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답의 쾌감'은 기호학 semiotics 에서 말하는 상징 symbol 작용을 시각화 한다. 여기서의 상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상징이라는 단어와는 다르다. 기호학이 말하는 상징이란, 기호 sign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체 object가 실제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을 때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태극기라는 것과 애국심이라는 것은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 그것은 마치 십자가가 '구원'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과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상이한 기호와 대상체는 굳이 관계를 만들어서 널리 유포된다. 어떻게? 그것은 사회 내에서의 관계, 학습을 통해서이다. 태극기는 애국의 상징이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한석현이 무개념을 지향하며 연관시켜 놓은 상추와 신선함이라는 연관관계는 따라서 기호학에서 이야기하는 상징작용을 시각화한 고도의 개념적 테크닉으로 읽혀진다. 한석현이 이러한 고도의 개념놀이를 계획하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은 상당히 신선한 시도이다. 예술인 척 뺀질뺀질, 질문과는 상관없는 뻔뻔한 오답을 제시하는 이 작업은, 사실 시각적 결과보다는 태도와 연관시켜볼 때 예술이, 그리고 아쉽게도 현대미술이 되는 것이다.

한석현_MUST BE FRESH !!!_비닐봉지에 오일마커_116×78cm_2006
한석현_풍경 Landscape_모델링 설치_2007

한석현이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2001년 이후의 행보는 그의 작품이 '보여 지는' 것처럼 단순하고, 또 복잡하다. 작가가 '오답의 쾌감'에게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그의 작업들은 늘 급격한 형식의 변화를 겪어 왔는데,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며 완전히 다른 시각체계를 구축하는 이런 변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것이 하나의 맥락, 일관성위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한석현은 과잉된 현대미술의 판에서 '자기반영성' 이 아닌 '자기성찰성'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희한한 작가다. 급격한 변화의 지점에서 , 반환점을 도는 그의 뒤태가 던지는 스마트한 매력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이러한 일관성은 내가, 현대미술이라는 교전 장에서 한석현이 오랫동안 살아남아 최후의 승자 중 하나가 되리라는 믿음의 중요한 논거가 된다. 결국은 묵직한 선을 끝까지 관철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단순하고 명료한 논리는 예나 지금이나 계속될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열리는 그의 개인전은 그에게 또 한번의 도약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후들후들' 후들 리는 구조를 , '빤딱빤딱' 빤딱이는 색채로 맛을 낼 수 있는 그의 센스가 상추의 주름진 구조처럼 그를 오랫동안 지탱해 줄 것이다. ■ 유병서

Vol.20071107h | 한석현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