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시간의 층 Ⅲ(Naked Time)

양혜숙 개인展   2007_1107 ▶ 2007_1115 / 월요일 휴관

양혜숙_Mustang 1_캔버스 아크릴릭 모자, 양뿔_73×6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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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107_수요일_05:00pm

후원_경기문화재단

성남아트센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757번지 Tel. 031_783_8000 www.snart.or.kr

양혜숙의 이번 전시 "존재-시간의 층 Ⅲ" 「부제:벌거벗은 시간」은 「존재?시간의 층」의 연작 전 중 세 번째 전시이다. 「존재-시간의 층」은 2004년 부천 올해의 작가상으로 시작 된다. 이는 한 주제에 대한 지속 적인 탐구로 의식의 깊이와 확장된 작업 과정을 보여 주는 일련의 연작 전시이다. 2004년「존재 -시간의 층Ⅰ」은 입체와 오브제로 인간존재와 시간성의 의미를, 2006년「존재 -시간의 층 Ⅱ」는 입체, 오브제, 설치로 시간의 움직임과 정화에 대한 탐구를, 2007년「존재 -시간의 층 Ⅲ」는 오브제, 설치, 사진, 영상으로, 관념과 물질문명 속에서 둔화 된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지적한다. 본질의 회복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시간의 헐벗음, 이에 대한 절박감을 사막에서 몸소 체득한 작가의 독창적 언어로 전달한다. 작가의 풍부한 감성과 에너지는 미술영역의 경계와 장르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그녀의 내면의 역동적 에너지는 영상과 설치, 무스탕 다이어리를 통해서 엿보게 된다. 「존재-시간의 층 Ⅲ」는 문명으로부터 격리된 하늘과 가장 가깝다는 히말라야의 땅, 해발 4000m 은둔의 사막 히말라야 무스탕 을 트래킹한 16일간의 사막횡단 기록을 재구성으로 기획하였다. 1년 여 동안 준비된 여행 및 작업 과정과 그녀의 열정이 담긴 전시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잠들어가는 인간 영혼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양혜숙_Mustang 2_캔버스 아크릴릭, 영뿔_50×50cm_2007

사막으로부터, 원초적 자기와 대면하다 ● 양혜숙의 이번 전시는 「존재-시간의 층」의 총 3부 작 중 세 번째 전시이다. 올해 5월 22일부터 6월 6일까지 하늘과 가장 가깝다는 히말라야의 땅, 은둔 의 사막 히말라야 무스탕 왕국을 트래킹한 16일간의 사막횡단 기록을 재구성하고 있다. 「존재-시간 의 층」이란 대주제와 함께 이번 전시는 「벌거벗은 시간」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영상물(무스탕 다 이어리)과 설치작품 그리고 스틸 이미지(사진)로부터 사막의 황량한 분위기가 전달되고, 옷 속을 파고 드는 모래바람이 느껴진다. 바람이 존재의 옷을, 존재의 살갗을, 존재의 시간을 벗겨내는 동안 사막은 존재를 완전히 해체시킨다. 이로써 벗겨지고 찢겨지고 해체된 나머지 정화된 나와 대면케 한다. ● 「Naked Time 1 」. 벽면에 설치된 100인치 스크린 위에 현지에서 촬영해온 영상물을 투사한 작품이다. 그 배경음악으론 나왕케촉(티벳)과 기따로(일본)의 명상음악을 삽입했다. 영상물 초입에 일종의 프롤 로그 격으로 삽입한 영상이 현지의 화장터 장면인데, 이는 무스탕 트래킹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을 다 잡기 위한 작가의 염원과 전시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죽음이 아니고서는 재생도 없고 거듭남도 없다. 자기죽음(자기죽음을 통한 거듭남), 자기부정(자기부정은 결국 자기긍정이나 절대긍정 과 통한다), 자기정화를 위한 일종의 제의와 같은 것이다.

양혜숙_Mustang 3_캔버스 아크릴릭, 실, 대나무 숯_73×60cm_2007

「Naked Time 2 」. 전시장 바닥에다 짚단을 깔고 이를 천과 철사 그리고 조명과 어우러지게 설치한 작 품이다. 이 설치물은 사막을 재현한 것으로서, 이를테면 녹슨 철사는 사막의 불모성을, 그리고 바람에 휘날리는 천은 사막의 바람을 재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배경 삼아 그 위에다 모니터 8대를 설치했 는데, 이 모니터에는 원래 총 16부로 제작한 다이어리를 8개로 나눠 재제작한 동영상이 각각 방영된다 . 참고로, 최초의 16부 다이어리는 사막횡단에 소요된 트래킹 날짜와 일치한다. 이로써 이 작품은 사막을 횡단하는 트래킹의 과정 자체를 설치와 영상물로써 재현해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작가는 캔버스와 종이 어우러진 설치 작품 「어둠을 흔드는」에서 사막을 다른 버전으로 재현 하기도 한다. 이로부터 사막의 불모(휘날리는 천으로 암시되는 사막의 바람)와 존재의 어둠이 하나로 중첩돼 보인다. ● 「Heaven's Gate」. 전시장 바닥에다 무명의 천을 깔고, 그 위에 재차 숯가루를 깐 작품이다. 그 위쪽 천장에다가는 대나무 숯과 시계 무브먼트를 얼기설기 매달아 놓는다. 여기서 숯은 재의 일종으로서 죽음과 재생을 상징한다. 숯은 이처럼 삶과 죽음을 동시에 함축함으로써 고대 연금술 에서 중요시되던 물질이며, 그 자체 이분법을 넘어서는 양가성을 지닌 물질이다. 결국 숯은 자신의 완 전한 연소(그 자체가 자기부정과도 통하는)를 통해 거듭남을 상징하게 된다. 그리고 시계 무브먼트는 작가의 작업에 있어서의 대표적인 오브제로서, 삶에의 경각심과 함께 거듭나는 계기와 그 순간을 지시 하며, 그리고 주관적인 시간개념을 암시한다. 상징적인 죽음을 통해 재생에 이르는 구도의 순간과 과 정을 일종의 천국, 니르바나, 열반의 경지에 일치시킨 것이다.

양혜숙_kali 로부터_캔버스 아크릴릭 철사, 무브먼트 천_450×150cm_2007
양혜숙_Heaven's gate_대나무 숯, 무브먼트, 철사, 숯가루, 천_300×300× 320cm_2007

「Kali로부터」. 은회색의 마티에르가 두드러져 보이는 캔버스 화면 위에 현지에서 공수해온 거친 질 감의 민속 천과 시계 무브먼트를 어우러지게 설치한 작품이다. 캔버스 위에 드리워진 천은 수의를 상 징하며, 캔버스 가운데 장착된 시계 무브먼트는 죽음을 통해 거듭나는 계기와 그 순간을 상징한다. 이 러한 상징으로써 암시되고 있는 칼리는 죽음의 신, 파괴의 신, 해체의 신이다. 이로써 죽음이 그저 끝 이 아닌, 재생을 위한 계기임을 주지시키고, 삶과 죽음이 하나의 고리로 순환되고 있음을 주지시킨다. ●「어둠을 흔드는」. 격자로 구조화된 나무 틀 사이사이에 현지에서 공수해온 종을 매달아 놓은 작 품이다. 현지에서 말의 목에 달렸던 종이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새벽을 깨우는, 어둠을 깨우는, 미몽 의 자기를 깨우는 일종의 내면의 소리, 우주의 공명을 상징한다. ●「비운 숲」. 재현된 대나무 숲의 한가운데에 빈 나무 의자를 설치한 작품이다. 여기서 대나무 숲은 일종의 원초적 자연이거나 존재의 자족적인 상태를 암시하며, 이로써 그 처음 상태로의 회복을, 그 회귀를 제안하고 있다. 또한 대나무 는 그 마디들로 인해 같으면서도 다른 일상(삶)을 암시하고, 그 비어있음으로 인해 삶의 속성이 결국 에는 빈 것(공과 허와 무)에 지나지 않음을 주지시킨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즉 있는 것을 있다하고 없 는 것을 없다하는 것은 전적으로 마음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나무 숲 속의 의자가 비록 비어 있지만, 이러한 마음의 현상에 따라서 존재를 갖게 되는 것(내가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의자에 앉은 나는 완전한 침묵 속에서 마음을 비운다. 그리고 죽음과 재생,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 존재와 부재가 단지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깨닫고, 다만 감각이 이를 다르게 지각하고 인식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 작품은 그러니까 이러한 깨달음을 위한 계기이거나 자기반성적인 계기 혹은 존재가 부정되고 해체되고 무화된 나머지 투명해지는 계기로써의 침묵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양혜숙_어둠을 흔드는_캔버스 아크릴릭 종, 나무 틀, 철사, 천_210×170×60cm_2007
양혜숙_truth to nature_캔버스 아크릴릭, 락카, 대나무 숯, 종, 철사_150× 50cm_2007

독일의 개념주의 예술가 요셉 보이스는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는데 있어서 의사가 필요하듯이 정신의 질병을 치유하는데도 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의사란 다름 아닌 예술가라면서, 자신을 공 공연하게 무당에다가 비유했다. 사실 무당이란 모든 이질적인 것들의 경계를 넘나들고 통합하는 존재 이다. 삶과 죽음, 신과 인간, 현세와 내세의 경계를 넘나드는가 하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의 성분과 요소를 통합한다. 이분법적인 경계를 넘어 존재의 양가성을 회 복하고, 존재를 지식이나 논리로 개념화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존재의 원초적 상태, 처음 상태를 회복시킨다. ● 양혜숙의 작업 또한 무당의 이러한 기획이나 생리와의 연관성 속에 있다. 작가는 존재의 원초적 상태가 고스란히 간직된, 마지막 남은 오지를 찾아서 문명인이 상실한 것들, 잃 어버린 것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되불러온다. 그러나 이처럼 현대인이 결여하고 있는 것을 채워주 는 계기는 다름 아닌 모든 존재를 무화시킬 것만 같은 사막의 불모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에 아이러니 가 있다. 따라서 양혜숙의 작업은 문명과 제도와 사회로부터 비롯된 것들 즉 관습과 도덕과 지식으로 무장한 갑옷을 벗어던지고, 발가벗겨진 나, 찢겨지고 해체된 나와 대면할 것을 요구한다. 사막의 바람 속에서 나라고 일컬어지던 존재감이 철저하게 박탈된 나머지 마침내 아무 것도 아닌 나와 대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정화되고 거듭나고 재생될 수 있는 것이다. ■ 고충환

Vol.20071107d | 양혜숙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