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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26_금요일_05:00pm
샘터갤러리기획
관람시간 / 11:00am~08:00pm
샘터갤러리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15번지 샘터사옥 Tel. 02_3675_3737 www.isamtoh.com
언제부턴가 저는 숲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숲! 저와 숲은 참 더할 나위 없는 친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 사내로 태어날 때부터 나이 마흔 중간의 지금 이때까지 숲은 늘 제 곁에 있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저의 어린 시절은 언제나 아슴한 연두물빛으로 아른거리고, 청년시절은 벗처럼 찾아오는 솔바람소리의 여운으로 아련합니다. 되돌아 과거를 바라보면 정말, 숲은 제 삶의 갈피갈피에 정갈한 빗질자국을 한없는 물결로 남겨 놓은 듯합니다. 근거없는 외로움, 적막이 산처럼 쌓이면 자기의 속살을 열어 산벚꽃 연분홍 빛깔로 어루만져 주었고 질그릇처럼 아슬아슬, 뜨거운 가슴을 주체못할 때는 웅숭깊은 숲 그늘의 어스름에 저를 풀어 보듬어 주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아직도 저는 세상의 헝클어진 집착에 갈팡질팡하며 숲 주변을 기웃기웃 한답니다. 그만큼 숲은 제게 지친 마음을 기대는, 육친과도 같은 존재이지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숲의 이미지는 사부자기 제 마음 속에 연두, 초록, 파랑의 색채로 각인돼 있습니다. 최근 제가 가장 많이 쓰는 색들인데 계절로 치면 그야말로 봄이지요. 그래서 왠지 숲 하면 '참으로 고요하고 깨끗한 것',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으며 무엇 하나 거슬리는 것이 하나 없는 것'이 연상됩니다. 현대의 물질문명에 부득불 수반되는 어떤 극악스러움 때문에 숲은 보통 사람들의 몸속에 심지처럼 존재하는 피로를 자근자근 다독거려주는 피안이 되는 것인가 봐요. 언젠가 라디오에서 "우리말에서 가장 아름다운 낱말은 바로 ?숲?이 아닐까 해요." 라는 멘트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정말 맞다!' 하며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습니다. 그때 라디오방송의 여성 진행자는 "숲은 종국에 인류를 구하는 구원이 되지 않을까요?" 했지만 저는 그렇게 거창한 말은 삼가겠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군요. "제가 숲을 자꾸 그리는 것은 착하게 살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라고... 착하게 산다는 것! 삶에서 정말 그렇게 중요한 것도 없잖아요.
관념산수 ! '지루함', '고리타분함', '낡음', '답답함'... 흔히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 미술인들의 뇌리에 새겨진 관념산수의 풀이말들. 잘 닫히지 않는 서랍을 앞에 놓고 볼 때의 심정이랄까. 절대로 본받아서는 안 되며 제일 먼저 타파해야 할 한국화 형식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된 이 관념 산수. 그러나 나는 그 관념 산수를 눈여겨본다. 정말로 그 관념 산수는 지금의 이 시대 한국미술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까. 얼마나 오랜 시간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미술양식인데..., 그 시간의 집적이 얼마인데 우리는 하루아침에 똥친 작대기 마냥 멀리 내치려고만 하는 걸까. 물론 내가 봐도 관념산수 안에는 지금은 쓸모없어진, 버려야 할 요소가 많다. 그러나 내 눈에는 아직 캐내지 않은 구석, 좀 더 발전시켜도 될 고갱이가 많다고 본다. 내 나름껏 옥석을 구분하고 내 식대로 관념산수를 풀어내고 하다 보면 의외로 그림 밑천이 많은 장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관념 산수에서 난 오늘도 새로움을 찾아 나선다. 무엇이나 초고속으로 치닫는 이 시대에 관념 산수만이 갖고 있는 아늑하고 고요한 기운을 화면에 풀어놓고 싶다. 그리고 내 마음 저 깊은 곳에 있는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이미지를 거기에 덧보태고 싶다. 이러한 깨끗한 자신만의 오지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담긴 이상향일 수도 있지 않을까. 진짜 난 장 보러가는 아낙네들이나 학교 가는 아이들마저 편안하게 보아주는 그런 들꽃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부모님은 과수원을 하셨다. 해마다 4월 말이 되면 복숭아. 자두, 배꽃이 다투어 피었다. 가풀막진 과수원은 그야말로 성관(盛觀)이었다. 꿈길 속의 풍경이 그러할까. 아늑하고 자늑자늑한 기운에 정신이 몽롱해지곤 했다. 저녁 어스름이 부모님댁의 윤곽선을 수묵화처럼 지운 지도 꽤나 지났다. 먹빛 어둠이 과수원 구석구석에 흥건히 고여 있다. 산모롱이에 노오란 달도 비껴 떴다. 수줍은 달빛이 안개에 휩싸인 지상의 연초록 나뭇잎과 분홍빛 꽃잎들을 풍덩하게 감싸고 돈다. 묵지근한 어두움이 일순간 생기를 되찾는다. 한겨울의 회초리 바람소리 같이 스산하고 거칠었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부모님을 뵈러 간다. 치렁치렁 밤하늘에 별자리가 널린 푸근함 때문인지, 아니면 겹쳐진 산들의 이마 어름에 청청한 달빛이 윤기를 더하며 출렁거려서일까. 스산한 회색빛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게, 따뜻하게 녹아내린다.
요즘 내 머리를 가장 짓누르는 화두이면서 내 마음을 가장 달뜨게 만드는 영역이다. 그만큼 참 어렵다. 어떤 곳이 가려운데 그곳에 손이 닿지 않을 때의 그 안타까움. 그림을 그려나가면 나갈수록 단순한 형식의 그림이 가장 어렵단 생각을 한다. 게다가 무심의 경지에서 무기교의 기교로 그려 내려간 조선 도공들의 솜씨를 본받아 표현하려니 죽을 맛이다. 정말 이쪽 전통을 되작이노라면 아득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만 할 것인가. 아무리 곱으로 생각해도 아직 난 '수양'이 덜 되었나 보다. 가슴 서늘한 그림, 무즙같이 담백한 그런 그림은 아무 때나 그려지는 게 아닌가 보다. 그림 중에서 진실된 그림이란 결코 얄팍한 머리나 손재주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절감할 뿐이다. 그것은 한 명의 화가로서 세상과 삶을 얼마만큼 솔직하게 보고 투명하게 관조하느냐 하는 데서 나오겠지. 아직도 나는 자꾸만 쥐구멍에 소를 몰아넣으려고 하는 건 아닌지! 언제가 되어야 동지섣달 따뜻한 아랫목 이불 같은, 온기를 가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저 노력에 노력을 덧보탤 일이다. ■ 이종호
Vol.20071030f | 이광택展 / LEEKWANGTAEK / 李光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