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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24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우상의 시선 앞에서 ● 채승의 사진 프레임 안에는 대도시 일상의 풍경들이 담겨 있다. 그 풍경들은 대도시의 거리 풍경이기도 하고 실내 풍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채승의 카메라가 오브제로 포착하고자 하는 풍경의 공간은 대도시의 거리와 실내가 아니다. 그건 그 거리와 실내 안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공간, 즉 디지털 미디어의 공간이다. 그곳이 거리이든 카페이든 혹은 지하철 안이든 채승의 대도시 현실 공간 안에는 휴대폰과 게임기 또는 노트북과 TV 화면의 디지털 공간이 마치 사진틀 안의 사진처럼 내부공간으로 존재 한다. 채승의 대도시 풍경이 보는 이에게 친숙함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건 프레임 안 공간이 일상 공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일상 공간 안에 들어 있는 디지털 미디어들의 친숙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채승의 사진 프레임 안에 들어 있는 대도시 일상의 풍경들이 그렇게 낯익고 친숙하기만 한 걸까? 내 경우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채승의 사진 풍경들은 모종의 낯설음과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그 낯설음과 불편함은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낯설음과 불편함이 채승의 사진적 의도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어야 하는 것일까?
채승의 사진들이 불러일으키는 낯설음과 불편함은 크게 두 가지 사실로부터 연유한다. 우선 '공간의 다중화'가 있다. 채승의 사진 풍경은 세 개의 공간 층위로 다중화 되어 있다. 사진 프레임 공간, 그 프레임 밖의 현실 공간, 그리고 프레임 안에 들어 있는 디지털 미디어 공간이 그것이다. 이 세 개의 공간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각 공간들의 소속관계들을 습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프레임 밖의 현실 공간, 그 현실 공간의 재현인 사진 공간, 그 사진 공간 안에 소속된 디지털 미디어 공간이라는 공간 재현의 위계질서가 그것이다. 하지만 채승의 공간 다중화는 그러한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현실과 가상의 위계관계를 의도적으로 반전 시킨다. 그 반전의 의도는 채승의 사진 포커스가 공간 재현 질서의 가장 하위 단위인 디지털 미디어 공간에게 다른 공간들보다 중심적 위치를 부여하는 공간 구성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그러한 공간 위계질서의 반전이 단순히 보는 이의 시선에 혼란을 일으키려는 사진적 효과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 공간 재현관계의 역설적 구성은 재현관계를 이해하는 시선의 오랜 습관, 그러니까 현실과 가상의 습관적인 이분법적 구도를 뒤집어 바라보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채승의 사진들을 낯설고 불편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시선의 다중화이다. 공간 구성이 그렇듯 채승의 사진들 안에서 시선들은 세 개의 층위로 다중화 되어 있다. 사진 프레임 안에 들어 있는 디지털 미디어의 시선, 그 미디어를 바라보는 사용자의 시선, 그리고 그 두 시선의 관계를 응시하는 사진의 시선이 그것이다. 채승의 사진 프레임 안에 들어 있는 두 시선, 그러니까 미디어의 시선과 사용자의 시선은 일견 그 응시 관계의 축이 사용자 쪽에 주어진 것처럼 여겨진다. 다시 말해서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응시하는 시선이고 디지털 미디어의 화면은 단순히 사용자의 시선을 무력하게 마주보는 텅 빈 눈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채승의 시선 다중화는 그 두 시선을 밖에서 응시하는 또 하나의 시선인 사진의 시선을 통해서 그러한 습관적 시선의 위계관계를 의도적으로 전복 시킨다. 채승의 카메라는 프레임 내부의 두 시선의 응시 관계가 전복되는 순간들, 즉 사용자가 미디어를 지배하는 순간이 아니라 미디어가 사용자를 장악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렇게 포착 된 순간들, 사용자가 미디어의 화면에 몰입하고 사로잡힌 순간들 속에서 사용자의 시선과 디지털 미디어의 시선은 그 힘의 관계가 반전된다. 채승의 사진들 안에서 시선을 지배하고 있는 건 디지털 미디어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사용자의 시선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사진 공간의 한 가운데에서 사용자를 묵묵히 응시하며 사로잡고 있는 이 시대 우상의 시선, 즉 디지털 미디어의 화면 공간 자체이다. 시선의 권력 관계가 반전되는 순간 포착을 통해서 채승의 사진들이 깨닫게 만드는 건 디지털 미디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시대의 우상과 그 우상에 대한 맹목적 숭배 속에서 무력하게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들이다.
채승의 사진들은 공간의 다중화와 시선의 다중화를 통해서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불편함은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헤겔이 일찍이 간파했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기억하게 만든다. 주인이 자신의 현실을 늘 성찰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이에 노예에게 주인의 자리를 양도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헤겔의 변증법적 경고로부터 과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채승의 사진들이 불러일으키는 시선의 불편함은 디지털 미디어의 우상 숭배 시대 앞에서 우리 모두가 망각해 버린 그 경고의 소리 때문인지 모른다. ■ 김진영
Vol.20071028g | 채승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