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빛―숲길

박정훈 사진展   2007_1018 ▶ 2007_1031

박정훈_검은 빛- 숲길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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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18_목요일_06:00pm

갤러리 보다 전시공모 초대작가전

갤러리 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61-1번지 한라기산빌딩 2층 Tel. 02_3474_0013/4 www.bodaphoto.com

이 어둠이 내게 와서 밝음으론 밝음으론 볼 수 없던 나의 눈을 비로소 뜨게 한다!

박정훈_검은 빛- 숲길_2007

단 하나의 빛만이 허락된 시간, 이 시간이 내일을 기약하며 서산으로 넘어갈 즈음 우리는 어스름의 통로를 지나 '어떤' 세계로 들어선다. 밤이라 불리는 이 기운/이 시간/이 세계에선, 모든 사물을 드러내기 위한 빛이 아닌 이들을 감추기 위한 수많은 빛들이 명멸한다. 이 빛들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빛나고 있는 게 아니다. 밤과 혼융된 이 빛들은 오히려 사물을 감춰버리기 위해, 때로는 그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존재한다. 예리한 듯 보였던 사물의 윤곽선은 새로운 에스키스를 위해 조금씩 지워진다. 외따로 있던 것들에 다른 존재들이 덧입혀진다. 근경은 원경이 되어 저 멀리 사라지자마자 어느새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허와 실이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른다. 어둠에 잠식된 명료함의 자리에 알 수 없는 기운이 어느새 가부좌 겯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묘함이 들고 나는 곳, 어둠.

박정훈_검은 빛- 숲길_2007
박정훈_검은 빛- 숲길_2007

하지만 우리는 어둠을 단지 밝음의 반대말로 정의할 수 없다. 카오스의 두 자녀인 에레보스(Erebos: 암흑)와 닉스(Nyx: 밤) 사이에서 아이테르(Aither: 밝음)와 헤메라(Himrea: 낮)가 나왔듯이, 어둠은 밝음의 근거이자 밝음을 안고 있는 빛이다. 검은 빛, 숨은 빛, 숲의 빛이다. 깊고 두터워야 비로소 발하는 빛, 봉인된 자신의 몸을 서서히 펼치는 주름진 빛이다. 밝음의 빛이 우리에게 허용된 단 하나의 경험이라면, 어둠의 빛은 무수한 세계로 열린 가능성의 문이다. 그것은 본다는 것, 인식한다는 것을 다 거쳐 온 저편에 있다. 스스로 위장하면서 자신을 형성시키는, 조형적 상징을 포기한 추상적인 선, 혹은 바소 콘티누오.

박정훈_검은 빛- 숲길_2007

어두운 것은, 검은 것은, 깊은 것과 만난다. 깊은 것은 자신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숨겨진 듯 여겨지는 까닭이다." 릴케는 말한다. "하지만 보라, 나무들은 존재하고, 우리 사는 집들은 여전히 서 있다. 우리가 다만 들며 나는 바람처럼 모든 것의 곁을 지나치기만 한다면 사물은 우리에게 침묵할 뿐이다." 깊이는 자신 앞에 우뚝 서있는 자에게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어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만큼의 깊이를 요구한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모두에게 같은 길은 아닌 이 숲길로 향한 발걸음은 이러한 요구에의 응답이다. 서로간의 부름이자 요청이다. 이는 심원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지속적인 체험이다. 체험한 것은 자신이 체험된 것과 같다. 하여 어두운 빛에 스며든 자, 스스로 그 빛이 되어간다. "눈을 뜨지 않고 눈을 고요히 감고 있는 빛, 빛을 넘어 빛에 닿은 단 하나의 빛." ■ 박정훈

Vol.20071027f | 박정훈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