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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18_목요일_06:00pm
갤러리 보다 전시공모 초대작가전
갤러리 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61-1번지 한라기산빌딩 2층 Tel. 02_3474_0013/4 www.bodaphoto.com
이 어둠이 내게 와서 밝음으론 밝음으론 볼 수 없던 나의 눈을 비로소 뜨게 한다!
단 하나의 빛만이 허락된 시간, 이 시간이 내일을 기약하며 서산으로 넘어갈 즈음 우리는 어스름의 통로를 지나 '어떤' 세계로 들어선다. 밤이라 불리는 이 기운/이 시간/이 세계에선, 모든 사물을 드러내기 위한 빛이 아닌 이들을 감추기 위한 수많은 빛들이 명멸한다. 이 빛들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빛나고 있는 게 아니다. 밤과 혼융된 이 빛들은 오히려 사물을 감춰버리기 위해, 때로는 그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존재한다. 예리한 듯 보였던 사물의 윤곽선은 새로운 에스키스를 위해 조금씩 지워진다. 외따로 있던 것들에 다른 존재들이 덧입혀진다. 근경은 원경이 되어 저 멀리 사라지자마자 어느새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허와 실이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른다. 어둠에 잠식된 명료함의 자리에 알 수 없는 기운이 어느새 가부좌 겯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묘함이 들고 나는 곳, 어둠.
하지만 우리는 어둠을 단지 밝음의 반대말로 정의할 수 없다. 카오스의 두 자녀인 에레보스(Erebos: 암흑)와 닉스(Nyx: 밤) 사이에서 아이테르(Aither: 밝음)와 헤메라(Himrea: 낮)가 나왔듯이, 어둠은 밝음의 근거이자 밝음을 안고 있는 빛이다. 검은 빛, 숨은 빛, 숲의 빛이다. 깊고 두터워야 비로소 발하는 빛, 봉인된 자신의 몸을 서서히 펼치는 주름진 빛이다. 밝음의 빛이 우리에게 허용된 단 하나의 경험이라면, 어둠의 빛은 무수한 세계로 열린 가능성의 문이다. 그것은 본다는 것, 인식한다는 것을 다 거쳐 온 저편에 있다. 스스로 위장하면서 자신을 형성시키는, 조형적 상징을 포기한 추상적인 선, 혹은 바소 콘티누오.
어두운 것은, 검은 것은, 깊은 것과 만난다. 깊은 것은 자신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숨겨진 듯 여겨지는 까닭이다." 릴케는 말한다. "하지만 보라, 나무들은 존재하고, 우리 사는 집들은 여전히 서 있다. 우리가 다만 들며 나는 바람처럼 모든 것의 곁을 지나치기만 한다면 사물은 우리에게 침묵할 뿐이다." 깊이는 자신 앞에 우뚝 서있는 자에게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어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만큼의 깊이를 요구한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모두에게 같은 길은 아닌 이 숲길로 향한 발걸음은 이러한 요구에의 응답이다. 서로간의 부름이자 요청이다. 이는 심원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지속적인 체험이다. 체험한 것은 자신이 체험된 것과 같다. 하여 어두운 빛에 스며든 자, 스스로 그 빛이 되어간다. "눈을 뜨지 않고 눈을 고요히 감고 있는 빛, 빛을 넘어 빛에 닿은 단 하나의 빛." ■ 박정훈
Vol.20071027f | 박정훈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