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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24_수요일_06:00pm
인사아트센터 6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gallery.com
이성적인 시각과 감성적인 수묵의 조화 ● 비록 수묵이 동양회화의 전통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재료이자 표현 방식이라 할지라도 오늘에 있어서 역시 그러한가는 다분히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는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심미관, 감상관의 요구에 수묵이 부합하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수묵이 이미 오랜 역사적 발전 과정을 통하여 충분한 조형적 경험을 축적한 것으로 이미 하나의 완성된 형식으로 자리하고 있기에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그렇듯 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있기에 더욱 풍부한 재해석, 재발견의 여지가 있는 것이라 강변하기도 한다. 수묵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논란 속에서도 수많은 작가들이 여전히 수묵을 표현의 기저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 회화의 학습 역시 수묵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는 것을 보면 수묵의 생명력은 참으로 유장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 이창희 역시 수묵을 작업의 기저로 삼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작업의 양태를 통해 미루어 볼 때 작가는 수묵이 여전히 유효한 표현 수단이며, 이의 재해석을 통해 부단히 수묵의 새로운 표정을 모색하는 경우라 할 것이다. 전통적인 수묵 조형은 중봉을 원칙으로 한 선의 표현이라 한다면, 그의 수묵은 모필 고유의 유려하고 깊이 있는 선들을 짧고 둔탁한 묵점(墨點)들로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묵점들의 축적은 면을 형성하고 형상을 구축한다. 마치 점묘를 연상시키는 듯 한 그의 표현 방식은 분명 수묵이 지니고 있는 전형적인 표정과 양태와는 구분되는 것이다. 그가 굳이 이러한 형식과 내용을 취하게 된 것은 앞서 지적과 같이 고전적인 수묵 표현이 필연적으로 당면하게 될 전통과 현대에 대한 문제를 나름대로의 진단을 거쳐 얻어진 결과를 바탕으로 그 대안을 모색하고 추구한 결과일 것이다.
작가 이창희의 작업들은 실경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전의 도시 풍경들의 묘사와 표현에서 보여 주었던 작가의 독특한 시각과 조형 방식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예의 묵점들을 잇대어 집적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하여 원근을 구분하고 형상을 드러내었던 당시의 작업들은 일단 산수라는 전형적인 조형의 틀에서 벗어나 도시를 또 하나의 자연으로 인식하고, 이에 부합하는 수묵의 새로운 표현 방식을 모색하였던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실경 작업들이 대상이 지니고 있는 객관적인 상황을 근간으로 하여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을 표출하고자 하는 것이라 한다면, 작가의 도시 풍경들에서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수묵의 깊이와 감성적인 운용이었다라고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는 도시라는 새로운 대상에 대한 시각을 단순히 그것이 지니고 있는 형식적 전형을 재현하는데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물들의 표현을 통하여 여하히 수묵의 새로운 표정을 발현할 것인가에 대해 주목한 것이다. 현재 작가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짧고 둔탁한 묵점들의 집적은 바로 이러한 과정과 실험을 통해 획득되어진 것인 셈이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작가가 새롭게 수용한 대상은 바로 자연 풍경이다. 특히 바다, 혹은 하늘이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특징적인 자연 풍광들을 예의 독특한 필치로 포착하고 표현해 낸 것이다. 홍도, 혹은 채석강 등의 기경(奇景)들을 두루 답사한 그의 시각은 여전히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것이다. 여백으로 설정된 하늘이나 바다의 공간 역시 소극적인 여백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설정된 공간으로 화면에 적극적인 작용을 한다. 예전에 수묵 표현이 묵점들의 집적을 통해 이루어지는 점진적이고 층차적인 것이었다면, 새로운 작업들은 중봉이 아닌 편필(偏筆)의 운용이 두드러진다. 중봉이 준(?)으로 대표되는 선의 표현이라면, 편필의 구사는 찰(擦)에 의한 면의 구축이 특징이다. 작가는 반복적인 찰의 방법을 통하여 수묵을 집적하고, 이를 통하여 풍부하고 다양한 수묵의 새로운 표정들을 발굴해 내고 있다. 짙고 강한 수묵의 집적은 양감을 형성할 뿐 아니라 음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명암을 표현해 내고 있다. 수묵 자체에서 일어나는 농담의 대비와 여백과의 병치를 통해 발현되는 이러한 수묵의 심미는 이전의 교조적인 수묵화론에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관찰과 표현을 전제로 수묵 고유의 심미를 수용해 낸 것이라 할 것이다.
사실 수묵 자체는 그 시발을 비가시적이고 비정형적인 것에 두고 있다. 즉 일종의 관념과 사상에 의해 설정된 조형 방식인 셈이다. 이는 전적으로 작가의 주관에 의한 사물, 혹은 상황의 인식과 표현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객관적인 묘사와 표현과는 필연적으로 충돌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가 추구하는 객관과 주관의 조화는 서로 상이한 심미체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치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를 한 화면 안에 수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모순과 충돌의 상황을 의도적으로 경영하고 있다 할 것이다. 사실(寫實)과 사의(寫)意, 객관과 주관, 상징과 표현 등으로 대변되는 이러한 가치의 병열과 융합은 바로 작가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새로운 수묵 표현의 접점인 셈이다. 이러한 민감한 내용들을 다루는 작가의 필촉들은 대단히 예민하고 섬세한 것이다. 대상에 대한 관찰과 표현에서 드러나는 합리적인 시각과 이를 수묵이라는 전통적인 조형 방식으로 수렴해 내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수묵에 대한 이해는 이미 일정한 단계와 수준을 확보한 것임이 여실하다. 이는 작가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심미 단계를 담보해 줄 수 있는 유력한 내용들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작가의 실험을 통해서 전통의 묵은 관념을 뒤집어쓰고 있는 수묵의 새로운 표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하는 것 역시 이러한 전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조형 방식은 단순히 상충하는 두 가지 조형 체계의 물리적인 합병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의 사색과 사유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내용들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는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김상철
Vol.20071026g | 이창희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