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BO

백재중_오승철_이승준展   2007_1003 ▶ 2007_1111

초대일시_2007_1020_토요일_06:00pm 오렌지 주스와 땅콩 파티

관람시간 / 09:00am~12:00am

제너럴닥터 서울 마포구 서교동 Tel. 02_322_5961

청춘의 덫 ● 튀기가 강남역 뉴욕제과에서 팥빙수를 먹으며 활짝 웃네. ● 『LIMBO : 청춘의 덫』전은 여러모로 애매하고 어수룩한 전시다. 공간, 작가, 작품, 관람자 등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는 점 자체가 그렇다. 하지만 이것을 애써 포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지금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 필요한 것은 이 어수룩함과 불분명함을 분명히 정리하고자 하는 객기 충만한 첫 시도이다. 참여 작가들은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음악 등 다방면에서 마음껏 놀고 있는 중이었고, 홍대앞 '제너럴닥터'라는 전시 공간은 '동네병원'이자 카페인 공간에다, 이곳을 찾는 환자도, 손님도 모두 제각각, 엄밀하게 공공영역도 아니고, 전시영역도 아닌 곳에서 '순종사생아'들의 미술전시라니. 그러고 보니 우리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이곳이 천국과 지옥, 연옥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곳인 'LIMBO'다. 우리는 윗세대의 누군가에 의해 '발명된 개념'안에서 그것을 분해하고 재조립만 할 줄 아는 수동적인 존재다. 멋진 척은 필요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고, 그것을 자인할 수밖에 없는 '청춘의 덫에 걸려있다.

제너럴닥터_2007

"서울에 딴스홀을 (그만 좀) 허하라!" ● 홍대앞은 더 이상 생산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배설과 소비만을 반복하는 공중화장실과 같은 곳이다. 어디든 그렇지 않은 곳이 있으랴. 그렇지만 '창조성과 실험성'으로 대변되던 홍대앞의 공간정체성이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가는 모습은 찝찝하기 그지없다. 그 거리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포주' 노릇을 하는 이들의 횡포. 그렇게 뭉친 패거리는 문화운동이랍시고 카페 오픈을 부추기는 책이나 출판하고 있다. 부동산은 홍대 부근의 건물(가건물조차)을 카페와 옷가게로 둔갑시키기에 급급하고, 그렇게 매일 새로 태어나는 카페에서는 너도나도 고급스럽고 개성 있는 공간을 표방하지만, 그 안의 현실은 지저분하다. 카페 주인들은 대부분이 엉터리 월세 때문에 빚에 찌들어 있고, 그곳을 찾는 손님들은 그곳을 일회적인 공중화장실로 여길 뿐, 그곳에서 '카페 문화(사회)'가 탄생하는 데 대해서는 무관심할 따름이다. 자본이 만들어내는 권력은 폭력을 낳고, 이것들이 똘똘 뭉쳐 '살롱문화'니 '카페 사회' 같은 개념은 우리가 은연중 사용하는 '구차하고 애달프며 한물 간 순수함'이 되었다. 가건물에 거주하던 노인들이 쫓겨나는 판에, 젊은 작가들이라고 다를까. 홍대 부근에 작업실을 운영하던 그들은 대부분 쇳가루와 소음, 사창가 언니들의 꼬임이 난무하는 문래동 철공소 거리로 떠났다(사실 이런 점은 홍대앞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미술계는 젊은 작가로 대성황이다. 레지던시, 전속작가, 공모전 등 뭐가 많단다. 껄걸. 카페에서의 전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아예 '갤러리카페'를 지향하는 곳도 많다. 카페는 우후죽순 생겨나고 홍대앞이라는 공간의 '옛 특성'을 고려했을 때, 카페가 미술 전시의 대안공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어쩌면 순차적인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전시공간의 탈영역화'라는 뻔한 말을 쓸 것도 없이, 배고프고 '돈 없고 빽 없는' 청춘들의 객기를 불특정 소수에게 보여줄 공간이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행위에 대한 가치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순전히 이 전시가 그들만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여기 자본과 권력의 태클이 또 있다. 카페가 '살롱문화'를 답습하는 수준도 바라지 않는다. 카페는 개인을 존중하는 공간도 아니고, 자립적인 공공을 위한 곳도 아니며, 성역화 된 갤러리는 더욱이 아니다. 주지할 것은 주말마다 홍대입구역 5번 출구를 통해 빠져나온 이들은 너도나도 배설의 쾌감을 위해 온 것일 뿐, 창조적이고 독립적인 컨텐츠를 즐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누가 누구를 '선도'할까. 똥 싸러 온 건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알려야 할 것 아닌가. "입흔 똥도 있어효." 현대미술은 '스키마(Schema)'가 아닌, '라포(Rapport)'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 장소는 이도 저도 아닌 'LIMBO'인 카페가 적당하다. 예술작품이 물리적 공간 안으로 침투하는 순간, 그 공간의 성질은 달라진다. 하지만 전시를 위해 특화되어 있는 공간이 아닌 곳에서 그 공간의 고유한 성질을 무시하고 전시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폭력이자 사기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카페는 차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는 곳, 혼자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곳이다. 더군다나 제너럴닥터는 병원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미술전시랍시고 진료를 받으러 오고, 친구와의 아기자기한 시간, 여유로운 개인 시간과 이를 향유하는 공간을 망치치고 싶지 않다. 카페에 전시 공간, 이에 더해진 병원. 어느 하나 간과할 부분이 없다. 미술에 대한 관심(정확히는 작품의 가격표, 숫자 '0'의 개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그것을 느끼고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 전에 예술작품이라는 것은 뭘 말하는 걸까. 미술사적 담론을 생산하는 전시도 물론 중요하다. 사회현상을 되짚어보는 전시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가까이 갈 수가 없는 걸?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선에서 보다 많은 이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새로 죽는다면 지옥으로 갈래효 ● 『LIMBO』전의 참여 작가 백재중, 오승철, 이승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에 재학 중이다. 이들을 간추려 설명하자면 매일 재밌는 것을 찾아다니고, 그것을 남에게 알려주는 행위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얘기이다. 그렇다고 지리멸렬하고 자위적인 자기고백의 장은 아니다. "내가 믿어왔던 대상 및 현상은 가짜"였고, 따라서 "지금의 나는 엉터리"임을 시인한다. 이들은 '동시대'를 운운하고 '한국적인 것' '작가 고유의' 등을 떠들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그들의 관심을 끈 것은 누군가의 농간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홀려 맹목적으로 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새 이도저도 아닌 모습으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번 죽기로 했다. 그리고 심판 전에 'LIMBO'에 남아있기로 했다. 그런데 천국은 어디고, 지옥은 어디일까? 90년대 초부터 한국의 만화, 애니메이션계에는 지금의 미술시장과 같은 거품이 생겨났다. 자동차 수출량을 운운하며 자금이 몰리기 시작했고, 전국팔도강산 대학에 만화와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가 생겨났다. 그런데 사기를 당했다. 가해자는 무능한 대학교수와 기타 떨거지. 그 많던 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누군가는 "그래도 아직 한국의 만화계, 애니메이션계는 순수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아주 씨가 말라서 자금이 흐르지 않고, 따라서 질투와 음해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순수함이라니 그냥, 마냥, 아주 슬픈 일이다. 어쨌든 이들은 이 과정을 똑똑히 지켜봤다. 미술계(시장)의 호황으로 그곳에 불법체류를 할 작정이라면, 이 전시는 심판을 기다리는 순수한 어린영혼의 'LIMBO'가 아니라 지옥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 정도 바보는 아니다. 그냥 누구나 걸려 흐느끼는 '청춘의 덫'에 걸린 것이다. ■ 이정헌

백재중_우주마왕_종이에 볼펜_165×83cm_2007
백재중_우주마왕의 집게팔, 우주왕의 드릴팔_혼합재료_103×33×33cm_2007

백재중 ● '우주왕'과 '우주마왕'은 백재중이 창조한 캐릭터다. 이 캐릭터들은 백재중 자신에 대한 오마주라고 봐야겠다. 그는 드로잉으로 캐릭터들의 전체 모습을 그리고, 이 캐릭터들이 사용하는 주무기인 '드릴팔'과 '집게팔'을 '존재하지 않는 실물' 크기에 맞춰 직접 제작했다. '드릴팔'과 '집게팔'을 제작할 당시 그는 큰 절망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여름날 폴리 가루를 분유가루 먹듯 먹어치운 시간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 그때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 있으니, "아~ 새로 태어난 것 같아." 그는 얼마나 기뻐했던고.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대로 실현해야 된다.'는 가장 단순하지만, 어려운 목적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었다. 97년도부터 시작된 그의 드로잉 기법은 그에게 이로운 것을 많이 안겨줌과 동시에, 앗아가는 것도 많았다. '이것이 과연 내 것이 맞는가, 이건 어디서 왔으며, 다른 것은 없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는 지극히 평면적이고 디테일이란 것이 없어 보이는 그의 드로잉으로 탄생된 캐릭터의 무기를 만들었다. 착용 가능한 실재로. 일본 만화, 『가면라이더』 등의 특수촬영물, 장난감에 빠져 지냈던 백재중은 너무나 솔직하다. 누군가 '쪽팔리다'며 버려버린 순수함이 그에겐 남아있다. 자신의 모습을 애써 피하려 하지도 않고, 누구처럼 멋진 척 꾸미지도 않는다. 파아랗고 노오란 큰 덩어리의 몸통, 드릴과 집게의 엉터리 구조, 울퉁불퉁한 면과 흠집, 그것과 요상하게 어울리는 조종 장치. 솔직하지 못한 자기 확신에 가득 찬 누군가는 각성하라.

오승철_rock city_혼합재료_110×85cm_2007

오승철 ● 오승철은 7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던 'LSI(고밀도집적회로) 미니게임기의 화면 이미지를 차용해 개인사를 되짚어 본다. 더 정확히는 LSI 게임기의 '리셋'화면을 표현한 것이다. 그가 게임에 빠져 지내던 80년대 후반, 당시 게임들은 꽤나 암울한 스토리를 담고 있었다. 혹성에 불시착한 우주선의 연료를 얻기 위해 외계인과 싸우거나, 유령의 집의 유령을 혼자서 이유도 없이 대뜸 쳐들어가 무찔러야 하는 스토리 등, 픽셀을 거쳐 매끈한 랜더링과 유려한 텍스쳐로 무장하고, 광활한 맵에서 부드러운 애니메이션으로 무리를 지어 다니며 더욱 사실적인 살인을 체험하게 하는 현대의 게임과는 상당히 틀리다. 최근 미디어아트의 한쪽 귀퉁이에 서 있는 게임은 '인터랙티브'와 '가상현실'이라는 심심한 주제를 다루기엔 더 없이 적합하다. 그런데 이에 사용되는 게임은 LSI게임과는 그 맥락이 다르다. 이미지의 출력방식인 픽셀과 LED가 다르듯, '인터랙티브'와 개인사 사이에는 아직 16차원이 존재한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케빈은 12살' '대마초' '록앤롤' 한때 그를 구획 지었던 것들이다. 주인공은 데스메탈을 무찌르고 록시티의 평화를 되찾지만 호랑이로 변해버리고, 시골쥐는 케빈네 가족들의 험담과 발길질에서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왜? 모르겠다. 이것들 정체가 뭐지? 나는 왜 이걸 좋아했지? 한창 재밌게 했던 아카데미사의 게임 '고스트하우스'는 일본 거였다지. '아카데미'가 날 속였나? 원망할 대상도 없고, 원망할 필요도 없다. 엉터리가 진짜를 만들었으므로.

이승준_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2×72cm_2007

이승준 ● '개인의 신화'는 이미 유행어가 되었다. 그 와중에 이승준은 당당히 자위행위 중이다. 회화가 좋아서 애니메이션을 버리려는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내가 표현하려는 것이 과연 모두 맞는 건지, "나는 나의 작품을 마음대로 대해도 되는가."라는 오류의 시발점이 어디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문제를 처음부터 집어 들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 오지에서의 군 생활은 참담했다. 갇혀있다는 강박관념을 풀 곳이 없었다. '군견병'이었던 그는 공군참모총장배 적군전투기식별대회에서 1등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드로잉북에 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의 드로잉은 할 말이 많다. 그런데 과연 누구에게, 무슨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답답한 그의 심정은 제대를 하고도 계속됐다. 이 점은 캔버스에 옮겨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체를 그리다가 걸레를 그리기도 하고, 스테이플러를 캔버스에 한가득 박아놓다가, 문구를 써놓기도 하고, 종이테이프를 붙였다가 공업용알콜을 쏟아 부어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한 가지 일관된 점이라면 그의 드로잉북이 그의 작품의 모티브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자위행위를 하자. 지저분한 나의 작품의 짝꿍은 혼란스런 드로잉북 뿐이구나. 자위행위가 제격이다. 그래서 그는 가로세로 1센티미터에 불과한 드로잉북의 이미지를 커다란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은 정확하게, 어떤 부분은 변형하고, 어떤 부분은 생략한다. 이 차이 안에 지금의 그가 있다. 재료와의 숙명은 아직 잘 모르겠고, 드로잉북과 캔버스 사이의 뭣도 잘 모르겠지만, 아직 드로잉북은 쌓여있다.

Vol.20071025e | LIMBO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