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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24_수요일_05:00pm
공화랑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번지 Tel. 02_735_9938 gonggallery.com
춤과 사진이 만나는 곳은 어디일까 ● 김영수의 인물사진은 그다운 특성을 항상 가지고 있다. 우선 대상을 완전하게 시각적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의지가 두드러져 보인다. 작가는 대상에 몰래 다가가거나 훔쳐 찍거나 습격하지 않는다. 사진기를 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정정당당하게 대면한다. 똑바로 마주보는 것이다. 상대가 사물이 아닌 사람 즉 인격체이기 때문에 이 대면은 한사람과 마주 있는 다른 한 사람의 만남, 결국 서로 다른 시선의 충돌이다. 사진작가의 눈과 일체인 카메라 렌즈는 피사체가 된 사람의 눈과 마주친다. 이 마주침에서 긴장이 생겨난다. 시선과 시선의 충돌은 순간적일 경우에도 전인격적인 싸움이다. 피사체와 작가는 결코 편안할 수가 없다. 이 불편함, 그리고 불안함을 억제해야만 그 대면이 유지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면은 정중하다. 몸과 몸의 대면, 아무리 자연스럽다 할지라도 어떤 의례를 따라 행해지는 한 절차다. 사진을 찍고 찍히겠다는 합의하에 정식으로 포즈를 취하게 하고 충분한 배려 끝에 사진을 찍는 순서는 스냅사진이 아닌 고전적인 초상사진 찍기의 방식이다. 초상사진의 기념비성은 이러한 절차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김영수가 이번에 보여주는 사진들은 벌써 오래전에 찍었던 그가 좋아하던 춤꾼들의 초상이다. 초상이라면 익명적인 사람의 사진이 아니라 특정한 개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지만 모두 전통적인 춤꾼이라는 사실에서 이들의 개별적인 신원은 사상(捨象)되고 모든 삶을 춤에 걸고 춤으로 평생을 살아온 전문적 예인(藝人)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일반화할 수 있는 전형(典型)들이 된다. ● 이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이들의 춤이 어떤지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 초상들 하나하나가 일종의 고유명사로 다가와 제각기 이들과 관련된 특별한 기억과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개별적으로 전혀 모른다 할지라도 이 사진들을 보는 사람들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김영수가 첫 사진집에 붙인 제목 '현존(現存)'이라는 단어는 여기에 어울리는 말이다. 춤꾼으로 살아온 삶의 역정으로 주름지고 무게를 갖게 된 뼈와 살, 손과 팔, 몸통과 다리 그리고 얼굴과 피부, 그리고 이미 그들 몸의 일부가 된 가면이나 부채, 또는 북을 포함한 육신(肉身)의 표정과 자세(姿勢)를 통해 확인되는 이들의 참된 존재, 춤꾼으로서의 한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느냐는 보는 사람에게 달린 문제다.
과연 춤과 사진이 이상적으로 만나는 곳은 어디일까. 물론 건조하게 이야기하자면 춤을 사진기로 찍으면 찍히고 사진기의 렌즈는 어떤 자세 어떤 골격 어떤 떤 피부, 어떤 얼굴 어떤 표정 위에서든 춤과 만난다. 사진작가는 각자 자기 방식대로 이러한 만남을 주선하고 이러한 만남에 개입한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사진에 다른 한편으로는 피사체에 작용한다. 그래서 춤을 찍은 많은 사진들이 생겨난다. 그 결과는 매번 다를 것이다. 같은 춤꾼, 같은 춤을 찍은 사진일지라고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아마도 가장 재미없는 사진은 무보(舞譜)를 그리듯 춤의 동작을 분해하여 설명하기 위해 연속적으로 찍은 사진들일 것이다. 순간적 움직임과 자세를 포착하고자 또는 그 짧은 순간의 변화와 경과(經過)를 애써 보여주고자 노출시간을 여러 가지로 달리하여 찍은 사진들도 많지만 감동을 주는 사진은 별로 본 기억이 없다.
김영수는 아주 다른 선택을 했다. 춤을 찍지 않고 춤꾼을 찍었다. 사람을 찍은 것이다. 춤꾼의 육신, 그 몸을 찍은 것이다. 그것도 초상사진을 위해 일부러 포즈를 취한 모습을 찍었다. 나는 그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춤은 찍을 수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춤은 사진과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춤은 춤꾼의 몸을 통해 그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 기억과 흔적이 그 몸에 축적된다. 그러나 그 몸을 찍는다고 춤을 찍을 수는 없다. 사진이 동영상(動映像)이 아니어서라는 말이 아니다. 동영상인들 춤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불가능성을 김영수는 이 사진들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최민
Vol.20071024h | 김영수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