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in- residence program

2007 오픈스페이스 배 오픈스튜디오   2007_1020_토요일_05: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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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20_토요일_05:00pm

오픈스튜디오 탐방_오후3시, 오후4시, 오후5시

박경석 개인展 / 2007_1020 ▶ 2007_1030

주최/주관_오픈스페이스 배 후원_부산광역시_한국문화예술위원회_부산미술협회_(주)욱성화학 다움건축사사무소_도서출판 비온후_대안공간 반디

오픈스페이스 배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297-1번지 Tel. 051_724_5201 www.spacebae.com

전 지구적으로 다양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앞 다투어 실행되고 있다. 국내사례만 보아도 지자체를 중심으로 많은 예산을 투자하면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대부분 하드웨어 지원정책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소프트웨어에 더 무게를 실어야만 한다. 각종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지역과 문화를 이해하고 협업을 통한 참여와 소통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작가, 비평가, 기획자 등 다양한 문화인들이 거주와 이동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함으로써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디테일을 채워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위축되어 있는 미술판의 활력과 예기치 못한 네트워킹을 도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이 레지던시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겠는가. 작가들이 직접 짓고 작가를 공모하면서부터 시작된 대안공간 오픈스페이스 배가 이제 3년째가 되었다. 한 두 명에서 단기(6개월)3명, 장기(5년)3명 전국규모로 공모를 함으로써 레지던시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꾸렸고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두었다. 가령,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공공미술 등 입주 작가들과 함께 의논하고 실행함으로써 상생의 즐거움을 나누며 지역사회와 소통하려는 조형언어를 개발했던 것이 그것이다. 2007년 10월 20일, 그간 입주작가들의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과 오픈스튜디오를 통해 함께 나누고자한다. 신명나게 한판 놀아볼 셈이다. 내년에는 또 어떤 작가들과 만나게 될지 벌써 기대가 된다. ■ 서상호

박자현_공백_종이에 펜_50호_2007

interview_박자현을 만나다 ● 오후 2시경 커피가 식어가는 작업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박자현과 마주 앉았다. 좀 더 편안한 장소에서 여유 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림보기를 좋아 하고 다른 사람의 작업실 방문을 좋아라하는 천성이 영판 그림쟁이 일 수밖에 없는 그녀가 우리 작업실에서의 인터뷰를 오히려 편안해 하는 것 같아 이곳에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 「오픈스페이스 배」에서의 레지던시(residence) 프로그램 후기에 관한 인터뷰를 하기위해 그녀를 만났지만, 주중에 따로 시간잡기가 버거웠던 내가 며칠 후 제작에 들어 갈 안창마을 벽화를 위한 현장답사 약속을 같은 날 해 버렸으므로 어쩔 수없이 그녀도 나와 몇 시간을 동행한 후였다. 특별히 남보다 체력이 튼튼해 보이지도 않는 그녀의 외관상 예상 밖의 몇 시간의 동행이 피곤 할 만도 한데, 오전 약속시간에 맞추어 정확히 동대신동 사거리 방향에서 우리 작업실로 이어지는 골목길에 모습을 드러낼 때의 그 씩씩함이 별반 사그라지지 않아 보여 내심 안도감이 생겼다. ● 사실 내가 박?자?현을 알게 된지는 일 년이 채 되지 않는다. 화면을 가득 채운 무수한 점들이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지의 먼지처럼 집중하고 흩어져 어떤 형상들을 만들어가던 그녀의 작업을 그녀의 첫 개인전이 열리던 2006년 「대안공간 반디」에서 본 것이 먼저였고, 직접 대면은 올 상반기 일광 해변가의 어느 주점에서 있었던 대안공간 네트웤의 '도어 투 도어' 뒤풀이에서였다. 이상한 것은 분명 그때 처음 대하는 얼굴이었음에도 박자현은 마치 가까운 전시장에서 수시로 만나 술과 밥을 함께 먹던 후배들 중의 하나처럼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첫 대면의 그 앳된 얼굴에서 이미, 오직 가난과 경건함으로 삶과 작업에 몰두하고자 하는 작가적 순수함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박자현_nine muse_종이에 펜_30호_2006

그녀는 자신의 작업을 '점을 찍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어쩌다가 '점을 찍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대학 3학년을 마친 2004년, 직장을 잡기위해 휴학계를 내고 서울로 올라갔다가 영화산업관련 특수 분장 팀에서 일을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틈틈이 드로잉 하던 것이 점묘법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 곳에서 맡은 일이 어떤 것이었냐고 다시 물었더니 일을 못해 3달간을 커피만 끓이다 왔다고 했다. 올 초 역시 돈을 벌기위해 서울에 올라 가 잠시 휴대폰 판매와 편의점 일을 한 적이 있는데 한창 손님이 몰려오는 바쁜 시간에 적응을 하지 못해 그냥 잘렸단다. 그렇게 돈을 못 벌어 작업비용은 어떻게 충당하고, 집안 살림은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그래서 온 식구가(엄마, 오빠, 본인) 쪼끔씩만 먹고 산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녀의 대답이 하도 솔직하고 어처구니없어 나도 따라 웃었다. ● 서울에서 내려 온 직후인 3, 4월 즈음 6개월 과정의 오픈스페이스 배 레지던시 프로그램 공모에 지원한 것이 뽑혀 5월부터 지금까지 오픈스페이스 배의 입주 작가로 지내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개인전 이후 지금까지 거의 10개월 동안 작업다운 작업을 못하다가 다시 '점'을 찍기 시작한지 1달가량 되었다고 한다. 작업의 공백 기간이 길어진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예전에는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나가면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주변으로부터 이런저런 조언도 많이 받고 더러 질타도 받다보니 스스로의 작업에 대해 고민 할 수 있는 기회는 가지게 되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더라는 것이다.

김산영_20070614_종이에 아크릴채색_120×80cm_2007

그동안 1주나 2주 만에 한 번씩 집에 갔다 오는 일 외에 기장 도서관에서 책도 빌려보고 같은 레지던시 작가인 동갑내기 김산영과 밤늦게까지 얘기도 나누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도 다니고, 올 여름에는 일광 해수욕장에서 수영도 했단다. 유성이 흘러 갈 밤하늘 일광의 그윽한 배 밭에서 배꽃처럼 싱그럽고 말간 꿈을 가진 두 젊은 여성작가가 밤늦도록 나눈 얘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해져 물어보았더니 대답은 의외로 짤막하고 명료했다. "먹고 싶은 거라든지, 남자 이야기, 그리고 작업 이야기도 쪼끔......" ● 박자현에게서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집요한 고집 외에 매우 예민하면서도, 자신의 갈등이나 여린 판단을 마치 운명에 귀속시키려는 듯 한 세상물정 모르는 어수룩한 자의식이 보인다. 어쩌면 불필요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대략적인 시간을 물어 보았다. 매우 밀도 있는 작업의 경우 하루 5시간씩 3개월이면 30호 한 점을 완성하고, 10시간씩 한 달 정도면 50호 한 점이 나온단다. 요즘은 중간 과정을 엠프러피케이션(amplification)하는 비법(?)을 발견하여 시간이 좀 더 단축된다며 예의 그 세상물정 모르는 듯 한 웃음을 보였다.

김산영_20070831_종이에 아크릴채색_70×171cm_2007

사실 박자현이 스페이스 배의 입주 작가가 되고, 나도 그녀를 알게 된 직후인 몇 개월 전 딱 한번 그녀는 김산영과 함께 서상호 선생을 따라 우리 작업실엘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도 대화도중 나는 "열심히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무슨 다과처럼 생각 날 때마다 그녀에게 건넸고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고 그저 막연하고 낮은 목소리로 그녀는 답했었다. 깊이 있고 신중한 미학적 논의보다 감성적 논리가 앞서고 자기 작업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보다 자본이 규정짓는 예술에 더 민감한 작가가 하룻밤 새 스타로 발돋움하는 작금의 미술 판에서 대책 없이 "열심히 하고 있지?"라고 묻던 내 의미 없는 물음이 그때 그녀에게 얼마나 공허하게 들렸을까. 지난 10개월간 정체된 자신의 작업에 누구보다 스스로 제일 안타까웠을 그녀를 생각하니, 마치 그녀를 통해 나를 보는듯한 안쓰러움이 먹물처럼 베어났다. ● 나에게도 거의 6년에 가까운 시골폐교에서의 작가 생활에 대한 경험이 있다. 며칠이 지나도록 사람구경도 못하고, 창밖 낮은 숲으로 잦아들던 새소리 바람소리만 객 삼아 지독한 외로움에 절어 붓을 잡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그녀에게 스페이스 배에서의 생활에 관해, 촌(村)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어떤 감성들에 관해 물어보았다. 역시나 '말'을 포장 할 줄 모르는 성정답게 어린아이처럼 투명하게 그녀가 답했다. "산영이가 특히 벌레를 싫어하는데 그 곳은 벌레들이 많아서 벌레들을 잡아내고 쫒아내고 벌레들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도 많이 하고......"

박경석_오늘하루-사람들_스틸_200×200×200cm_2007

어떨 때는 벌레를 죽일 때도 있었는데 그때가 가장 맘이 안 좋았고, 기운 해가 배 밭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저녁 무렵의 붉게 물든 하늘이 특히 좋았다고 한다. 개인전이 끝나고 자신의 작업에 대 해 주변에서 "유화에 비해 재료선택 문제나 기법 면에서 약하다"거나 "사실적인 느낌이 너무 강하게 다가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자기 자신도 그런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좀 헷갈린다고 했다. 사실 그녀의 작업에 대하여는 나도 딱히 어떤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고, 미술판 선배라 하여 굳이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해 주어야 한다는 강박감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녀의 작업을 보고 받았을 어떤 충격들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마치 한 가지 일만 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기계처럼 오랜 시간을 오로지 화폭에 점을 찍는 행위로 신체를 증명해 온 그녀의 지칠 줄 모르는 지구력과 편집광적인 집중력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박자현에게 작업의 의미는 무슨 대단한 사상과 가치관을 가가져야 만 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다. 어느 시인의 말을 인용 한 그녀의 표현대로 '시간을 견디는 방편'이다.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도 꺼 놓고 그냥 몰두하는 것이다. 스티븐 달드리(Stephen David Daldry) 감독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비록 가난하나, 자신의 꿈을 멈출 수 없었던 소년 빌리는 "춤출 때 어떤 심정이 되느냐"는 오디션 감독관의 말에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 그저 한 마리 나는 새가 된다"고 했다. 박자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좁은 공간에 갇혀 종일토록, 하얀 대지(大地)위에 찍혀 나가는 점들을 보며 영혼은 이미 새가되어 평화로운 저녁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업과정

앞으로 그녀는 그 나이 또래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을 내면적 심리를 점묘와 사진 작업을 병행하여 형상화 해 보리라 한다. 별로 한 이야기도 없었던 것 같은데 시계는 오후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일반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일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그녀보다 내 마음이 오히려 더 바빠졌다. 괜찮다며 만류하는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아주 미세한 빗방울이 바람에 섞여 떨어졌다. 우산 없어도 되겠냐는 내 물음에 이까짓 날씨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머리를 꾸벅 숙이고 그녀는 다시 올 때처럼 씩씩하게 골목길을 벗어났다. ● 예술의 집요함은 악령 같은 것이어서 어쩌면 아마, 앞으로도 수많은 날들을 그녀는 작업실에 갇혀 홀로 밤새우고, 때로는 울고, 그래도 어찌할 수 없는 생의 문제들을 고스란히 짐으로 떠 안으며 몸과 마음이 껍질만 남아 더 이상 소진 할 것들이 남아있지 않게 될 때까지 붙잡혀 놓여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작업을 완성하기까지 작가들이 겪을 수많은 불면의 밤들과 남모르는 고통들이 설사 작가 자신에게는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해도 작업의 완성도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사실, 세상 사람들의 냉엄한 시선은 작가들이 딛고 선 폐허를 보기보다 항상 그 폐허에 쌓아올린 결과만을 본다는 사실을, 순진한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일찍 깨달아주었으면 좋겠다. 오픈스페이스 배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화단의 제도적 관습과 폭력적 예술분위기를 견디며 작가로서의 자신을 지탱 해 나갈 수 있는 길이 되겠기 때문이다. ■ 심점환

Vol.20071020h | 2007 오픈스페이스 배 오픈스튜디오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