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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17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홍승혜_이수경_박관욱_이성택_조택연_김시연_스기하라 코키치
아트파크 서울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 Tel. 02_733_8500 www.iartpark.com
자꾸 어긋나려는 공간 ● 감각과 사고 사이에는 가끔 어긋남이 발생한다. 감각적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사고의 논리로는 정리가 되지 않는가 하면 사고 안에서는 분명한 가닥이 잡히는데 감각적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공간의 문제만 하여도 그렇다. 조형예술가에게 있어 공간이란 영역은 운명적인 동반자처럼 주어진 것이지만 그것이 언제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이제까지 너무도 당연했던 공간이 어느 순간 하나의 의심스런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있고 혹은 작가라는 직업에 충실하여 고의적으로 공간을 사건화 하기도 한다. 사건을 조작하려는 작가에게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필요하다. 예컨대 공간을 두 조각 이상으로 분리, 해체하여 다시 조합하거나 공간을 시간의 차원과 합체하는 방식 등이 그렇다. 홍승혜와 조택연은 공간을 시간의 축에서 해석하려는 입장을 취한다.
홍승혜의 이른바 유기적 기하학은 고전적인 기학에서처럼 공간을 시간의 절대정지 상태에서 보려는 것이 아니고 흐름을 가진 시간의 차원을 개입시킴으로써 공간 스스로가 증식하고 변형하는 프로세스를 표현하려 한다. 이를 위해 그만이 고안한 창작에 가까운 유사수학을 쓰고 있다. ● 조택연은 오랫동안 독특한 유비쿼터스 건축공간을 연구하고 있다. 대개 유비쿼터스 환경을 만들 때 시간이 정지된 공간에 센서를 촘촘히 배치하거나 그리드의 집적을 강화시키려는 방식을 취하려 하는데 이런 식으로는 기존의 전통적인 건축공간의 패러다임과 크게 달라지기가 힘들다. 대신 그는 이제까지 애써 무시되어왔던 시간이라는 팩터를 적극 개입시키려 한다. 그러면 공간 속을 다니는 아비땅(habitant)들의 동선의 흐름이 시간의 집적에 따라 그리드의 밀도에 차이를 발생케 하고 이를 기준으로 하여 공간의 좌표축을 재정립하면 시간에 의해 변형된 새로운 공간의 축이 생겨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한편 공간을 분해하여 질서를 깨뜨린 다음 재구성하는 방식도 있다.
이성택은 매스를 음과 양으로 나눈다. 원래는 닫힌 물질로서의 '매스'지만 이를 고의적으로 대칭적인 두 면으로 나누어 양화와 음화의 공간을 만들어 내다. 이렇게 생긴 새로운 공간을 합치면 닫혀진 공간이 되고 그건 원래의 매스로 환원이 된다.
이수경은 도공이 실패작이라고 여기고 부순 도자기 파편을 모아 새로운 항아리를 만든다. 당연히 파편들 사이에서 어긋남이 발생하고 원래의 도자기가 담고 있던 형태라든지 공간적인 흐름의 곡률은 심하게 왜곡된다. 불구의 그릇이 오히려 더 아름다움은 어찌된 일일까? 아마도 그건 '어긋남'에도 어떤 질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관욱의 공간은 매우 로맨틱하다. 수학적 엄격함도 그의 손을 거치면 시적인 비약의 상태로 바뀌어버린다. 그건 그에게 삶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사물과의 리드미컬한 조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미덕은 회화의 강력한 힘인 자유로움과 결합되어 모든 수학적 사건들을 감각가능과 사유가능의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 김시연의 사진작업은 연극적인 공간연출이 우선한다. 그의 화면은 매우 정적이다. 롱테이크로 가도 괜찮을 나른한 화면을 일부러 절단하여 공간적으로 중첩시킴으로서 시간의 흐름에 낯선 긴장감을 준다. 여기에 기하학적 패턴을 가진 그물 형태의 오브제를 배치하여 그 낯설음에 공간적인 질서를 부여한다. 불안과 안정이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감각이 연출된다.
스기하라 코키치는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을 주로 연구하는 공학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판화가 에셔의 작품에 나오는 눈속임 공간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이 세상 사물은 3차원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의 눈은 이를 2차원의 좌표를 가진 망막 두 개를 합성하여 3차원으로 인식하므로 이런 과정에서 착각과 어긋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어긋남의 질서를 수학적으로 정리하여 발표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중심주제는 미술의 요소에서 운명적으로 떨칠 수가 없는 '공간'에 관한 것이다. 그것도 감각과 사고의 불일치에서 필경 발생하기 마련인 '공간의 어긋남'의 진면목을 다루는 일이 된다. 사고와 논리의 지배력을 자꾸 벗어나려는 감각의 엉뚱함과 가끔은 신체에 가두어진 감각의 유한한 자유를 앞질러 가려하는 사고의 거친 비약 사이에서 가능함(possible)과 불가능함(impossible)의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겹치는 어떤 순간, 혹은 이들 사이를 왕복하는 과정에서 공간은 어떤 변형과 진화를 하는가 하는 점을 만나게 될 것이다. ■ 황인
Vol.20071020d | possible·impossibl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