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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17_수요일_06:00pm
모란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02_737_0057 www.moranmuseum.org
"별과 별 사이의 거리를 재는 행위는 시간의 단위를 영겁의 줄자로 바꾸는 의식이다."
성간측량기사는 별과 별 사이의 거리를 재는 자다. 하나의 직업이란 그 성격상 수요를 예측하고 출시를 준비하는 상품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성간측량기사는 빗나간 마케팅이거나 지극히 오랜 시간이 경과된 후에야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일종의 비매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별의 수는 얼마나 될까? 그러나 '안다'는 것의 의미는 때로 모호한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실제로 대상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기호에 불과한 이름만을 나열하면서 인식의 오만한 껍질 속에 들어앉아 알량한 지식의 부를 과시하지는 않았는가. 알지 못하는 사이 지나간 시간을 뒤로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혜안도 없이 오직 발치에 걸리는 돌부리만을 탓하며 머리위의 푸른 하늘이 품은 무한한 경이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처세일 수 있는가. 삶의 무게를 두발로 딛고 선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날개가 자유를 향하는 바람결의 구름처럼 가벼이 부유하길 원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살아간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탁한 시선과 거친 말씨들, 그리고 황폐한 영혼들의 득세와 같은 오염된 환경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탓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또한 포기가 필요한 일이다. 지나간 추억과 가슴 한구석을 후벼낸 상흔들로부터 면역을 기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단지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비겁하게 유기했던 시간들로부터 여생을 지켜내는 일이 고작일 따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살아간다는 것은 씨앗이 열매를 품듯 꿈과 욕망을 희망이라는 증류수와 섞는 술자리, 아무 승산도 없이 행운을 담보로 벌이는 카드놀이일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이 직업의 특성으로 인해 몽상에 잠길 때도 있기 마련이다. 어리 디 어린별의 나이만큼, 손안의 먼지 한 움큼이 교환된 햇수를 떠올리며, 내 일곱 척 그림자가 만들어지기까지 빛이 거슬러온 기나긴 행로를 되새겨보기 위해 성간측량기사의 과업 간간이 삶이라는 탈것을 내려 인간이 그 짧은 단막극의 주인공 되기 전의 영원한 고요를 갈아 신어야 하기 때문이다. 찻잔속의 작은 소용돌이가 우주의 거대한 성운을 닮아있듯이, 아니 거꾸로 광막한 우주의 삼라만상이 어리석은 인간의 비좁은 뇌간에서 벼락 치듯이, 무(無)에서 긁어낸 흔적들을 갈무리하여 올라선 태산마루, 내려갈 길이 가파르게 끊어진 사방 허공의 구름 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어찌 보면 거인의 싸움 끝 단잠에 떨어져 몇 겁을 보낸 뒤 오글거리는 소인족의 세상에서 깨어나 터벅거리며 내려온 전설속의 '그'와 닮아있지 않은가. 절멸된 종의 마지막 개체로 살아남아 새로운 세상의 진화-우주의 주인에겐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도돌이표-를 목도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닮아있는 것으로 자신을 남기려는 일은 어찌 보면 무척이나 애달프다. 닮은꼴이란 이목구비보다는 정서에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감정의 정보는 문화적인 코드가 아니라 사회적인 유전자들에 의해 전해진다. 그래서 홀로 자란 늑대소녀는 인간의 신화에서와는 달리 언어의 세상과 융화하거나 화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수비학(Numerology)에서는 언어가 숫자로 변신하거나 위장할 수도 있다. 아쉬운 점은 언어처럼 숫자도 역시 인간본위의 도구라는 점이다. 어차피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별들의 묶음이 닮은 것은 감정의 유전자들이 행해온 난잡한 교배의 가능한 조합들뿐이다. 당신은 당신을 꿈꾸는 나를 꿈꾼다. 그러나 별들은 꿈꾸지 않고 다만 뜬눈으로 밤새 반짝인다. 굳이 원하라면 나는 별의 밤샘을 닮고 싶다.
결국 성간측량기사가 하는 일이란 먼 미래의 꿈꾸는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아마도 그 이름들 중 대부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지난 세월의 환영들일 테지만. 누군가는 또 그 지도를 개정하고 누더기가 되도록 기워 덧댄 정보들로 망각의 무게를 덜어보려 애쓸 것이다. 지식의 견고함이란 거미의 가는 실보다 연약하고 나비의 날갯짓보다 허망하다. 역설이란 때로 휘어진 공간의 두 점이 하나로 만나듯이 그 단단한 무지를 깨뜨린다. 시간의 녹을 벗기며 그 안에 감추어진 푸른 날을 되살리는 작업은 그래서 대척점에 서있는 신생의 울음소리를 가끔씩 메아리 울리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이 비망록의 모든 장은 고단한 세월의 그물눈 사이로 빠져나간 빨간 붕어 떼처럼 소소하고 발랄한 상상력의 유희들만을 남겨두었으므로. 당신이 할애할 지불의 방식은 차 한 잔 또는 담배 한 개비의 여유. 성간측량기사에게 시간은 담소의 테이블이 아니라 무한으로의 가교이다. 문명의 이기들이 외쳐 대는 속도란 바쁜 척 하기 위한 게으름뱅이들의 시위에 불과하다. 무시해도 좋은 옵션이라는 의미이다. 이제, 당신에게 시간의 문장(紋章)들을 소개하고 싶다. ■ 서원영
"우리는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 삶이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일 뿐이다."
Vol.20071017a | 서원영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