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그리고 여기

정소영 조각展   2007_1010 ▶ 2007_1017

정소영_낯 익은 길 위 낯선 사람들, 혹은 낯선 길 위 낯 익은 사람들_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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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10_수요일_06:00pm

경인미술관 제2전시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 Tel. 02_733_4448 www.kyunginart.co.kr

생명을 키우는 덩어리 - 정소영의 형상조각에 담긴 향토성과 리얼리티 ● 정소영의 조각은 투박하다. 사전 말 그대로 그의 조각은 생김새가 볼품없이 둔하고 튼튼하다. 달리 말하면, 그의 조각들은 인체의 해부학적 전형을 따르거나 미감의 서구적 비례를 차용하지 않았으며, 육등신을 조금 넘는 한국인의 비례를 갖추지도 않았다. 그 보다 훨씬 낮은 사등신이거나 오등신이다. 반면, 몸통은 볼록해서 단지 비례로만 볼 때 그의 작품은 세련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거칠고 뭉툭하다. 이유는 형상의 덩어리에서 온다. ● 그의 조각은 덩어리다. 크게 뭉쳐서 만든 것들이란 얘기다. 몸통에 달린 손과 발, 머리가 몸의 형상성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비례의 균형을 깨뜨린 만큼 몸의 부분들은 본래적 모습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정소영 조각들의 골격이 새로이 재편되고 있다. 몸에 가까운 팔과 다리에 듬직한 손이 자라고 발은 뿌리를 내렸다. 마치 생명을 키우는 덩어리처럼 그의 조각들은 대지를 향해 자란다. 하여, 그의 조각들은 '대지적 초상'이라 할만하다.

정소영_키 큰 나무 아래를 아직은 여린 바람이 지나갔다_170×75×70cm
정소영_웅성이는 사람들 속에 서 있을지라도 유난히 큰 소리를 내는 기억이 있어서.._가변설치

조형의 향토성 ● 조각에도 지역어가 존재한다. 아프리카 조각을 비롯해 그리스, 로마, 인도, 중국을 떠 올려 보라. 고유한 형상의 개성은 시대를 달리하며 변화했지만 그 원초적 생명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국제-지역'에 상존하는 미학적 테제와 실험은 문명이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국가-지역'의 동일미학 추구는 20세기 내내 세세한 '지역어'로서의 향토성을 끊임없이 '중앙'논리에 빗대어 상실을 가속화했다. 특히 언어의 경우, 표준어에 밀린 지방어의 급속한 퇴행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 미학이 표준화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미학의 고유성은 존재하겠지만, 그 개별적 의미체계는 천변만화처럼 다양하지 않겠는가. 정소영의 조각에서 지역적 향토미학을 찾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배불뚝이 조의현과 강인한 농군상 김홍곤, 그리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상처받은 민중 홍순모와 시대령을 넘는 아버지의 자화상 김광진에게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정소영의 형상미학은 전체 한국인의 토속적 형상을 갈구하고 있음에도 지극히 남도적이다. ● 두툼한 입술과 광대뼈 넓은 얼굴상은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이다. 하나같이 부박한 촌뜨기를 닮았다. 하지만 어찌 그것이 이 형상의 진정성일 수 있을까. 그는 그의 선배들과 달리 아직은 설익은 듯하지만, 건강한 육체성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지금 낯익은 것이 언젠가는 그립게 되듯이...」에서처럼 인물들은 문명보다 자연에 가깝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향취에 경도된 표정을 보라! 「당신은 좋은 이야기를 품고 있지」는 빼어난 향토성을 뿜어낸다. 테라코타의 맛과 형상의 동세, 그리고 질감에서 풍기는 대지적 에너지는 가히 일품이다. 이렇듯 그의 형상미학은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정소영_소박하게...그저... 당신을 좋아하여서.._30×30×39cm

그 첫 번째는 초상이다. 조용진은 『미인』에서 "생물학적으로 볼 때, 한국인이 '순혈 단일 민족'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환상"이라면서 한국인은 북방계와 중간계(80%), 남방계(20%)로 이뤄졌다고 한다. 그는 영화배우 최지우를 북방계, 김혜수를 남방계의 대표적 얼굴로 꼽는다. 생물학적으로 보아도 정소영의 인물들은 남방계다. 더불어 그의 인물들은 서구형으로 변해 가는 도시형 얼굴과도 거리가 멀다. 여전히 땡볕아래 서 있는 농투성이 얼굴이요, 소읍 장날로 모여든 시골 촌부들의 표정이며, 달뫼 골 깊은 산중에서 티 없이 자란 처녀의 몸이다. 그가 길어 올린 얼굴과 표정은 그래서 '질박한 삶에 깃든 진실'의 리얼리티를 여실히 드러낸다. ● 두 번째는 손과 발의 언어다. 그의 손은 대지의 생명성을 직접적으로 담보한다. 「우리 가끔 꽃 길 위에서 꽃을 찾아 헤맨다」는 손의 생명언어를 탁월하게 제시한 작품이다. 날씬한 품새를 자랑하는 도시 아가씨의 손을 상상한다면 현기증 나는 일이 될 것이다. 거기엔 오랜 세월 대지를 적셨던 어머니의 손이 존재한다. 굵은 마디와 두툼한 손은 크기의 현상학이 아닌 '거대한 자비로움'을 불러일으킨다. 몇 개의 덩어리로 분리 된 두 여성의 몸은 뒤로 물러나 있고, 오직 손의 언어로 표현된 신뢰와 의지가 있을 뿐이다. 세 개의 손은 각각 다른 포즈로 '긍정'과 '치유', '다짐'의 소리를 타전한다. 「바람을 밀고 간다」는 침묵을 뒤로 한 채 느린 '진보(나아감)'의 강한 힘이 몸의 언어로 확인되는 작품이다. 손과 발은 이때 '나아감'을 향해 작동한다. 오른 손으로 머리를 감싸지만, 팔뚝이 만든 전진의 삼각뿔은 더 강고하다. 손과 발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것들이 뿜어내는 표정의 섬세함은 또 하나의 힘이요, 아름다움이다. ● 세 번째는 색이다. 정소영의 조각은 테라코타 본래의 색을 남기기도 하지만 대부분 짙은 갈색톤으로 채색한 작품들이다. 인물들의 형상이 남도적 향토성을 강하게 풍기는 데는 이런 피부색이 한 몫 하고 있다. 백색 미인을 꿈꾸지 않는 이들의 몸에서 고대 인간의 원시성과 풍요를 느끼기도 한다. 그것은 또한 몸이 대지와 다르지 않음을 밝히는 단서이기도 하다. 그의 조각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더더욱 그렇다.

정소영_당신은 늘 웃으시네_45×35×33cm

현실 리얼리티의 과제 ● 정소영의 작품을 일관되게 관류하는 정서는 순박함이다.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광주와 목포 근방에서 이 작품의 인물들을 길어 올렸다고 고백했다. 19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 오는 길목이다. 삶의 생태적 공동체를 형성하며 농토를 지켰던 많은 사람들은 이 인물들이 탄생하게 된 가장 근원적인 동력이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이 그 시대에 박제되지 않고 현재형으로 살아있는 것은 그 실상이 거기에 멈춰서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의 지속은 흐르는 강처럼 흘러가고 우린 그 안에서 요동치지 않은가. 그러나 대학원을 졸업하고 십 수 년 만에 갖는 그의 첫 개인전은 아쉬움도 남는다. 그것은 그의 의지가 가는 곳에 뿌리 내린 리얼리티에 대한 이해이다. 리얼리티의 상실은 조형의 형식화를 낳을 수 있다. 이에 대한 경계는 보다 현장감 있는 현실감각을 되찾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소설가 이문구는 1977년에 주거지를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행정리, 흔히 발안이라 불리는 쇠면부락으로 이사해 「우리동네」연작을 집필했었다. 표준어의 문법을 버리고 지역어로 채색한 그의 소설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정소영의 조각이 조각적 향토미학을 새기려 할 때 반드시 고민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이문구의 소설적 질감은 그 표본이다.

정소영_지금 이 순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까?_65×25×45cm

"농사꾼은 호적 파갖구 물 근너온 의붓국민인감. 다른 물건은 죄다 맹그는 늠이 기분대루 값을 매기는디 워째서 농사꾼만 남이 긋어준 금에 밑돌아야 혀? 마눌 한 접이 금가면 버리는 푸라스틱 바가지만두 못허니 이래두 갱기찮은 겨? 드런 늠덜. 암만 초식 장사 제 손끝에 먹구 산다지만 해도 너무헌다구. 꼭 이래야 발전헌다는 겨?" (「우리 동네 姜氏」 중에서) ● 서울에서 안성으로 삶터를 옮긴 것은 그의 조각적 출발이 새롭게 형성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그의 작업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문학적 둥지를 튼 장석주는 이문구의 소설이 끈적거리는 토속어 문체로 산업화, 도시화, 근대화로 인해 와해되는 농촌의 부락공동체,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자기 헌신과 상호유대 정신의 멸실, 그 와중에 겪는 농민들의 소박한 희망과 기대의 부서짐을 길어 올렸다고 평하면서 염상섭, 채만식, 김유정에서 비롯한 "평민문학적 골계미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풍자와 해학의 문체를 이어받은 작가는 농촌소설이 빠져들 수 있는 인물의 소영웅화, 인정 삽화, 지방주의 등을 극복하고 1970년대를 대표하는 '농촌작가'로 우뚝 선다고 주장했다. 정소영의 조각을 보는 필자의 시선은 거기에 있다. 김복진으로부터 시작된 한국 형상조각의 리얼리즘 계보가 사실주의를 뛰어 넘어 인간 본연의 실체로서 권진규와 김광진에 다다랐듯이 그의 조각들은 그들과 다른 지점에서 현실 리얼리즘의 조형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키워나가는 작업이 이제 그의 과제가 아닐까. ■ 김종길

Vol.20071015g | 정소영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