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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05_금요일_06:00pm
단국대학교 조형예술학과 미술학 박사 청구전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진흥아트홀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104-8번지 진흥빌딩 1층 Tel. 02_2230_5170 www.jharthall.org
물화(物化)된 리얼리즘, 그 역설의 미학 ● 속일 수 없는 현실의 생생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리얼리즘은 대상에 대한 그 가감 없는 명증성으로 인하여 예술에 깊이를 가져다주는 장치들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낭만주의에서 즐겨 사용되었던 아이러니나 패러독스 같은 것이 특히 사실주의 회화에서는 잘 활용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사실주의 미학에서도 대상 그 자체의 실제성 외에 그와 똑같은 무게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대상의 이면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상의 현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수단화하는 일종의 비약이 가미된다. 그 결과 리얼리즘으로 분류되기에 어려워진다. 가령, 팝 아트는 어떠한가? 그것은 이미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배경과 맥락으로서의 차원, 즉 현실을 그 표현대상으로 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표현되고 있는 대상 이상의 현실에 대한 빈정거림이나 냉소 또는 반항같은 특정 감정이 동반된다. 리얼리즘 미학이 대상 표현의 즉자성을 뛰어넘는 풍요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결국 패러디라는 방법 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영일의 작품은 리얼리즘의 미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분명 일상을 다루면서도 팝 아트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고 일단 전통적인 사실주의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응당 흔하고 진부한 어떤 현실 고발적 리얼리즘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리얼리즘이 익히 담아내던 그 흔한 서민적 삶의 애환이라든가 혹은 기계적 부속품으로 전락해 버린 현대인의 볼품없음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그의 작품에는 그 어떤 주장도, 그 어떤 시각도 들어있지 않다. 또, 어떠한 가치판단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제목 그대로 물화(物化)된 현대인의 삶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단지 그러한 사태 그 자체에 대한 거세된 응시만 존재할 뿐이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지극히 현상학적이다. 일체의 판단을 괄호치고 삶의 일상성 그 자체를 제시하는 그의 작품은 그런 현상학적 방법을 통하여 리얼리즘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 사실주의에 토대를 두면서 사실주의를 완전히 뛰어넘고 벗어나버린 팝 아트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사실주의를 이용하여 그 이상의 것이 되려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리얼리즘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리얼리즘을 초월하고자 한다. 인간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들을 단지 하나의 물성(物性)그 자체로 표현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인간의 냄새가 가장 진하게 배일 수 있는 리얼리즘을 거꾸로 가장 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림으로서 외려 리얼리즘 이상의 효과를 내는 예술적 성취를 하고 있다. 이미 물화 된지 오래인 현대인의 비인간적인 삶의 편린들을 무관심적 침묵으로 표현함으로서 그의 작품은 리얼리즘도 역설의 방법을 통한 도약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실험성과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나 할까? 이것은 분명 담백함과 절제를 통한 역설의 미학이다.
이 영일은 이런 역설의 미학을 구상과 비구상을 두루 동원하여 추구하고 있다. 그의 비 구상화는 사실주의적인 기법의 작품들과 동일한 제목을 갖고 있지만 그 작품들보다 물화된 일상이 초래하는 삶의 가벼움이라는 주제를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그의 구상화가 일상이 지니는 공허함과 사람들 간의 무상성을 표현함으로서 그런 효과를 거두었다면 그의 비 구상화는 삶과 관련된 온갖 의미를 지우고 무화함으로서 동일한 효과를 배가한다. 이 역시 참을 수 없는 삶의 가벼움에 대한 최소한의, 그렇지만 최대한의 표현인 것이다. 기법 면에서 눈 여겨 볼 것은 시종 일관 화면을 압도하는 거친 터치이다. 이런 거칠고 투박한 터치는 현상학적 방법으로 리얼리즘에 깊이를 부여하려는 그의 의도에 너무나도 적합한 수단이 된다. 왜냐하면 거침과 투박함은 다듬어지지 않음을 의미하며 그런 만큼 적나라함, 있는 그대로를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일견 실험성 짙은 독립 단편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그 거침과 투박한 터치 기법은 '사상(事象) 그 자체로!'라는 현상학의 슬로건과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흡사 "삶은 삶이요, 일상은 일상이다.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은 그의 작품은 현상학적 방법을 빌은 리얼리즘의 물화요, 물화된 리얼리즘이다. 이런 특이한 리얼리즘이 전달하는 현실에 대한 통찰은 평이한 리얼리즘이나 거기서 왜곡되어 나온 팝 아트의 그것보다 한층 진지하고 원숙하다.
사족이지만 이러한 시각은 작가 고유의 인간적 깊이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작가는 어찌 보면 인간사에 대해 지친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그 속에는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생존하기 위해서 버둥거리며 안간힘 쓰는 우리네 인간에 대한 깊은 동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동정과 안쓰러움은 깊고 깊다 못해 차라리 한 차원을 뛰어넘어 절제된 무관심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도 이 영일의 작품은 역설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작가는 인간과 삶에 대해 원숙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무릇, 예술이란 매체라고 하는 보이는 것과 그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정신적 메시지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것 간의 결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인간에게 호소하고 인간과 소통한다. 예술은 궁극적으로 인문학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삶에 대해 깊이 있는 시각을 지닌 이 작가의 향후 작품들이 기대된다. ■ 노영덕
Vol.20071014d | 이영일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