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 이미지의 번안

백지회 회화展   2007_1010 ▶ 2007_1016

백지회_塔-N008_혼합재료_33.5×24.3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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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10_수요일_06:00pm

갤러리 우림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27번지 Tel. 02_733_3738 www.artwoolim.com

백지회-석탑 이미지의 번안 ● 자연계 속의 돌은 인간의 살을 대신하는 가장 단단하고 영속적인 물질로 여겨졌다. 최초의 이미지들은 그 돌의 피부에 새겨지고 보존되어왔다. 기억과 저장의 장소로 돌의 표면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거대하고 평평한 돌의 표면은 텍스트이자 우상이고 신화가 담긴 곳이며 시각적 장소, 전시공간이었다. 돌은 시간과 세월의 입김에 완강히 저항하면서 오래 살아남아 현존한다. 아득한 시간을 거쳐 지금까지 살아온 돌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과 생의 덧없음 그리고 우주자연의 무궁함에 숙연해질 것이다. 고인돌과 비석, 무덤의 벽면 그리고 석탑과 모든 석물과 성벽은 소멸될 자신의 존재를 오래 살아남아 증거하게하려 했던 유한한 목숨들의 무한함에 대한 순연한 희망들이자 믿음과 소망의 말씀들이다. 그런가하면 그 돌은 지상의 인간에게 우주자연의 엄정한 이치와 논리를 보여주는 상징물이자 윤리적 표상이 되었다. 전통사회에서 돌은 신앙의 대상이었고 동양의 옛 현인들에게는 침묵과 배신을 모르는 표상이었기에 말년을 함께 보내며 완상하는 그런 벗이었다. 아울러 그 캄캄한 돌의 내부에 들어와 잠긴 시간을 헤아리면서 늙어갔을 것이다.

백지회_塔-N006_혼합재료_19×24.3cm_2007
백지회_塔-N003_혼합재료_33.5×24.3cm_2007
백지회_塔-N014_혼합재료_53×40.9cm_2007

백지회는 그 돌의 흔적 중 하나인 석탑을 소재 삼아 그렸다. 석탑의 일부를 확대하거나 특정 부위를 클로즈업시켰다. 좀 더 나아가면 은연중 석탑은 지워지고 돌가루가 붓질/흔적이 되어 화면 위에 부유한다. 구체적 대상에서 멀어져 추상으로, 이미지에서 질감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화면을 돌의 피부로 치환하고 아울러 석탑의 표면을 연상시키는 장치로 만들었다. 그것은 그림이면서 저부조다. 시각에 호소하는 평면회화이면서도 촉각을 자극하는 물질적 표면으로 채워졌다. 그것은 그려지고 칠해지면서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다. 석탑을 선택한 이유는 한국의 전통 미술 중 유독 석탑미술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개인적인 체험이 있다고 한다. 산사의 마당이나 자연 속에 홀로 고독하니 직립해있는 그 석탑은 특정 종교의 상징에 머물지 않고 한국 자연의 미감, 그리고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한국인의 미의식, 미적정서를 대변하는 사물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돌의 피부에 서린 그 아득한 시간의 결과 때, 바람과 눈과 비, 그리고 사계절이 만든, 인간의 손으로는 가당치 않은 이미지/흔적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그것은 결국 시간에 다름 아니다. 시간은 사물의 표면에서 그렇게 서식한다. 아울러 한국적 풍토 속에 가장 흔하게 자리한 화강암의 석질질감에서 연유하는 부드럽고 소박하며 친근한 정서와도 궤를 같이 한다. 박수근의 그림이 대중적 미감을 탁월하게 성취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백지회_塔-N001_혼합재료_19×24.3cm_2007
백지회_塔-N002_혼합재료_19×24.3cm_2007
백지회_塔-N008_혼합재료_33.5×24.3cm_2007

백지회는 분채 바탕에 돌가루를 접착제와 섞어 칠했다. 석탑에서 취한 모티프를 자의적으로 변형하고 구성해서 화면에 펼쳐놓았다. 그것은 석탑을 연상시키면서도 매우 자연스러운 구성으로 흩어진다. 유니크하게 분절된 소박한 선들이 구획을 짓고 그것들이 모이고 벌어지면서 모종의 형상을 떠올려주다가 멈춰있다. 청색과 초록의 단색바탕에 색을 머금은 돌가루가 부착되면서 선과 형태를 만들고 그것들이 은연중 석탑의 이미지를 떠올려준다. 작가는 석탑에서 받은 인상, 그 질감과 소박하고 정겨운 미감과 형언하기 어려운 시간과 세월의 자취 등을 촉각적으로, 질료성을 극대화하면서 또 다른 조형의 세계로 몰고 간다. 옛 석탑이 소재가 되어 이를 자신만의 독자한 방법론으로 재구성, 환생시키고자 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현대라는 시간에서 돌이켜보는 전통에 대한 환기와 우리네 전통문화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조형언어에 대한 모색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모색의 첫걸음이 이번 전시를 이루고 있다. ■ 박영택

Vol.20071012d | 백지회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