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철 그림조각展   2007_1010 ▶ 2007_1016

박예철_관계_강철에 페인팅_40×70×6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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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10_수요일_06:00pm

모란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02_737_0057 www.moranmuseum.org

重 輕 森 林 : 중경삼림 가볍고 무거운 숲 사이에서... ● 미니멀리즘 조각은 단순하면서도 조형적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로 예술의 격동기를 함께해 왔다. 추상적 형상을 통해 전통적인 재현미술의 환영을 포기하고 자연의 모방이란 고전적 발상으로부터 해방되면서 현대조각의 격동기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상조각은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으로 제작되어 예술의 자율성을 무시한 채 엘리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이는 내용의 부재란 비판 앞에 노출되며 대중과의 간극을 벌려놓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 반면 매스미디어가 쏟아내는 대중이미지의 차용으로 시작된 팝 아트는 대중적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예술의 순수주의에 대하여 비평을 가한다. 저급하고 가벼운 의미를 매체들과 실생활의 오브제의 등장은 소위 고급예술을 지향하는 미술관을 점령하기 시작하며 급기야 수퍼마켓에 놓여있던 비누상자마저 예술작품으로 분류된다.

박예철_새빨간_강철에 페인팅_110×140×15cm_2007
박예철_영희_강철에 페인팅_30×40×5cm_2007

포스트 모던이후 동시대 예술은 더 이상 존재에 대한 탐구나 엥포르멜과 같은 추상적인 조형성과 형이상적 원초적 물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작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현상에 주목, 그 주위를 아우르는 경험들을 작품에 녹여내고 보는이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으로 진화한다. 이는 곧 작품을 통해 타자와의 소통이 예술적 가치의 우위로 인식되는 계기로 전환되며 더 이상 예술은 심각한 것이 아닌게 되어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작품이 대중과 맺는 관계나 소통에 대한 문제를 떠올릴 수 있다. ● 작품은 생산자에 의해 생겨난 물질이나 이미지다. 작품을 생산한 작가와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감상하는 관객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나아가 현재의 작품들은 하나의 대상으로 관객에게 던져지고 관객들은 여기에서 의미들을 찾아낸다. 작품은 관객에게 무한히 열린 대상이 되어 서로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 이후 작품과 관객 나아가 예술과 대중의 소통이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앞서 밝혔듯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은 예술적 아우라만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들과 소통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요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은 대중과 예술사이의 경계에서 심각한 고민과 갈등 안에서 작업에 임한다. 박예철도 마찬가지다. 보는이의 소통을 이끌어 내려는 노력에 더해 전통적인 조각의 양식을 빌려 시각적 조형성과 조각의 정체성을 살려내려 애쓰고 있다. 그것은 다소 친근한 만화캐릭터, 혹은 어릴 적 친구의 그림에서, 조카의 그림일기에서 보았을 법한 형태의 입체로 등장한다. 친근하고 단순하며 귀여운 빨간색의 강아지, 허리가 긴 개, 다소 유치해 보이는 듯한 도시의 이미지로 비추어진다.

박예철_꿈_강철에 페인팅_가변크기_2007
박예철_젊은 조각가_강철에 페인팅_75×90×30cm_2007

박예철에 작품의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작가가 살아오면서 상상했던 사물들이다. 각각의 캐릭터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연관되어 보이기도 하나 딱히 드러낼만한 연결고리는 없다. 작가는 그저 제시할 뿐이다. 자신의 기억 속 캐릭터 사이사이를 비워놓고 관객으로부터 그 연결성을 이끌어 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관객들은 박예철의 캐릭터들과 그들이 놓여있는 위치 혹은 형태와 색에 따라 각각 캐릭터들 사이에서 서사구조를 유추해내게 된다. 박예철은 그렇게 타자와 자유로운 관계를 유도한다. ● 오늘날 조각으로 인식되는 객체는 입체 혹은 조형의 의미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깍고 다듬는 과정에서 물성에 대한 고민들이 한가지 매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재료이자 작품으로 바뀌게 되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예철은 물성의 이해에 대한 면에서 전통적인 조각의 영역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철에 접근하며 자신의 가진 예술적 층위를 들어내는데 적극 활용한다. 작가는 철을 다루는 (붙이고 갈아내고 새기고 두들기는) 과정으로부터 탈피하려 한다. 이는 작가가 현대조각을 이야기 할 때 빠질 수 없는 철조각을 계승함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개척해내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작가가 조각에 대한 접근에 있어 재료에 충실하려하기 보다 재료를 재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실험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박예철_뷰티풀_강철에 페인팅_24×60×6cm_2007
박예철_2007 대한민국_강철에 페인팅_30×30×30cm_2007

그렇기에 철에 다가가는 박예철의 감성은 남다르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철의 속성을 최소한으로 시각화 시키며 작가가 발견한 새로운 시도와 우연적인 결과를 추구한다. 작가는 용접 후에 용접부위를 갈아내고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색을 먼저 칠하고 용접하여 용접부위 주변의 안료들이 자연스럽게 타들어가는 효과를 연출한다. 이렇게 되면 용접 자욱과 함께 면의 중심으로부터 외각용접 부위를 향해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을 형성한다. 작품 주변의 테두리는 명확해지고 작품에 대한 주의력을 확장시킨다. ● 알 수 없는 텍스트들을 철 표면에 새기는 방법 또한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철에 대한 접근이다. 신문지 뭉치에 쌓여진 도색된 철을 물로 불린 후 표면을 씻겨내면 표면엔 신문지의 텍스트와 이미지가 새겨진 안료들만 남게 된다. 이렇게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진 불특정한 이미지들의 큐빅은 차곡차곡 쌓여 또 하나의 이미지 큐빅으로 탄생된다. 여기에 등장한 대중이미지들은 서로 접촉하고 충돌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낸다. 좌우가 뒤바뀌고 단락이 끊긴 텍스트들은 이미지로 변화되어 큐브들의 집합에 치환된다. ● 그의 조각은 자신의 기억 속에 내재하는 유아적 모티브를 환기 시키고 거기에 철의 다양한 실험을 거친 시각적 조형성을 더해 대중과 소통하려는 흔적이 느껴진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조각의 태생적인 한계를 철 조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박예철은 마치 무거움과 가벼움의 숲에서 단서를 찾아 나가고 있는듯하다. 그리고 그 숲을 개척해 나가는데 보는 이의 감성도 함께 동참시킨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중경(重輕)이 함께 묻어난다. ■ 황인성

Vol.20071010e | 박예철 그림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