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자연의 상호관계

안봉균 회화展   2007_1009 ▶ 2007_1030

안봉균_Research on Contemporary-붉은호박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07

초대일시_2007_1009_화요일_06:00pm

개관기념 초대전 제2부

좋다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58-14번지 1층 Tel. 02_587_6123

안봉균의 텍스트와 형상-문자와 자연의 상호관계 ● 문자 텍스트와 이미지형상과의 관계는 인문학적, 예술사적 양면에서 풍부한 적용사례를 가진다. 어떤 사실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컨텐츠를 가진다는 것은 긍정적이며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양자 간 조화로운 상호관계를 개척할 만한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텍스트는 기호를 가진 문자이며, 형상은 비언어적인 기호체계를 가지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이 두 관계는 간단히 말하자면 문자와 그림에 대한 상호간의 영향을 다루는 영역이라 하겠다. 우리는 여기서 문자언어가 곧 형상이미지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텍스트와 형상은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어 상당 부분 유희적이다. 언어와 그림의 교차지점에서 일종의 놀이적 의미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그에 따라 제작자(미술가)의 경험과 유추, 그리고 상상의 여하에 따라 해석의 유연성이 크다고 하겠다. 안봉균은 바로 이러한 텍스트와 형상의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오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의 조형방식이 단순히 그 양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표면적인 부분만을 답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안봉균의 텍스트는 형상으로 제작되기 이전에 텍스트 자체의 상징성과 그에 따른 소통성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문자와 형상이 지닌 고유 언어를 가급적이면 수용자(작품을 바라보는 이)에게 선명하게 전달하려는 태도가 중시된다는 이야기다. 관련하여, 그의 모든 전달언어, 곧 텍스트와 형상은 작가 개별적 삶의 중심에 위치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거기에는 견고한 삶의 지표들이 스며들어 있다. 동시에 자신의 삶의 방향과 신념 등이 개별적인 성격을 지니지만 그 속에서 통합적인 성찰을 보여주고자 한다.

안봉균_Research on Contemporar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72.7cm_2007
안봉균_Research on Contemporar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07

성찰-피조물에 대하여 ● 안봉균의 형상과 텍스트를 거론하기에 앞서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작가의 세계관인데, 그 시선은 자연관임과 동시에 신앙적 관점으로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먼저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안봉균의 자연은 사유를 통한, 혹은 관념의 결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삶의 중심부에 깊이 들어 온 자연이다. 베르그송의 말을 빌리자면 '사고된 것으로서가 아닌 체험된 것으로서의 삶'이라는 관점을 가진다. 작업실 창틀에 모여 앉은 작은 청개구리를 바라보는 그의 일상경험은 우리가 책에서, 혹은 여행 중에 만나는 그것과는 구별될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의 자연은 일상이다. 기름지면 기름진 대로, 척박하면 척박한대로 발붙인 땅의 숨결을 느낄 따름이다. 그의 삶은, 그의 작업은 자신의 터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안봉균의 화폭에는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이 깃든다. 생명에 대한 신비감도 같이한다. 그 자연물은 측정할 수 없는 존재, 곧 창조주의 영역 속에서 발견되는 대상이다. 그러나 그 대상은 오히려 평범한 사물로서, 세상 피조물에 대한 감사가 스며있는 그러한 대상들이다. 인간을 제외하고는 어떤 존재도 자신의 존재를 놀라워하지 않는다는 한 철학자의 말은 안봉균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곧 그 자신의 존재만이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경계를 넘어 자신과 함께 창조된 또 다른 존재에 대한 경외감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다른 존재란 작가를 둘러 싼 세계, 곧 자연과 우주의 질서에 관련된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피조물이 우리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즉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에만 그치지 않고 왜 그러한 자연이 존재하는지, 왜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안봉균의 회화는 바로 그 존재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고 해야겠다. 안봉균이 생각하는 자연은 비록 단순한 대상물일지라도 그 속에 형용하기 어려운 조형적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는다. 자연을 신뢰하며 그 속에 놀라운 내러티브가 숨어있음을 확신한다. 이를 해석하는 작가의 응답방식은 직접적이다. 자신의 경험에 따른 사유를 가급적이면 단순하고 질박하게 드러낸다. 그 방식은 곧 자연물을 재현 혹은 모방적 기법을 통한 방법이나, 그 자연이나 사물의 현상적 외양에 의미를 국한시키려 들지 않는다. 거기에 바로 텍스트가 자리 잡음으로써 자신의 작업의미를 생성시키는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안봉균_Research on Contemporary-붉은사과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07
안봉균_Research on Contemporary-푸른사과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07

텍스트와 자연 ● 안봉균이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성경의 텍스트이다. 창세기의 첫 장에는 혼돈 가운데 하늘과 땅, 나아가 만물을 창조하는 신의 존재가 묘사된다. 없음과 공허에서부터 있음과 의미의 공간이 최초로 성립되는 순간을 기록한 텍스트. 그것은 단순히 종이 위에 인쇄된 활자라는 의미 너머에 있는 것이고, 작가는 바로 그 문자매체를 이미지로 전환시켰다. 천지창조 연후에 분명히 '보기에 좋았다'고 한 창조주의 언어는 작가에게 새로운 의미로 전달된다. 다시 그 언어는 캔버스에 구체적으로 형상화됨으로써, 작가가 말하는 대로 텍스트가 곧 그 자체로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작품「Research on Contemporary-하늘, 땅, 바다」에서는 바로 이러한 상호관계가 잘 드러나고 있다.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그 대상들은 안봉균의 텍스트와 형상에 모두 재 기록 또는 재현된다. 여기서 재 기록이라 함은 텍스트가 캔버스에 그대로 문자화된 것을 말한다. 재현이 주는 의미는 그 기록된 텍스트가 형상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을 뜻한다. 작가는 자신의 눈에 비친 텍스트 이미지를 인간의 지식, 생각, 기억, 추억 등의 상징적 아이콘이라 하였다. 작가는 이 아이콘을 성경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학작품, 특히 시(詩)에서도 선택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무한한 기쁨을 노래한 박두진의「청산도」는 텍스트이자 바로 형상이미지를 생산해내는 출처다. 여기서 시인의 글은 곧 그림이 된다. 마치 표제음악을 대하는 것처럼 대상의 형상이나 특징을 그려 낸다. '우뚝 솟은 푸른 산, 짙푸른 산, 기름진 햇살' 등의 시어는 안봉균의 사과에서 재발견된다. 그의 사과는 맑은 대기와 햇살이 만든, 자연과 동일한 언어다. 신이 우리에게 선사한 축복의 증거이기도 하다. 안봉균은 그 사과를 대함에 있어서 한 시인이 우리의 산천을, 자연을 노래한 그 마음과 같이 예찬한다. 자연에 대한 신앙적 차원의 고백은 그렇게 안봉균의「Research on Contemporary-붉은 사과」,「Research on Contemporary-푸른 사과」위에 기록된다.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가 말하는 '그림은 말없는 시, 시는 말하는 그림', 혹은 이의 다른 표현인 호라티우스의 '시는 그림처럼 ut pictura poesis' 과 같은 고전적 근거는 안봉균의 작업에서도 발견된다. 이와 같이 안봉균은 문학과 회화를 같이 수용하되, 어떤 텍스트를 선택하더라도 개별적 성찰이 텍스트를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청산도」를 선택한 것도 바로 자연 그 자체의 생명성 때문이다. 안봉균의 최근작을 보면 그가 생각하는 피조물의 영역이 더욱 더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신비와 경이로움은 달이나 태양과 같은 대기권 밖의 영역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향후 다루게 될 형상과 텍스트의 범위가 더욱 확장될 여지가 클 것이라는 전망이 여기에서 나온다.

안봉균_Research on Contemporary-푸른호박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07

촉각적인 작업-패턴과 손 ● 안봉균의 작업을 형식적인 입장에서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비석 위에 새겨진 듯한 문자이미지다. 그것도 자연의 여러 산물을 배경으로 한 문자는 공간 한 가운데에 띄워져 있다. 그가 자연 이미지로 선택하는 대상은 대체로 자연을 상징하는 개구리, 물고기, 과일, 풍경 등이다. 그는 작은 사물 하나하나를 생태적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이를 큰 자연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자연과 인간을 대비시키려하기 보다는 양자를 하나로 융합하거나 오버랩 시키려는 것이다. 이 방식은 문자이미지 속에 자연을 스며들게 하고 싶다는 작가의 의지를 수용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예전 작품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보다 화려해진 바탕색이다. 즉 비석이미지 중심에서부터 색채중심의 화면으로 변화되었다. 보다 회화적인 뉘앙스를 던져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자연물이 문자라는 문명적 산물과 만날 때 하나의 패턴을 생성시킨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곧 그의 문자 텍스트 이미지는 개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다양한 색채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낸다. 여러 단계 과정을 통하여 덧씌워진 색채가 큰 역할을 한다. 돌가루(금강석)에 마모된 물감의 층에서 발생되는 색상의 변화에 주목해보자. 무슨 색이 어느 정도로 드러날지 짐작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의외성은 시지각적 효과의 원동력이다. 한글텍스트는 안료의 두께, 색상의 여부, 텍스트 크기 등 종합적인 짜임새에 따라 패턴이 달라진다. 이러한 패턴을 만들기 위하여 안봉균은 마치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입장에 선다. 텍스트 하나하나를 갈아내는 과정, 정성스럽게 캔버스 표면을 가다듬고 솔질하는 모습에서 어느 듯 작가 자신은 역사와 문명의 시간 한가운데 위치한다. 붓을 든 인류학자의 태도와 같이 말이다. 인류가 남긴 문자텍스트. 그리고 역사 이래 형상을 닮게 그리려고(모방하려고)한 인류의 본능적인 욕구가 합쳐진 것이다. 마치 비석의 일부분을 읽는 듯한 그의 텍스트는 고유의 시간성도 아울러 느끼게 한다. 그 시간은 풍화작용의 결과, 마모되고 세월로 부식된 캔버스의 표면 위로 떠오른다. 더욱이 텍스트를 매개체로 하는 그 손작업은 섬세한 마티에르와 두께를 선사한다. 이 같은 결과는 위와 같은 그의 촉각적인 작업방식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은 미디어시대에 그가 손작업에 몰두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러나 몸이라는 육체적 개입이 수반되는 그의 작업은, 그의 손은 문명과 자연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매개체이다.

안봉균_Research on Contemporary-달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07

문명의 모방과 조형적 가능성 ● 안봉균의 손작업은 당초 자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전통적인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작업의 중심은 자연에 대한 정확한 모방에 근거하였고 가급적이면 우회하지 않는 방식을 사용해왔다. 그의 모방은 우선 문자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여기서는 당연히 의미가 동시에 모방된다. 이어서 그는 자연을 모방하여 그려 넣음으로써 텍스트의 의미와 일치시킨다. 나중에는 그 텍스트를 대상으로 유사(類似) 발굴, 혹은 발굴의 모방을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그는 자신의 작업이 마치 로제타스톤에서 보여주는 석각이미지를 새롭게 연출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안봉균은 자신의 작업에서 침묵의 소리를, 시간과 사색, 이미지의 울림을 내보여주기를 바란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현대 문명 속에 매몰되어 가는 정신성을 표현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문명을 새롭게 성찰하여 보여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기록한 데이빗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의「월든 Waldencontemporary-하늘, 땅,...은 여러 면에서 안봉균의 이미지와 겹친다. 소로우는 늪지의 개구리를 통하여 자연예찬과 문명비판을 담아내 보여주었다. 대지와 교제를 갖고 구름과 태양, 바람의 의미를 알았던 소로우. 그의 생각은 오늘날 한 화가의 캔버스에서 다시 재생산 된다. 하지만 자연을 다루고 문자와 형상을 다루려는 그의 작업은 도전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더욱이 보다 자유롭고 회화적인 맛을 간직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풍부하고 경직되지 않은 작업이 되기 위해서 텍스트와 형상이 주는 가능성을 읽어야만 한다. 수면 위에 드러난 양자 간의 관계는 아직도 넓은 바다에 떠있는 빙산의 한 조각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 감윤조

Vol.20071009c | 안봉균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