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 in the shell

김영욱 개인展   2007_1004 ▶ 2007_1011

김영욱_Ghost in the shell 06_종이에 먹_162×130cm_2007 김영욱_Ghost in the shell 06_디지털 프린트_162×130cm_2007

초대일시_2007_1004_수요일_05:00pm

우석홀 갤러리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56-1번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50동 Tel. 02_880_7471

그가 장막을 걷어낸 순간 무엇을 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적혈구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나란히 서있거나 서로 결합되어 있거나 이상하게 변형되어 있었다. 낯설거나 혹은 그 반대의, 그러니까 사이버라는 접두어가 거의 모든 것에 달라붙는 세상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법한 이상한 이미지들이 보이는 것의 전부였다. 이 이미지들의 속성에 깃든 문화적인 함의를 읽어야할까.

김영욱_Ghost in the shell 08_종이에 채색_162×130cm_2007 김영욱_Ghost in the shell 08_디지털 프린트_162×130cm_2007

한편, 그의 이미지들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쉽게 얻어진 것들이 아니다. 출력된 그래픽 위로 화선지를 덮고부터는 길고 긴 붓 드로잉의 수행(修行)을 견뎌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과정의 의미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할까. 그 즈음, 그는 내게 빌려줄 세계적 디자이너의 평전과 오랫동안 애장해 온 매트릭스 DVD를 찾고 있었다. 전공인 동양화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번쩍이는 기술문명에 매혹되어있었고, 쿨한 커리어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하긴, 유별난 테크노포비아가 아니라면 현재 누군들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김영욱_Ghost in the shell 09_종이에 먹_162×130cm_2007 김영욱_Ghost in the shell 09_디지털 프린트_162×130cm_2007

작업의 동기-복제 개에 대한 경이-를 밝히면서 그는 아주 솔직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했다. 작업을 이끄는 힘은 아마도 '세계에 대한 인식'보다는 '세계에 대한 순수한 느낌'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내가 느꼈던 어려움처럼 본인의 작업에 관해 답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다고 했다. 미처 해독되지 못한 느낌을 토대로 기획하는 작업 스타일로서는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물음에 대한 답을, 나는 마침내 작가 김영욱의 두 가지 욕망에서 끌어낼 수 있었다.

김영욱_Ghost in the shell 10_종이에 채색_162×130cm_2007 김영욱_Ghost in the shell 10_디지털 프린트_162×130cm_2007

출력한 이미지를 전사하고 또 전사하는 반복적인 행위는 하나의 애정 행위이며 상당히 자폐적인 것이다. 강화된 신체에 대한 판타지를 통해 그는 온갖 기술로 구축된 냉정한 세계를 동경한다. 적혈구 세포를 닮았지만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구조, 언제나 가상에서만 머물 수 있는 그 이미지에서 자연적 신체는 소멸하는가. 하지만 '테크노홀릭' 작가들이 육체를 '고깃덩어리'로 거부했던 것과 같은 극단적인 태도 앞에서 그는 주저한다. 그에게 육체란 욕망의 장으로서 여전히 중요했기 때문이다. 붓이라는 도구가 주는 차이와 실수들은 왠지 보다 '살아있는 것 같아서' 위안을 준다. 어쨌든 현재는 컴퓨터가 표준적인 폰트로 불안정한 인간의 손을 대체하는, 그런 세상이니까. 게다가 드로잉이란 오래전 초현실주의에서 작가의 적극적인 신체 행위로 표명되었던 것이며, 마찬가지로 복제 개에 대한 경이의 절반은 실로 뭇생명과 같이 살아 숨쉬는'생명성'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그가 신체적인 것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말해준다. 이 상반되는 두 욕망의 팽팽한 긴장이 작업의 엔진인 것이다. 그는 그것들의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상징들을 수집하고, 그들 사이에서 불꽃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아티카 비극'은 탄생할까. (*아티카 비극: 니체가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 적인 것의 화학적 결합으로 해석했던 그리스 비극.) ■ 최소원

Vol.20071006e | 김영욱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