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인은 자기 표현의 수단인가 아니면 의사소통을 위한 유익한 도구인가?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노동을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과연 자율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실제 내용이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그래픽 디자인 작품이 과연 '개인적'일 수 있는가?"

"디자인 작품이 효율적임과 동시에 비판적이고, 개인적이고, 새롭고, 또한 아름다울 수 있는가? 여전히 기능을 다함과 동시에 예측 불가능하고 어색한 삶의 숨결을 보유하는 작업은 가능한가?"

"전문 디자이너로서 성숙하면서도 또한 신선한 기상을 유지할 수 있는가? 점점 더 기업 문화의 지배가 강고해지는 이 사회에서, 작고 유기적인 디자인 실무 단위를 운영하는 게 가능한가?"

메비스&판 되르센

이처럼 언뜻 보기에 거창한 질문들도, 암스테르담의 그래픽 디자인 듀오 메비스 & 판 되르센의 작업 앞에서는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그들의 작업은 그래픽 디자인의 난감한 딜레마들을 너무나 간단하게 해소해 버리기에, 그들이 그런 이분법을 괘념키나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들의 작업은 조형적으로 강렬하고 독특하지만, 그 형태는 내용을 가리기 보다 오히려 반영한다. 일부 화석화된 전문인의 시각에 그들 작업의 다수는 '실험적'으로 보이지만, 그 실험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 기능성을 높이기 위한 실험이지, 실험을 위한 실험이 아니다. 그들의 접근법은 자유롭고 때로는 '위험해' 보이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표면 아래에는 분명한 책임감과 깊은 배려가 있다.

'로테르담 2001' 아이덴티티_1999

메비스 & 판 되르센은 '사적인 스타일'을 개발해 작업에 강요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모든 과제에 새로이 접근하고, 안에서부터 밖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들의 디자인이 일정한 조형 어휘보다는 뚜렷한 아이디어 또는 '컨셉트'에 기반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 아이디어들은 충분히 시적이고 암시적이어서 오래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물론, 그들 역시 어느 정도 일정한 개성 또는 자주 쓰이는 접근법을 개발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억압하거나 과장할 게 아니라, 오히려 솔직히 인정하고, 주어진 과제의 제약과 가능성에 비추어 끊임없이 재해석해야 할 자산이다.

SMBA 10년 우리는 예술을 보여 준다_2004

아르망 메비스(1963)와 린다 판 되르센(1961)은 1986년 암스테르담의 헤리트 리트벨트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래 줄곧 함께 작업해 왔다. 주로 문화 기관이나 개인을 위해 진행한 메비스 & 판 되르센의 주요 작업으로, 로테르담의 보에이만스 판 뵈닝겐 박물관 아이덴티티, 패션 디자이너 듀오 빅토르 & 롤프의 아이덴티티와 출판물, 그 밖의 수많은 미술, 건축, 디자인 관련 서적들을 꼽을 만하다. 또한 그들은『메트로폴리스 M』을 위시한 네덜란드의 몇몇 문화 전문지를 디자인하는 한편, 2001년에는 유럽의 문화 수도로 지정된 로테르담 시를 위한 아이덴티티 디자인 초대 공모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들의 작품은 전 세계의 주요 미술관과 교육 기관에서 전시되었고, 2005년에는 지난 20년 간의 협업을 기록하는『리컬렉티드 워크: 메비스 & 판 되르센』이라는 책이 네덜란드의 예술 전문 출판사 아르티모를 통해 발행되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그들은 전 세계적인 '더치 디자인' 현상의 정수를 대표할 만하다.

ABCDE-매거진 빅토르 & 롤프_2003

하지만, 메비스 & 판 되르센은 더치 디자인 현상의 단순한 일부가 아니라, 실제로 그 현상을 창출해 낸 장본인으로 지목해야 한다. 디자인 실무 외에도, 아르망 메비스와 린다 판 되르센은 네덜란드 국내외의 다양한 학교에서 교육 활동을 병행해 왔다. 현재, 린다 판 되르센은 헤리트 리트벨트 아카데미 그래픽 디자인과의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고, 아르망 메비스는 네덜란드 아른헴의 디자인 전문대학원 타이포그래피 공방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로서 정기적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그들이 배출한 학생들, 이제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동료들은, 역동적이고 비판적인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산 증인으로 활동 중이다. 그건 또는 메비스 & 판 되르센이 여전히 고집하는 활동 방식이기도 하다.

보에이만스 판 뵈닝겐 미술관 아이덴티티_2003

'아웃 오브 프린트: 메비스 & 판 되르센의 그래픽 디자인전'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 듀오의 작업을 소개한다. 제목이 시사하듯, 전시는 주로 그들이 디자인한 인쇄물로 구성된다. 포스터, 책, 도록, 다양한 매체로 물질화된 아이덴티티 디자인 등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작업은 그래픽 디자인의 전통적인 영역에 속하는 셈이다. 사실 자연스러운 결과다. 메비스 & 판 되르센은, 다른 거창하고 모호한 직함을 원하지 않는, 자부심 강한 '그래픽 디자이너'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엄청나게 행복한 디자이너이고, 고된 작업을 마다하지 않는 즐거움은 그들의 작업에 고스란히 베어 있다. 책임감 있고, 능숙하지만, 자유롭고 두려움 없는 정신이 거기에 있다.

와이, 미스터, 와이 헤이르트 판 케스테렌, 이라크 2003~2004_2004

이번 전시에서는 메비스 & 판 되르센의 포스터 작업들이 프린팅되어 월페이퍼 형식으로 부착될 예정이다. 그리고 그간 작업했던 도록, 책, 포스터 등의 인쇄물과 인터뷰 영상을 담은 비디오도 상영될 예정이다. 전시 부대행사의 일환으로 아르망 메비스가 내한하여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더치 디자인을 비롯한 그들의 작품세계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다. ■ 최성민

조용한 충돌' 무용 공연 포스터_2005

■ 부대행사 메비스 & 판 되르센의 멤버인 아르망 메비스가 내한하여 진행되는 본 강연회는 그들의 지난 작업을 살펴보며,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일시: 2007년 10월 4일(목) 7:00 PM 장소: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관 대강의실 모집대상: 그래픽 디자인 전공자, 또는 관련 전문가, 일반인 참가비: 무료 참여방법: 선착순 입장 진행: 최성민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강연자: 아르망 메비스 문의: 서울시립대학교 디자인대학원 2210-2259

Vol.20071005b | 아웃 오브 프린트: 메비스 & 판 되르센의 그래픽 디자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