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女夜話

류준화展 / RYUJUNHWA / 柳俊華 / painting   2007_1003 ▶ 2007_1009

류준화_발 없는 새_면천에 석회, 아크릴채색, 콘테_72×5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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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7_1003_수요일_05:00pm

학고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0)2.739.4937 www.hakgojae.com

소녀는 무섭다?! ● 소녀는 무섭다, 라고 말하면 젠더에 따라 다른 표상을 갖게 될는지? 가령, 남성들한테 소녀가 무서운 이유는 아줌마가 무서운 이유와는 좀 다를 것이다. 성정체성이 '탈색된' 아줌마 스테레오타입에 비해, 소녀상은 사회금기로 인해 오히려 강한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유형에 가깝기 때문이다. 롤리타 콤플렉스는 파멸에 이를 수 있는 이러한 치명적인 유혹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대체로 여성들에게 무서운 소녀는 '면도칼 소녀' 같은 물리적이고 언어적인 폭력의 이미지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것은 청소년 특유의 무모함과 겁 없음 그리고 세상과 기성세대에 대한 알 수 없는 불만과 맞닿아 있다. 물론,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옮겨가는 사이, 즉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이 불안한 위치에서 비롯된 소녀들의 폭력성은 소년에게 더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일본만화『철콘근크리트』의 극단적인 악동 주인공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류준화_새와 소녀_면천에 석회, 아크릴채색, 콘테_120×120cm_2006

젠더에 따라 그 차이가 두드러지긴 하지만,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표상은 실은 내적으로 연결되어 구성되는 경우가 더 많다. 소녀들의 폭력성은 종종 성적인 방종과 연결되고, 소녀들의 성적인 임파워먼트는 아버지의 부재를 연상시킨다. 어떤 경우이든, 소녀가 무서운 이유는 소녀의 존재 자체가 가부장제의 불안정한 신화를 끈질기게 흔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류준화의 소녀그림들을 놓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섭다고 말한다 한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소녀들의 모습이 기대만큼 예쁘지 않다거나, 소녀들을 그린 색채가 칙칙하다거나, 아니면 좀 더 적극적으로는, 그 모습이나 자세, 배경 따위가 낯설고 괴기스럽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단지 통상적으로 예쁜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치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뿐이지만, 류준화의 소녀그림이 무섭게 느껴지는 데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우리의 공포심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류준화의 소녀그림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원래, 소녀는 무서운 존재인 것이다.

류준화_새와 꽃_면천에 석회, 아크릴채색, 콘테_120×120cm_2006

그런데, 류준화의 이번 전시에 나온 소녀그림들은 한결 덜 무서워진 느낌이다. 작가의 말을 따라, 일러스트 작업을 병행하다보니 그림체가 달라진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번 작업들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소녀상들은 일종의 캐릭터처럼 단단한 고정된 스타일을 갖고 있다. 고집 세고 의연한 모습의 이 가분수 소녀들은 얼핏, 일본작가 나라 요시모토의 소녀 캐릭터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그보다는 성숙하고 차분해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류준화의 소녀들은 나라 요시모토의 소녀와는 좀 다르게, 각각이 자못 긴 스토리를 갖고 있다. 만약 그가 일러스트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소득이 있다면 그것은 스토리를 그림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그림으로부터 스토리를 이끌어내는 방법들을 숙련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실제로 좋은 일러스트는, 이야기를 설명적으로 잘 전개하기 보다는, 줄거리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촉발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훌륭한 그림은 훌륭한 일러스트에서 그리 멀지 않다.

류준화_검은 새-休_면천에 석회, 아크릴채색, 콘테_130×162cm_2006

류준화의 그림이 좀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라면 그것은, 또한, 그의 그림에 담긴 이야기가 실화보다는 설화에 가까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전의 소녀그림은 실재하는 소녀를 대상으로 하거나, 동시대의 소녀상들에 몇 가지 소녀적 징후들을 결합시켜서 만든 이미지에 해당했기 때문에, 앞서 말한 소녀들과 관련된 '근대적 공포'가 보다 직접적으로 감지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2002년 서호미술관 개인전에 출품했던 소녀 전신상들은 소녀들이 처해있는 복잡한 현실을 아무런 배경 이미지 없이 소녀들의 자세나, 눈빛, 표정에만 의거해서 거의 다큐멘터리적 엄정함으로 구현하고 있다. 반면에 이번 전시에 등장한 소녀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옛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닮아있다. 석회로 바탕처리를 해서 오래된 벽화 효과를 내는 배경 위에 흑갈색 톤으로 그려진 인물의 복식이나 몇 가지 소도구들 그리고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해, 달 등의 아이콘들은, 이 소녀들의 이야기가 당대의 것이 아니라 오래된 옛날이나 거꾸로 아주 먼 미래의 알 듯 모를 듯한 공간에서 출연한 것이라는 '물증'이 된다. 한편으로는 현실 속 소녀들이 처해있는 불안한 상황과 그와 연동되어 움직이는 억압의 기운이 그림 아래로 낮게 깔려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조건들을 돌파하거나 초월하려는 긍정적 에너지가 허공에서 떠돌고 있다.

류준화_새가 된 소녀_면천에 석회, 아크릴채색, 콘테_130×162cm_2006

류준화의 이번 개인전에 등장한 소녀 모티프는 어린 시절, 작가가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어떤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새를 타고 어딘가로 날아가던 소녀가, 새의 기력이 다하자, 자신의 팔과 다리의 살점을 뜯어 먹이로 주어서 계속해서 새와 자신이 하늘을 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그 간단한 내용이다. 이 끔찍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는, 생각해보면,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 시대의 많은 소녀들이 겪고 있는 실화이기도 하다. 도시에서건 농촌에서건 자기 몸을 그 대가로 내어놓지 않는 한, 우리들의 소녀는 자기가 처해 있는 조건에서 한발치도 벗어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몸 밖에 수단이 없는 그 소녀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한번쯤은 도약하고 비상飛上하고 싶다는 것이다.

류준화_夜雪_면천에 석회, 아크릴채색, 콘테_90×90cm_2007

류준화는 소녀와 새를 결합시키는 시각화 방식들을 다양하게 구사하여 기이한 설화적 공간을 창조해냄으로써, 이 비극적 딜레마를 해체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소녀의 머리카락이 새의 날개로 자라난다거나, 소녀의 등에 꽃 날개가 솟아난다거나, 머리에서 새가 태어난다던가, 새의 얼굴이 소녀의 얼굴로 변환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반인반수의 캐릭터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류준화의 소녀는 탈출하기 위해서 새를 필요로 하는 대신, 그 자신이 새가 되어 탈주하자는 작전을 세운다. 당연히, 이것은 현실적인 가능성 여부와 무관하며, 오히려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날마다 끝도 없이 치솟아 오르는, 소녀들의 판타지이지 로망이다.

류준화_꽃이 피다,지다,피다_면천에 석회, 아크릴채색, 콘테_104×74cm_2007

류준화의 이번 소녀그림에는 이야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가 가능하다. 어떤 것이든 많은 이야기가 그림에서 들리거나 혹은 그림으로부터 나름의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림 속 주인공들은 아줌마 같은 수다쟁이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다. 외려 소녀들은 입을 고집 세게 다물고 깊게 침묵하고 있다. 같이 어울리며 시끄럽게 떠들 수 있는 또래 친구 대신, 날짐승들이나 물고기, 꽃, 나무를 곁에 두고 있어, 척 보기에도 외롭기 그지없는 존재들이다. 가끔 류준화의 다른 그림 속에는 남녀 한 쌍이 같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조차도 얼굴이 교차하거나 겹치거나 마주보거나 하는 그 형태들이 실제의 연인 사이라기보다는 과거 연인에 대한 회고나 이상적인 연인관계에 대한 상상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묘하게도 이 "가정 없는 것들"은 하나 같이 서글프거나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이 소녀들은 성적으로나 연령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장 상처받기 쉽고 가장 불안정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대단히 자족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류준화_경계에 피는 꽃_면천에 석회, 아크릴채색, 콘테_162×130cm_2007

한편, 류준화의 날아가 버린 소녀그림을 뒤집어 보면, 그 이면에는 사라진 소녀들의 스토리가 뭉쳐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의례, 소녀가 사라지면 세간에는 수많은 의혹과 상상과 억측들이 난무한다. 매스미디어에게 사라진 소녀는 아주 쉽게 스캔들의 추적대상이 된다. 실종, 연쇄살인, 죽음, 자살 등의 사건사고 등을 다루는 이 '픽션'은 사라진 소녀 뒤를 끈질기게 스토킹해서 어떻게 해서든 소녀들을 땅 위로 끌어내리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류준화의 이번 소녀그림은 그가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 '입김'의「사라지는 여자들 - 음사열전」(여성사전시관, 2006)의 소녀판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 그림에서, 사라진 그녀들을 공격하는 시끄러운 낭설과 음모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도리어 소녀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물 속 깊이깊이 가라앉다가, 심지어 홀로 고독하게 죽어있기도 한다. 묘한 것은 그 죽음조차 편안하고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사라진 여자들의 넋을 해원할 때, 돌아온 유령들이 종종 소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여기서 소녀는 엄마나 아내나 애인이나 아빠의 딸이 아니다. 기껏해야 유일하게 엄마의 딸일 수는 있지만, 그 엄마도 반드시 사람이 아니어도, 자연이어도 된다. 가족이 있어 항상 되돌아와야 하는 피터 팬과 달리 팅커벨은 어디든 날아가 버릴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존재이다. 사실 소녀는, 모든 여자들이 언제든 돌아가 영원히 머무르고픈 '네버랜드'에 등록된 멤버이다. 아직도, 류준화의 그림이 무섭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무섭기 때문에 곧 그의 그림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그림 속 소녀들은 날개 짓을 한다. ■ 백지숙

Vol.20071004b | 류준화展 / RYUJUNHWA / 柳俊華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