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연 사진展   2007_1003 ▶ 2007_1105

최수연_논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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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003_화요일_04:00pm

갤러리 나우 / 2007_1003 ▶ 2007_1009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02_725_2930 www.gallery-now.com

고토갤러리 / 2007_1029 ▶ 2007_1105 대구시 중구 남산1동 2107-20번지 Tel. 053-426-2794 www.gotogallery.co.kr

최수연-평사리 들녘과 악양골 두렁논 ● 수평으로 길게 누운 논에는 벼가 물결처럼 출렁이고 뒤척인다. 대지에서 허공을 향해 수직으로 솟아 흔들리는 벼는 직립해 있거나 바람에 나부끼는가 하면 짙은 어둠 속에 뾰족한 싹으로만 자리하고 있는 등 여러 모습이다. 작물은 흙과 하늘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다분히 독립된 존재로 부감된다. 작가는 논의 육체성이랄까, 논의 살 내음 그리고 촉각성을 강조하면서 대지를 쓰다듬는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더러는 대지에 밀착해서 촬영했고 그에 따라 논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가온다. 가장 흔하게 보았던 대상이지만 시점이 달라지면서 논은 변화무쌍하고 낯설고 새롭게 보이고 기록된다. 그렇게 찍힌 논들은 단지 시각적 정보로 머물거나 시각적인 경험에 그치지 않고 청각적이고 촉각적으로 다가온다. 보는 이들이 논의 존재를 다시 사고하게 하는 배려가 깔려 있고, 한국 자연 풍경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논을 아름다운 풍경적 대상으로 전환시켜주는 편이다. 이 사진들이 지닌 이미지의 힘은 논과 자연에 대한 우리의 총감각적인 상상력을 유발한다. 대지를 박차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이 사진들은 논과 벼, 그리고 그것에 기대는 한국인의 목숨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을 곱씹게 한다. ● 그의 사진에는 여전히 농사를 짓고 있는 자취와 이미 버려져 묵논이 되어버린 풍경이 공존한다. 지금 시골은 농사를 지을 사람이 부재한 바람에 버려진 논, 비어 있는 논이 많다. 그 자리에 풀이 들어서고 꽃이 피어난다. 이제 무성한 풀에 덮인 그 자리가 논이었는지 밭이었는지를 구분할 도리가 없다. 다만 설핏 드러난 논두렁의 경계가 한때 이곳이 논이었고 농사를 지었던 곳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버려졌고 농사를 짓던 이들은 죽거나 농촌을 떠났을 것이다. 일정한 시간이 더 지나면 이런 희미한 경계조차 사라지고 논과 농사지었던 장소에 대한 추억과 역사는 지워질 것이다. 작가는 그런 논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움, 슬픔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런 마음이 논을 기록하고 재현하게 한 동인이었을까? ● 더러는 갈아엎은 논바닥과 그 사이로 피어나는 꽃들도 보여주고 논의 경계와 그 사이로 난 긴 길을 하염없이 보여준다. 그 길과 논의 경계는 인간이 자연과 맺은 휴전의 자리 같다. 그 임계선을 따라 파종 이전의 단계에서 추수까지 벼의 한 생애와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사진은 마치 보는 이들을 논 앞에 데리고 나선 듯하다. 그는 사진을 빌려 우리를 논으로 초대한다. 그것은 멀찍이 스쳐지나가듯 보는 경관이나 낭만적인 논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논 안으로 육박해 들어가다가 문득 저 멀리로 논을 내몰고 더러는 논과 그 주변을 다시 훑어나가는 전방위적인 시선으로 보게 한다.

최수연_논02-01구례_2007
최수연_논04-01평택_2007

농촌을 고향으로 둔 자들에게 땅이란 모든 기억의 원형이기에 그것은 단지 어떤 풍경으로 부감되기보다는 삶과 밀착되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거대한 덩어리로 다가온다. 최수연이 보여주는 논 역시 농경문화권의 보편적인 세계인식과 자연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추억, 논에 대한 향수, 현재 논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사진을 찍었다. 시린 녹색으로 가득한 이 풍경은 사뭇 원초적이다. 이 원초성은 한국인의 땅과 논에 대한 문화적, 역사적, 심리적 해석에 기인한다. 논과 밭은 삶의 익숙한 풍경이자 목숨과 삶 그 자체였으리라. 아직도 그 논에서 떠나지 못하는 자들의 육신에 의해 재배되어 우리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따뜻한 흰쌀밥을 생각하면 눈물겹다. 산다는 것은 그 따뜻한 쌀을 자기 목구멍으로 밀어넣는 일이다. 그것은 숭고하고 눈물겹고 더러는 치욕스럽기도 한 일이다. 논과 쌀을 빼고 한국인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밥알을 흘리거나 먹다 남기면 어김없이 그 한 톨의 쌀을 만들기 위해 바쳐졌던 농사짓는 사람들의 고생에 대해, 쌀의 소중함에 대해 귀에 인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다. ● 최수연은 전국의 논과 그 논의 경계, 주변을 사진으로 틈틈이 담았다. 그는 자신의 카메라에 담은 논에 대해, 특히 평사리와 악양골 주변의 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악양골의 구석구석에 있는 논배미를 보면 살기 힘들었던 옛 시절을 짐작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지리산 골짜기를 찾아 산비탈에 만들어 놓은 다랑논은 힘겨운 삶을 살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평사리 넓은 들녘이나 악양골 구석구석의 다랑논은 봄이면 보리물결에 출렁이고, 가을이면 벼가 황금물결을 이룬다. 또 봄이면 매화가 화려하게 피었다가 감꽃이 피고 이웃집 담 너머로 앵두꽃이 곱게 핀다. 마을 구석구석이 꽃으로 뒤덮인 평사리의 봄에서 넉넉한 우리의 시골 인심을 볼 수 있다. 다랑논 한쪽에 서 있는 감나무, 광활한 평사리 들녘에 서 있는 소나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악양골의 다랑논도 찾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작가노트)

최수연_논07-01강화_2007

오랜 시간 그는 전국의 논을 답사하고 관찰하면서 이러저러한 생각을 한 장 한 장의 사진으로 응축시켰다. 이 사진들은 그런 기행과 사색의 결과물일 것이다. 이것은 논에 대한 즉물적인 기록 사진이면서 동시에 논 그 자체를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정경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논의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담고 그 경계를 두루 보여주면서 새삼 논이란 것이 무엇인지, 자연계의 이치와 생의 논리가 무엇인지를 물어본다. 경북 의성에 있는 할아버지의 논으로부터 시작해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무딤이 들판과 다랑논, 그리고 청산도 보리밭 등 우리 국토 이곳저곳에 위치한 논을 담아낸 그의 사진에는 벼의 싱싱한 생애와 오랫동안 그곳에서 벼와 함께 했을 누군가의 몸과 그의 냄새, 버거운 관절의 놀림이 환영처럼 보이고 환청처럼 떠돈다. 사람은 부재하지만 결국 그 논은 농사짓는 이의 육체, 생애와 함께 지냈던 공간이다. 그의 사진은 논과 함께했던 한국인의 삶과 노동,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보여주는 셈이다. ■ 박영택

최수연_논07-06청산_2007
최수연_논07-07하동_2007

논에 대한 단상 ● "다른 집 나락은 베지 말고 꼭 우리 집 나락을 베." 볍씨가 필요하다는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들여 농사지은 사람들의 낟알은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낫을 들고 할아버지의 논에서 필요한 만큼의 벼 포기를 베어왔다. 물론 다른 집 논의 벼는 털끝 하나도 건들지 않고 말이다. 한 톨의 낟알이라도 귀하게 여기신 할아버지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벼농사만 지으신 분의 소박한 삶의 철학인 셈이다. 농부로 평생 살아오신 분이니 그럴 만하다. ● 2002년 추석. 저수지 앞 할아버지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있다. 매년 봐왔던 논이라 별다른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성묘를 가려면 이 논 옆으로 난 작은 농로를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추석이면 어김없이 찾게 된다. 그래서 매년 할아버지의 논에서 익어가는 벼를 볼 수 있다. 그 이전의 과정은 모두 생략한 채 잘 익은 벼만 보게 되는 것이다. 촘촘히 심긴 벼가 가을바람에 알이 서로 부딪히면서 카랑카랑 소리를 내고 있다. 유독 황금빛을 띠었고 알도 주렁주렁 열렸다. 아마도 그해가 마지막 벼농사임을 땅은 알고 있었나 보다. 그해 겨울,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가을에 익었던 나락을 걷어 곡간에 고이 들여놓으셨다. 겨우내 먹을 양식을 마련하신 것이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 양식을 채 다 드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 봄부터 그 논에는 더 이상 벼가 심기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논 한 마지기 남겨 놓으셨지만 벼농사를 지을 형편이 못 되니 자연히 논은 비어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풀이 무성해져 원래 논이었는지 밭이었는지 구별할 수 없게 됐다. 2007년 추석. 논 주위로 사과가 붉은빛을 띠며 익어가고 있고, 고추잠자리는 하늘 높이 날아다닌다.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논 둘레는 모두 사과 과수원이다. 그 과수원도 논이었는데 사과나무를 심은 지 벌써 십여 년이 되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논은 지금껏 잡풀만 무성한 묵논이 되어 있다. 그래도 올해는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 있다. 논두렁의 경계만이 이곳이 한때 논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과수원 주인은 사과 과수원 만들게 논을 팔라고 한다. 할아버지에게 논을 물려받으신 아버지는 논을 팔지 않았다. 계속 논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버지의 바람이다. 그리고 나에게 논으로 넘겨주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란다. 고향에 땅 뙈기라고 가지고 있는 것이 고향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시는가 보다. 그 땅에서 예전처럼 누렇게 익은 벼를 볼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할아버지의 삶도, 논의 흔적도 희미해질 것이다. ■ 최수연

Vol.20071003e | 최수연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