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7_1002_화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_이연안과
롯데갤러리 광주점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 7-12번지 광주은행 본점1층 Tel. 062_221_1808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훨씬 이전의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등의 거시적인 사회 발전요소들을 넘어서서 일상생활과 직접 관련된 사회의 움직임들-격주 휴무제, 주5일 근무, 자동차 문화에서 비롯된 여가생활-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삶에 대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고, 또 이것은 다양한 생활 양태와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 '공간'과 '장소'는 경험을 나타내는 공통의 단어이기에 경험적으로 공간의 의미는 종종 장소의 의미와 융합되기도 한다. 구별을 짓는다면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적이다. 공간은 움직이며 개방, 자유, 위협이다. 장소는 정지이며 개인들이 부여하는 가치들의 안식처이며 안전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고요한 중심이라고 한다. 인간의 직·간접적인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미지의 공간은 친밀한 '장소'(place)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환경과 사회의 범주에서 학습되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체득되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암암리에 작용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즉 낯설은 추상적 공간(abstract space)은 의미로 가득 찬 구체적 장소(concrete place)가 되는 것이기에 나의 작업은 "The Place"에 그 중심을 두고자한다. 바로 '~에 의해 만들어진' 또는 '~에 의해 형성되어진' 것들을 문화의 틀을 씌우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소비를 하는 것에 이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 여기의 사진들은 전국 일일생활권을 내세우며 발달한 고속도로와 자동차 문화에서 비롯되어 진 공간에 대한 것이다. 초창기 경부선을 제외한 후발 고속도로의 외관과 서비스는 날로 세련되어지고 있다. 그중 휴게소-그 외관에서 비롯된 전경보다는 -에 위치한 문화공간으로서 화장실의 내부에 주목한다.
휴게소는 그 장소가 이동과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라 잠깐 거쳐 가는 곳으로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공공성이 강한 건물이다. 즉 이것은 일상적인 생활과의 관련으로 그것을 소비함에 있어서는 문화를 내건 소비적 행위는 특정한 계층에게 한정되어진 것이 주된 상황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이곳이야말로 불특정인, 군중을 향해 열려진 작지만 반가운 공간으로 자리하는 곳 중의 하나가 아닐까한다. 기본적 생리현상과 함께 여가 공간으로서 실질적인 자연을 본떠 온 듯 대체의 공간에서 잠깐일 테지만, 눈요깃거리를 제공 받는다. 자연식물, 혹은 그것을 모방한 인공물, 그리고 대량 생산된 소비재가 한 공간에서 조우하는 이곳은 또 하나의 유토피아가 되는 것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식물과 인공물, 또 그것들의 섞여진 모습에서, 달콤한 유자향을 품어내는 플라스틱 냄새에서 우리는 더 이상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 하지 않고 있지 않는가!? ● 2001년 한국 방문의 해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도로공사의 휴게소는 대대적인 화장실 개혁이 이뤄졌으며 이때, 계획가들은 '장소감'(a sense of place)을 불러일으키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 녹지 조경공간을 도입하여 친환경, 자연적인 구성을 하고 마감자재 역시 세련되고 고급화 시켰다. 바로 건축가들을 비롯한 조경학자들이 공간의 입지적(장소)성질에 대한 계획을 수립, 제시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공물들은 -건물, 아스팔트, 온갖 공해 물질로 가득한 도심의 하늘빛- 회색을 자신의 색으로 취하고 있다. 바로 그 회색빛 공간에 군데군데 자리한 초록빛의 나무들을 발견할 때, 우리의 몸과 시선, 그리고 마음이 즐거워짐을 느낀다. 그러기에 현대 건축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종종 여러 가지 유쾌한 냄새가 줄 수 있는 날카로운 개성을 첨가하고 있다. 냄새는 사물과 장소에 특징을 부여해 주며 그것들을 구별할 수 있게 하며 그것들을 확인하고 기억하기 쉽게 해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이 장소에서 들리는 경쾌한 시냇물 소리, 새소리 ? 귀뚜라미 소리는 녹지 식물과 함께 공간경험을 극적으로 해줄 장치가 되는 것이다. 이 장소의 다의적 - 웰빙, 첨단, 유머, 세련, 스위트 홈 등- 상징이 읽혀질 수 있도록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읽혀질 수 있도록 고려하였다. ■ 황지영
고속도로 화장실의 재발견 ● 황지영의 사진을 보고, 그곳이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임을 바로 눈치 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대형카메라로 촬영해서 만들어낸 넓은 공간구성과 디지털 은염 프린트의 메탈(metal)한 느낌, 인간이 부재한 텅빈 공간 등 여러 가지 요소로 인해 누구나 사용가능한 공중화장실을 범접하기 어려운 차갑고 세련된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전혀 공중화장실 같지 않은 화장실의 환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략) ● 황지영은 왜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 주목하였을까? 고속도로의 휴게소는 출장이나 여행 시 잠깐 거쳐 가는 곳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공성이 강한 장소이고, 화장실은 휴게소의 소비를 촉진시켜주는 부차적 공간이다. 황지영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체험하는 공간 즉, 친숙한 장소(The Place)로서, 변화하는 문화의 산물인 고속도로 화장실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는 2001년 이후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을 실시하였다. 그 중 가장 눈에 띠는 장소는 역시 화장실이다. 위생상태가 떨어지고 비좁았던, 웬만하면 가고 싶지 않았던 예전의 화장실은 이제 나무와 화초, 향기, 새소리나 물소리 등으로 치장하여 나름 유토피아의 세계로 변신하였다. 그러면 황지영의 카메라에 잡힌 화장실의 세밀한 내부경관을 들여다보자. 얼핏 보았을 때 도시민의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사회적 공간의 모습으로 고급스럽고 세련되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자연의 식물과 인공의 조화(造花), 인공의 돌과 플라스틱 물레방아 등이 부자연스럽게 혼재되어 있는 굉장히 촌스러운 풍경이다. 게다가 휴게소는 각 지역의 이름을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장실 풍경은 지역성이나 개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모습이다. 익명의 사람들이 일회적으로 거쳐 가는 화장실 역시 익명의 모습 그 자체이다. 황지영은 최근 너무도 빠른 속도와 일률적 디자인으로 변화한 고속도로 화장실의 모습에서 우리사회의 기계적이고 획일적 문화, 그리고 빠르게 흡수하고 변화하지만 표피적 개혁에 그치고 마는 후발 산업국가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깨끗하게 정비한 고속도로 화장실은 모든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인 배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반가운 공간이자 휴식의 공간이다. 반면, 불특정 다수인이 사용하는 공적공간이자 불안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밀폐된 화장실 문 안으로 들어간 순간 너무도 은밀한 사적공간으로 전환된다. 이와같은 화장실이 갖는 다양한 사회· 문화·심리적 의미의 공존을 황지영은 객관적 시선으로 처리하고자 한다. 때문에 그녀의 화장실 풍경을 보면 언젠가 한번쯤은 들렀던 낯익고 친숙한 풍경이지만, 다시금 낯설고 불안한 공간으로 다가온다. ● 황지영 작품의 형식적 특징을 보면, 우선 인간이 부재한 텅 빈 공간을 촬영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화장실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자, 수많은 대중이 이용하는 화장실을 선뜻 들어가기 어려운 곳으로 시각적 지위를 격상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또한 수직수평으로 이루어진 화장실의 구조물들 즉, 정방형 타일이 깔린 바닥과 천정, 화장실 문, 창문, 기둥, 세면대 등에 의해 화면은 경직되고 엄격한 조형적 공간성이 형성된다. 그리고 마침내 대형카메라를 이용한 촬영으로 공간감은 확산되어지고, 세밀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잡아내어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현장감이 고조된다. 이상의 다양한 장치들은 화장실 풍경을 생소하게 만드는 요소다. 따라서 그녀의 사진은 화장실임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본 느낌과 화장실임을 인지하고 난 후의 느낌과의 상충효과가 상당히 크다. 또한 황지영의 화장실 풍경은 공적이자 사적인 공간에서의 개인적 경험을 떠올리게 하고, 요즘의 화장실 문화에 대한 새삼스러움과 시대풍경의 변화의 단면을 읽게 한다. ● 황지영은 1999년 대안학교 아이들의 초상사진(Portrait), 2004년 자신의 내면세계의 갈등과 방황, 꿈들을 자기독백식으로 표현한 작업, 최근 동시대의 사회·문화의 변화에 대한 기록으로서 고속도로 화장실 풍경사진 등 다양한 작품경향을 보여 왔다. 이는 사진이 과학과 예술 사이에서 '기록과 표현', '현실과 허구', '객관과 주관'이라는 상충되는 문제로 갈등했듯이 황지영 역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한 증거이다. 앞으로 자신과 외부세계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보다 성숙하고, 자신만의 독창적 어법을 만들어가길 기대해 본다. ■ 김희랑
Vol.20070927f | 황지영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