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protect You

박유진 회화展   2007_0914 ▶ 2007_1003

박유진_궁전의 근위병 Life guard of the pala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97×145.5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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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14_금요일_06:00pm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02_527_6282 www.songeun.or.kr

사랑의 환상으로 가득한 타자의 무대 ● 박유진은 화사한 색채로 환상의 세계를 그린다. 그녀의 환상은 여성의 몸과 특별한 관계가 있으며, 예술의 영원한 주제 중의 하나인 사랑으로 충만하다. 박유진은 몇 번의 개인전 동안, 자신의 몸을 작품 주요 모티브로 사용해왔다. 자신의 몸을 사랑한다는 작가는 여성의 인체는 보지 않고도 쓱쓱 그려질 만큼 익숙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얼굴 표정을 비롯하여 온전하게 그려진 몸은 별로 없다. 작품 [나의 목적지]에는 팔도 머리도 없고, 뻥 뚫린 가슴을 가진 여인이 어디론가 달려간다. 머리 대신에 눈깔들을 풍선처럼 달고 다니는 작품 속 여인은 분열증적인 자아의 이완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행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심장이 오려지는 듯한 슬픔과 절망도 있다. 절단된 신체들로 나타나는 기관들은 작품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읽혀진다. 기관들은 의인화되어 있으며, 여러 개체의 부분들이 조합된 캐릭터들은 또 다른 자아가 되어 은유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 작품[정오의 휴식]은 양팔이 날개인 노란 캐릭터가 화면의 중심에 놓여있고, 지평선 위에 떠오른 태양 같은 붉은 하트가 잎으로 감싸인 고치 모양의 생명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한다. 또 다른 자아인 노랑 천사가 관할하는 영역을 지켜보는 안경 낀 눈이 구름 낀 하늘에 떠있다. 유기체든 무기체든 그림 속 개체들은 모두 상호 간에 사랑으로 얽혀있는 사이이다. 박유진의 작품에서 개체들 간에 이루어지는 관계 짓기는 시선을 통해 활성화된다. 박유진의 작품에는 눈이 유달리 많이 등장한다. 작가는 눈이 사람에게 떨어져 나온 마음의 조각이며, 둥둥 떠다니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지켜준다고 말한다. 눈은 다른 기관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심장 속의 입술, 입술 속의 눈동자, 그 안에 뻥 뚫린 가슴의 인간이 비치는 눈동자를 표현한 작품은 상대에 대한 복합적인 심경이 여러 기관의 조합을 통해 드러난 작품이다. 신체기관의 조합은 박유진의 이전 작업인 디지털 포토 콜라주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이전의 작업이 형태에 대한 탐구에 경도되었다면, 회화 속의 신체는 보다 감성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전의 작업이 가상의 형태로 종합되는 성향이 강하다면, 요즘의 작품은 굳이 억지스러운 종합에 기대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에 그려진 회화에도 이전 작업의 흔적은 남아있다. 그것은 대칭구도의 작품인데, 대칭은 한 화면에서 뿐 아니라, 날개처럼 설치한 한 쌍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작품[궁전의 근위병]은 대칭으로 배열된 도시 풍경인데, 가로수, 신호등, 굴뚝, 차들이 중심축으로부터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다. 작품[뒤뜰의 축제]는 정사각형 캔버스를 대칭으로 배열했는데, 그 안에는 폭죽 같은 에너지가 발산되는 하트가 그려져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발랄한 터치로 현실의 무게를 가볍게 들어올린다. 한동안 놀이처럼 즐겼던 포토 콜라주 작업에서 회화로 전환한 것에는 마그리트 전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박유진_나의 목적지 My destinat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40×40cm_2007
박유진_동반자의 탄생 Birth of the compan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97×145.5cm_2007

작가는 그 전시를 보면서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를, 자신이 편하게 할 수 있는 그림을 통해서 펼쳐내는 즐거움을 재발견하게 된다. 카메라로 수집한 자료들을 꼴라주하며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대한 한계를 스스로 절감하면서 마우스 대신 붓을 다시 쥐었지만, 그렇다고 전통적인 회화로 되돌아 온 것은 아니다. 박유진의 작품은 작품 모티브 뿐 아니라, 색채, 구성에 이르기까지 '무게 있는 그림'과는 차이를 보인다. 많은 작품이 하나의 평면으로 딱 떨어지지 않고, 여러 면이 얼기설기 이어져 있으며 완성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작가는 하나의 화면이 공간을 설정하는데 한정된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그리기 또한 마찬가지인데, 캔버스를 다 덮고 그 위에 그리는 식의 통상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빈틈없이 다 칠하면 답답한 사각형이 강조될 뿐이다. 여기저기 듬성듬성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반복 작업에 기대고 있지만, 색 층이 두텁지 않다. 칠했다가 밀어내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색이 우러나면서도 가벼운 느낌을 주며, 밀도가 있으면서도 톤이 단순하지 않다. 수채 색연필로 드로잉을 하고, 주 안료인 아크릴 물감도 수채화 기법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색 면은 두텁게 쌓이지 않고, 위에 얹혀 지거나 속으로 밀어 넣어진다. 색채 또한 최대한 명도가 높은 것들이 활용됨으로서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그림의 무게를 대폭 줄여 나간다. ● 박유진의 그림은 의식과 사유의 중심에서 놓여나서, 욕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쫒아감으로서 진입한 변화무쌍한 환상의 세계이다. 그러나 주체는 충만이 아니라 결여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욕망의 대상은 형태를 바꾸어가며 계속 등장한다. 욕망의 대상에 고착되면서 벗어나는 과정이 반복되는 형식은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사고 주체Cogito에 근거한 어떤 철학'(라깡)과도 반대편에 속해있다. 박유진의 작품에는 자아가 서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는 하지만, 통일체를 이루지 않는다. 작가에게 그림은 하나의 거울처럼 존재하지만, 그녀의 거울은 그럴듯한 일체화의 환상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다소간 느슨한 박유진의 그림은 에고의 통제와 검열에서 벗어난 무의식의 힘으로 충전되어 있다. 그것은 자아의 대립항인 현실 또한 마찬가지여서, 객관적이고 인식 가능한 현실은 놀이 같은 조합에 의해 부재하는 핵심을 감추고 그 위에서 지속적으로 미끌어진다.

박유진_뒤뜰의 축제 Festival in the back garde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95×190cm_2007
박유진_정오의 휴식 Resting at no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90.9×72.1cm_2007

작품[휴일의 오후]는 뻥 뚫린 가슴을 가진 여자가 머리 대신 풍선 눈들을 달고서, 수면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고 있다. 뒷면의 거대한 식물은 앞의 여자에 대한 시각적인 메아리를 이룬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서있지만, 완전한 단일성을 보여주지 않은 반사상은 자기 확인과 표상을 획득하지 못한다. 박유진의 작품에서 거울은 절단과 와해의 위협으로부터 주체의 단일성을 보증해주지 못한다. 히드라처럼 수많은 눈으로 우글거리는 머리에서 드러나듯이 주체는 완벽한 하나로 구현되지 않는다. 작품[심상의 연못]은 마치 깨진 거울처럼 여러 개의 캔버스가 연결된 작품이다. 심장과 입술, 눈동자가 중첩된 도상이나 연꽃 앞뒤로 눈과 입술이 혼합된 무리들은 형광 빛을 띤 눈부신 연두와 그에 대비되는 색상으로 인해 착란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새벽의 결혼]에 나오는 나무에 박힌 많은 눈들 또한 정신없이 윙윙거리는 듯하다. ● 그녀에 관한 그녀의 그림이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개체들을 일관성 있게 조율할 수 있는 완벽한 중개자 역할을 해야 할 자아가 부재하다. 신체의 내외부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난 육체들은 수많은 눈과 입을 가지고 있으며, 주체를 결집시키기 보다는 흩어지게 한다. 박유진의 그림에서 눈은 타자의 역할을 맡는다. 작가는 이 눈동자들이 '나를 보호해주기 위한 눈'이며, 타자는 '나를 지켜봐주고 연약한 나에게 힘이 되어준다'고 말한다. 눈들은 화면의 중심에 있든 배면에 깔리든, 우호적이든 배타적이든 종합된 시점을 가지지 않는다. 의식의 자기에로의 귀환은 늘 무의식이라는 이질적인 타자의 형태를 거치면서, 하나의 본질은 사라지고 끊임없는 유동성과 다양성으로 반짝인다. 라깡에 의하면 파편화된 신체 같은 분열된 형태는 히스테리와 환상의 구조를 결정한다. 박유진의 그림은 은유와 환유로 가득하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문장을 만들어 본다. 그것은 산문적이기 보다 시적이다. ● 박유진의 그림은 시처럼 하나의 의미에 고정되지 않고 끝없는 의미의 연쇄 고리를 형성한다. 주체의 욕망과 관련된 대상은 은유적으로 나타나지만, 욕망은 궁극적으로 충족시킬 수 없기에 또 다른 대상으로 자리를 바꾸는 환유가 나타난다. 그러한 의미에서 라깡은 주체가 은유와 환유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작품이 언어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주체의 구조와 관련되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라깡은 말을 해야만 인간이 될 수 있으며 인간 속에서 또 인간을 통해서 무의식이 말을 한다고 한다. 의식의 고리가 느슨해진 꿈처럼 전개되는 박유진의 그림은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 부른 타자의 무대에서 펼쳐진다. 무의식은 타자Other 속에서 말한다. 주체가 바로 그 장소, 즉 무의식 속에서 형성된다는 말은 주체는 형성되기 위해 분열을 그 대가로 치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타자의 욕망은 주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깡에 의하면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고, 타자에게 사랑받기를 갈구했던 여성은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 자신이 아닌 타자가 된다. 주체의 메시지는 나 아닌 타자의 장소로부터 흘러나온다. 서로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랑의 요구는 서로의 요구를 완전히 채워주기는 커녕, 오히려 주체를 욕망의 회로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것은 욕망의 근본적인 특징인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을 드러낸다. 동시에 끝없는 결핍 상태는 주체의 행복을 만들어내는 근본조건이기도 하다. 박유진의 작품에는 여성의 정념과 사랑이 가득하다. 작품[해야 할 말]에는 붉은 여인의 가슴에서 무엇인가 뭉게뭉게 피어나온다. 그것은 그녀의 애타는 마음을 표현한 것일까. 우산처럼 드리우고 있는, 톡 치면 터질 것 같은 씨앗주머니를 가진 식물이 그 아래에 있는 여인의 심경을 내비치고 있는 듯하다.

박유진_해야 할 말 Have to sa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18×26cm_2007
박유진_휴일의 오후 Afternoon of a holida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45.5×38cm_2007

'I will protect You'라는 전시부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다림, 이별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을 그리고 있다. 스케치북에 낙서하듯 그려진 많은 작품들이 사랑하는 연인들에 관련된 것이다. 그들은 뿌리가 같은 한 나무 위에 같이 있기도 하고, 광막한 우주 속 외로운 별 지구 위에 앉아있기도 한다. 수많은 타자들의 눈에 에워싸여 있으며, 뻥 뚫린 가슴으로 그려져 있는 연인의 모습은 사랑의 과정이 녹록치 않음을 예시한다. 두개의 개체가 떡잎처럼 붙어있는 이미지는 사랑에 관한 절실한 희망으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정신분석학자 라깡은 스무 살 이래로 오직 사랑이라는 주제를 놓고 얘기한 철학자들을 탐색해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욕망의 원인 즉 욕망을 일으키게 만드는 대상은 사랑의 행위를 낳는다. 라깡은 인간의 사유가 철학적 전통 대신 희열jouissance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 중요한 것은 존재의 철학이 아니라, 존재의 희열인 것이다. 존재에 반대되는 것은 의미이다. 그리고 이 의미는 희열, 즉 육체의 희열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라깡의 주장이다. 그가 말하는 희열은 남근phallus을 넘어선다. 여성에게는 그녀에게 고유한 희열이라는 게 있다. 그녀가 명확히 그것을 의식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박유진의 작품에서 여성의 무의식과 연결된 타자는 이처럼 신비로운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욕망의 여정이 거쳐서 도달될 신비로운 합일은 끝없이 연기된다. 애초에 성과 성의 대립관계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깡의 이 대담한 주장은 하나 됨에 대한 환상을 거부한다는 의미가 있다. 에로스는 둘이 녹아 하나가 되는 용해로서, 거대한 다수로부터 차근차근히 하나를 만들어가는 경향이다. 그러나 라깡은 여성의 본질은 전체(혹은 하나)가 아니라고 말한다. ● 박유진의 그림에 내재한 여성적 희열은 전부가all가 아닌 존재, 즉 보완적complementary인 것이 아닌 덧붙여지는supplementary것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남성과 여성이 음양의 관계가 아니라 동질이상(同質異像)의 면모를 띄고 있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녀의 그림에서 남녀는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성징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라깡은 [사랑의 편지]에서 영혼이 영혼을 갈망하는 연애에서 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성은 중요하지 않다. 합(合)이란 철학이 꾸는 달콤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에서 영혼이란 오직 세상을 직면하는데 필요한 용기와 인내를 통해서만 사유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 앞으로 헤쳐 나가야할 난관이 더 많을 젊은 작가 박유진이 사랑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서 무의식적으로 염두에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선영

Vol.20070927a | 박유진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