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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03_월요일_05:00pm
참여작가_김병택_김숙빈_김태삼_나명규_박홍수_손봉채_이구용_이동환_조정태
기획_임선진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2가 7-1번지 Tel. 062_222_3276 artmuse.gjcity.net
『未完의 不惑_힘』展은 불혹의 시기에 접어든 아홉 명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그들 각각의 분화된 정체성正體性을 통해 80년대 이후 광주미술이 지나온 자취를 되새기며 앞으로 향방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회다. 또한 이 전시는 제목에서 시사하듯, 완성되지 않은 불혹의 역동성과 특질, 그리고 상충相沖되는 힘의 바탕이 될 '젊은 시대정신'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는 '불혹'의 의미가 공자가 말했던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세상의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고전적인 해석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 오히려 현대사회는 마흔 이후 30년을 '서드 에이지 The Third Age : 인생의 2차 성장을 통해 자기실현을 추구해 가는 시기'라 명명하며 삶의 한복판에 위치한, 미지의 광활한 시간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중요한 여정이자 신선한 역할모델을 창조하는 시기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 작가 아홉 명은 '서드 에이지'의 첫 시간인 '未完의 不惑'을 맞이한 가운데 작업 속에서 '미지의 항해를 가다, 멈추고 쉬었다'를 반복하며 계속하는 중이다. ● 이번 전시에서 구성된 아홉 명의 작가들은 광주미술계의 중간세대 한 축으로 삼을만한 위치에 있는 작가들로 80년대, 스크럼으로 민주화의 마침표를 찍은 세대로서 유독 출발선의 공유가 많았다. 예술과 사회를 고민하며 현장에서 20대 열정을 쏟았고, 90년대 이후 국제화의 열기와 미술문화의 호황으로 현대미술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크고 작은 전시회와 공모전, 미술상 제도를 통해 작가로서의 역량을 검증받으며 광주화단의 한 범주로 자리잡게 되었다. ● 이러한 경험의 특수성과 보편성은 아홉 명 작가들의 자생력을 갖게 하는 긍정적인 바탕이 된다. 하지만 자칫 폐쇄적으로 매몰될 수 있는 위험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학연 지연으로 엮어지는 친분과 동호회 중심으로 움직이게 마련인 기존의 부정적인 관행을 비켜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광주화단의 축소판으로 여겨질 수 있는 한 단면이다. 그 한복판에서 때때로 흔들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 한편 미술계 폐단의 구체적 사례로 끊임없이 거론됐던 공모전과 미술상 제도의 선정 여부와 상관없이 '끼리끼리' 식의 관계 중심으로 움직여 왔던 기존 화단에 대한 비판과 거부로 '탈-줄서기'화를 시도하며 자생력과 차별성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성장하는 30대를 지나왔다. 20여년 창작활동에서 성공과 좌절을 맛보며 불혹의 시기로 접어든 지금, 그들은 성찰로서 서로를 응시하며 이후 새로운 가치와 작업 양상을 생산적으로 모색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보편적인 삶 속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생활인으로서의 생존의 문제, 마흔 즈음에 나타나는 정서적, 심리적 갈등과 허기로부터 그들 역시 자유롭지 않다. ● 이번 전시는 이러한, '미완의 불혹'이라는 마흔 살의 물리적, 심리적 테두리 안에서 아홉 명 작가들의 시선으로 나름대로 설정한 '젊은 시대정신'을 각자 방식으로 살펴보고 풀어낸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이 시대에 무엇을 목격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미술인의 힘이라면 시대를 통찰하는 '시대정신'은 인간, 자연, 생명, 환경, 예술, 전통, 가족, 행복, 광주정신, 남도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발산함으로써 그 가치에 대한 소통과 공존을 모색하고 건강한 상생력相生力을 제안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 특히, 아카이브 '흔적과 기억'은 작가들의 삶과 광주(미술) 역사 20년의 뿌리를 더듬어보며 광주화단의 중간 세대로서 광주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성찰하고 우리 모두가 바라는 내일을 위한 보편적 희망을 담아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지역미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것으로 '젊은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미술인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 이는 '자기 혼자 빛나는 작가는 없다'는 말에서 출발한다. 아홉 명 작가들이 받은 역사의 영향, 작가들 내면에 축적되어 온 관계, 곧 그들을 만들어 낸 역사와 사람들과의 연대감,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고 만들어 내는 조화와 균형, 창조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번 전시가 지난 20여 년간 광주를 관통하며 명멸明滅을 반복한 수많은 선배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지금은 사라져가는 혹은 잊혀져가는 작가들과 이후 세대가 함께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실천 매개의 장場이 되고자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시 구성 ● 이번 전시의 '젊은 시대정신'은 두 개의 프로젝트 PROJECT로 설정하였다. 프로젝트 Ⅰ은 '흔적과 기억'이라는 통시성通時性의 공간을, 프로젝트 Ⅱ는 '미완의 불혹_힘'을 보여주는 현재의 공간, 즉 공시성共時性의 영역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기획자와 작가들은 2006년 12월부터 총 여섯 차례의 회의와 토론 과정을 거쳐 준비 실행하였다. 또한 지난 6월 5일(화) 대인동 '대안공간'에서 30~40대 작가들을 중심으로 광주비엔날레·미술관·갤러리 전시 관계자들과 함께『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젊은 시대정신', 무엇으로 만드는가』를 주제로 '동시대미술인을 위한 난상토론'(사진)을 열기도 했다. 토론 참가자들은 '젊은 시대정신'의 본질과 시대정신을 가진 미술인의 모습,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문화·예술적 가치, 21세기 주요 쟁점인 '세계화'와 지역미술인들의 자생력, 현대미술과 지역미술의 현재, 80년 5월 이후 광주미술의 발자취 등에 대해 각자 발언하고 질의, 응답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 같은 과정은 아홉 명 작가들만의, 그들만을 위한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당위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세대간, 소통과 공존·교류를 위한 마음의 창(以心傳心의 場)으로 미래 광주를 꿈꿔보자는 취지에서다. PROJECTⅠ ● 흔적과 기억은 아홉 명 작가들의 20~30대가 녹아든 80~90년대의 작업사, 그리고 광주(미술) 역사 20년의 뿌리를 찾아보는 아카이브 전시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삶이자 토대가 되는 가족, 친구, 작품, 개인전 팜프렛, 책과 편지, 음악, 작업실 풍경, 드로잉 등을 대상으로, 작가들의 눈에 비친 광주(역사)와 광주 사람들, 광주정신 그리고 그 속의 '나'의 흔적과 기억들을 들춰보았다. 작업일지와 글, 팜프렛, 사진, 영상, 평면미술, 현장설치 등으로 지난 20년의 '흔적과 기억'은 작가들에 의해 재탄생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상 촬영과 편집을 맡은 나명규 작가와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원활한 전시진행을 위해 전시 개념도를 만든 조정태 작가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PROJECT Ⅱ ● 未完의 不惑_힘은 '젊은 시대정신'에 대한 아홉 명 작가들의 시선으로 분화되고 진화한 정체성으로 확산된 현 작업세계를 보여주는 전시다. '정체성'은 흐르는 것이고 그 형성은 계속해서 진행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작가들은 삶에 천착穿鑿한 저마다의 변동하는 연속체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모색하면서 작가로서의 현 정체성과 미지를 향한 역동성을 드러낸다. 사적私的 욕망(성공, 권력, 행복 등)의 뒤틀어진 현실에 대한 시선에서부터 개인사와 가족사를 통한 존재의 본질, 혹은 인간과 자연,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 그리고 사회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 '광주'가 지향할 공공의 가치까지를 포괄하며 현재를 살아나가는 사람으로서 작가들의 비유와 상징이 두드러진 작품들을 만나보는 자리다.
김병택은 일상에서 출발하는 미학적 관점을 섬세한 감수성과 주제의식으로 포착하는데 충실한 작가다. 선배들에게서 되 물림 받은 서방사거리 호박화실을 묘사한「새벽」가족이야기를 보여준「사모곡」「아버지」「가족도」무분별한 개발 제일주의가 부른 부실공사들의 대형 참사 이후를 나타낸「우리시대 자화상」80년 5월 상무대와 오늘날 상무지구를 대비시킨「상무지구 소견」등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주변과 일상의 곳곳을 가볍게 지나치지 않는다. ● 궁동 예술의 거리가 일상의 터전이기도 한 그에게 늘 오고가며 마주치는 과거 도청은 5·18이후 27년을 견디며 지탱해왔던 유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의 거점 공간으로 거듭 진화하려는 거대 담론 속에서 광산동 13번지로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는 도청 주변의 은행나무와 향나무, 건물 등은 도청의 역사성과 현재, 미래지향성이 무엇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탐색하지 않을 수 없는 대상물이다. ● 작가는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나가는 은행나무와 불꽃처럼 타오르는 향나무가 지난 역사와 이후 광주와 사람들을 지켜주는 버팀목으로서의 신목神木처럼 변함없이 건재하고 우뚝 치솟기를 희망하고 있는 듯 하다. 「신목神木-광장의 기억」「불꽃처럼」「그날의 기억-도청」을 통해 그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만들어 가는 공동 창조자로서의 동질성 혹은 연대감을 찾아낸 것처럼 보인다.
김숙빈은 환경문제와 자연 생태계 파괴에 따른 폐해를 고발하고 경고하며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주제의식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작가다. '정크 아트Junk Art'로 대변되는 그의 설치작품들은「구원」「적색경보」「고속질주」에서 보여준 것 처럼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부품 같은 금속폐품 재료를 활용해 동물의 신체 일부가 되거나 자연물의 형상으로 전이돼 나타난다. 현대문명의 이기로 인한 섬뜩한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고속질주」에서 그는 문명의 기초가 되는 아스팔트를 겹겹의 층으로 형성시켜 그 위에 투명 수지로 화려한 도시문명을 상징하는 고양이 몸체를 형상화 시켰다. 하지만, 그 몸을 지탱시키는 발을 쇠붙이로 제작함으로써 문명의 역기능을 극명하게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형상을 단순화시킨 대신 투명수지를 결합시켜 1년 이상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작업 과정을 거쳐 공간을 점유하는 고전 조각의 특성인 질량감을 되살리고 있다. ● 이번 전시에서 시선을 끄는 또 하나 작품이「그날의 흔적을...」이다. 대학 졸업 작품으로 제작했지만 당시 80년 광주를 주제로 한 작품 전시를 불온하게 여긴 학교 측의 반대로 전시되지 못한 작품이다. 오랫만에 만나보는 고전조각의 원형을 음미할 반가운 기회가 될 것이다.
김태삼은 민중미술 현장의 한 복판에서 부조리한 시대 곳곳을, 세상속의 사람 면면을 해학적으로 때론 직설적으로 작품을 선보였던 작가다. 2004년 '오월전'이후 발산할 수 있었던 모든 에너지와 그 원천을 소진했다고 판단한 그가 약 2년 6개월간의 휴식기를 거쳐, 신작「병원의 어머니」「자화상」「친구」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병상에서 힘겨운 몸을 이끌고 환자복 대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노모를 바라보며, 가장 친한 친구를, 그리고 자신의 알몸을 대상화시켜 들여다보며 작가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일까. ● 인간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때 자신을 포함한 가장 가까운 주변부터 살펴보게 마련이다. 개인을 둘러싼 가족과 주변 환경을 통해 되돌아본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은 그가 위치한 현재를 짚어보는 필연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과거와는 또 다른 에너지를 충전시키고자 하는 그의 바람대로 새로운 각오와 다짐의 한 지점을 선보이는 작품들로 여겨본다 해도 무방할 것 같다. ● 영상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와 오부제로 결합해 세련되게 포장된 작품들이 넘쳐나는 현대미술 지형 속에서, 구태의연하고 촌스러운(!) 평면 사실주의 회화 기법에 의한 작품들이라고, 혹자或者는 폄하할지 모른다. ● 그럼에도 이번 전시에서 그가 취사선택한 구작「방문객」두 작품(사실 그의 구작들 가운데 호평을 받았던-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한 사실적 표현기법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을 아예 제외시키고) 역시 신작들과 일맥상통한다.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과 역사의 빈자리를 메우는,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소박하고 단순하게 표현한 작품들이다. 한 시절을 풍미했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정과 사회에서 붕 떠버린 아저씨 아줌마의 나른한 눈빛과 느긋한 몸짓 속에서 오늘을 새롭게 맞이하려는 작가의 홀가분하고 여유로운 마음이 감지된다. 앞으로 그가 바라보게 될 새로운 세계를 기대한다.
나명규는 영상, 설치, 평면, 미니어쳐miniature(축소모형) 등 다양한 매체 활용과 실험으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다. 천위에 손바느질 한「콤플렉스」와 「상생」, 나무와 그래프로 표현한「육체적 내구성에 관한 테스트」영상설치「존재」등에서 보여지듯 상황에 따라 취합한 재료들을 엮어서 압축한 그의 작업들은 그가 만나는 세상의 어떤 것에 대한 관찰자이면서 간섭자이고 싶은 그의 자아를 반영한다. 섬세하고 서정적이면서도 드라이dry하고 간결한「존재-비상 2007」은 작가 의도를 바디아트Body Arts 작업 개념과 결합시켜 선명하게 보여준다. ● 그의 바디아트 작업은 자신의 신체를 관찰자 입장에서 도구화(대상화)함으로써 객관적인 매개체로 전이시키고, 그 신체 안의 본질 혹은 정체성을 확인하고 분석함으로써 내면에 응축된 자아를 드러내고자 한다. ● 예술을 향해 자유롭게 비상飛翔하고자 하는 내적 갈망, 그러면서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심리적 현상(경제적으로 팍팍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갖게 되는 위축감 같은... 그렇지만 비관적이지 않다)을 신체적 몸짓으로 드러나는 외형적 요소들로 포착함으로써 현재 서있는 작가의 사회·공간적 자리매김을 꾸밈없이 표현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새삼 자신의 작업들을 삶의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는 듯 하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업에서 많이 등장하는 '신체적' 개념은 사색적이지만, 사실적이고 유희적 발상에 가까워 보인다.
박홍수는 오랜 기간 동안 자연과 인간문화를 탐색하면서 특히, 무형의 소리(音)가 지닌 한국적 정서에 주목하며 그 형상화에 대해 고심해 온 작가다. 풀과 바람이 어우러져 나오는 자연의 풍경소리와 진도 씻김굿이나 판소리로 집중되는 인간의 선율을 통해 그가 포착하고 싶은 작품 세계는 우리의 삶과 작가 내면에 존재하는 심안心眼 소리를 담는 조형의 표현으로 요약된다. ● 「律+興=sound...散調」에서 보여주는 것 역시, 아이들이 음악(소리)을 듣고 절로 어깨를 들썩이며 만들어낸 율동(律)과 춤(興)의 유기체적 관계가 드러난 작품이다. 이는 소리를 습득하는 과정을 통해 동심童心의 정서와 음악+놀이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강조되는 것으로, 소리(청각)에서 그림(시각)으로 전이하는 조형적 실천 행위가 된다. ● 이처럼 그의 작업은 음악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려는 색과 필선이라는 원초적인 형식의 결합으로 보는 이들과 함께 감성적 교감을 통해,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소리 속에 있음을 알게 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를 진지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자연(물 바람 꽃 구름 풀 하늘 바다 등)과 인간문화의 원형을 통해 위안을 삼고자 하는 작가 의식이 세밀하게 드러난 작품「空인+時...내일」에서는 과거를 통해 인간들이 취하면 좋을 생성과 소멸의 미학적 가치를 찾아가려는 작가의 염원이 담겨있기도 하다. ● 실험적인 기법으로 다양한 작업방식을 보여 왔던 그는 다시 화선지와 먹, 물감으로 매체 활용을 최소화할 생각이다. 이는 전통과 현재 그 사이에서 내일로 이어지는 유기체적 원형에 대해 성찰하고 고뇌하는 작가의 새로운 모색 지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손봉채는 현대미술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 활용으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작가다. 영상 설치 사진 평면 등의 영역을 넘나들며 최근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광주와 남도 역사를 둘러싼 과거의 사건과 사고 현장이다. ● 하지만 물리적인 시간을 통해 기록되어진 사실史實을 정면에서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역사적 장소의 현재 모습(아름답고 서정적인 풍경으로 나타나는)을 바탕으로, 그 현장 뒤로 보이지 않는 불행했던 과거사를 상기시켜주는 감성적 표현 행위를 통해서다. 한국전쟁 당시 죽창으로 주민들이 학살당했던 담양 대나무 숲의 바람으로 흔들리는 듯한 한적한 풍경을 보여주는「대숲의 속삭임」에서처럼, 비극적인 이야기가 숨어있는 당시 자리를 사진으로 찍은 후 그 이미지를 여러 장의 투명 아크릴 위에 전사傳寫 시켜 겹겹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 이 같은 그의 작품은 보는 시점, 빛의 양과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입체감을 살리면서도 수묵의 농담으로 표현한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묘한 여운을 전해준다. 자전거 작업과 같은 기계적 설치물을 구조화 하거나 그림자 작업과 같은 시각적 이미지 컷을 공간분할 해 작가 의도를 다양한 형식으로 연출시켜온 그의 작업 과정을 기억하는 감상자라면,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존재의 기억」「존재의 증거」 에서 또 다른 그의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구용에게 산은 회화적으로 접근하는 소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가 그리는 산들은 외형적 이미지 보다는 산에 관한 확장된 사유의 틀이라는 점에서 여러 주제를 펼쳐 보이는 특별한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탄생과 성장, 죽음 그리고 자정하며 순환하기 까지 끊임없이 유동하는 산수자연을 통해 작가는 삶의 양식과 생명의 근원을 발견한다. 또한 그 산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 "... 태초의 기운의 가락을 느낄 수 있는 산의 능선과 인간의 얇은 재주로 제법 그럴싸하게 지어 올린 고층 건물의 기하학적인 선의 교차 속에서 인간의 욕망의 높이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느껴본다 ... 그러나 산을 오르며 내면에 잠재된 우주적 경험을 체험하게 된다"고 자신의 작업노트에서 밝힌 것처럼 이구용의 산은 욕망과 모순으로 점철된 인간사를 정화시키는 개인의 성소이자 상징이며 삶의 본질을 성찰하고 바로잡아가는 재생 공간이 되는 것이다. ● 이처럼 자정 공간이자 사계四季를 통해 순환 시간을 가지며 인간에게 다가서는 다양한 산의 모습을 그는 필획을 중심으로 한 단순하고 즉흥적인 선을 사용해 산의 기운과 정신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신작「산_결, 여름」, 구작「신산神山」과「청명-봄산」에서 드러나듯 중첩된 필적으로 작가의 내적 기운과 정신세계가 맞닿는 산의 근원적 형상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화의 정체성 문제에도 큰 관심을 두고 고민하는 그가 이후 시도하고자 하는 영상 매체와의 결합을 통한 조형언어가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다.
이동환은 수년간 「흔들리는 대명사」작업을 통해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의 한 개인이 갖는 무력감과 방황, 혼돈 등을 흔들리는 자화상으로 보여주었다. 신작「흔들리는 대명사-환영」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이전보다 훨씬 심화된 문제의식으로 다가서려는 듯 보인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위력으로 대표되는 국가와 민족, 사회에 대해 그리고 그 속에서 관계를 맺는 개인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 작품에 등장하는 만국기는 어린시절 학교 운동회에서 보아왔던 추억의 대상물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의지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절대 구조(권력)를 대변하는 자본(시장)의 힘과 정부권력의 무게를 뜻한다. 강대국과 약소국이 갈리는 것처럼, 돈과 학벌 같은 외적 조건이 더욱 중요시되는 지식자본주의 사회로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심리적인 측면에서 심각한 억압으로 작용하는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 이처럼 삶의 질의 높고 낮음을 구분하는데 중요한 담보가 되는 외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연일 터져 나오는 학력 위조 사태 역시, 학벌중심의 사회구조가 낳은 부정적인 이면을 반영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 한들 거짓말을 해서라도 중심부로 편입해서 무리 지어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사적私的 욕망과 허영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양羊을 소재로 한 신작「병적인 웃음」은 순한 양, 희생양으로 이미지화 된 양의 탈을 쓰고 내면의 욕망을 감추면서 배회하는 양(우리 자신)들의 이중생활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 의식이라고 유추해본다.
조정태는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집요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작가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때론 행위를 통해서 작가 의식을 표현하고 발언하는 미술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는 다양한 개별적 감성과 의지, 사건들 그리고 역사 현장들과 사람들이 표현되곤 한다. 「달맞이꽃에게 1, 2」「황룡강 전투-강가에서」「겨울-구 망월묘역」에 이은 「인간세상」도 미술의 사회성과 인도주의적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다. ●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 「인간세상」은 시대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고 또한 존재에 대한 인식으로 불투명한 미래와 각박한 현실 속의 절박한 생존논리에 떠밀려 줄타기에 급급한 '시대의 불안 속에 부침浮沈하는 존재들'을 기괴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가방 끈의 길고 짧음 등으로 나타나는 동시대인들의 문제인식이 더 이상 새로운 이슈와 쟁점이 아닌 기묘한(!) 사회가 돼버린 지금, 거꾸로 박힌 십자가가 상징하는 것처럼 우리 시대의 잔혹한 병리 현상을 극적으로 반추하고 응축시켜 보여주고 있다. ● 작가가 빛과 색채의 유희를 벗어난 점이나 과감한 생략을 통해 인간세상 속속들이 그 많은 내막을 과장된 인간의 형태에 초점을 맞춰 간단명료하게 그린 것도 주제에 대한 의도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그의 이 같은 표현 양식이 감상자에게 자신의 의도를 강렬하게 전달하고자 극대화 시켰던 것만큼, 보다 많은 사람들이 큰 부담 없이 그의 시선에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아홉 명 작가들을 통해 '젊은 시대정신'에 대한 각자의 시선과 다양한 창작의식 그리고 표현방식을 만나보았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이 마흔 살 지역작가들을 대표하거나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전시는 루쉰의 '애초에 길이란 없다. 여럿이 함께 가면 그것이 길이 된다'라는 말처럼, 작가들의 인문·사회과학적, 미학적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긴장하고 상충相沖하는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소통하고 공존하는 하나의 실천 과정이었음을 말하고 싶다. ■ 임선진
Vol.20070926e | 未完의 不惑_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