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세계의 조화

정환선 회화展   2007_0926 ▶ 2007_1002

정환선_주차금지_한지에 수묵담채, 아크릴, 유채_175.5×121.5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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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26_수요일_05:00pm

학고재아트센터 1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39_4937 www.hakgojae.com

판화작업으로 익숙했던 정환선의 근작은 페인팅이다. 그녀는 자기 주변의 정경을 그렸다. 삶의 동선인 돈암동, 삼선교, 안암동의 골목길이나 담벼락에서 만난 대상들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일상풍경에서 흔하게 접하는 식물을 그렸다. 길거리나 집안 혹은 담벼락에 기생하는 비근한 식물/화분들이 그것이다. 우리들의 허접한 일상의 구석진 곳에 시들하고 볼품없이 자라는 식물이나 화분들은 누추하고 후줄근한 우리네 살림살이와 함께 하고 있는 생명의 초상이다. 그 초상이 더러 가난하고 파리해보이기도 한데 그것들은 도시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적응하며 살아가는 식물/자연, 생명체의 변질의 모습이기도 하며 작가 자신의 실존적 초상이 투사된 대상이기도 하다. 몇 점의 난 그림도 눈에 들어온다. 실내 혹은 화장대나 콘솔 위에 놓인 그런 양난들이다. 대개 전시 오프닝이나 개업식 혹은 승진이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선물로 보내는 그런 난이다. 동양화의 전형적인 아이콘이자 유교 이념의 표상이고 선비의 품격과 정신세계를 은유하는 난이 이제는 한낱 선물용이나 장식용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에 대한 풍자적 성격이 강하다는 생각이다.

정환선_2006년 안암동 목욕탕집 담_한지에 수묵, 아크릴, 유채_121.5×162.5cm_2007
정환선_2006년 동선동 골목집_한지에 수묵, 아크릴, 유채_127×190cm_2007

이 식물/화분들은 깨끗하게 마감된 배경을 바탕으로 해서 단촐하고 선명하게 그려졌다. 차갑고 서늘한 감정이 든다. 그 창백한 분위기에 순간 생명체가 환하게 자리잡고 있다. 어딘지 비현실감이 감도는 그런 정경이다. 풍경과 정물이 뒤섞여 있고 일상과 비현실이 공존하고 동양화와 서양화 기법이 마구 혼재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 사이로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한 것 같지만 그로부터 벗어나 작가가 임의로 연출한 부분들이 조금씩 몸을 연다.

정환선_원형과 그림자_한지에 수묵, 아크릴, 유채_143.5×121.8cm_2007
정환선_2007년 인사동 전시장_한지에 수묵, 아크릴, 유채_151×122cm_2007

어딘지 낯설다. 그 낯설음은 기법이나 소재에서 오는 게 아니라 결합과 조화에서 온다. 결합과 조화란 통합이나 균질을 전제로 한 것인데 오히려 그것이 어색함을 준다는 사실이 문제적이다. 정환선은 이질적이고 분리되거나 다르게 이해되어왔던 것들의 조화를 꿈꾼다. 이 전략적인 조화는 일종의 소통을 전제로 하고 만남과 대화를 근간으로 한다. 쉽게 말해 그녀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조화를 겨냥한다. 그러나 정작 그것은 동양화도 아니고 서양화도 아닌 그런 그림이 되었다. 동양과 서양이 화면과 시선에서 뒤섞이면서 기이한 공감각을 창출한다. 이 같은 결합과 조화는 이미 이전에 무수하게 진행되어왔다. 먹과 아크릴릭, 유화를 공존시키기도 하고 산수화와 풍경화를 믹서하기도 하는 등등 그런 예는 부지기수로 많다. 근대 이후 한국 미술사란 결국 그 같은 결합과 조화를 꿈꿔온 궤적일 것이다. 그래서 서양 현대미술의 화려한 외피에 동양정신이라 심오한 내면을 교묘하게 은닉했다고 주창되는 많은 작품들이 양산되어 왔다. 그것들은 완벽한 조화를 매끄럽게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은 공허한 내부에 흉내 낸 짝퉁의 외피만이 존재하는 그런 그림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면 정환선이 보여주는 이 그림이 의도하는 '의도적인 조화. 부조화'는 이전과 무엇이 다른가?

정환선_2006년 신림동 서씨댁 세 난_한지에 수묵, 아크릴, 유채_176×121.4cm_2006
정환선_2006년 염창동 이씨댁 분재_한지에 수묵담채, 아크릴, 유채_127.7×84.7cm_2006
정환선_2007년 신촌 카페_한지에 수묵, 아크릴, 유채_162.5×121.3cm_2007

작가는 먹과 한지, 아크릴과 유화를 한 화면에 혼용하고 있다. 식물을 그릴때는 수성인 동양화 매체를 사용하고 주변 환경 혹은 공산품을 묘사할 때는 아크릴과 유화를 사용하는 식이다. 살아있는 식물, 생명은 전통적인 동양화기법과 재료를 사용해 그리다가 나머지 부분은 유화나 아크릴 물감으로 가득 채우고 덧칠해서 그렸는데 이는 동양과 전통을 자연 생명체로 설정하고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도시풍경과 공산품은 서양을 표상하는 존재로 대상화했을 때 가능하다. 자연물은 동양적 사유를 반영하는 동양화 재료를 구사하고 서구 산업화와 과학의 산물인 현대의 문물은 서구적 사상이 반영된 서양화 재료를 구분해서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발상과 방법론은 독특해 보인다. 이렇게 서로 다른 표현방식이 한 화면에 공존하고 있은 모습, 자취는 실상 조화롭다기보다는 어딘지 이질적이고 낯설어 보인다. 그런데 이 같은 불편한 동거가 어쩌면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이고 우리 미술의 기이한 초상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동양적 정신이 결국 동양화와 그 재료에 녹아있고 반대로 서양의 사고와 논리는 서양화의 방법론과 재료의 특성에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그리고 미술에 대한 차별화 된 사고와 그 사고를 표현해왔던 재료가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비서구국가는 이전의 자신들의 전통적인 미술어법과 재료체험을 서구적 언어와 매체로 대체해온 역사를 겪어왔다. 그것인 모더니즘이고 근대화일 것이다. 어쩌면 한국현대미술사란 바로 그러한 궤적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정환선은 새삼 그렇게 서로 다른 차이를 무시되고 단일한 것으로 강제되고 억압되어온 그간의 역사에 대해 반문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간 당연시되어왔고 익숙해져버린 서구적 방법론과 매체인식을 버리고 이전의 전통적인 방법론으로 회귀하여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다른 길이 놓여져 있을까?

정환선_민화벽지와 정물_한지에 채색, 아크릴, 유채_135×97.7cm_2006
정환선_민화벽지와 화병_한지에 채색, 아크릴, 유채_158×97cm_2007

정환선이 말하고 싶은 것은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사고방식이 만나 다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조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그림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동시대의 현실적 과제이자 세계사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오늘의 새로운 현상은 이동, 이주다. 20세기는 차이가 존중되지 않고 자신과 다른 것들을 억압하고 배제해온 시간대였다. 그 세기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기가 열렸지만 여전히 지속되는 전쟁과 갈등, 문화와 종교와 민족과 빈부 차이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떤 다원적 조화의 가능성을 찾는 일이야 말로 동시대 문명의 핵심 과제이자 우리 현실 속 과제라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이행기의 극심한 혼란 속에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서구 세계의 표피만 보면서 살아가고 있고 심지어는 그 잣대로 자신을 재고 그에 맞추려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술 역시 그렇다. 그러나 진정코 세계가 공유하는 미술사조, 문화사조란 없다. 자신과 이곳의 현재적 삶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것이 작가의 일이자 차이와 구분, 배제와 억압을 지우고 모든 것을 통합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새로운 소통의 길을 열어나가야 되는 것이 오늘의 미술이고 또한 작가의 일이라는 사실을 정환선은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이 작품을 다시 보고 있다. ■ 박영택

Vol.20070926d | 정환선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