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7_0912_수요일_06:00pm
갤러리 얼 서울 강남구 신사동 532-2번지 진송빌딩 B1 Tel. 02_516_7573
갤러리얼은 려갤러리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이게 되는 추상표현주의 거장 울프 칸의 전시입니다. ● 려갤러리에서 갤러리 얼로 이름을 바꿈과 더불어 국내최초로 추상표현주의 거장 울프 칸의 초대전을 개최하게 됨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미국이 유럽의 야성을 무너뜨리고 세계미술시장의 중심역할을 맡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잭슨 폴락, 마크 로스코, 헬렌프랭켄 텔러, 모리스 루이스, 윌렘 드쿠닝 같은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작품들이 세계미술시장과 옥션에서 기록적 최고가를 경신하는 사실만을 보더라도 이번 울프 칸의 국내전시는 국내미술 애호가들에게 무척 귀하고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하겠습니다. 추상 표현주의자들 중 현존하는 마지막 거장인 그는 매작품마다 풍부하고도 가슴속 깊은 감동을 끌어냅니다. 무엇보다도 색감의 마술사라 평론가로부터 일컬어지듯 탁월한 아름다운 색감의 조화를 그만의 개성으로 다분히 서정적인 요소를 추상적으로 독특하게 그의 화폭 위에 거침없이 펼쳐냅니다. 거장의 인품과 생에 대한 무한한 정열을 가진 울프 칸은 올해 10월 80세를 맞이합니다. 이번 갤러리 얼 전시는 한국 최초의 그의 전시인 만큼 꼭 한국을 방문하고자 간절히 염원하였으나 지병악화로 인한 가족들의 극구 만류로 한국방문은 좌절되었습니다. 그러나 울프 칸 본인은 건강이 좋아지면 꼭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거장의 약속이 반드시 현실이 되길 기원하며, 국내 처음 선보이는 이번 전시가 그의 숨결과 혼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체험의 기회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그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서적 행복감과 그가 추구하는 자연의 아름다운 색감의 세계로 미술애호가 분들을 초대합니다. ● 신사동 가로수 길에 위치한 갤러리 얼에서는 9월 12일부터 미국 현대 추상표현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올라있는 울프 칸의 작품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울프 칸의 대담한 색채에 대한 표현은 로스코와 같은 세대의 추상표현주의를 열었던 그의 세련된 감각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풍경화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의 기회가 될 것이다. 울프 칸의 대표적인 유화와 파스텔 작품 3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울프 칸은 오늘날 미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로 살아있는 전설이라 일컬어진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서정적 요소는 그가 여느 다른 추상표현주의자와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는 특성이다. 그만의 독특한 추상표현주의적 방식으로 인한 그의 영향력으로 영화와 수많은 아트북들이 출간되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작가이다.. 울프 칸은 추상적인 요소와 합성시켜 대상을 구체화 시킨다. 마티스와 로스코의 대범한 색감의 묶음 같은 표현과 추상적 기법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정확한 색감을 혼합하여 대상을 창조해낸다. 매작품마다 풍부하고 깊고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색깔의 마술사라고 평론가로부터 일컬어지듯 탁월한 아름다운 색감의 조화를 그만의 기법으로 표현해낸다. 그는 정기적으로 전세계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고 있으며 2007년 5월조사 세계적인 미술시장조사기관에서 울프 칸을 세계현대미술작가 중 탑100위로 올려놓았다. 사실상 100위안에 들은 대다수 작가들은 마티스, 피카소, 앤디워홀 같은 대부분 작고한 작가들이었기에 그 사실은 이례적인 일로 미술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 갤러리 얼
이번 전시에서 펼쳐지는 대담하고 놀라운 울프 칸의 작품들에서는 오랫동안 그의 작품세계의 출발점이 되어 왔던 전원에서나 볼 수 있는 확트인 들판, 부드러운 숲, 덤불은 거의 사라지고 대신 상대적으로 규율이 없는 자연과 황량한 들판 자연의 생장에 맞먹는 상응치로써 읽혀지기를 원하는 흰색에 배치되는 강한 색상 역동적으로 풍부히 흐르는 다방향적 붓의 터치, 흔적들이 보여진다. 그것은 근작들이 울프 칸으로 하여금 은유적으로나 사실적으로도 그의 회화에서의 물리적 방법과 회화적 어휘를 확장시키도록 만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화풍의 특징적 교체를 뜻할 뿐 아니라 과거의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익숙히 보아왔던 것보다 더 작품방향에서 훨씬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이며 단정적인 반면 화폭에서 나타는 색깔은 이전보다도 풍부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이런 흔적들은 그가 관찰한 경험들을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강하게 환기 시켜줄 뿐 아니라 그 자신을 단순 관찰자로서 뿐 아니라 고집 세고 주장이 강한 예술가로서의 존재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어떤 작품에서는 기운찬 드로잉이 점점 탁하게 뒤엉켜 보일듯 말듯한 심연으로의 진입을 방해하는 반면 또 다른 작품에서는 단순한 손놀림의 스타카토 형식의 붓놀림과 끊어질 듯한 붓느낌이 무심한 수평적 색줄무늬로 작품속의 여러 다른 요소를 우연한 듯 묶어주는 역할도 한다. ●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들은 캔버스주변으로 밀려나 전통적으로 표현되어지는 풍경화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어떤 관련도 철저히 생각하여 심지어 제한적인 시각적 진입도 허용하지 않는 급속한 손짓이 반복되어 축적됨으로 창조자로서의 예술가의 고집스러운 면모를 공고히 한다. 또 한편으로는 울프 칸의 현혹적 지세의 변화무쌍하고 가공적인 내부로 쉽게 보는 이로 하여금 들어갈 수 있도록 상상을 허용하므로 상대적으로 열린 통로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의 근작에 베어드는 강렬한 빛의 감각과 톡 쏘듯 대비되는 색깔과 그의 빛과 함께 울프 칸의 작품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지만 그 작품들 속에는 뭔가 두드러지게 자유롭고 즉흥적인 요소들이 보인다. 여러 면에서 붓 터치에 대한 강조는 60년대 울프 칸 스스로가 심각하게 예술가로써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을 적 그의 초기작품들을 상기 시켜주기에 충분하다. 그의 작품세계의 초기 형성기에 그가 전통적으로 추상표현주의의 후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풍부하고 리드믹한 붓놀림은 그의 독립적이고 개성적인 기질의 근거를 둔 풍경화에 대한 집착과 잘 융화된다. 붓놀림이 강한 근작들에서는 그의 손놀림은 좀 더 요연하고 섬세하며 명확함과 희미함 사이에서의 느린 맥박이 심지어 가장 칙칙해 보이는 작품들에서도 새로운 투명도로써 존재한다. ● 울프 칸이 말하길. 나는 잔뜩 붓질한 작품들과 붓질을 한듯 만듯한 작품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내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근작의 붓질이 마구 뒤엉킨 풍경화에서는 그 두 가지를 구별해 내는 것이 어렵다. 붓질 가득한 작품이란 뒤엉킨 가지들과 가는 나무줄기들이 억척스럽게 정면에 넓게 펴진 공간을 형성하는 숲이 우거진 산허리를 암시하는 것들이란 말인가? 이런 준엄한 바리케이드를 친듯한 붓동작들은 자연세계에서 그 어떤 것을 작품이 환기시켜 주기 보다는 좀 더 시선을 뗄 수 없는 울퉁불퉁한 드로잉과 부러진 색깔들이 복잡한 일련의 사건으로 가득 차있거나 혹은 기만적으로 단순하고 반복된 붓터치로 이루어진 들판이 곧 붓질을 한 듯 만 듯한 그의 말대로 거의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작품들이란 말인가? ● 우리는 어떻게 촘촘히 들어선 나무들을 좀 더 고전적으로 정돈된 이미지로 분류해낼 수 있을까. 그것들은 마치 율동적인 수평적 붓놀림으로 얼기설기 꿰매어진 전체로 빛이 나고 모호한 배경들을 가까스로 가리고 있는 불가능하리만치 섬세하게 지어진 사원 앞의 열주들이 점점 희미하게 가늘어져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언뜻 처음 보아서는 복잡하지 않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심도와 어떤 영상미를 미묘하게 창조해내는 다시 말해서 화폭을 종횡무진하는 색의 이동적 현상으로 복잡성을 띄는 동시에 표면적으로는 선이자 회화이기를 선언하고 있다. 심지어 가장 평온하고 명백하게 정서적인 작품들도 극도로 예민하게 반복되는 붓질이 축척된 형태로 존재하는 반면 가장 비타협적이고 호통치듯 겹겹이 묘사된 구성 그 자체도 명료함의 순간으로 용해된다. 울프칸에게 대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 준 과거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크기에 상관없이 그의 근작들은 익숙한 것들과 상상한 것들 사이에서나 현실적인 것과 꿈의 사이, 심지어 꼼꼼히 관찰되는 것들과 추상적인 것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는 영역을 탐구한다. ● 그의 가장 감동을 주는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자 그 신작들도 속해질 수 있는 범주는 바로 이런 이중성이다. 아무리 단순화 되어 있더라도 그의 심상은 자연 그대로 숨김이 없으며 대개는 이해하기가 평이하다. 우리는 진정한 세상을 통한 경험에 비추어 울프칸의 작품에서 오는 느낌을 즉각 이해해 낼 수 있다. 그의 색깔이 주는 멋은 실제로 그의 작품이 보는이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매력의 조그만 일부에 지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두드러지게 그의 작품을 구별시키는 것은 울프 칸 자신이 그의 주제를 암시하는 방법에 있어서 아무것도 있는 그대로 직역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울프 칸의 우주는 질서정연하다. 과거의 그의 작품들보다 더 풍부한 아름다움을 표현함에 모자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성적으로 확실히 울프칸다운 감각이 뚜렷한 근간을 이룸에도 불구하고 그의 최근작들은 단정적으로 색깔이 주는 최대힘을 발휘하듯 격렬하고 갈겨쓰듯 보여지는 선과 붓터치와 함께 감정적 동요를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울프칸은 이런 현상을 오늘날 그 자신 역시 살고 있는 세상의 상황에 비추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 "순간의 신경 불안증세가 나의 작품에 반영된다. 고 그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단한 붓작업들의 리듬과 다소 과장된 듯 신랄한 색깔의 조화가 미묘한 불안감을 암시할 때조차도 궁극적으로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울프칸이 염원하는 세계는 조화와 고요함과 찬란한 빛이 있는 세계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런 이미지들이 아무리 확연하고 익숙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상기시켜준다 하더라도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회화적 가치와 진가들이 항상 이런 암시와 연상들을 압도해버린다. 그의 작품을 보면 볼수록 보는 이로 하여금 확연하게 위안을 주는 연상적 사물들을 단순히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방법으로 마술을 부리듯 화폭에 그려낸다. 전설적인 한스 호프만의 제자로 호프만의 가르침과 스타일이 그의 예술세계의 결정적 진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데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한스 호프만의 작품세계는 공간의 기본원칙으로서의 형태와색깔의 역할에 토대하고 있으며 또한 표면의 강렬한 색깔덩어리에 의해 재현되는 실체적이고 명백한 드라마는 우주에 대한 좀 더 큰 사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데, 이런 영향이 그의 작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어딘지 특별한 곳일 것 같은 느낌을 압도적 느낌을 주는 이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표현된 이미지들은 줄여져있거나 단순하게 보일 수 있으며 결코 보편적이거나 도식적이지 않다. 대신 그 이미지들은 실제적인 어떤 곳을 언급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보는 이로 하여금 확신케 한다. ● "나는 전처럼 자연을 보고 작품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작품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여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나의 작품에서 익숙한 것들을 읽어낸다. 그것들은 아마도 내가 백번정도는 지나왔던 곳들이다. 그런 곳들을 나의 회화에서 내 스스로 인지해낸다. 2007년 올해로 울프칸은 80세를 맞이한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의 근작들은 공식적으로 그의 '후기스타일'이라해도 좋으리라...... '후기스타일'이란 천재적이고 나이든 거장들에게만 주어지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초기 작품들의 함축적인 사상을 대담히 확장시키든지 혹은 새로운 가능성들에 대한 무모한 탐구의 형태로 확연히 나타난다. 가장 자극적인 '후기스타일'작품이란 그 어떤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거침없이 표현되어서 긴 예술가로서의 여정에 걸쳐 창작하고 바라보고 생각하게 되는 축적된 경험들이 너무나 강렬하여 작품이 어떻게 되어질 수도 있고 혹은 어떻게 되어야만 한다는 모든 선입견들을 다 지워버릴 정도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최근 스타일이라 연관되는 것들은 작가가 너무 많이 알고 너무나 많이 하였던 것이다. 그들 자신 외에 그 누구를 기쁘게 하거나 그 어떤 것도 기꺼이 거부하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이런 것들이 울프칸의 근작에서의 즉흥성과 스케일, 느껴지는 에너지 또한 그의 화법적 팽창을 과감히 생략하고 어떠한 형식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가 색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울프 칸은 나는 나름대로 내 자신에게 새기는 좌우명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작품에서 의도됐던 내용의 10배정도를 그 작품이 담고 있지 않는 한 진정한 예술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 나는 감히 말하건대 그의 작품특성들을 공개적으로나 추정적으로나 양으로 재어보려는 시도는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의 작품들은 시각적 즐거움이나 영감적 느낌에서나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것이 울프 칸이 의도했던 것의 10배라면 그보다 더 훨씬 더 많은 것을 보는 이에게 아낌없이 주고 있다. 여하튼 간에 그의 작품은 가장 놀랍고도 그 어느 때보다도 시각적 만족을 주는 작품인 동시에 그의 "후기스타일"을 확연히 내포하고 있는 사실에 우리 모두는 이 대가에게 진정한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다. ■ 카렌 윌킨
Vol.20070916e | 울프 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