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RROR

김창겸 개인展   2007_0912 ▶ 2007_1031

김창겸_room of mirrors_2채널 비디오설치_00:07:00_2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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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12_수요일_05: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비나미술관 서울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02_736_4371 www.savinamuseum.com

김창겸의 작업_합성되고 편집된 현실과 하이포리얼리티 ● 김창겸의 근작은 기왕의 비디오 설치작업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킨 일련의 작업들과 함께 합성사진작업으로 이뤄져 있다.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사진작업은 주로 컴퓨터 합성사진과, 비디오 설치작업에서의 스틸이미지이다. 외관상으론 비디오설치작업과 사진작업이 서로 구별돼 보이지만, 합성이라는 기술적 프로세스의 결과물이란 점에선 서로 통한다. 그러니까 비디오설치작업에서의 영상 자체가 합성과 편집에 의한 것이고, 또한 이마저도 작가가 직접 제작한 오브제 위에다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으로써 재차 오브제와 영상이 합성된 것이다. 그리고 일련의 사진작업들 또한 하나의 화면 안에 똑같은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서로 이질적이고 무관계한 이미지들의 편린들이 자연스레 서로 어우러지고 결합되고 합성돼 있다. ● 이처럼 비디오 설치작업이나 사진작업에서의 합성이 갖는 기술적인 프로세스와 그 결과물인 합성된 이미지야말로 김창겸의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할 만하다. 작가는 이처럼 합성된 이미지로써 감각적 현실과 가상현실이 서로 구별 되지 않는, 가상적 상황 즉 일종의 시뮬라크라로 부를만한 고도로 인공화 된 현실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김창겸_memory in the mirror_비디오설치_00:09:20_2007

비디오설치작업 ● 비디오설치작업으론「still life」(러닝타임 5분 50초),「memory in the mirror」(러닝타임 9분 20초),「water shadow 4」(러닝타임 6분 40초),「water shadow-the four seasons」(러닝타임 14분) 등 4점과, 여기에 각각 남자와 여자를 소재로 하여 서로 마주 보도록 설치한 2채널 비디오 작품「room of mirror 1. 2」(각 러닝타임 7분) 1점을 포함하여, 총 5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 이 일련의 비디오설치작품들은 사실상 이 전시의 메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영상과 함께 설치의 경향성을 아우른다. 이는 단순히 영상 그 자체의 매체적 특수성에 천착한 여타의 비디오 혹은 영상작가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데, 그러니까 작가의 작업은 직접 오브제를 제작하고, 그 위에다 영상을 투사하는 식이다. 예컨대 석고 주형을 만든 연후에, 이를 이용하여 TV나 어항(수조), 거울이나 돌확 그리고 각종 병 등의 오브제를 실물 그대로 떠낸다. 처음에는 석고를 소재로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폴리 소재를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석고나 폴리 소재의 오브제가 만들어지는데, 이는 그대로 정통 조각에서의 주형기법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각 고유의 물질감이나 실물감이야말로 작가의 영상작업을 특징짓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 한편으론 작가의 오브제들은 일종의 유사 오브제로 정의할 만한 것으로서, 그 형태가 실물을 닮았지만 실물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실물의 형태가 그대로 석고나 폴리 소재의 하얀 덩어리로 전이되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일종의 유사정물로 범주화할만한 오브제를 만든 연후에, 그 정물을 포함하는 영상을 따로 제작한다. 다시 말해서, 거울 형태의 오브제와, 실물 거울을 포함하는 영상 이미지를 제작한 연후에, 그 오브제 위에다가 이미지를 투사해서 일치시키는 것이다. ● 이렇게 오브제 위에 투사된 영상물, 즉 형태의 표면에 투사된 이미지는 실제와 허구, 실상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면서 사물과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과 그 견고한 확신을 흔들어 놓게 된다. 오브제를 보자면 단지 그 형태가 실물과 닮아 있을 뿐, 그 외의 실물과의 어떠한 유사성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가하면 영상물 또한 그 이미지가 실물과 닮아 있을 뿐, 정작 실물을 실물이게 해주는 물질감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브제나 영상물이 실물과 갖는 관계는 말하자면 결여와 결핍이며(실물의 일면만을 모방한 것), 따라서 오브제든 영상물이든 실물을 대리하고 보충하는 관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작가의 작업은 가상(오브제)과 가상(영상 이미지)이 중첩되고, 시뮬라크라와 시뮬라크라가 포개져서 리얼리티를 넘어서는 하이포리얼리티 환경을 구현해낸다(이는 논리학에서 부정과 부정이 만나 절대긍정의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과도 같다). 더불어 그 환경을 마치 실제처럼 추체험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이처럼 감각적 현실을 넘어서는 환경의 구현이야말로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논리이다. 그 결과 디지털처럼 정교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만큼은 아날로그적이란 점에서 작가의 작업은 세련된 인상과 함께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그 세부를 보면, 오브제 위에다가 영상을 투사한「memory in the mirror」와, 순수한 영상만으로 거울을 비롯한 배경화면과 상황을 연출하고 재현한「room of mirror 1. 2」에서 거울이 갖는 의미와 함께, 그 거울을 통해 재생된 기억과 추억의 본성을 다루고 있다.

김창겸_water shadow 4_비디오설치_00:06:40_2006

거울이 반영의 성질을 갖는다는 점에서 작품 속에서 거울은 일종의 자기반성적인 성질과 그 계기를 암시한다. 사람들은 거울 앞에서 저마다의 기억과 추억을 되살려내려 하지만, 거울은 다만 불완전한 기억과 조각난 추억의 편린들을 되돌려줄 뿐이다. 거울 속 장면과 그 거울이 놓인 배경화면이 불일치하며, 더욱이 이 모든 장면과 겉도는 또 다른 그림자마저 가세하면서 화면은 이중 삼중의 결로 중첩 되고, 따라서 기억의 실체는 쉽게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더욱이 작가는 멀쩡한 거울이 순식간에 깨지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기억과 추억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킨다. 이로써 하나의 기억이 다른 기억과 뒤섞이고, 하나의 추억 속에 다른 추억이 끼어들게 되고, 일관된 서사는커녕 마치 깨진 거울처럼 조각난 기억의 무분별한 파편들과 이에 따른 이질적이고 혼미하고 불완전한 서사를 겨우 복원해낼 수 있을 따름이다. ● 이러한 거울이 갖는 상징적 의미나 그 거울을 통한 불완전한 기억의 환기력이 비디오설치작업「water shadow 4」와「water shadow-the four seasons」에서는 수면(水面) 즉 일종의 물거울의 형태로 변주되고 있다. 이 작업들에서 기억과 추억의 불확실성은 일관된 서사를 방해하는 이질적이고 파편화된 장면들에 의해 야기되는가 하면, '펑'하는 소리와 함께 수면에 돌을 던질 때 이는 파문과 더불어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거나 조각나는 장면들에 의해 뒷받침된다. ● 그리고 특히 장면의 이면에 흐르는 독백의 형식을 빌린 익명의 목소리에 의해 강조된다. '잃어버린...명확한...지금...과거는...각각...과거는...' 귀를 곧추 세워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도 않는 이 목소리는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고, 사실과 각색이 중첩되는 식의 기억의 불완전성을 암시한다. 기억은 과거를 오롯이 복원한 것이기보다는,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대한 현재의 해석이며 각색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욕망이 과거의 사실에 투사돼 그 실제를 왜곡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억의 불완전성을 증언하는 목소리는 의식의 층위보다는 몸의, 무의식적 욕망의 층위에 속해있다. 정작 발화된 말과는 다른 말, 심지어는 발화된 말을 동시에 번복하기조차 하는 말, 몸의 말이며 욕망의 말이다. '나는 내가 아닌 곳(없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는 자크 라캉의 말이 이런 몸의 말과 욕망의 말을 증언해주고, 의식의 말과 무의식의 말의 차이를 증언해준다.

김창겸_water shadow-the four seasons_비디오설치_00:14:00_2006~7

이처럼 화면에 깔린 독백이 거울을 소재로 한 비디오설치작업「memory in the mirror」에서는 이와는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나는 너를 보고 있다...너는 나를 본다.' 정작 이 목소리의 주체가 화면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런 숨겨진 주체 탓에 우선은 화면 밖에 있는 익명적 주체의 시선과, 화면 속의 대상화된 인물의 응시가 교차하는, 시각(視覺)과 관련된 권력관계이론을 예시한 것처럼 읽혀진다. 그리고 나아가 나는 너를 보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을 보지 못하고, 너는 나를 보지만 정작 너 자신은 볼 수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처럼 읽힌다. 나와 너는 서로 화해할 수 없다는 소외의식(서로에 대한 대상화와 사물화 그리고 객체화를 통해서만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볼 수 있다)과 함께, 나(의식적인 나)와 나(무의식적인 나) 사이에조차 건널 수 없는 간극이 놓여 있다는 존재론적 자의식이 읽혀진다. ● 작가의 이런 일련의 비디오설치작업들은 더 촘촘해진 내용이나 연출력 그리고 기술적인 완성도 등의 세부적인 부분을 도외시하면, 근본적으론 전작과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하드웨어의 큰 틀은 그대로 견지하면서 그 속에 담겨질 소프트웨어에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다. ● 이에 비해 이 작업들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경향성의 작업이「still life」이다. 선반 위에다 일련의 병 오브제들을 설치하고, 그 위에 영상을 투사하여 일종의 그림자 요정 또는 병의 요정이라 부를만한 캐릭터로 하여금 병 속을 들락거리게 한 것이다. 그 요정이 병 속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밋밋했던 병의 표면에 화사한 꽃그림이 피어난다. 이렇게 요정은 무표정했던 병들에 생기를 불어 넣은 후, 처음처럼 그림자가 되어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이와 함께 병들 역시 그 생기를 잃고 원래의 오브제인 하얀 형해(形骸)로 되돌아간다. 이처럼 영상이 투사되지 않은 상태의 오브제에서는 마치 사물의 잠재적인 형태와 그 흔적만이 드러날 뿐이다. ● 작가는 작품의 중간 중간에 이렇듯 오브제의 하얀 덩어리를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화면에서의 실재감이 사실은 순수한 영상효과에 지나지 않음을 주지시킨다. 그 영상효과 자체가 마치 그림자요정처럼 허상(그림자)과 환상(요정)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신기루에 지나지 않음을, 따라서 모든 이미지란 결국 이런 신기루를 만들어내기 위한 한갓 환영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김창겸_still life_비디오설치_00:05:50_2007

사진작업 ● 사진작업으로는 일종의 인공정원 혹은 인공자연을 주제화한「forest 1, 2」와「garden 1, 2, 3, 4」그리고「room of mirror 7」의 합성사진 7점과,「room of mirror 1, 2, 3, 4, 5, 6」과「water shadow 1, 2」의 비디오 스틸사진 8점을 포함하여, 총 15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 김창겸은 일련의 합성사진작업들에서 마른 갈대 덤불과 나무, 수석과 분재와 괴석, 그리고 개와 토끼 등의 화면 속에 등장하는 주요 모티브들을 반복적으로 복제하고, 이를 아파트나 숲 그리고 고옥(古屋)과 같은 자연 혹은 인공의 이미지와 합성한다. 이 과정을 통해 마치 실재하는 풍경 같지만, 사실은 여러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하나의 화면 안에다가 합성해 놓은 가공의, 가상의 풍경을 제안(재현)한다. 예컨대 키가 작은 분재(盆栽)를 실제의 숲과 어우러진 고목처럼 연출하는 식이다. 이 풍경들이 가공의 것임은 특히 사람 대신 목각인형을 모델로 차용해서, 이를 자연 이미지와 합성한 사진에서 확연해진다. 그런가하면 숲 속에다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총을 든 군인형상의 프라모델을 숨겨 놓거나, 뜬금없이 숲 뒤쪽으로 그 상호를 한문자로 쓴 간판이 등장하기도 한다.

김창겸_forest_디지털 프린트_84×150cm_2007

그러나 이처럼 합성된 이미지나 모티브는 마치 숨은그림찾기에서처럼 자연스런 풍경과 어우러져서 일체를 이루고 있다(이는 트릭이 합성 이미지 혹은 그 프로세스의 한 본성임을 말해준다). 그 자체 하나의 자연스런 사실이나 일상적인 풍경 그리고 실제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그 속에 내재하고 있거나 은폐하고 있는 이질적인 성질 혹은 요소를 암시해준다. 그러니까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정경이나 풍경이 함축하고 있는 그 이면을, 그 틈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사물의 일상성을 비틀어 그 이면의 이상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낯설게 하기'와도 통한다. 가시적인 것은 다만 사물이나 정경의 일면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모든 사물이나 정경은 그 이면에 비가시적인 본성(예컨대 이질성이나 일탈성, 나아가 사물의 가시적인 층위와 그 속성에 반하는 부정성)을 숨기고 있으며, 그렇게 이중적인 혹은 다중적인 결(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결)로 중첩돼 있음을 주지시킨다. ● 이처럼 합성은 상호간 이질적인 것들, 무관계한 것들을 접붙이는 관계의 개념으로서(합성의 본성은 접속이다), 그 속에 이질성을 숨기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과정과 방법으로써 새로운 관계의 망을 만들어서 사물들에 잠재돼 있는 이질성과 의외성을 드러내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합성은 질 들뢰즈의 영토화와 탈영토화 개념과 통한다. 모든 상식과 합리 그리고 지식의 형태로 굳어진 것들(영토화되고 제도화된 것들)의 견고한 틀을 깨고 이를 재구조화하고 재편하는 것(탈영토화하고 탈제도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합성의 본성은 동일성이 아닌 비동일성이나 이질성 그리고 차이 만들기에 있으며(합성은 사물이 내재하고 있는 이질성이나 차이를 드러내고 강조한다), 그 핵심개념은 관계이다. 그리고 그 구조화의 방식, 즉 합성이 사물에 투여되는 형식은 (재)배열과 (재)배치이다. (재)배열과 (재)배치에 따라 사물의 관계가 달라지고, 그 관계의 전망이 달라지고, 나아가 사물의 존재조건마저 달라지기 때문이다. ● 이처럼 김창겸의 사진작업들은 합성이 단순히 가상적 이미지를 위한 효과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사물을 보는 전혀 새로운 방식과 시각을 열어주며, 더 나아가 세계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으로 재편하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주지시킨다.

김창겸_garden_디지털 프린트_101×152cm_2007

김창겸은 이런 일련의 합성사진작업을 통해 인공정원 혹은 인공자연을 주제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의식은 비디오설치작업인「water shadow 4」와「water shadow-the four seasons」에서 보다 적극적인 형식으로 변주된다. 즉, 폴리로 떠낸 인공의 돌확 주변에다가 호박돌과 잔디를 깔아서 마치 실제의 정원처럼 꾸미며, 이로써 인공의 상황과 실제의 상황이 구별되지 않고 서로 어우러지게 한 것이다. ● 이렇게 인공화 된 현실 즉 인공거울(특히 비디오설치작업에서의), 인공정원, 인공자연, 그리고 인공 숲과 대면하거나 그 속을 거닐면서 우리는 현실감의 혼란을 경험하게 되고, 현실감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흔들리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혼란은 디지털 매체에 대한 작가의 완벽한 이해와 기술적인 숙련이 뒷받침됨으로써 그 자체 하나의 새로운 현실감으로 다가온다. 즉 감각적 현실을 대체한 가상현실이나,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이미지를 겨냥한 장 보들리야르의 비전을 실현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현실감이나 실재감을 혼란에 빠트리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현실이나 실재에 대한 감각영역이나 그 지평을 증대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상식과 합리에 길들여진 의식 저편에서 떠오르는 세계, 선입견과 편견의 더께를 걷어내고서야 비로소 드러나 보이는 세계, 우리 모두의 머리와 가슴 속에 잠재돼 있는 무의식적인 세계가 감각적 현실의 장막을 찢고 그 표면 위로 자기를 밀어 올리는 것이다. 김창겸의 작업은 이러한 충일한 세계, 마치 축제와도 같은 세계에 동참하고 이를 즐기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 고충환

Vol.20070915b | 김창겸 개인展

2025/01/01-03/30